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에서 볼 프로가 없어서 메가티비를 만지작거리던 중...
어디에서 들어 봤던 누들로드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 온다.
그냥 어떤가 싶어서 봤는데 보고 나니 "와우!!!"
며칠동안 그것만 챙겨 보다가 되더군.

처음에는 수입 다큐인 줄 알았는데 KBS 자체 제작이란다.
와우! 우리도 이런 다큐를 만들 수 있구나.
진행자가 프랑스와 영국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미국인 요리사다.
처음부터 수출할 것으로 작정하고 만든 모양.

국내 제작 다큐는 통상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건 나름의 논리을 내세우기에 내 눈길을 잡는다.
제작자가 기획단계에서 엄청난 고민을 하였을 것이고...
그 고민을 화면으로 구현하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하였을 듯.

국수의 유래와 전파 및 문화사적 의미를 짚는 것이 주제인데...
유래와 전파 경로에 대해 사실 누가 정확히 알고 있겠는가?
다큐를 보면서 앞뒤를 맞춰 보면 이 부분은 좀 의문이 가는데...
다큐에서는 나름의 추측을 화면에 담아 두리뭉실 넘어간다.

사실 이 부분은 영상의 힘을 빌어 대충 넘어간 것인데...
이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그냥 충분히 즐기면서 받아 들일 수 있었다.
이 다큐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단초로 다른 생각이 새롭게 떠오르면서...
오랜만에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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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는 국수에 대해 나름의 "지정학"적인 입장을 취한다.
가령 수타면이 발달한 지역은 물이나 토양이 알카리성이고...
남부 이탈리아 토양에 맞는 밀 품종인 듀런이 빵보다는 파스타에 적합하는 것.
인간의 의지보다는 외부적 요인을 앞세우보다는 결정론적 입장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국수는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나왔다.
그 지역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중 국수가락이 나온 것인데...
같이 출토된 유물 중 코가 큰 가면이 나온 것을 근거로 하며...
당시 그 지역에 살았던 원시 유럽인이 국수를 만들었을 것이라 한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되는데...
메소포타미아는 최초의 밀 재배가 이루어진 지역으로...
동쪽으로 이주한 이들이 신장위구르에서 국수를 만들었다는 추측은...
그럴싸하긴하지만 확증은 아니기에 두리뭉실하게 넘어간다.

이런 태도는 파스타의 유래를 다룰 때 다시 반복된다.
마르코폴로가 중국으로부터 스파게티를 전했다는 것은 구라인게 확실하단다.
그런데 아랍인들이 시칠리아에 국수를 전했다는 것도 확실치는 않다.
정황상 그럴싸 하지만 확증은 할 수 없는 이론이다.

제작진은 좀더 그럴싸한 정황을 대기 위해 아랍의 국수를 찾아본다.
튀니지, 이란 등에 국수는 있긴하나 주류로 대접받지 못한 상태.
아랍의 면을 어찌 어찌 찾아서 보여주기는 하지만...
아랍의 스파게티 전파설 또한 그럴싸한 추측으로 대충 넘어간다.

객관적인 증거와 논리로 국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니 갖은 정황을 화면에 담아 들이대면서...
"거의 그런것 같지?" 하면서 슬쩍 넘어가고 만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 제작진을 골머리를 앓았겠지만...
누구도 모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겠는가?
그 정도 노력했으면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런데 화면빨로 깔아 뭉개고 대충 넘어간 듯한 인상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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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수가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왜 만들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국수를 발전시킨 지역은 중국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폼페이 유적을 살펴 봐도 빵은 있으나 면은 발견되지 않았고...
스파게티는 훨씬 후대에 등장하였으며 그나마도 이탈리아의 지역 음식에 불과했다.

이쯤되면 중국이 국수의 종주국이라 할만하지만...
우습게도 중국 입장에서 밀은 쌀보다 훨씬 나중에 들어온 외래종이고...
당시 한족과 관련 없는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고대의 국수가 발견되었으니...
국수 역시 외래에서 들어온 조리 형태임이 거의 농후하다.

밀을 이용한 조리형태는 빵이 먼저고 국수는 훨씬 후대에 나타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밀은 가루를 내어 조리를 해야 하고...
그 가루를 조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반죽으로 만든 후 굽는 것이다.
인도의 난이 이런 원시적인 빵에 속한다.

국수는 반죽에서 면을 뽑아 내야 한다.
빵과 다르게 인위적인 조작이 더 필요한 것이다.
국수가 빵에 비해 노동이나 기술이 더 들어가야 하니...
국수는 빵에 비해 나중에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초창기 밀을 주식으로 했던 유럽이나 서남아시아는 빵이 주식이지만...
후대에 밀이 중국에 전해졌을 때 중국은 빵이 아닌 국수를 선택한다.
생각해 보면 이 또한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지금의 중국요리는 기름에 튀기고 볶는 것이 주된 것이라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석탄을 이용한 강한 화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석탄 이전의 나무를 연료로 쓰던 그 이전 시절부터...
쌀을 주식으로 하던 중국인들에게 조리법의 기본은 물을 이용한 습식이다.
불을 직접 이용하는 화덕이 필요한 빵은 당시 중국인에게 생소한 것이였다.
밀반죽을 어떤 방식으로든 물에 끓여 먹는 방식이 선호될 수 밖에 없다.

전쟁 중에 원조된 밀가루를 먹는 방식으로 우리가 선택한 것은 수제비였다.
당시 우리의 주방 환경으로 볼 때 그 방법이 가장 간단하고 쉬웠기 때문이다.
밀이 중국에 전래되어 중국인이 이를 조리하려 했을 때에도...
우리가 수제비를 만들었던 그런 것과 비슷한 상황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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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상에서 국수가 등장한 최초의 시대는 한나라 때라고 한다.
그러나 국수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 시기는 남송시기라고 한다.
남송 시절에 이르러 중국은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자유로웠으며...
이에 따른 상업 및 시장의 발달과 더불어 요식업이 발달했다고 한다.

남송 이전 중국은 국가 통제로 정해진 장소/시간에만 영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남송 시절에는 이런 규제가 없어지고 노점이 등장한다.
단면적이 큰 국수는 빨리 익고 조리법이 다양하면서도 쉽다.
바쁜 도시 생활에 노점에서 국수를 파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중국요리에서 면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남송 시절이다.
전술했던 바와 같이 국물이 있는 습식을 선호한 것이 중국인이고...
국수의 조리 형태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탕면이 주를 이룬다.
이 시절 다양한 형태의 국수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교역을 하던 아랍 상인들은...
중국 남송에서 인기를 끌던 국수의 존재를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고...
아랍세계는 분명 국수에 대해 알았던 듯 하다.
그러나 그리 큰 인기를 끌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떤 경로이건 이탈리아가 국수를 접하게 된 관문에는 아랍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이탈리아인들은 국수를 습식으로 조리하지 않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스파게티는 불에 면을 볶는 방식으로 조리된다.
중국이 습식을 선호했듯이 서양은 화식으로 국수를 받아 들인 것이다.

밀이라는 같은 곡물이지만 지역과 문화에 따라 조리법이 달라진다.
서양은 대체로 불을 선호하고 동양은 물을 선호해 왔다.
그래서 같은 밀이라도 서양은 빵, 동양은 탕면으로 모습이 달라진다.
국수가 서양으로 전해지면서 불에 볶는 스파게티로 다시 모습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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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우리도 쌀을 주식으로 하기에 음식은 물을 위주로 하는 습식이다.
탕이나 국은 말할 것도 없고 국수도 거의 예외 없이 탕면이다.
예전 대구에 야끼우동이 있다는 말을 신기하다고 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캐나다나 미국에 출장 가서 어느 푸트코트에서 밥을 먹을 때 보니...
서양사람들도 젓가락을 써 가며 면을 제법 먹는 것이 신기하다 싶었다.
그 때 보니 남녀노소 가장 많이 먹는 면은 바삭하게 굽거나 튀긴 면이였다.
난 이거 뭔 맛인지 모르겠던데 그네들 입맛에는 맞는 모양이다.

참으로 일관성이 있다.
빵을 주식으로 삼던 이들은 국수도 그렇게 화식을 적용하고...
쌀을 주식으로 삼던 이들은 국수도 그렇게 습식으로 즐긴다.
어찌보면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주식에 따라 조리 방식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하드웨어가 결정된다.
하드웨어는 한번 결정되면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가옥의 구조도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쌀밥 짓는 주방에 어느 날 갑자기 밀가루가 전파되었을 때...
화덕으로 빵을 해 먹을 생각은 엄두조차도 못 낸다.
기존의 하드웨어로 할 수 있는 방식은 탕면 조리 방식.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빵 굽고 고기 지지고 볶던 주방에 면이 전파되었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지지고 볶는 것.
중국의 면이 유럽으로 가면서 지지고 볶는 스파게티가 등장한다.

입맛이라는 것이 개인별로 다 틀리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한 이처럼 하드웨어에 종속되는 면을 보인다.

요즘은 볶음면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보이고 더불어 쌀 소비는 줄어들고 있다.
가면 살펴보면 그와 병행해서 주방 하드웨어도 변해 가는 것이 보인다.
가스 오븐에서 전기 오븐, 요즘은 광파 오븐...
주식으로의 쌀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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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와 국수문화는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 제작진의 생각인데...
첫번째 이유는 단면적이 큰 탓에 조리 시간이 빠르다는 것.
두번째 이유는 조리가 쉽고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

중국이 국수문화를 꽃피우던 시기는 남송 시절인데...
그 당시 남송은 도시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바쁜 도시 생활에 적격인 식문화로 국수가 선택된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국수는 싸구려 음식은 아니다.
우선 동양 대부분 지역에서 밀이라는 곡물 자체가 귀한 것이였고...
면을 뽑아내는 것은 고도의 기술과 노동을 요하는 일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귀한 날 귀한 음식의 역할은 국수가 맡아 왔다.

하지만 면이라고 하는 것인 절반은 완성되어 있는 형태이기에...
일단 면이 있으면 그 이후 조리는 쉽고 빠르며 갖은 변형이 가능하다.

특히 건조면은 장기 보관이 가능하기에 대량 생산 시 유통에 이점이 있다.
건조면인 소면은 예전부터 공장에서 생산하여 유통되는 것이였고...
스파게티도 건조면으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여 전 세계에 유통시킨다.
면을 식당에서 직접 뽑아야 했다면 스파게티가 이렇게 대중화 되지는 못했을 듯.

내 생각에 국수의 장점을 최대로 극대화 시킨 것은 바로 라면.
대량 생산에 유통 기간이 길고 짧고 쉬운 조리에 갖은 변형이 가능하다.
예전에 라면은 농심라면과 삼양라면 둘 뿐이였지만...
그 동안 갖은 라면이 등장하고 더불어 도시가 커진 것은 분명 연관이 있어 보인다.

지금은 전 지구적으로 도시화가 가속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면요리가 인기를 얻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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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공을 들여 만든 티가 팍팍 나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나에게 간만에 이러저러한 생각꺼리를 던져 주는 다큐.
국수만이 아닌 다른 것에도 생각을 확장시킬 있는 주제였다.

다만 진행자가 겉도는 듯한 느낌을 보는 내내 느꼈다.
그냥 화면 중간 중간 끼워 넣기를 한 듯한 그런 느낌.
차라리 진행자가 없이 나레이션만으로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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