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GIS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회의를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논의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회사 일보다는 다른 차원의 생각들이 들었다. 잠깐 동안의 생각인데 써 놓고 보니 생각보다 기네.

기존에는 사용자가 자신의 작업을 처리하기에 적합한 논리적인 Model을 형상화한 Interface를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리정보를 고려한 Interface를 사용하면 실제 물리적인 위치에 따라 Interface가 나오고 이에 따라 논리적인 Model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지도를 이용하여 물리적인 위치를 고려한 Interface가 직관적이고 쉬울 것 같지만 해당 일을 처리하기 위한 논리적인 Model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논리적 Model을 근거로 구성된 Interface가 훨씬 쉽고 간편하다.

지하철 노선도가 이러한 예에 속한다. 지하철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이 위치한 지리적인 정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 가장 필요한 정보는 지금 현재의 역이 어디이고 이 역을 통해 갈 수 있는 역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즉 역과 역의 연결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하철 노선을 간단한 선으로 Model화 하고 실제 역은 선에 위치하는 Point으로 Mapping 해 놓아 역의 연결관계를 간명하게 알 수 있게 해 놓은 것이 노선도다.

이러한 지하철 노선도가 실제 지리 정보를 고려하여 제작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의 노선도에서는 그려질 지면을 고려하여 역과 역 사이의 간격이 결정되지만 지도을 바탕으로 깔고 역을 표시하면 실제 거리에 따른 비율대로 역이 표시되어야 한다. 지도가 그려질 지면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서울과 천안/인천 까지 연결된 지하철 노선표를 한 장에 그리면 상대적으로 역 사이의 거리가 조밀한 서울지역은 역과 역이 거의 다닥 다닥 붙어 있는 상태의 복잡한 곡선 형태로 표시될 것이며 거의 알아 볼 수 없는 노선도가 되고 말 것이다.

지하철 이용자는 역과 역의 연결 관계를 보고자 할 뿐인데 지도에 이를 표시하면 연결 관계 뿐 아니라 역의 지리 위치 정보가 더해질 수 밖에 없고 추가되는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형식이 변경되며 다뤄야 하는 데이터의 양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하철 노선도는 지하철 이용자의 일에 맞춰 Model을 세우고 그 Model에 맞춰 정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제작된 것이다. 정보를 왜곡하는 이유는 인간의 지각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며 지하철 노선도를 제공하는 측은 그 지각능력의 한계 내에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셈이다.

언제나 실제를 100% 반영하는 Model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선도는 약도라는 범주에 속하는 모델이며 지도보다 왜곡의 정도가 심하다. 약도 뿐만 아니라 지도란 것도 결국 Model이며 그것 역시 실제와는 다른 왜곡된 정보를 제공할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왜곡의 정도가 다른 형태의 Interface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할 뿐.

의도적인 왜곡의 목적은 적절한 수준으로 정보의 양을 줄이는데 있는며 왜곡의 수준에 따라 생겨난 Model에 의해 형식이 결정된다. 형식은 그것이 생겨난 근원인 Model의 의도에 따라 다룰 수 있는 정보의 해상도 수준이 정해진다. 약도는 그 형식에 해당하는 정보 해상도의 수준이 정해져 있고 지도도 지도의 종류에 따라 그 형식이 담을 수 있는 정보 해상도의 수준이 정해져 있다.

GIS를 도입하면 기존과는 형식이 달라지고 다뤄야 하는 정보양의 수준도 높아진다. 기존에 익숙해 있던 Interface에 변화가 생기고 필요하지도 않은 데이터도 같이 봐야 하기에 일을 하기에는 더 번거로워진다. 그런데 굳이 GIS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GIS를 도입하는데 가장 걸리는 부분이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기존의 Interface는 현재의 일을 하기에 최적화 되어 있는 상태인데 지리정보를 Interface에 추가하면 복잡해지기만 할 뿐 대체 뭐가 좋아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지도를 표시하고 내가 관심있어 하는 기존의 대상을 지도에 표시하는 것만으로는 좋아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번거롭고 짜증이 날 뿐이다. 노선도를 실제 지도에 표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GIS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누구든 GIS를 보면 좋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왜 좋다고 느끼는가? 보면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실무를 잘 모르는 윗 사람들이나 일반인들에게는 GIS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관료 계층에서는 할수만 있다면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쩌면 GIS는 전시행정의 효과를 보는 면이 있을 것이다.

대개 실제 운영자들이나 해당 Interface를 만들어낸 개발자들은 GIS에 회의적이다. 도대체 GIS를 도입한다고 해서 기존의 업무에 뭐가 도움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기존의 약도 수준의 Interface로도 가능했던 일을 굳이 왜 바꾸겠다는 것인가?

실제 운영자들은 왜곡된 Model을 해석하여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을 알아 볼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다. 일반인이 보면 그저 선과 점, 또는 단순한 도형에 불과한 Interface를 통해서 전문가들은 정보를 알아 채고 뭔가를 수행 할 수 있다. GIS는 정보의 해상도를 높여서 Model의 왜곡이 덜하다. 비 전문가가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기존의 형식에 비해 더 많은 대중들 사이에서 통용될 수 있는 형식 중 하나가 GIS 다. 좀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더 큰 배와 같다고나 할까.

GIS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기존 형식이 가지는 정보의 해상도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의 양이 증대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몇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해 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Media 형식이 낮은 수준의 정보량 해상도를 제공한다면 효율을 높이기가 힘들다.

경쟁에 의한 효율 높이기가 세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오토 트랜스미션이 나오면서 운전자 입장에서 운전이 간단해졌고 이에 따라 효율이 높아졌으나 자동차 그 자체는 더욱 복잡해졌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간단해져야 하지만 그 간단해지는 것 이상으로 다른 부분은 더욱 복잡해진다. 운전자들은 운전이 간단해지고 효율이 높아졌으나 자동차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차 만들기가 더욱 복잡해진다.

세탁기, 식기세척기, 김치 냉장고 등을 쓰면서 주부들의 일손은 덜어졌고 에어콘이 보급되면서 여름철 노동 효율은 높아졌으나 그만큼 전봇대는 더 많이 세워지고 전력망은 복잡해졌다.

효율을 높이며 상당부분은 간단해지고 간편해졌으나 그와 더불어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어려지는 분야가 생겼다. 전문분야라 하는 곳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그 분야 역시 효율성 경쟁으로 인해 보다 적은 인원이 보다 많은 일을 하도록 원한다.

기존의 형식으로는 정보 해상도가 낮아서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출중하다고 한들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에 한계가 있다. 효율의 증대를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보의 해상도를 높이는 형식이 요구된다. 내가 볼 때 GIS의 필요성은 이것이 아닌가 싶다. GIS든 뭐든 어떤 것이 되어도 좋다. 아무튼 방향은 기존보다 더 높은 정보 해상도를 요구하지 않을까 싶다.

높은 해상도를 가진 형식은 필연적으로 그에 걸맞는 정보량의 증가를 불러온다. 기존의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가면 늘어난 정보량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다. 업무 자체가 달라지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보량은 증가되었으나 정보에 접근하는데 드는 비용은 기존보다 더 낮거나 아무리 높더라도 기존 수준을 이상을 넘어가면 안된다.

정보량은 증가되었으나 정보에 접근하는 비용을 낮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Solution 업체의 경쟁 우위가 구별 될 것이다. 수십만원짜리 자동차용 네비게이터도 하는 일을 수십억짜리 시스템이 못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며 반문할 눈높이가 높아진 사용자들의 성향도 이런 흐름에 한 몫 할 것이다. 당신이 우리의 GIS Interface를 사용하면 더 많은 일을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 앞으로의 사업 전망은 그리 밝지는 않을 것이다.

지도 위에 기존의 Interface를 연장하여 구성하는 것으로는 그 전보다 못한 무늬만 GIS인 Interface인 엉터리가 아닌가 싶다. 더 높아진 정보 해상도에서 기존보다 더 밀도 높고 직관적인 정보를 구성하여 사용자에게 보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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