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파, 유영철, 강호순 등의 천인공노할 범죄자들이 앞으로도 나오지 말라는 보장은 없으니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사형 존폐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 끔찍한 범죄의 대상이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고 내가 낸 세금의 일부가 그런 범죄자들을 먹여 살리는 감옥의 운영비로 쓰인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황당한 짓이다.

몇 년 전 사형 제도를 없애네 마네 할 때 내 자신에게 물어 봤다. 생각하기조차 싫지만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경우 범인에 대한 나의 증오심이 어떤 수위에 이를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범인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그 상황에서 내가 칼을 휘두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나 역시 살인죄로 구속되어 유죄 판결을 받게 될 것이다. 정상 참작으로 형은 적당히 조정되긴 할 것이나 어쨌든 나는 유죄다. 이유가 무엇이든 내가 살인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연쇄 살인범이든 부녀자든 상관이 없다.

나 자신은 유죄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살인이 유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살인범을 죽였으니 내가 유죄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죄인 것을 알면서도 증오심에 가득 차 범인을 칼로 난도질 한다면 나는 결국 패자다. 단 연쇄살인범도 인간이라는 전제를 받아 들인다면 그렇다.

국가가 이를 대행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살인을 유죄로 정해 놓고 살인범을 사형에 처하면 국가가 유죄를 저지르는 모순을 안게 된다. 살인범을 살인으로 단죄하면 그 사회는 살인범과 동일한 레벨로 내려가야 한다. 살인범보다 우위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닌 밑으로 기어 내려와 같이 진흙탕에서 같이 뒹구는 격이다. 포지션을 점하는 것에서 이미 실패다.

그런 진흙탕 싸움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살인범을 인간 이하로 규정하고 싶은 유혹을 강렬하게 느낀다. 인간의 탈을 쓴 어쩌구 저쩌구 같은 고전적인 문구나 과학의 냄새를 풍기는 사이코패스라는 규정 등으로 살인범을 정의하고 어떻게 하든 그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어 버리려고 한다.

비록 진흙탕 싸움은 피할 수 있겠지만 이것 역시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 이하의 인간이라는 존재를 인정하여야 하기에 인간의 차별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인간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하고 싶다면 이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는 명제다. 강호순 따위 때문에 인간의 평등과 존엄의 가치를 우리들 스스로 훼손시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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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외가 사촌 동생들이 며칠 동안 우리집에 같이 지낸 적이 있었다. 우리 남매와 사촌 동생들의 나이 차이는 5-6년 정도로 당시 사촌 동생들은 세네살 정도였다. 말로 타이른다고 알아 먹을 나이 대가 아니였다. 우리 남매의 장난감을 마치 자기 것인양 가지고 놀고 원 주인이 반환을 요구해도 해도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니 뺏고 뺏기고 울고 불고 싸움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싸움이 날 때마다 외할머니와 이모님 그리고 어머님 모두가 우리 남매를 타박하셨고 도대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우리가 타박을 들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우리들은 섭섭하고 억울한 마음을 그냥 눌러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가 당한대로 사촌 동생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었다.

나에게는 9살 딸과 5살 아들이 있다. 아이들끼리 놀 때 잘 놀면서도 싸우는 일 또한 잦다. 싸움이 커져 내가 개입하게 되면 아무래도 누나를 나무라게 된다. 내가 봐도 동생이 얄미운 짓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책의 비중은 누나에게 더 많이 돌아가게 된다.

내 어릴 적 경험으로 봐서 당사자는 속으로 많이 억울할 것이다. 아마 큰 녀석은 속으로는 자기가 당한대로 동생에게 백배 천배 돌려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그래도 어쩔 수 없다. 누나가 누나답게 동생을 위에서 내려다 보지 못하고 같은 레벨에서 싸우는 것이 잘못이기 때문이다. 동생이 약 좀 올린다고 그 포지션을 포기하고 도발하는 것은 누나로서 실격이다.

연쇄살인범은 극도의 공포와 증오를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내 눈을 멀게 만든다. 사형을 지지하게 된다면 연쇄살인범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진 우월적인 포지션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패배에 이르는 길이다. 편안한 길이 항상 좋은 길이 되지는 못한다.

처형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중에서 내가 원하는 사회는 어느 쪽인가? 강호순이 던지는 질문에 나는 당당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강호순과는 상관 없는 내 자신에게서 나오는 대답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내 대답은 사형의 폐지다. 강호순은 일종의 시험지다. 상황 논리에 관계 없이 내가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며 그 가치를 목표로 움직이는 사회를 진정으로 원하는가에 대한 시험인 것이다. 강호순이 사형을 피해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서 적응하며 잘 먹고 잘 산다 해도 내 대답은 역시 같다.

'이명박 퇴진'이란 구호는 그런 측면에서 반대다. 이명박을 뽑아 놓은 우리의 시스템을 우리 스스로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시험에 들었다. 강호순이라는 시험지, 이명박이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내 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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