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단초 삼아 생각을 확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음악이라는 예술은 세상살이와는 전혀 무관한 그 자체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느끼게 된 이후에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해 진 것 같다.

다른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기에 아는 것이 없어 단언 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도 아마 세상살이와 꽤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문학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연계시켰던 "카프"의 생각이 기본적으로 틀린 생각은 아니였다. 정치와 문학을 분리시켰던, 미당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순수 문학도 알고 보면 노골적인 정치적 행위 아니였던가?

다시 음악을 단초로 하여 생각을 확장하게 된 이야기로 돌아와서..

내 경우에는 기타를 좋아하니 음악을 들을 때에는 기타 파트에 집중하여 듣는 경향이 있다. 갖은 악기와 기교를 동원하여 복잡하게 만든 음악일수록 더 많은 집중을 기울여 기타 소리만을 들어 보려고 한다. (내 경험에는 댄스음악이 가장 복잡하다)

어느 한가지 소리만을 들으려고 반복적으로 집중해서 듣다보면 아무리 복잡해도 듣고 싶어하는 악기만이 선별되어 들리는 때가 있다. 소리의 입력을 받는 기관은 귀지만 실제적으로 소리를 듣는 기관은 두뇌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어느 한가지 악기만을 구별하여 듣게 되면 그 악기 소리만 들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역설적으로 그 때가 되면 나머지 다른 악기들의 소리도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들리기 시작한다.

사실 어느 한가지 소리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소리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에 다른 소리들도 구별되어 들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매번 이 당연한 일을 겪을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전체를 들으려고 하면 오히려 전체를 듣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에만 집중하였을 뿐인데 전체를 얻게 된다. 신기하지 않은가?

시장 바닥에서 들을 수 있는 시끄러운 소음도 여러가지 소리가 섞여 있다. 하지만 소음은 그 구성음 각각을 구분해서 들을 수가 없다. 시장 바닥에서 나는 각 소리들은 고유의 성질이 상실된 상태로 섞여서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 낼 뿐이다. 소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음일 뿐이다.

피타고라스의 7음계에서 출발하여 바하의 12음계 평균율에 이르기까지 수천년이 걸렸다. 그런데 그 수천년동안 한 것이라는게 결국은 어울리면서도 섞이지 않는 꼴랑 12가지의 음역대를 찾아낸 것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소음과 음악의 이러한 차이를 생각해 보면...
공자님이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셨을만한 이유가 조금은 짐작이 간다.

君子는 和而不同 , 小人은 同而不和 . . .

음악이라 부르는 것들은 각 소리들이 和하지만 결코  同하지 않는다.
소음은 이와 정반대다. 각 소리들이 합쳐져 同을 이루지만 和하지 않는다.
결국 음악은 군자의 성격을 담고 있으며 소음은 소인의 성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서양음계라는 것은 서로 和而不同한 성격을 가지는 음역대들을 정량적으로 Modeling한 체계이다. 동양음악이라고 음계에 대한 Modeling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정량적이지 못했을 뿐이다.

정량적이든 정성적이든 和而不同한 소리는 아름다운 음악이 되고 同而不和 한 소리는 소음이 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和而不同 하게 살아가면 음악같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지만 同而不和 하게 살아가면 시끄러운 소음처럼 괴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혼자서 반짝일 수 없다면 결코 별이 아니라며?
부처님도 예전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그러시지 않았던가.

요즘은 뜸하지만 얼마 전에 정치권에서 떠들어 대던 상생..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 중 하나가 상생, 영어로 Win-Win 이라고 한다.

몇년전에 엄청 유행했던 스티븐 코비 박사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보면 WinWin이 7가지 습관 중 하나에 들어간다. 그런데 코비 박사가 말하길 WinWin은 독립적인 존재들끼리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WinWin은 7가지 습관 중 5번째 순위에 놓여 있다. 코비 박사는 WinWin과 Compromise를 착각하지 말라고 한다.

혼자서 반짝이는 별들이 모여서 은하수를 이룬다. 하지만 여전히 별들은 혼자서 반짝거리는 존재들이다. 은하수에 들어 있다고 다른 별의 반짝임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밝기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각 별들은 은하수 안에서 和하고 있지만 同하지는 않는 것이다.

상생은 혼자서 반짝거리는 별들끼리 하는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는 존재들이 상생을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상생은 고귀한 가치이며 어려운 것이다. 절충이나 타협은 오히려 쉬운 길에 속한다.

연말에 수능 시험 못 봤다고 자살하는 애들이 있는데 제발 그러지들 말아라. 오죽하면 그러겠냐마는 수능시험 성적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오류를 범하지 마라. 세상과 和할지언정 同하지는 말란 말이다.

회사가 자기를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회사 욕만 입에 달고 살지는 마라. 회사에서 대접해 주는 정도를 자신과 同하는 오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회사가 망해서 전혀 대접을 안해 주면 죽을건가?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는 同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同 때문에 파멸하는 것을 역사에서 많이 보았지 않는가? 텐노반자이를 외치며 전원 옥쇄를 한다거나 비행기로 자살공격을 했던, 천황을 중심으로 한 세상과 자기자신을 同했던 근대 일본의 황당한 군국주의가 20세기에 있었다. 일본이 전통적으로 和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인 20세기에 일본이 보여준 것은 和가 아니라 전형적인 同이였다. 일본은 쇼토쿠 태자 이후로 和와 同을 헷깔려 하고 있었던 거다.

아마도 유교를 바탕으로 한 조선 왕조의 선비들 중에서 和而不同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던 분들이 많았을 게다. 그러니 제 아무리 왕이라 한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게 별로 없었다. 그게 아닌 경우에는 대대적으로 선비들을 쳐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몇백년전에 고차원의 정치의식을 가진 나라를 우리는 이미 세워 놓고 있었던거다.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同보다는 和가 더 중요한 덕목이다. 이러니 무늬만 민주주의일 뿐 아직도 同을 중시하는 일본에 비해 우리가 민주주의를 더 잘 해 나갈 수 밖에 없는거다. 우리가 가진 유교적인 전통이 민주주의와 상극이라고만 볼 수가 없다.

횡설수설한 감은 있는데..암튼 음악에는 和而不同 한 성격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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