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음악이 여기저기서 마구 들리는데 그것을 듣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없어요. 전화에서 잠깐 기다리라 하면서도 음악이 나오고, 그것은 신호음이지 음악이 아니죠."

황병기 선생이 어느 강의에서 했던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볼 때 이런 경향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곡은 광고나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대중에서 첫선을 보인다.
시작부터 시그널로 출발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또한 많은 음악이 전화 벨소리나 싸이월드의 장식음으로 쓰인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시그널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런 음악은 왠지 음악 같지가 않다.
음악 제작자들 스스로가 시그널 같은 음악을 만들어 내면서...
음반 시장이 불법 복제 때문에 황폐화 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내심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취향에서만 그러하고...
이런 취향을 타인들에게 이를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내 취향은 시대 흐름에는 뒤떨어지고...
나 또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해 "내가 미쳤어"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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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내부구조를 담을 수 있는 Analog와는 달리...
Digital은 유한한 크기만을 다룰 수 있다.
정수형 변수는 32Bit의 이진수 조합으로 표현되는 영역만을 나타낸다.
Network에서 한번에 전달되는 신호의 양은 언제나 유한하다.

Digtal을 기반하는 Network은 유한함을 전제한다.
이러한 Network의 유한함은 해당 매체의 형식에 영향을 미친다.
유한함을 기반으로 하는 매체에서 형식은 크기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
작은 크기를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Analog 원본이 Digital로 변경되면 축소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음악이든 영상이든 말이든 글이든 모든 것은 압축된다.
한정된 크기에 어떻게 하든 우겨 넣어야 한다.
채팅에서 말줄임 현상이 생기는 것은 필연이다.

이런 형식의 변화는 인터넷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전반적인 인식에도 이러한 영향은 스며든다.
소위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것이 이것이다.
인터넷은 그러한 패러다임 변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형식적인 면에서 크기가 제한되므로 내용은 밀도가 높아진다.
압축되는 밀도가 점점 높아지는 방향으로 모든 것이 진행된다.
압축률이 높아짐에 따라 둘러가지 않고 바로 지르는 내용이 채워진다.
새로운 형식에서 객관은 설 자리를 잃고 주관이 난무하게 된다.

바로 지르는 솔직함이 점점 미덕으로 되어 간다.
김구라처럼 까놓고 덤비는 스타일이 뜬다.
댓글은 더욱 짧아져야 하고 또한 더욱 자극적이어야 한다.
압축률이 높아짐에 따라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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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술에는 관심이 없어 잘 모르지만...
아마도 미술에서도 이런 것을 반영하는 흐름은 분명 있을 것이다.
음악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 짦은 시간내에 더욱 강렬해져야 한다.

무한과 영속성을 담보하던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디지털 시대는 유한과 찰라를 전제로 한다.
짧고 강렬한 음악은 이전의 음악과는 다르다.
황병기 선생의 지적대로 한번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신호와 같다.

찰나와 유한을 전제로 하는 디지털에서...
모든 것은 특정공간, 특정시간, 특정상황에서만 유효하다.
그 때 그 순간이 지나면 소멸되고 사라진다.
음악 뿐만이 아니라 가족 형태, 화폐 체계 등 거의 모든 것이 다 해당된다.

이건 내 취향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토대 위에서 살아가는 한...
앞으로도 음악은 고도로 압축되어 갈 것이고 더욱 신호화 될 것이다.
그리고 역시 이런 음악으로는 돈 역시 벌지 못할 것이다.

돈을 벌 요량으로...
대중의 입맛에 맞춘 음악을 만들면 만들수록...
그것 때문에 오히려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을 만난다.
성공적일수록 오히려 그 판 자체를 망치게 될 것이다.

니체의 말을 조금 빌려 비유를 하자면...
자신은 열심히 아폴론 세상을 파괴하여 디오니소스 천지로 만들어 놓고는...
그 대가로 아폴론 세상에서만 통하는 보물을 바라는 셈이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연목구어라고나 할까.

이러면서도 방송에서 불법 복제를 비난하는 구호를 접할 때마다...
짜증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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