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쉬는 주말 지나가는 것이 아까워 쿡 티비 돌려가며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게 된 영화. 2011년 올해에 이런 영화가 있었던가? 전혀 듣보잡인데 어쩌다보니 선택.

보는 동안 흥미진진 재미 있게 봤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흥행에서 망한 모양이다. 여주인공 빼고는 볼 것 없다는 평이 대부분. 나에게는 꽤 재미있게 보였는데 의외네.

항상 그렇듯이 여기에도 스포일러는 가득 가득. 특히 이 영화는 알고 보면 거의 재미 없기에 볼 생각이 있으면 스포일러를 절대 피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보실 생각 있으면 이하 아래 글 보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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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망토는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있는 이야기인데 알다시피 그림 형제 이야기는 창작이 아니라 구전되는 설화를 채집하여 동화 수준으로 각색해 놓은 것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잔인해서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드는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빨강 망토 역시 마찬가지.



1. 온 몸을 빨강색으로 뒤덮는 망토의 상징은 거의 명확하다. 아이에서 여인으로 성장하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생식력의 확보, 즉 생리이다. 영화에서 할머니의 결혼 선물로 나온다. 영화에서는 그 장면에서 빨강 망토의 상징을 거의 대 놓고 말한다. 대를 이어가며 계승이 이루어져야 하는 바로 그것.
 
흰 눈 밭에 길다란 빨강망토를 끌고 다니는 장면과 엔딩에서 보이는 핏방울은 그래서 참 거시기 하게 보인다. 이 장면 만들어낸 이는 변태끼가 있어 보였다는...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변탠가? -_-;



2. 유럽의 설화 중 늑대가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아기 돼지 삼형제, 빨강 망토, 일곱마리 아기염소 등을 보면 어머니는 있어도 아버지는 없다. 나오는 건 오로지 늑대 뿐.

이런 이야기에서 늑대의 상징이 무의식에 감추어진 부정적인 아버지라는 의심이 문든 든다. 우리의 전래 동화 햇님달님에서 수수밭을 뻘겋게 물들이는 호랑이 역시 아버지의 상징으로 읽어 보면 새롭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을 쓴 이의 착상도 나와 별다르지 않은 듯. 진작 알고 있었음에도 추리영화처럼 흘러가는 영화에 눈이 쏠려 미처 알려차리지 못했네.



3. 솔로몬 신부는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게 읽히는 등장 인물이다. 솔로몬 신부는 늑대와는 정반대에 있는 아버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는 "Father Solomon"으로 불린다. 그야말로 아버지.그는 아직 유아기에 있는 어린 두 딸을 감옥 같은 마차에 가두어 양육하는 아버지다. 역시 두 딸을 둔 늑대인간 아버지의 쌍둥이 같은 존재. 늑대인간은 아내의 불륜에 분노하여 그녀를 할퀴었고 솔로몬 신부는 그의 아내의 손목을 잘랐다.

이름도 지혜의 왕인 솔로몬이다. 늑대인간이 무의식의 욕망을 상징한다면 그는 의식세계의 차가운 이성을 상징한다. 영화에서 보이는 성지의 문에 있는 그림처럼 그는 칼을 든 천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전사이자 왕이며 여성성을 억압하는 굉장히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늑대인간인 아내를 죽인 솔로몬은 여성의 무의식적 욕구를 부정하는 존재로 늑대인간의 피가 흐르는 발레리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그러나 여성성을 부정한 그는 사랑에 실패한 존재. 솔로몬이 그랬던 헨리도 발레리와의 사랑에 실패한 후 솔로몬의 길을 걷는다. 사실 이 부분에서 나는 작가나 감독이 마초적인 남성성을 조롱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어쨌든 칼을 든 천사와 시커먼 늑대, 그 모두가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장성한 딸에게는 그 모두가 다 극복 대상이다.



4. 영화 초반에 발레리는 피터와 야반도주할 계획을 세운다. 사실상 영화의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결과적으로 발레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버리고 남자친구를 선택한다는 것 뿐.

세상이 어느 딸이나 모두 마찬가지. 딸들은 아버지가 세운 울타리를 부수고 자신의 남자를 찾아 떠나간다. 솔로몬 신부의 두 딸도 언젠가는 감옥 같은 마차를 부수고 나갔을거다.

아버지로부터 딸을 빼앗아가는 피터는 장인과 대립하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솔로몬에 붙잡혀 코끼리에 갇히고 본모습을 드러낸 늑대인간과 사투를 벌어야 했다. 그리고 결국 도끼를 아버지의 등 뒤에 찍어 놓고야 만다.

그러나 피터는 큰 착각을 하고 있다. 늑대인간 아버지를 죽인 것은 피터가 아니라 솔로몬의 손으로 아버지를 찌른 발레리였다. 그러면서도 모르는 척 피터를 속이는 발레리는 정말 내숭 100단의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아우....가증스러워라.

피터가 발레리를 구해 낸 것이 아니라 반대로 발레리가 피터를 선택한 것이였다. 칼자루는 여자가 쥐고 있다는 것. 피터는 거기에서 그냥 거들기만 할 뿐이였다. 그걸 모르는 피터. 여기서도 영화는 은근히 남자를 조롱한다.



5. 막판 늑대인간으로 변한 피터가 혼자 사는 발레리를 찾아 오는 장면. 정말 오글거리는 장면으로 백미인 듯. 그 오글거림에 뭐라 쓸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그만큼 발레리가 성장했다는 것. 대사 그대로 모든 상황은 변했지만 발레리 역시 달라졌다. 무서운 늑대가 사랑스럽게 보일만큼 내공이 생긴거지. 성장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런거다. 예전에 높고 무서웠던 것이 별 것 아니게 보이고 오히려 내 편이 된다는 것.

아들이 아버지를 극복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딸이 아버지를 극복하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새롭고 재미있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요즘은 확실히 여자 세상인가보다.



PS :
솔로몬 신부와 늑대인간은 모두 아버지의 상징. 솔로몬 신부의 손에 찔려 죽는 늑대인간은 결국 자기가 자신을 해하는 꼴이다. 아무리 그래도 딸은 딸, 결코 아버지를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아버지 자신의 능력으로 아버지를 제거할 수 밖에 없는 일.

북유럽 신화에서 겨우살이에 목숨을 잃은 발데르가 생각이 난다. 신을 죽일 수 있는 것은 결국 신 그 자체라는 "황금가지"의 지적이 생각난다.. 예수가 죽음을 맞이했던 십자가가 도리어 예수의 상징으로 받들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듯.

전능한 존재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전능한 존재 그 자신 뿐. 절대적인 아버지의 위치에서 내려 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아버지 자신 뿐이다. 난 내 딸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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