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중에서 미다스 혹은 마이더스라고도 불리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많이 알려진대로 어찌어찌하여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의 소원 한가지를 들어주게 되었고 미다스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한다.
미다스의 소원은 실행되어 그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은 모두 황금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어릴 때 보았던 바람돌이라는 만화에서 보여지듯이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 화를 불러온다. 미다스는 먹을 것도 황금으로 변하고 사랑하는 딸마저 황금으로 변화시키면서 절망한다.
보통 미다스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알려져 있고 흔히들 비극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딸이 황금으로 바뀐 뒤에 미다스는 소원을 물러 달라고 애원하게 되었고 디오니소스는 그 소원도 들어 주어 해결책을 알려 준다.
그 해결책에 따라 미다스는 파크톨로스 강에서 손을 씻는다. 평소대로라면 강이 황금으로 변해야 할 것인데 그렇게 되지 않고 미다스의 능력이 강으로 전이된다. 그렇다고 이미 황금이 된 딸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 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이후 미다스는 평범한 삶을 살게 된다.
신화는 여기에서 끝이 나지만 그 신화적인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은 지금 현 시점을 살아가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로 돈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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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역사를 살펴 보면 최초의 금화는 기원전 7세기 경 소아시아에 위치한 리디아 왕국의 크로이소스라는 왕이 만들어낸 일렉트론이라고 한다. 그 이전에 금은 축적의 수단이였지만 교환의 수단으로 쓰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금은 주로 왕의 궁궐이나 신전에서 과시용으로 쌓아 놓는 것이였으며 일반인이 금을 유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다.
리디아 왕국은 금화를 만들어 금을 교환의 수단으로 이용하였고 이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인 이득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러면 리디아 왕국은 금화 생산에 쓰이는 금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리디아 왕국은 도시국가였으며 파크톨로스 강에 위치했다고 한다. 파크톨로스 강은 미다스의 권능이 전이된 강이다. 미다스의 권능이 전이된 강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강이 황금을 쏟아내고 있었다. 즉 사금이 나오는 강이였던 것이다.
리디아 왕국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였지만 주화 형태를 이용하여 금을 교환 수단으로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는 페르시아에서도 채택되었고 제정시대의 로마에도 적용되었다. 로마시대에는 주화 형태의 은을 교환 수단으로 삼았는데 이를 데나리우스라고 하며 성서에서도 자주 보이듯 로마 제국의 전역에서 유통되던 기축통화였다.
유럽에서 고대 로마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는데 이는 주화에서도 예외가 아니라서 그 이후에도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주화는 교환 수단으로 널리 쓰였다. 근대 자연 과학의 거인인 뉴턴도 말년에는 조폐국장을 하면서 금화와 은화를 만드는데 열중하였는데 이러한 주화의 탄생이 애초에는 미다스의 권능에 의지했다는 점은 아이러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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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화폐는 금화와 은화라는 형태에서 탈피하여 다른 형태로 변해 나갔지만 그 본질에서 볼 때 미다스의 권능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다.
주화의 의미는 그 주화를 만든 주체가 주화에 담긴 금이나 은의 양을 보증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화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주화가 보증하는 금이나 은의 양을 주고 받는 것이다. 주화의 가격은 액면가이고 그 주화에 들어 있는 금의 양이 실제가치이다. 사과의 가격은 결국 그에 상응하는 금의 양에 해당한다. 금화가 교환 수단으로 쓰였던 때에는 교환 되는 모든 것들의 가치가 그에 해당하는 금의 양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사과와 황금은 분명히 다른 물질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물질이 어떻게 등가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어떻게 사과를 황금으로 둔갑시켜 사과의 가치를 황금의 양으로 산정할 수 있는가? 이것이야 말로 마법이 아니겠가?
미다스가 사물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미다스의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눈에 보이는 황금의 양으로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였다. 그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화 시켰다. 즉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긴 것이다. 미다스는 사랑하는 딸마저 황금으로 가격을 매겼다. 돈이면 모든 것들이 가능해지는 세태와 미다스가 불행해지는 과정은 어딘가 닮지 않았는가?
미다스의 능력은 강물에 전이되었고 강물은 사금을 토해 냈다. 미다스의 능력에는 가치를 환산하는 능력 외에 그 환산된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물리적 수단을 창출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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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창출해 내는 부가가치는 시간에 따라 소멸하지만 교환 시점에 있어 그 가치는 환산이 되고 환산된 수치는 시간이 지나도 소멸하지 않는다.
누군가 빵을 100개 만들어 냈고 그 100개의 빵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금이 있어야 한다. 빵을 만들어낸 사람이 죽어 없어지더라고 당시 빵 100개를 팔아 마련한 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소멸되지 않으며 그의 자식에게까지 대대손손 전달될 수 있다. 금은 시간의 속박의 자유로우며 이에 가치를 축적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부가가치가 교환되는 누적량은 증가할 수 밖에 없고 이에 따른 교환수단 역시 증가하여야 한다. 하지만 금과 은이라는 교환 수단의 증가는 자연이 허용한 범위에서 밖에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이 기술을 발달시켜 금과 은의 생산량을 늘리기는 했지만 이 역시 자연이 허용한 범위에 들어있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인간은 자연에게 속한 미다스의 권능을 자신에게 부여했다. 예전의 종이지폐는 그 액면가에 해당하는 금의 양을 보증하는 태환화폐였지만 20세기에 들어 종이지폐는 불태환 화폐로 변경되었다. 화폐로 금을 구할 수 있었기에 화폐가 유용한 것이였지만 이제는 금으로 화폐를 구할 수 있기에 금이 유용해지게 된 것이다.
애초에 은행은 고객이 금을 맡기면 고객에게 그 증표로 종이에 해당 금액을 기록하여 고객에게 돌려줬다. 그것이 종이 지폐의 기원이다. 원래 종이 지폐는 그 액면가에 해당하는 금을 은행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일종의 영수증이였고 이런 성격의 지폐를 태환지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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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나오는 금의 양이 한계에 달하자 인간은 스스로 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돈은 중앙은행에서 만들어 낸다. 한국의 예를 들어 엄밀하게 말하자만 한국은행의 주문을 받아 조폐창이 돈을 찍어 낸다.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 내고 그 돈을 시중 은행에 꿔 준다. 한국은행이 100만원을 찍어 냈다고 치자. 한국은행은 장부상에 100만원을 누군가에서 받은 빚으로 처리하고 그 100만원을 남에게 빌려준 것으로 기록한다.
결국 100만원을 찍어 냈으나 장부상으로는 0가 된다. 이는 예전에 누군가 금을 맡기면 그만큼 종이화폐를 발행했던 것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다만 예전에는 실제 인물의 실제 금을 맡겼으나 지금은 가공의 인물이 가공의 금을 맡겼다는 것이 다르다. 예전의 파크톨로스강의 능력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부리는 셈이다.
미다스가 따로 없다. 정부는 스스로 금을 만들어 내어 유통시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부가 힘을 미치는 국가 내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A란 나라가 장부상으로 만들어 놓은 금의 존재가 B라는 나라에서 통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나라와 나라간의 무역에서 교환 수단은 금이였다. 하지만 국가에서 가상의 금을 만들어 화폐로 유통시키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교환 수단은 폐기되었다. 그리고 모두들 아시다시피 옛날에 금이 하던 역할을 지금은 달러가 하고 있다.
달러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힘에 쎄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쎈 힘을 이용하여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 대금을 달러로만 받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모든 나라가 금 없이는 살아갈 수 있어도 석유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결국 석유는 예전 금이 했던 역할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석유라는 존재에서 유지된다. 모든 나라가 석유 구입을 위해 달러를 원하는 이상 미국의 FRB는 그야말로 전 세계를 상대하는 미다스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석유 역시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속박을 벗어나 황금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자연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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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낸 바로는 우리가 아는 돈이라고 하는 것은 미다스의 권능에 기인한다. 돈을 내고 무엇을 사고 파는 것은 그 자체가 굉장한 마법과도 같은 일이였던 것이다.
인간의 경제활동은 자연이 허용하는 범위내에 묶여 있었다. 그 속박을 넘어서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를 미다스로 만들었지만 그 미다스는 국가 안에서만 유효할 뿐 나라를 넘어서는 차원에서는 아직까지 견고하지 못하고 불안정하다.
석유에 의지하지 못할 상황에서, 또는 미국의 패권이 흔들려 달러화가 기축통화의 위치를 누리지 못하게 될 때에는 국가간의 경제 활동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며 결국 국가 내부에서만 동작하는 미다스를 전 세계적으로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모르겠으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 단일 정부의 출현은 시간의 문제일 뿐 필연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다스의 끝이 어떠했는지는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다. 미다스는 사랑하는 딸을 금으로 변화시키면서 절망했다.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닌 기억, 추억, 경험과 같은 무형의 것마저도 가격을 매기면서 사고 파는 대상으로 규정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미다스의 불행이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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