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 써 놓고 보니 참으로 거창한 주제입니다만 그냥 제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음악에 대한 생각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어쩌면 음악을 떠나서 예술이라 불리는 영역에 대해서 적용 가능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편하게 생각하면 들어서 좋게 느껴지고 감동을 느끼는 것이 음악이겠지요. 사실 이런 생각이 정답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들어서 좋게 느껴지고 심지어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감동이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몇몇 전문가들 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고 그런 부분이 음악의 진짜 정체일 것입니다.

음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사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전공자들에게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음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래와 같이 선언적으로 적어보았습니다.


"음악이라는 것은 소리를 통해 생명을 느끼는 것"


그렇다면 생명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의문이 꼬리를 물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생명 그 자체이면서도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 아는 바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문헌에서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영역인 생명에 대해 우리가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생명이 유지되기 위한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 유지에 필요한 메커니즘이 우리가 여태까지 파악한 자연을 움직이는 메커니즘과는 반대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즉 생명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그 생명은 자연과는 다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자연은 무생물의 세계입니다. 인류가 무생물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나름대로 법칙이라고 명명한 메커니즘들이 있는데 현재까지 확고부동한 법칙으로 인정 받는 것은 열역학 법칙입니다. 열역학 법칙 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쪽으로 자연이 움직인다는 열역학 제 2 법칙입니다.

열역학 제 2 법칙의 대표적인 예가 먼지 입니다. 오래동안 방치 해 온 물건에는 먼지가 쌓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먼지는 누가 일부러 그렇게 한게 아닌데에도 불구하고 균등하게 쌓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균등한 정도는 더욱 정밀해지죠.

무생물의 세계에서 차별이란 없습니다. 영겁의 시간에서 모난 것은 깍이고 패인 곳은 메워지며 모든 것은 지극히 균등한 비율로 섞여 평형을 유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생명은 이러한 물질의 세계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이 다할 때까지 불균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없어져야만 균등한 상태를 유지하는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되죠. 수명을 다한 생명의 육신은 부패하여 흙과 대기로 돌아갑니다.

생명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정체를 아직까지는 모르지만 생명 활동은 불균등한 상태와 균등한 상태를 끊임없이 오가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정말 미스테리합니다. 생명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2가지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모순덩어리인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음악을 들어보면 그 역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을 동시에 양립시키고 있습니다. 소위 예술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서로 상반되는 요소들을 적당한 범위에서 양립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반되는 요소를 어떻게 양립시키느가에 따라 감정을 전달하고 있지요. 수식을 통해 각종 계산만 하는 줄 아는 공학에서도 서로 상반되는 요소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대개 이러한 분야는 해당 공학 분야의 꽃이며 예술의 경지로 취급 되죠.

현재 음악을 하는 도구로 널리 쓰이는 것은 평균율 음계입니다. 음계가 정립되어 온 역사를 살펴보면 결국 음계라는 것은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음높이에 대한 모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미 음계 자체에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양립시켜 놓고 있습니다.

완전1도와 완전5도는 완벽한 화음입니다. 이 두개 음정의 화음은 음악에서 할 수 있는 차별이 없는 최상의 상태입니다. 즉 무생물의 세계에서 차별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완전5도 화음을 피아노로 한번 쳐 보시고 들어 보십시요. 청음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음정이 다른 두가지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풍부한 음이 난다고 느낄 것입니다.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음높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은 음높이 자체를 명확히 구분해내지 못합니다.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화음은 역설적으로 음악에서는 피해야 할 화음입니다.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차별이 없는 상태 바로 죽음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피타고라스가 생각해 냈던 8음계는 완전 1도와 완전 5도의 관계를 재귀적인 방법으로 누적하여 찾아낸 음계입니다. 평균율 음계에서는 12음계가 서로 완전5도의 관계를 가지는 5도권 순환이 성립합니다. 즉 음계는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음을 찾아 내는 방법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방법으로 찾아 낸 음계들이 모두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1,4,5 화음을 제외하고는 완전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2,3,6,7은 모두 단음과 장음으로 구성됩니다. 즉 완전하기에는 짧거나 긴 주파수를 가진 음정이 더 많이 존재합니다.

평균율 음계를 채용한 음악은 이렇게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음계들을 이용해서 균등한 상태와 불균등한 상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오고 갑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균등한 상태에서 불균등한 상태로 다시 불균등한 상태에서 균등한 상태로 오가는 미분치의 흐름을 느낄 때면 뭐라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종종 느낍니다.

음계의 범위 안에서만 이러한 아름다움이 나타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음계는 단지 틀이고 수단일 뿐이지요. 음높이를 명확히 할 수 없는 소리라도 이러한 미분치를 느낄 수 있다면 그런 것들은 모두 음악입니다. 음높이를 명확히 할 수 없는 사물놀이 연주나 랩 음악이라 할지라도 균등과 불균등을 오가는 미분치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음악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생각할 때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절제이며 중용입니다. 균등한 상태로만 가서도 안 되고 불균등한 상태로만 가면 안 됩니다. 이 대목에서는 음양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존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세상이 이루진다는 동양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떠오르는군요.

폭주하는 소리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시끄러운 음악이라고 폭주하는 음악은 아닙니다. 조용한 듯 하지만 터질 듯 하고 터지고 있지만 고요한 듯 해야 합니다. 터질 듯이 시끄럽지만 균등과 불균등을 오가는 미분치를 느끼게 해 주는 곡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오히려 조용한 듯 하지만 절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음악도 많더군요.

결국 음악을 듣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생명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사고뭉치였던 애들이 밴드 생활을 하면서 순화되는 경우가 있는 것도 결국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절제를 배우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공자님이 음악을 중시했다는 것도 이런 면 때문이 아닐까요? 겉보기에 괴상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종종 있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심성이 순수하고 착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 반드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음악은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시간범위와 진동 주파수 대에서만 존재합니다. 즉 인간의 감각이 가지는 한계내에서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죠. 어쩌면 이 세상에는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범위에서 더욱 아름다운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생명 그 자체인 우리 자신부터가 아름다움 자체일 것입니다. 다만 오감에 가려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겠지요.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감의 영역을 벗어난 혜안을 가진 분들이 존재 했을 것이고 그 분들이 우리가 가진 생명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노력으로 남은 것이 오늘날 경전이나 고전이 아닐까요?

저도 사는 동안 이러한 아름다움을 얼마나 많이 느끼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오감을 벗어난 열린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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