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불멸의 이순신"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녹둔도 만호 시절부터 재미있게 봐 왔는데 저번주에 드디어 고대하던 첫번째 전투인 옥포해전이 방송되었죠.
어릴 적 위인전을 보면서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데 이순신의 전투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아군의 피해가 미미합니다. 기록만으로 본다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살육에 가깝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그런 일방적인 전쟁이 가능했던 이유가 화면으로 잘 나옵니다. 바로 화포를 이용한 절대적인 화력의 우세가 그 이유입니다.
고등학교 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집에 있는 잡다한 책을 뒤적인 적이 많았는데 그 때 읽었던 책 중에서 "배의 역사"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서울대 조선공학과의 원로 교수였습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이 상당한 비중한 차지하는데 배의 역사도 마찬가지더군요. 책의 상당 부분을 해전 부분에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쓰시마해전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러일전쟁 중에 일본의 도고 제독이 이끄는 일본 해군이 먼길을 돌아온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대한해협에서 개박살을 내 놓은 해전이죠.
해전을 앞두고 일본 해군은 배 위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는데 웃기게도 제사상을 받는 대상은 이순신 장군이였습니다. 러일전쟁 승리 후 도고제독이 자신을 넬슨에 비교할 수 있어도 이순신에는 비할 수 없다고까지 이야기를 했었죠.
배의 역사에서 쓰시마 해전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 해전이 근대적 해상전의 시작이였기 때문입니다. 함포사격에서 우위를 확보해야만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거대한 포가 달린 전함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죠.
함포 화력 우위로 승리를 챙기는 방법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에게 써 먹던 방법과 별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은 이순신 장군에게 당했던 방법을 벤치마킹하여 러일 전쟁때 써 먹어서 승리하게 된 것이죠. 도고 제독이 이순신 장군을 높이 평가한 것이나 전투 전에 이순신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 괜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이러한 해전의 패러다임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깨져버립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해전의 승패를 좌우한 것은 전함의 대포가 아니라 항공모함을 기반으로 하는 제공권이였습니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전함인 야마토를 건조하여 실전 투입을 하였으나 거대한 포를 제대로 쏘아 보지도 못하고 비행기 1000대의 폭격을 받아 격침된 건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의 상징적인 사건이죠.
이런 것을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나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런 것들이 역사적인 배경으로 작용해서 지금까지도 얼핏 얼핏 보이고 있으니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 만든 대표적인 블럭버스터 영화인 스타워즈를 보면..
스타워즈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사실은 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전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2차 세계 대전에서 미 해군이 승리 했던 패러다임을 고스란히 적용하고 있습니다.거대한 우주선끼리 서로 치고 받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우주선들을 출동시켜서 폭격하는 것이죠. 전투의 주역은 함장이 아니라 조그마한 전투기를 몰면서 폭격을 수행하는 전투조종사들입니다.
반면 일본은 어떤가요?
일본 만화를 보면 스타워즈와 비슷하게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전투방법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어릴 때 보았던 하록선장의 배는 철저하게 포로 무장하고 있지요. 쪼잔하게 조그마한 전투기를 날려서 적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함포 사격으로 상대방을 한방에 보내 버립니다. 하록 선장 뿐만이 아니라 일본 만화에서 나오는 우주선의 주요 무기는 거의 예외 없이 함포입니다. 전투의 주역은 함포 사격을 명령하는 함장이죠.
일본인들의 정서는 아직도 쓰시마 해전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함포로 무장한 일본 만화의 우주선들은 사실은 침몰해 버린 세계 최대의 전함인 야마토가 부활한 상징물들입니다. 최근 일본이 보이고 있는 우경화도 이러한 면과 전혀 상관없지 않습니다. 그들은 러일전쟁 이후의 전성기를 집요하리만치 계속 갈구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우경화의 근거는 결국 과거에 화려했던 일본의 군국주의에 있고 다시 군국주의를 일으키 세력들은 명치유신의 주된 세력이였던 사쓰마, 조슈 출신 사람들입니다. 다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쓰마, 조슈 지역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은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따르던 세력들이 쫓겨난 곳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들 아시다시피 명나라를 집어 먹겠다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죠. 비록 그는 실패했지만 몇백년 뒤 그의 추종자들은 결국 조선을 집어 삼키고 중국을 침략했으며 미국까지도 맞짱을 뜬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틈만 나면 그 때로 돌아가 싶어하는 거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써 먹었던 수법이 일본의 우주만화 영화에 나오는 걸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몇백년을 걸쳐 온 악연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수천년 동안 동일한 가문이 유지해 온 천황제를 21세기까지도 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참으로 변화하지 않는 집단입니다. 수천년을 유지해 온 것도 있는데 몇백년 전의 일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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