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전 겨울 즈음, 자는데 딸 아이가 아파서 끙끙거렸다. 아이 키우다 보면 열 나는건 다반사지만 고열에 옆구리가 아프다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 심상치가 않아 종합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피검사, X레이, 초음파, CT 등 별별 검사를 다 해 봤지만 진단이 되지 않아 응급실에서 해열제와 진통제를 먹으며 하루 종일을 버텼다. 결국 나중에 X레이 재촬영으로 급성폐렴이 확인 된 후 입원하고 진료를 할 수 있었다. 그 때 의사는 대체 뭐하는 존재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기계가 데이터를 주지 않으면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의사가 할 수 있는 일 중 대부분이 기계로 대체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CSI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그들은 최첨단 기기에 많이 의존한다. 수많은 첨단 기법과 기기를 이용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그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로 팀을 이루어 활동한다. 하지만 기계를 통해 데이터를 얻어내지 못하면 않으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옛날 콜롬보 형사는 기계에 의존한 데이터 수집과는 거리가 멀다. 어벙해 보이는 외모에 시덥잖은 질문을 던져가며 천천히 범인을 옥죄어 나갔다. 콜롬보가 현역이라면 CSI에서 그의 자리가 있을까?
# CSI의 수사관과 종합병원 의사는 과연 판단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일까? 데이터에 의존해서 내린 결정을 판단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좀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좀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다. 즉 판단은 데이터가 하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판단이라 할 수 있는가? 데이터로 드러난 상수에 대한 대응은 이미 정해진 것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니라 기계가 한다고 해도 같은 결과를 낼 것이다. 이런 경우 기계가 판단을 한다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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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100% 완벽한 대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완전히 존재하지 않음에도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아직 모르기에 결정할 수 없다며 미루는 것은 신중한 태도라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결정을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 내 바닥을 드러내야 할 시험의 순간은 예상치 않았던 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다.
외부의 모든 것은 다 의미 없어지고 오로지 나 홀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 내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자신의 모습을 정면에서 응시할 때만 판단은 가능하다. 세상 그 어떠한 것도 그런 판단은 대체할 수 없다. 나와 신이 1:1로 독대해도 떳떳하게 보일 수 있는 그것만이 판단을 가능케 한다.
모든 것에 대한 데이터가 알려지고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다면 항상 100% 완벽한 대응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은 안전하고 편안한 세상이 되겠는가? 천만에, 그런 상황에서 인류는 모두 죽고 만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오로지 데이터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삶을 어느 누가 삶이라 부르며 살아가겠는가? 합리적인 사고를 근간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이 종교를 대체한다면 그 때가 바로 인류 멸망의 순간이다.
그래서 인간은 믿음으로 살 수 밖에 없다. 그 믿음이 자신과 신이 1:1로 독대하여 얻은 진짜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으며 따질 필요조차 없다. 그 믿음에서 추종해야 할 가치가 나타난다. 판단의 잣대는 가치관이며 그 가치관은 믿음에서 나오며 그 믿음은 자신과의 독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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