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웃 분의 글을 보고 생각이 나길래 써 본다.

현재 과학의 수준에서 여성이라는 것의 정의는 그리 어렵지 않다.
성염색체가 XX 조합이면 여성이다.
그런데 여성성이라고 하면 뭐라 정의해야 하는가?

고기압, 저기압이 상대적인 정의이듯이...
남성적, 여성적 역시 상대적 정의이다.
그 상대적 정의는 사회의 필요에 따라 시대마다 변해 온 듯 하다.
필요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개인이 사회에서 인정된 남녀의 구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엄청나게 피곤해진다. 거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왠만한 사회는 거의 가부장적 성격을 띄었고...
그에 따라 여성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성의 정의가 결정되었다.

---------------------------------------------------------------------------------

교회 다니는 분들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구약에서 야훼는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의 갈빗뼈로 이브를 만드셨다고 하는데...
유태인들의 다른 전승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이브는 아담의 두번째 아내고 첫번째 아내는 리리스(Lilith)라 한다.
리리스는 야훼의 눈 밖에 벗어나 에덴에서 쫓겨났는데...
그녀의 큰 죄목 중 하나가 아담과의 잠자리에서 정상위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정상위는 영어로 missionary position 인데...
missionary는 "전도의, 전도의 종사하는" 뜻의 형용사다.
종교적으로 인정받는 체위라는 어감이 드는데 그게 정상위란다.

예전 "털 없는 원숭이"이라는 책에서...
해부학적 관점에서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체위가 정상위라는 주장을 본 적이 있는데...
암튼 이름 그대로 "정상"적인 정상위를 리리스는 강력하게 거부했단다.

정상위를 거부한 리리스는 그럼 어떤 체위를 즐겼을까?
뭔지는 몰라도 리리스는 분명 아담과의 섹스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체위를 선택했으리라.
잠자리에서도 아담을 깔고 뭉갰으니 평소 생활도 안 봐도 비디오일 듯.

리리스는 심지어 '어머니'라는 신성불가침한 영역마저도 부정한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난 후 리리스는 아기를 잡아 먹는 괴물 역할을 한다.

남자보다 똑똑하다는 알파걸이 나오는 세상에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리리스의 존재가 결코 허구인 것 같지만은 않다.

---------------------------------------------------------------------------------

이전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가 고고학적 발굴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수메르 신화.
현재 이 세상에 알려진 신화들 중 가장 오래된 신화는 수메르 신화다.
그 신화에서 과연 여자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인안나'라는 여신이 있다.
그런데 이 여신은 보통 우리가 아는 여성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욕망을 당당하게 내세우며 쟁취해 나간다.

그녀의 최대 무기는 그녀의 음부.
그녀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안'과 동침을 하고 권력을 얻고...
자신의 삼촌인 '엔키'를 유혹하여 7가지의 메를 얻는다.

세상의 온갖 것들을 다 취한 여왕으로도 만족하지 못해...
자신의 언니인 에레시키갈이 다스리는 저승까지도 접수하며...
저승에서 헤메는 동안 이승에서 신나게 놀아난 남편 두무지를 저승으로 보내 버린다.

그야말로 자유분방에 뭐하나 거칠 것이 없었던 여성.
수메르 신화는 그녀를 위대한 여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그야말로 여걸이지만 또한 여성임을 조금도 의심받지 않은...
아름답고 위대한 여신으로 칭송받았던 이가 인안나다.

---------------------------------------------------------------------------------

오래 된 이야기에 나오는 여성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여성상과는 많이 다르다.

리리스 이야기가 비교적 근세에 만들어진 위작이 아닌 고대의 이야기라면...
고대사회에 가부장적 권위가 확립되어 나가면서...
가부장적 권위에 반하는 리리스는 의도적으로 구약에서 제외되고...
거기에 더해 리리스는 반사회적인 악마적 존재로 변형되었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수메르 신화는 석판 기록을 통해 거의 왜곡 없이 우리에게 직접 전달 되었는데...
그 기록에서 보이는 최고 여신의 모습은 사실 내가 아는 여성상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 당시 인안나는 여성으로서의 존재를 전혀 의심받지 않았다.
오히려 위대한 여신으로 칭송받고 숭배 받았다.

난 인안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서태후가 떠올랐다.
인안나가 수메르 신화 속의 인물만은 아니였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에도 인안나는 존재한다.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부터 시작해서...
천추태후나 서태후 등 권력을 쥐었던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가부장적 질서를 옹호하도록 만들며...
여성으로서의 인안나를 부정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위대한 인안나는 그동안 말살되어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을 박탈당했다.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수많은 인안나들은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살았으리라.

그런데 이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알파걸, 텐프로 아가씨, 낮은 출산율 등등은 다 이유가 있다.
인안나가 다시 칭송 받고 위대함을 보일 시대가 점점 열리고 있다.

'자작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그린 에너지인가  (0) 2010.06.07
결국 믿음...  (0) 2010.06.07
사형은 반댈세  (0) 2010.06.07
음악의 시그널화...  (0) 2010.06.07
노동가치설의 의미  (0) 2010.06.07
Posted by ikipus
: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290)
자작 (222)
(19)
지극히_개인적인 (49)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