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에서 녹색성장이란 간판을 내건 이후 관련 업계에서는 이게 녹색성장이라며 다투어 나서고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출시 광고가 나가고 있고 신문 지상에서는 스마트그리드라는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한 용어가 오르내린다. 기존 에너지 산업 관련 기업 외에 다른 분야의 기업들도 새로운 시장 변화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으며 일부 기업들은 변화되는 환경에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지식경제부가 2008년 9월 11일 발표한 "그린에너지산업 발전전략"에 따르면 그린에너지산업은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혁신적 에너지 기술에 기반한 산업"이라 정의하고 있다. 또한 그린IT는 "에너지 절감, 탄소배출 저감, 자원이용의 효율성 향상 등을 통해 사회 전분야에서의 에너지와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IT"라 정의되어 있다.
정부에서 정의한 녹색산업에 대한 핵심 단어 및 언론이나 기타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인식된 녹색산업에 대한 키워드는 "절감"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초점은 연비에 맞춰져 있으며 스마트그리드는 IT 기술을 통해 전력사용량을 줄이는 기술로 인식되어 있다. 그리고 "절감"이라는 핵심 단어는 "불편"으로 연결된다.
대형마트에서는 냉동고에 문짝을 달아 놓고 이것으로 나무 몇 그루를 심는 효과를 낸다는 문구로 고객들의 불편을 잠재우고 있으며 집 근처 종합병원에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환경에 기여한다는 내용의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그리고 온갖 다큐멘터리와 영화들은 그런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이 밀려 온다는 이미지를 열심히 전파하고 있다.
그린성장은 에너지 사용에 대한 "절감"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절감"의 이미지는 팽창을 의미하는 "성장"과는 잘 매치되지 않는다. 낭비를 최대한 줄이자는 "최적화"가 "절감"의 이미지를 대체할 수 있을지언정 이 역시 "성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다면 녹색성장에서 도대체 "성장"이라는 것이 무엇을 대상으로 하겠다는지 미심쩍지 않을 수 없다. 지구와 일체감을 느끼고 환경을 보호한다는 그 자부심을 성장시키겠다는 것인가? 경제 성장은 결국 총 생산량의 증대인데 아껴 쓰고 적게 쓰면서 총 생산량을 어떻게 늘리겠다는 것인가?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도 생산성을 높이는 최적화 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에 팔아 먹겠다는 것인가? 전 세계가 다 녹색 성장을 하겠다고 한다면 도대체 세계 어디에 그런 기술을 판매해 돈을 벌어 올 수 있을 것인가?
"최적화"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레드오션이다. 정부가 원하는 획기적인 최적화 방안은 거의 찾기 어렵다. 기존에 있던 개념을 더욱 정밀하게 다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아끼고 적게 쓰고 최적화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상유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성장 전략이라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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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그린 에너지 사업의 키워드는 에너지 사용의 "절감" 아닌 "증대"다.
그 동안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에너지 소비가 줄어 드는 경우는 없었다. 현상 유지 또는 확대만 있었을 뿐이다. 인간의 속성이 그렇다. 한번 맛을 보면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더 많은 에너지 사용을 원한다. 다만 지금과 같이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에너지 생산 및 소비 체계로는 더 이상 에너지의 사용량을 증대 시킬 수가 없다고 지구촌에 사는 인간들이 합의한 것 뿐이다.
그 합의를 이끈 가장 큰 요소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에 전 세계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형성일 것이다. 그 공감대의 현실적인 표출이 탄소 배출권에 관련된 제도이다. 현재 정부가 그리는 그린 에너지 사업의 동인에는 분명 탄소 배출권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기후 문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은 사실인 듯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사실 명확히 규명된 바가 없다. 그저 심증만이 있을 뿐이다. 찾아 보면 그에 반하는 심증 역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온실가스의 효과를 지지하는 심증만이 회자되고 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에너지 문제를 뛰어 넘는 어찌 할 수 없는 큰 흐름이 있다. 삶의 형태가 지금처럼 유지 될 수 없는 큰 흐름이 있으며 에너지 문제는 그 흐름의 일부분에 불과해 보인다.
아무튼 앞으로의 에너지 체계는 화석연료의 사용량을 줄이자는 것이지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화석연료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 형태에 걸맞는 새로운 공급/소비 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 운영 체계는 아직 세상에 나온 적이 없다. 그 체계가 에너지 관련 기업들에 국한되어 완성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모든 제화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체계 하에서 동작해야 한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만 하다.
새로운 에너지 형태는 태양력, 풍력, 연료전지, 원자력, 핵융합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그 어느 것도 기존의 화석연료만큼 만만한 것은 없다. 화석연료의 사용이 만만했으니 여태 거기에 의존해 온 것이다. 하지만 사용해야 할 에너지양은 더 많아지는데 만만한 화석연료로는 이에 더 이상 대응할 수 없기에 거들떠 보지 않았던 다른 에너지 형태에 주목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에너지 형태가 다르므로 이를 운용하는 체계 역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출현할 에너지 운용 체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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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점쟁이가 아닌 한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에너지 운용 체계의 모습을 단언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에너지 운용 체계의 한계와 특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운용 체계에 대한 요구사항 정도는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에너지 운용 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공급과 소비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공급자를 철저하게 타자화하여 바라본다. 대다수의 제품은 그 제품을 움직이는 모든 에너지가 외부에서 유입된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다. 해당 제품이 자신의 에너지를 다른 곳에 줄 수 있다는 것은 꿈에도 꾸지 않는다.
전기 제품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해당 제품의 외부에 있는 전기 콘센트에서 유입된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동력은 자동차 외부에 있는 주유소에서 유입된다. 부엌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가스레인지의 에너지는 부엌 외부에서 유입되는 가스에 의해 얻어진다. 화석연료를 운용하는 에너지 체계는 공급의 주체와 소비의 주체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으므로 그 운용 체계에서 에너지의 흐름은 단방향이다. 자동차가 기름을 토해내는 일은 없으며 보통의 경우 여러분의 가정에서 전력이 발생하여 계량기가 꺼꾸로 돌아갈 일은 있을 수 없다.
화석연료는 지리적으로 편중되어 있기에 에너지의 흐름은 단방향이 될 수 밖에 없다. 석유나 가스는 어느 특정 지역에만 존재하고 그에 대한 수요는 넓은 지역에 분포하기에 에너지의 흐름은 좁은 지역에서 넓은 지역으로 퍼져 나가는 단방향 체계가 된다. 지금의 전기 에너지도 특정한 조건을 갖춘 좁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생산되어 넓은 지역으로 퍼져 간다.
이러한 단방향성은 에너지 운용 체계를 닫힌 구조로 만들어 간다. 록펠러가 석유의 생산과 도/소매 유통 구조 모두를 움켜 쥔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거대 독점 기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비정한 사업 방식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비정한 사업 방식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화석연료의 사용에서 에너지의 흐름이 단방향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에너지 기업들은 덩치가 큰 거대 기업들이다. 소비 주체는 공급 주체를 타자화 하여 그저 바라 볼 수 밖에 없었으며 공급 주체가 제공하는 시스템에 피동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다.
지금의 에너지 운용 시스템은 좁은 지역에 높은 밀도로 존재하는 에너지를 넓은 지역에 낮은 밀도로 변환시키며 그 반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단방향성 특징은 공급 체계를 수직 계열화 된 닫힌 구조를 야기한다.
원유는 지구촌의 특정 지역에 높은 밀도로 존재하며 이 원유는 각국의 정유소로 배분되는 과정에서 밀도가 낮아진다. 다시 정유소는 이를 정제하여 석유를 만들고 다시 이를 각 수요자들에게 배분함으로써 밀도를 더 낮춘다. 휘발유의 경우 각 개별 자동차의 연료 탱크로 들어 갈 때까지 밀도가 낮아진다.
전력은 밀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전압을 이용하고 밀도를 낮추기 위해 전압을 낮춘다. 전압을 낮춰 밀도를 낮출수록 지역은 더 넓어지고 이에 따라 소요되는 전선도 많아진다. 현재 한전의 전기 공급은 765kV, 345kv, 154kV, 22.9kV, 220V로 높은 전압에서 낮은 전압으로 이루어진다. 765kV 단계의 에너지가 없으면 그 아래의 단계의 에너지는 없다. 그래서 전력을 운용하는 전력회사의 조직은 수직계층으로 이루어지고 회사가 돌아가는 방식도 대개 수직적이다.
사람 위에 사람이 있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운용 방식은 대개 이러한 수직 계층 구조가 우세했다. 농노-영주-왕-황제-교황-예수-하느님 이라는 수직계열이 있던 시절에 성직자들이 수도원을 운영하던 방식을 영어로는 Hierarchy라고 한다. 번역하자면 수직적인 서열 체계를 의미한다. 의사결정이 단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조직은 대개 이런 수직계층으로 운영된다. 같은 맥락으로 에너지의 흐름이 단방향이면 이를 운용하는 체계 역시 단방향이며 수직계층을 이룬다.
이런 수직적인 조직은 외부와 단절되어 닫힌 형태를 가지게 된다. 하부는 Data를 상부에 보고하고 상부는 이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부에 전달한다. 하부의 보고 경로와 상부의 명령 경로만 확보되면 다른 것과 통하는 경로는 필요 없다. 오히려 불필요한 경로는 시스템의 혼란을 일으키므로 필요한 경로 외의 모든 것은 배격하고 거부한다. 일본 막부 시대 때 허가 받지 않은 외국 여행은 사형이였다. 전형적인 계층적인 조직이라 할 군대는 직속상관에게 보고하고 직속상관으로부터 하달 받는다.
산유국으로부터의 원유 공급이 막히면 전체 에너지 운영 시스템이 막힌다. 관련된 세력이 많을수록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으므로 특정한 세력이 원유 공급의 최상부를 안정적으로 독점하는 구조로 가는 것이 다수에게 편하다.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패권을 상실하면 우리가 싼 값으로 원유를 사 올 수 있을 것 같은가?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돈 주고도 원유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이상 지역적으로 한정된 자원을 두고 지구촌 전체가 수직계열화 되어 움직이게 된다. 현재 거기에서 가장 큰 나와바리를 가지고 계층 구조의 최정점에 앉아 있는 세력은 국가로 치면 미국이다. 어떻게 보면 지구촌은 화석연료의 운용을 위해 국가 단위의 거대한 계층구조를 이루어 살아온 측면이 있다.
화석연료가 무한정 있고 수급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굳이 위의 체계를 부정해야 할 이유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화석연료가 유한하다는 것이며 그것보다 더 피부에 와 닿는 문제는 지금의 방식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년 우리는 석유 가격이 미친듯이 뛰는 것을 봤다. 이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1차 오일 쇼크, 2차 오일 쇼크는 이미 과거에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중에서 유독 나이지리아에 정치 불안이 생기면 세계적인 뉴스 거리로 떠오른다. 석유의 최대 수요국인 미국의 주요 원유 수입국 중 하나가 나아지리아이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마피아와의 전쟁보다 베네수엘라 독재자의 행보가 더 주목 받는 것은 역시 미국의 주요 원유 수입국 중 하나가 베네수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석유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그 여파는 전 세계에 미친다. 석유는 고등학교 때 배운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자면 가격탄력성이 무척 큰 상품이다.수급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가격은 미친 듯 널을 뛴다. 아무리 미국이 강력한 힘으로 석유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한다고 해도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지금은 중국의 성장으로 석유 수요는 더욱 늘었고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미국에 의존하는 수직 계층적 수급 체계가 언제까지 안정적으로 동작할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탄소배출권에 의한 화석연료 사용의 규제는 현재의 체계가 안정적으로 화석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수급량에 맞춰 조정되지 않을까 하는 짐작도 든다.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이제 그 배경이나 이유를 떠나 점점 강력한 당위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운영 체계의 한계점은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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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에너지 운영 체계의 한계점은 바로 그 특징인 에너지의 일방통행이다.
그렇다면 다가올 에너지 운영 체계의 특징은? 에너지 흐름의 양방향성이다.
단방향성이 닫힌 구조와 수직화에 따른 중앙집권화로 이행되는 것에 반해,
양방향성은 열린 구조와 수평화에 따른 지역분권화로의 이행을 초래한다.
말은 쉽다. 그러나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대해서는 그저 눈 앞이 깜깜할 것이다. 에너지 운용 체계의 양방향성? 열린 구조? 지역 분권화? 어디에서 많이 듣던 단어이기는 한데 거의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이야기와 진배 없다. 하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그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 냈을 때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인 한계나 매우 높다는 것이다. 하긴 이게 쉬웠으면 벌써 개나 소나 다 만들어내서 현실화 되었을 것이다.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은 어차피 상상이므로 개인마다 다 다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모습은 블로그에 간간히 써 놓은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에너지 주체들은 수평화 된다. 기존 생산 주체와 소비 주체간의 구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최소한 그 구분이 희미해진다. 기존의 제품이 에너지를 소모하기만 하였다면 이제는 생산할 수도 있어야 한다. 새로운 운영 구조에서는 각 주체가 생산하는 에너지를 다른 주체로 연결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가령 핸드폰은 충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생산한 전력을 방전 할 수 있어야 한다. 각 가정이나 상가는 한전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전력을 공급 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전력을 공급할 수도 있어야 한다.
기존에는 나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체는 상위의 단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누구나 공급자 및 소비자가 될 수 있다면 나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체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N명이 된다. 나 역시 에너지의 공급자가 될 수 있으며 나에게 전력을 공급 받는 소비 주체 역시 시시각각 변화하는 N명이 된다. 즉 공급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기존 1:N 관계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N:N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N:N의 관계에서는 누가 되든 서로가 서로의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열린 구조가 요구된다.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주체가 소비자 뿐만 아닌 공급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에너지원 역시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형태이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가장 손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것은 태양광과 풍력이다. 또한 주체가 처한 지역의 특수한 상황도 가능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력이나 바이오 에너지 등은 이런 측면에서 선택되는 에너지원이다.
앞으로 에너지는 원방의 자원이 아닌 바로 코 앞의 근방에서 취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통해 생산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진다. 심지어 보행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해서 모바일 기기를 충전하는 기술에 대한 연구도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근방의 에너지원을 생산할 수 있는 것에 많은 초점이 있었다. 이 단계를 지나 일정 수준의 보급이 이루어지면 이렇게 얻은 에너지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가 화두로 떠 오를 것이다. 얻는다 해도 운용할 수 없다면 말짱 꽝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꾸몄다고 생각해 보자. 극단적인 예를 들어 3일 동안 휴가로 집을 비우고 그 동안 모든 전기 스위치를 껐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도 해가 뜨면 태양광 설비는 전력을 생산할 것이고 당신 집에 전기를 쓰는 부하는 없으므로 전력을 고스란히 외부망으로 전달했을 것이다. 즉 누군가는 당신의 설비가 생산한 전력을 써 먹었다. 휴가가 끝나고 당신이 돌아와서 3일치 생산 전력량에 대한 요금을 받고 싶다면 대체 누구에서 얼마를 요구해야 하겠는가?
당신이 집을 비운 3일 동안 사용한 전력은 해당 전력망에 붙어서 전력을 사용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나누어 썼다. 즉 특정시간동안 불특정 다수가 당신이 생산한 전력을 소비한 것이다. 지금은 한전이 계량기 거꾸로 돌아간만큼의 전력량에 대해 법적으로 정의된 단가로 지불을 해 준다. 한전의 망 독점이 깨지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N:N이 되면 누구에게 어떻게 전력 요금을 요구할 것인가? 또한 누군가 나에게 요금 청구를 해 온다면 이 요금이 맞는지 틀리는지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한전이 요금을 청구해 오면 그냥 그러려니 낸다. 불특정 다수가 나에게 요금을 요청하면 이걸 어떻게 신뢰 하겠는가? 각자의 에너지 생산 방식에 따라 요금 단가는 모두 다를 것이고 그 생산량도 시간에 따라 오락가락 할 것이다. 지금처럼 1달에 한번 검침한 것으로는 양방향 전력의 공급/사용에 따른 요금 산정조차 불가능해진다.
아파트 같은 대단위 단지에 자체 발전 설비를 갖춘 경우도 산정은 이전보다 복잡해진다. 자체 발전기를 이용한 전력 요금과 외부 전력을 끌어 올 경우 전력 요금은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1달에 한번 요금을 검침해서는 도대체 전력 요금을 어떻게 책정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진다.
심지어 전기요금 단가 자체가 내가 전력을 쓰느냐 안 쓰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결정될 수도 있다. 생산자가 타자인 경우 전기요금은 법이 정한 고정 요금제였지만 이 구분이 무너지고 완전한 시장 경제 논리에 따른다면 전체 수요에 따른 전체 공급량에서 각 발전 방식 별 생산단가 및 각 발전 방식의 출력량에 따라 요금이 시시각각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계량기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초단위로 현재 전력 사용량을 기록하여야 하고 전국의 모든 각 발전원별 출력량을 통신을 통해 초단위로 계측하여 발전 요금 단가가 초단위로 산정되어야 한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러분의 전력 사용 요금은 초 단위로 계산되어야 한다. 초 단위까지 맞아야 하므로 전국의 모든 계량기는 GPS를 통해 동일한 시간대를 유지해야 한다. 이 시간이 틀어지면 전력 요금 산정도 안 된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수준까지는 현실화 되기 어려우므로 여러 단계를 두고 느슨하게 시행하게 될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요금차이를 정부의 보조금으로 보전해 주는 방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결국 기술적 현실적 제약을 다수의 세금으로 메꾸는 것이다. 누군가는 분명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그 이익분에 대한 손해를 보는 방식이다. 분명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대목이며 언제까지나 그렇게 합의가 유지 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완화된 절차이든지 간에 지금의 기계식 계량기로는 이런 양방향에 따른 요구를 수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예전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통령 자신이 권력을 내려 놓고 양방향 소통을 시도했더니 얼마나 시끄러웠는가? 에너지의 양방향이란 것도 말은 쉽지만 이렇게 복잡해진다. 쌍방간에 서로 정보가 교환되어야 하고 내가 준 정보가 상대를 변화시키고 다시 나에게 되돌아 오기 때문이다. 복잡도는 더 높아진다. 옛날에 아무 생각 없이 썼던 전기를 이렇게 복잡하게 써야 한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좋고 편리해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렇게 해야만 지금보다 에너지를 더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해야만 현재 삶의 양식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안하면 무너진다는 당위로 점점 강화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가 보면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은 이것 외에도 널렸다. 대한민국에서 독립계통으로 운전되고 있는 제주도는 풍력 발전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미 계통 운영에 문제를 겪고 있다. 전력망에 흐르는 전력의 양이나 방향이 매 순간 변화되는 경우 전력 보호기기들이 오동작하는 상황이 벌어질 확률도 점점 높아진다. 정전은 예전에나 있었던 일이지만 양방향 전력 계통을 운영하면 정전의 발생 회수는 오히려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전력의 품질이라 할 주파수와 전압은 양방향 구조에서 요동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지금은 여러 이유로 아예 교류 방식을 직류로 바꾸는 것도 고려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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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시점에서 그린에너지인가? 이 글은 내 자신이 낸 질문에 대해 내 자신이 내 놓은 답이다.
키워드는 "절감"이 아닌 "증대"다. 다만 편리한 화석연료의 이용은 감소 될 것이고 더 불편한 방식의 에너지원이 더 복잡한 방식을 통해 운영될 것이다. 그 복잡한 방식은 양방향으로 열린 분권적 특징을 띄게 될 것이다. 개방형의 분산된 형태를 가지므로 각 부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지금보다 똑똑하고 강력하지 않으면 그런 특징을 구현할 수가 없으며 기술적 난이도는 상당히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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