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음악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 일렉기타의 소리 자체를 즐긴다는 면이 더 있는 듯 합니다. 언제인가 전기기타가 주인공이 되지 않는 음악에는 별 취미가 없어졌죠.

원래가
게으른 성격(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사주에서도 게으른 것으로 나와 있다고 합니다)이지만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다 보니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것 저것 찾아 보게 되고 잡다하게 들은 풍월이 축적 되더군요.

 

그런 풍월을 축적하면서 전기기타라는게 보통 악기가 가지고 있는 통념으로 보면 참으로 특이하고 이상한 형태라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이상한 녀석을 좋아할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잡다한 풍월과 자신의 생각을 뒤섞어서 전기기타에 대한 역사와 전기기타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나름대로의 글을 한번 적어 봤습니다. 사실 몇년전에 홈피 만들면 올리려고 했던 글이였는데 결국 홈피를 만들어서 (역시 게으르다는 증거) 블로그에 올리게 되는군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글들과 자신의 주관을 재료로 글이기 때문에 공신력 있는 글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1. 클래식 기타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기타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악기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기타의 모습은 이탈리아의 토레스라는 사람이 19세기에 확립해 놓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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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타는 19세기 토래스 이후의 모습


클래식 기타의 이전 악기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쓰이는 비파와 비슷하게 생겼었나 봅니다. 현대적인 클래식 기타에 비해 크기가 작고 울림판은 보다 두꺼우며 넥도 짧고 플랫수도 적었죠. 이런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은 음량이 작고 다룰 있는 음폭이 작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기에 적자생존론을 적용한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기타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에 비해 경쟁력이 없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다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기타의 모습이 19세기 이탈리아의 토레스란 사람이 울림판은 키워서 음량을 높였고 섬세함을 잡아내기 위해 울림판은 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플랫수를 추가하여 넥의 길이를 키웠죠. 그리고 타레가라는 걸출한 연주가가 등장으로 클래식 기타는 주목받는 악기가 되었죠. 하지만 여전히 주류악기로서의 대접은 받지 못하고 소규모의 샤롱에서는 연주되는 악기였습니다. 그랬을까요?

 

가장 이유는 작은 소리 때문이죠. 토레스의 등장으로 기타는 기존에 비해 음량을 가지게 되었지만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와 같은 주류악기에 비하면 턱없이 음량입니다. 또한 서스테인(Sustain)이라고도 하는 음의 지속시간에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4박자 동안 계속 연주를 해야 한다면 바이올린은 4박자 동안 활을 현에 지속적으로 마찰시켜 일정한 음량을 유지하거나 점점 크게 또는 점점 작게 연주 있지만 손으로 뜯는 악기인 기타는 손으로 퉁기는 순간부터 음이 계속 작아지게 됩니다. 원래 작은 소리가 계속 작아진다는 건데 여러 악기를 대규모로 모아 놓은 오케스트라에서 기타의 이러한 약점은 치명적이죠.

 

낭만파 음악시대에는 그나마 소품형식의 곡에 적용되던 기타는 낭만파 음악이 쇠태하면서 기껏해야 스페인의 정통음악이나 떠돌이 집시 또는 거리의 악사들한테나 쓰이는 악기로 전락하고 맙니다. 타레가가 기타를 발전시키기는 했지만 샤롱음악 이상으로는 발전시킬 수가 없었죠. 이후 세고비아라는 걸출한 연주자에 의해 중흥기를 맞이하긴 하지만 기타의 음량문제는 두고두고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기타는 다른 장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중에서도 특이할 만한 것이 화음이면 화음, 선율이면 선율, 리듬이면 리듬, 모두를 연주 있다는 것이지요. 반주와 선율을 동시에 연주 있는 현악기는 사실 기타뿐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베토벤이 기타를 작은 교향악단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요. 클래식 기타 연주를 들으면 도저히 혼자서 연주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음악이 기타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나 아스트리아스을 처음 들었을 혼자서 기타 1대로 이런 곡을 연주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챌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요? 그만큼 음량을 제외하고는 표현력이 풍부한 악기가 기타입니다.

 

하지만 기존 클래식 음악이 계속 주류로 남는  기타는 결코 대중적인 악기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상업적이니 통속적이니 하는 비판이 있을지언정 20세기 동안의 주류음악은 고상한 클래식 음악이 아닌 대중과 함께 왔던 대중음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현대 대중 음악의 역사는 사실상 영국과 미국의 음악 역사라고 봐도 겁니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주로 유럽대륙에 위치한 국가들에 의해 주도 되어 왔으며 섬나라 영국은 음악의 역사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왔습니다. 기껏해야 영국음악가로 클래식 음악에 발자취를 남긴 사람은 에드워드 엘가 정도지요. 하지만 현대 대중 음악에서 추세는 완전히 뒤집어 졌고 엉뚱하게도 기타가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2. 미국 음악

 

문화란 것도 역시 국력의 일부일까요? 미국이 20세기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세계의 음악 흐름은 완전히 미국과 영국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전까지 음악이라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20세기에서 완전히 역전 것이죠. 미국과 영국사람으로 클래식에 어느 정도 발자취를 남긴 작곡가는 영국의 엘가와 미국의 죠지거쉰 정도일 겁니다.

 

미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음악은 주로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과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으로 생각해 있습니다. 미국에 건너온 대부분 백인들은 아시다시피 유럽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이민 왔고 어떻게 생각하면 유럽본토에서는 하층민(카네기, 케네디 일가는 아일랜드 빈민 출신)이거나 핍박 받는 사람들(최초의 미국 이주민인 청교도들도 영국에서는 종교문제로 박해 받던 사람들)이였다고 생각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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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집안도 아일랜드 출신

이 양반의 할아버지가 금주법 시대 때 술장사 해서 집안 일으켰죠


그들은 유럽의 비주류였던 사람들이였고 따라서 미국에 건너온 백인 이민자들은 클래식 음악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 있는 환경을 가지지 않았을까 합니다각국 이민자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악기를 수단으로 새로운 사회, 새로운 토양에서 갖가지 음악을 했을테고 거기에서 살아남은 것들이 새로운 음악형태를 만들어 가지 않았을까요?

 

우선 생각해 있는 것이 작고 휴대가 편한 악기들의 선호라고 있겠습니다. 변변한 하나 마련하는게 목적인 초기 이민 시절에는 당연한 거라고 있지요. 하모니카는 크기가 엄청 작지만 음량이 크기에 비해 음량이 압도적으로 크므로 많이 애용된 합니다. 바이올린도 휴대의 간편성이라는 측면에서 역시 빠질 없는 악기가 되겠군요.

 

초기 미국이라는 나라의 사정을 한번 생각해 보면 교향곡처럼 웅장한 규모의 음악을 없는게 당연할 겁니다. 음악홀 하나 변변히 없고 조그마한 술집이나 동네잔치 정도 때에나 쓰이는 용도이므로 누가 그런 곳에 대규모 교향악단을 쓰겠습니까. 바이올린, 하모니카는 음량 간편한 휴대성을 자랑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있지만 화음을 연주하기에는 어렵죠. 이동이 잦은 거친 개척시대에 화음 연주 때문에 피아노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일입니다. 휴대가 간편하면서도 화음을 연주할 있는 악기라면 당연히 기타가 생각나죠.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보면 기타는 리듬을 연주하고 바이올린이나 하모니카로 선율을 연주하는 형태를 있습니다.

 

백인음악과 달리 흑인들이 만들어낸 음악은 상당히 어두운 색채를 가지게 됩니다. 당연히 그럴 밖에 없는 것이 초기 미국에 있던 흑인들은 모두 노예였으니까요. 흑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은 흑인 영가에서 블루스와 재즈로 발전합니다. 재즈가 먼저네 블루스가 먼저네 하는 논란을 어디에선가 같은데 사실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관심 없습니다.

 

암튼 블루스의 느낌은 재즈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원초적이면서도 남성적이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블루스 음악에서는 기타가 상당히 중요한 악기로 자리 잡은 합니다. 그에 비해 재즈는 블루스에 비해 기타를 중용하는 입장은 아닌 합니다. 재즈가 유곽에서 연주되던 음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끈쩍거리면서도 나긋나긋한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당시의 어쿠스틱 기타보다는 다른 악기들이 어울리겠죠.

 

블루스와 재즈는 미국 남부의 루이지애나 지방의 지역 음악, 게다가 흑인들만의 음악이였습니다. 음악들이 고향인 루이지애나를 떠나서 미국전역에 알려지게 되었고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 개성을 가지게 되죠.

 

루이지애나 지방의 블루스, 다른 말로 델타 블루스라고도 불리는 초기 블루스의 음악은 샤롱음악의 성격이 강해 보입니다. 델타 블루스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Robert Johnson 활동 연대는 1930년대였습니다. 그때는 흑인들에게 투표권도 주어지지 않았고 주류로서의 음악 활동을 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웠을 겁니다. 그저 흑인들끼리 어울려서 조그마한 공간에서 지방민요의 성격으로 연주되는 것이 고작이였겠죠. 전술 했듯이 클래식 기타는 샬롱음악에서는 휼륭한 역할을 내었습니다. 경제력이 약한 흑인들이다 보니 동원할 있는 악기도 많지 않았고 전천후 악기라 있는 기타가 선택되는 것은 필연적이 아니였을까요. 이를 반영하듯이 당시의 음악들은 기타하나로만 소박하게 연주되는 형태였습니다. 같이 연주되는 악기가 있다면 하모니카가 고작이였죠.

 

백인음악과 흑인음악을 이렇게 갈라서 생각해 보지만 미국의 원래 잡종(?) 나라이다 보니 서로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변화된 모습을 계속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수도 없이 많으며 과거에도 그랬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루이지애나의 민속음악에 불과하던 블루스가 본격적으로 대중화 것은 전쟁 생사를 같이 백인병사들과 흑인 병사들간의 교류에서 백인들이 블루스 음악을 알게 됨으로써 가능해졌던 것이라 하더군요. 에미넴은 백인이지만 흑인들에게도 인정받는 래퍼죠. 에릭클립튼도 비비킹과 같이 음반을 냈습니다. 택사스 블루스는 백인들 중에서도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지방이라는 택사스의 백인들이 흑인들의 음악을 대표적인 경우죠. 흑인만의 음악이던 Rap 백인만의 음악이던 Rock 결합한 음악인 하드코어가 주류행세까지 합니다.

 

계속적인 실험과 다양성이 가능한 이러한 풍토가 미국문화의 최대 강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환경에서 음악도 계속 변화하며 새로운 소리가 요구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기기타가 주류악기로 자리잡은 이유 중요한 한가지가 바로 이러한 점이죠. 서로 다른 음악들이 교감하면서 다른 형태의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기타는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3  Pickup 탄생

 

기타가 범용적이고 훌륭한 악기이다 보니 백인의 컨츄리 음악과 블루스 음악가들이 사용하는 악기가 되었지만 기타의 원래 한계인 작은 음량은 계속 문제로 남게 됩니다. 토레오형의 클래식 기타가 만들어 목적 중의 하나도 음량 해결이였던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있었던 참으로 고질적인 문제였죠. 클래식 기타의 음량도 역시 성에 차지는 않았었나 봅니다. 오래전부터 여러 발명가들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고 메가폰을 기타에 장착하여 소리를 증폭해 보려는 노력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음량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기타는 과거 클래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한적인 악기로 취급될 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것이 바로 픽업이라는 장비죠.

 

픽업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전기기타라는 것이 존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최초의 픽업은 깁슨에서 만들었다는 소리도 있지만 미국의 특허청에 픽업으로 특허를 따낸 사람은 George D. Beauchamp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1930년에 Pick-up이라는 장치를 발명하고 리켄베커라는 기타 회사를 설립하게 되며 이로써 기타는 음량의 한계를 넘어설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픽업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마이크나 발전기의 원리와 같습니다. 간단히 이야기 하면 자기에 변화가 생기면 변화한만큼 전류가 발생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지요. 픽업은 자석에 코일을 칭칭 감아 놓은 것입니다. 자석 근처에서 쇠로 만든 현이 떨리면 떨림으로 자석의 자장에 변화가 생기고 변화에 대응하여 전류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국민학교때 코일 감고 자석을 움직이면 근처의 나침반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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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한번쯤은 이런 실험 해 봤을 겁니다.

전류계 대신 나침반을 놓고 하죠

픽업의 원리도 이것과 동일합니다


Beauchamp 자신이 개발한 픽업을 스틸기타에 채용하였다고 합니다. 저도 스틸기타가 어떤건지는 모르는데 하와이풍의 음악에 많이 사용되는 악기였나 봅니다. 암튼 픽업으로 인해 기타의 음량을 해결하는 방법이 나오자 여러 형태의 기타들이 나오고 오늘날과 같은 다양함이 생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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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ing Pan 이라는 별명이 붙은 초기 스틸기타


픽업이 발명된 초기에는 우선 전통적인 통기타에 픽업만 장착하여 음량을 키운 형태가 주를 이루게 됩니다. 리켄버거가 그런 기타를 놓은 것은 물론이고 오늘날 전자기타 업계의 양대산맥 하나인 Gibson 이런 모델을 1935년에 보입니다. 그때의 모델이 ES-150이지요.현재까지도 Gibson 이러한 개념의 기타를 계속 생산하고 있죠. 대표적인 블루스 기타로 꼽히는 ES-355 이러한 기타의 대표적인 예라고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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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bson ES-150


하지만 픽업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원래 기타에 음량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픽업이 통기타의 소리를 그대로 재생해 있어야 합니다만 하지만 픽업이라는 매개체를 거치면 통기타 본연의 소리는 어느 정도 왜곡될 밖에 없습니다. 통기타 자체의 소리를 단순히 크게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마이크를 대고 증폭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실제로도 요즘의 통기타 가수들도 기타소리를 마이크로 잡아서 공연을 하지요.

 

픽업을 사용한다면 결국 현의 울림이 픽업을 거치는 것이므로 원래의 소리와 같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통기타에 픽업을 붙인 기타는 고가가 아니면 픽업을 통한 소리가 좋지 않습니다. 어지간한 경우에는 그냥 마이크를 통해 소리를 내죠. 음량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했지만 이것으로는 기존의 기타를 완벽하게 재생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꺼꾸로 픽업을 위주로 하여 기타가 바뀌는 것이 어떨까요? 이렇게 주객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다른 형태의 기타가 나올 있습니다. 그러한 시도의 하나도 있는 것이 오늘날 흔히 전기기타라고 일컬어지는 Solid Body 일렉기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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