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N•m

2020. 5. 7. 23:31

학교에서 배우는 물리학에서 F=ma라고 배우고 에너지는 J=Nm라고 배운다. 그냥 그렇다고 하고 각종 문제 풀기에 여념이 없고 문제를 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져서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게 된다. 여기에 운동량은 mv이고 운동 에너지는 (1/2)mv^2이라고 배우며 이것 또한 익숙해져서 그냥 잘 넘어간다. 그런데 학교에서 한 학기 정도에 배우는 이런 문제들이 실제로 확립되기까지는 거의 200년이 걸렸다. 200년 동안 난다긴다 하는 과학자들이 갑론을박하던 것을 한 학기 동안 머리 속에 우겨 넣고 배우려니 물리학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F=ma인 것은 그렇다고 치는데 도대체 왜 에너지가 Nm인지는 직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나만 납득하기 어려운 줄 알았는데 17세기부터 200년 동안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그것에 대해 납득하지 못했다. 에너지가 Nm로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가만 알아가 보니 이게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J=Nm은 간단해 보이는 수식이지만 개념이 받아들여진 과정을 보면 다들 어찌 할 도리가 없어서 억지로 받아 들인 것이다. 열과 운동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면 에너지라는 개념은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동안 알아보았던 것을 여기에 간단히 정리하여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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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고전물리학이라 하면 뉴턴을 떠올리고 그가 제창했다고 하는 3개의 법칙을 물리학의 기본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뉴턴이 프린키피아에 적어 놓은 모든 것을 혼자서 독단적으로 알아낸 것은 아니다. 물리학의 시작은 갈릴레이 갈릴레오였고 뉴턴의 3대 법칙의 기초는 사실은 데카르트가 세워 놓은 것이였다. 뉴턴은 갈릴레오/데카르트 등의 선배들이 해 놓은 일을 그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였고 선대에 해 놓은 이론들을 사용하여 질량이 있는 물체들은 서로 끌어 당긴다는 만유인력을 멋지게 서술해 놓았을 뿐이다.

 

프랑스 사람인 데카르트는 물리학과는 어울리지 않는 연역론자이다. 즉 실험은 하지 않고 기본 명제에서 파생 명제들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하였다. 그의 기본 명제 중의 기본 명제, 그의 사고의 출발점은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이걸로 어떻게 파생 명제들을 만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1644년 출간한 저서 Principia philosophiae (철학 원리)에서 '신은 운동의 제1원인이며, 그는 항상 우주 속에 같은 양의 운동을 보존하고 있다'는 명제를 세우고 아래와 같은 3개의 법칙을 선언한다.

 

제1법칙: 모든 물질은 가능한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따라서 한 번 움직이면 언제까지나 계속 움직인다.

제2법칙: 모든 운동은 그 자신으로서는 직선적이다. 따라서 원 운동 하는 물질은 원의 중심에서 항상 멀어지려 한다.

제3법칙: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를 밀 때, 동시에 자기의 운동을 똑같이 잃지 않는 한 다른 물체에 어떠한 운동도 줄 수 없으며, 또 자신의 운동이 똑같이 증가하지 않는 한 다른 물체의 운동을 빼앗을 수 없다.

 

제1법칙은 어디에서 많이 본 내용이다. 뉴턴의 관성의 법칙과 같은 내용이다. 제2법칙은 지금으로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우주를 관측해 보면 다들 원운동을 하고 있고 현실에도 대부분의 운동은 포물선을 그리지 않는가? 제3법칙도 어디에서 많이 본 내용이다. 뉴튼 3대 법칙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운동량 보존 법칙"이 이에 해당한다. 데카르트는 실험 데이터에 근거하여 위의 법칙을 선언한 것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명제에 논리를 더하여 파생 명제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은 데카르트를 철학자 정도로 생각할 뿐 물리학자로 쳐주지는 않지만 그가 활동했던 17세기에서 데카르트의 영향력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 거의 절대적이었다.

 

운동량(Momentum)이라는 개념은 뉴턴이 창안한 것이 아니라 데카르트가 창안한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운동"을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수치화 하는 것으로 선언했으며 우주의 모든 운동을 합한 수치는 완벽한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므로 항상 같다는 "운동량 보존 법칙"을 제창한다. 뉴턴도 "운동량 보존 법칙"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뉴턴의 제 3법칙(작용/반작용)을 파생시켜 나간 것이다. 뉴튼은 사실 F를 ma로 표기한 것이 아니라 F=운동량/dt 로 표시하였고 이것이 뉴턴의 제 2법칙이다.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은 속도를 벡터로 취급하면서 데카르트의 "운동량 보존 법칙"을 적용하려다 보니 파생되어 생겨난 법칙이다.

 

뉴턴의 3대 법칙이 논증없이 그냥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실 데카르트가 이미 연역론으로 논증을 해 놓았기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 언급한 거인 중 한 명은 데카르트임이 거의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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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신이 우주의 물질들을 만들었고 또한 이 물질에 대한 운동도 신이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무슨 논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데카르트는 완전한 신이 세상을 만들었으므로 이 세상은 상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신이 창조한 우주 물질들의 질량 합은 언제나 일정해야 했다. 또한 물질의 운동도 신이 만든 것이므로 운동의 총합도 우주 안에서 항상 일정해야 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질량의 총합은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은 질량 보존의 법칙이 되고 우주에 존재하는 운동의 양 총합이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은 운동량 보존의 법칙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운동의 양을 어떻게 수치화 할 것 인가다. 데카르트는 운동량(Momentum)을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정의했다. "운동량=질량•속도"는 질량이 2배면 운동량도 2배, 속도가 2배면 운동량도 2배, 질량이 2배이고 속도가 2배이면 운동량은 4배, 라는 식의 선형적인 생각이 깔린 직관적인 수식이다. 여기에서 데카르트가 생각한 속도는 벡터가 아니라 스칼라였다. 지금 우리는 속도가 부호를 가지는 벡터라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지만 운동량이 보존된다는 데카르트 입장에서는 속도가 스칼라인 것이 당연한 생각이다.

 

여러분이 당구장에서 가서 당구대 안에 있는 공을 큐를 잡고 때렸다. 공이 공을 때리면서 당구대 안에 있는 공들이 움직일 것이다. 이 때 당구대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공의 운동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큐로 맨 처음 공을 때린 여러분이다. 공의 운동을 수치화 할 수 있다면 내가 큐를 통해 맨 처음 공에 전달한 운동량과 그 이후 공들이 움직이고 있는 운동량은 (완전 탄성에 마찰을 무시한다면) 같을 수 밖에 없다. 내가 때린 공이 벽을 정면으로 맞고 튀어서 반대 방향으로 운동한다고 해도 그 운동량은 여러분이 당구대에 처음 불어 넣은 운동량이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생각한 운동량에서 속도는 부호가 없이 언제나 + 값인 스칼라 양이었다.

 

신이 만들어 놓은 운동이므로 운동량은 스스로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공이 스스로 움직이는 일은 없지만 스스로 정지하긴 한다. 이것을 데카르트가 어떻게 해명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 같으면 연역적으로 생각했으므로 공이 스스로 정지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공이 스스로 정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외력이 작용하는 것이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외력을 이야기 했으면 속도의 방향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데카르트가 법칙이라고 떠들고 다닌 이 운동량 보존의 법칙이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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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가 멸망하던 1644년에 데카르트가 운동량은 mv이며 우주에서 이 운동량들의 총합은 항상 일정하다는 주장을 내세운 후 25년 정도가 지난 후 네덜란드의 호이겐스를 비롯한 제대로 된 물리학자들이 나타나 데카르트가 주장한 운동량 mv에서 v는 부호 없는 스칼라가 아니라 방향이 있는 벡터라는 주장을 내 놓았다. 그들은 데카르트가 주장한 운동량 보존 법칙의 수식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단 운동량 mv의 v는 방향에 따라 부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체가 2개 있고 한 물체의 질량은 m1, 속도는 v1i 이고 나머지 한 물체의 질량은 m2, 속도는 v2i 이며 이 둘이 충돌 후 두 물체의 속도가 각각 v1f, v2f로 변화했다고 할 때 언제나 운동량 mv의 합은 동일하다는 운동량 보존 법칙의 수식은 다음과 같다.

 

운동량 보존의 법칙 : (m1 X v1i) + (m2 X v2i) = (m1 X v1f) + (m2 X v2f)

 

이 때 아래 그림과 같이 질량은 서로 동일한 10kg의 두 물체가 서로 똑같은 속도 10m/s로 마주 달려오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둘이 충돌하여 아래와 같이 m1은 5m/s의 속도로 방향이 바뀌어 진행하고 있었다. m2의 속력은 얼마일까?

데카르트와 호이겐스의 답은 아래와 같이 서로 다르다

누가 맞을 것 같은가? 실제 실험을 해 보나마나 호이겐스가 맞는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신이 창조했다는 운동량은 얼마인가? 데카르트라면 200으로 답할 것이고 호이겐스라면 0이라고 답할 것이다. 누가 맞겠는가? 직관적으로는 데카르트이다. 그러나 호이겐스는 닥치고 계산하라고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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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겐스가 데카르트의 논증에 수정을 제기한 직후 독일의 라이프니츠가 여러 편의 저술을 통해 데카르트의 mv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 때는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출간되기 전이었으므로 F에 대한 개념이 정립된 때가 아니었으며 라이프니츠의 저술에서는 질량과 중량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용어를 혼란스럽게 적어 놓았다고 한다. 암튼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들어보기 위해서는 우선 아래 2가지 전제를 받아 들어야 한다.

 

전제 1 : 외부에서 작용하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특정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물체가 가지는 힘과 바닥에서 특정 높이로 들어 올리는 힘은 동일한 크기를 가진다.

 

여기에서 힘은 뉴턴이 말하는 F가 아니다. 전제 단계에서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라이프니츠 자신도 모른다. 스타워즈에서 말하는 포스 수준의 추상적인 권능에 대한 어떤 것이다. 암튼 자유낙하로 얻어진 어떤 것이라면 그것을 거꾸로 가했을 때 애초에 떨어지기 시작한 그 높이에 도달할 것이라는 생각은 직관적으로 그럴 듯 해 보인다. (사실 이 전제는 라이프니츠 이전에 갈릴레오가 이미 증명해 낸 것이라 한다)

 

전제 2 : 1파운드 A를 4야드 올리는데 필요한 힘과 4파운드 B를 1야드 올리는데 필요한 힘은 같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힘은 무엇인지는 라이프니츠 자신도 모른다. 여기에서 라이프니츠는 파운드가 질량을 의미하는 것인지 중량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암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A와 B의 무게와 길이가 선형적으로 보이니 이것도 그럴 듯 해 보인다.

 

전제 1은 낙하하는 것이나 상승하는 것이나 엎어치나 매어치나 양을 똑같다는 것이니 낙하 상황만을 따져서 생각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두번째 전제이다. 라이프니츠는 아마도 전제 2의 상황에서 운동량이 같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에서 1파운드 A를 4야드 올리기 위한 운동량과 4파운드 B를 1야드 올리기 위한 운동량은 같지 않다. 아래와 같이 B의 운동량이 A의 운동량보다 2개 크다. 계산 과정은 아래 그림을 참고 바란다.

 

 

직관적으로는 같아야 할 것 같은데 다르다. 사실은 1파운드를 16야드에서 떨어뜨려야 같은 효과의 운동량이 나온다. 에너지의 개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아래 그림의 파운드를 Kg으로 야드를 meter로 바꿔서 해석하면 1파운드에 작용하는 에너지는 16J이고 4파운드에 작용하는 에너지는 4J이다. 에너지는 4배 차이지만 운동량은 동일하다. 1파운드에 15J을 투입하고 4파운드에 1J을 투입하면 운동량은 4파운드 물체가 더 크다.

 

 

운동하고 있는 두 물체가 충돌할 때 승부를 결정 짓는 것은 투입된 에너지량이 아니라 운동량의 크기로 결정된다. 권투 시합에서 체급 차이를 극복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이 실감 난다. 에너지를 덜 들이더라도 묵직한 한방이 날리는 것이 훨씬 더 파괴적이다. 건물을 철거한다면 되도록 무거운 망치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에너지 소비가 적다.

 

위의 예에서 봤듯이 1파운드에 투입된 에너지 양이 4파운드에 투입된 에너지 양의 4배 이상 투입 되지 않으면 4파운드의 운동 에너지가 더 큰 효과를 가진다. 에너지 보존과 운동량 보존이 맥락이 같지 않음이 느껴진다. 에너지의 총합이 보존된다면 에너지가 작용하는 물체의 중량에 따라 운동량은 들쭉 날쭉 변하는 변수가 된다. 우주의 운동량의 총합은 상수로 보존된다는 데카르트의 운동량 보존 법칙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 된다.

 

라이프니츠는 자신이 생각한 그 무엇을 vis viva, 소위 활력,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라이프니츠는 vis viva가 작용하여 운동량(moment)이 발생한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라이프니츠가 생각한 것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에너지인 N(힘)•m(작용거리) 였다. 라이프니츠의 생각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변환하면 운동 에너지와 같은 결과를 얻는다.

 

 

윗 수식에서 초속을 0으로 놓으면 흔히 알고 있는 운동에너지 수식이 나온다. 라이프니츠는 신이 우주에서 창조한 것은 운동량(Moment)가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활력(vis viva)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라이프니츠는 명확한 논증 없이 자신이 발견한 활력의 수식을 mv^2이라 주장하였다. 당시 데카르트가 운동량 mv가 보존된다고 하는 것에 대항하기 위해 활력을 mv^2로 의도적으로 정의한 듯한 느낌이 든다. 질량과 중량을 명확히 구분도 안하고 활력의 수식도 mv^2이라고 대충 우기는 걸 보면 라이프니츠는 엉성한 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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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는 여러 해에 걸쳐서 여러 저작을 통해 운동량이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활력(vis viva)이 보존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그 시기는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초판 발행한 시기와 (1687년, 이 때 조선은 숙종 13년, 2년 후 인현왕후가 폐비되던 시절) 앞뒤가 비슷하게 겹친다.

 

라이프니츠의 주장은 당시 사람들에게 도저히 먹히지 않았다. 데카르트의 운동량(mv) 개념이 라이프니츠의 활력(mv2) 보다 훨씬 직관적이었다. 뉴턴도 데카르트의 운동량 개념을 받아들여 프린키피아를 출판하였으니 라이프니츠와 반대 입장일 수 밖에 없었다. 데카르트가 속도를 스칼라로 여겼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라이프니츠의 mv^2은 데카르트의 의도를 제대로 계승한 것이라 여겨질 수 있음에도 라이프니츠의 활력(mv^2) 개념은 뉴턴과 데카르트 세력 양쪽에서 모두 공격 받고 무려 100년 동안 별다른 취급을 받지 못했다.

 

처음 J=N•m을 배웠을 때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은 것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뉴턴을 비롯해 난다 긴다 하는 과학자들 대부분이 J=N•m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17세기 뉴턴의 시대가 간 후 18세기 초반 증기기관이 등장하면서 18세기 중반부터는 열역학을 연구하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 당시 뉴턴의 기계 역학과 열 역학은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초기 열 역학은 화학의 영역과 겹쳤으며 열을 운동으로 이해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증기 기관의 등장으로 열이 기계적 운동으로 바뀐다는 것을 수십년 동안 봐 오면서도 기계적 운동이 열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18세기 내내 하지 못했는데, 이는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라부아지에가 열을 입자가 있는 원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위 열소설이라 불리는 이러한 입장에서는 기계적 운동이 열로 바뀐다면 없던 열 원소가 새롭게 창조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지금으로 치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부정하는 사문난적과 같은 말도 안되는 발상이었다.

 

그렇게 18세기가 다 지나가고 19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1807년 영국의 토마스 영이 그의 저서에서 열이 원소라는 개념을 반대하고 열을 운동으로 해석할 것으로 주장하였으며 거기에서 17세기 사람이었던 라이프니츠의 활력(vis viva)를 거론하면서 vis viva를 energy란 단어로 언급했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라부아지에의 권위는 확고하여 열소설을 뒤집지는 못했으나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서 기계적 운동을 열로 변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란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토마스 영 이후로 Potential Energy (위치 에너지)란 용어가 회자 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19세기 중반인 1847년 (헌종 13년, 1년 전에 김대건 신부 순교, 2년 후 철종 집권) 에 제임스 줄이 무게가 있는 추에 줄을 연결하고 추가 낙하함에 따라 줄에 연결된 물체가 물 속에서 회전 운동을 하며 물의 온도가 올라간다는 것을 실험 장치로 실증해 내면서 기계적 운동을 열로 변환할 수 있음을 실증해 낸다. 이것으로 열소설은 완전히 부정되고 열 역학과 기존의 기계 역학은 통합된 물리학으로 진화한다.

 

줄은 정밀한 실험 장치를 통해 추의 무게와 추가 낙하한 거리의 곱인 N•m에 정비례하여 물의 온도가 상승한다는 것을 실증하였고 열량의 단위인 칼로리와 운동 에너지인 N•m 이 정비례 관계임을 밝히면서 상호 변환비인 열의 일당량을 4.159 J/cal 값으로 도출해 냈다. 열이 운동 에너지와 선형적 변환 관계를 가지는 에너지임을 밝혀 내는 것은 결국 이론적인 체계가 아니라 실험 장치를 통한 실증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줄은 라부아지에의 열소론에 정면 도전한다는 이유로 여러 번 논문 제출을 거부 당했으나 여러 번의 도전 끝에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이전에 기계 역학과 열 역학을 통합하는 매개체로 운동량이 아닌 에너지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됨으로써 N•m는 아주 중요한 물리량으로 취급받게 되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한 공로자의 이름을 따서 N•m의 단위는 J(줄)로 칭하게 되었다. 기계 역학과 열 역학을 통합했다는 의미에서 뉴턴에 필적하는 중요한 업적을 해 낸 이가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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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가 이미 17세기에 에너지의 개념을 착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외면 받았던 것은 뉴턴을 비롯한 당시 물리학자들의 관심이 우주의 움직임을 해명하는 거대한 철학 담론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운동을 수량화 하는데 mv만큼 직관적이고 편리한 방법은 없었다. mv^2을 받아 들이면 여러 수식에서 선형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수식이 지저분해 진다. 물리학은 엄정한 학문이라고 하지만 17세기 뉴턴 시절의 물리학은 상당히 관념적이며 수학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직관적인 믿음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열역학과 기계 역학이 통합되면서도 에너지의 단위는 라이프니츠가 제창했던 mv^2이 아니라 N•m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뉴턴 시절 때나 줄 시절 때나 간단한 선형 수식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하다. 줄의 실험이 워낙 명약관화 한 것이라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허점이 있었다면 열은 여전히 에너지의 지위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화에서 언급되는 에너르기파는 사실 상대에게 직접 충격량을 가하므로 운동량파 라고 해야 맞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라는 단어는 사실 운동량의 개념이 강하다. 그만큼 운동량은 직관적이다. 에너지(Energy)는 어원 자체가 Work와 동일하다. 라이프니츠가 주장대로 Work를 투입하여 Momentum을 얻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입장은 전지전능한 신이 우주에 운동량을 그냥 창조한 것이고 라이프니츠의 입장은 신이 노동을 하여 그 노동량의 제곱근만큼을 운동량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어느 쪽이 더 가오가 살겠는가?

 

실제 효과를 내는 것은 운동량인데 그것을 직접 다루고자 하는 운동량 mv와 그 운동량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노동의 개념인 mv^2 중 어느 쪽이 더 귀족적인 취향인지는 자명하다. 라이프니츠의 아이디어가 계속 배척을 받았고 줄의 논문이 계속 거부된 것은 알게 모르게 이런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직관적으로는 에너지라는 단어를 권능이나 파워 같은 운동량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에너지는 비용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의미가 있다. 문자 그대로 Energy는 Work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단위인 J 이 현대 생활에서 더욱 중요하게 쓰이는 것은 각종 동력에 대한 비용의 개념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동력원은 상당 부분 연료를 태워서 동력을 얻는다. 자동차는 휘발유를 태워서 기계적인 동력을 얻으며 발전기도 석탄이나 가스 또는 경유를 태워서 기계적인 동력을 얻은 후 이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한다.

 

우리가 실제로 이용한 운동량을 기준으로 요금을 낸다면 요금이 제곱근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운동량을 제공하는 업자 입장에서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모두 폐업하게 되고 에너지를 사용하는 우리 문명은 더 이상 경제적으로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하며 대부분의 연료는 단위 부피당 제공 칼로리가 선형적으로 결정된다. 칼로리 량과 연료량은 선형적인 비례 관계가 성립하지만 칼로리를 제곱으로 쏟아 부어야 운동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자동차 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기름을 기하급수적으로 왕창 먹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높은 속도로 이득을 본 것은 시간이다. 속도를 높일수록 증가하는 사고 위험의 가능성 까지 생각하면 시간은 꽤 비싼 자원이다.

 

여러분이 한달에 한번씩 내는 전기요금은 전기 사용으로 인해 실제로 효과를 본 운동량이 아니라 그 운동량을 만들어 내기 위해 투입되었던 J 수치만큼 산정된다. J로 하면 숫자가 너무 커서 편의상 와트아워(Wh = 3,600 J)를 사용할 뿐이다. 전력을 사용하여 집안 가전기기의 운동량을 2배로 늘렸다면 비용은 4배로 청구되어 날라온다. 거기에 더해서 누진세까지 붙어서 더 날라온다. 재력이 2배가 된다고 해서 생활 수준이 2배가 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수준보다 더 나은 생활 수준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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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1 :

 

J=N•m 라고 알고 흔히들 알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J=|N|•m 로 계산되는 스칼라량이다. 칼로리의 정의를 생각해 보면 칼로리에는 방향성을 부여할 수 없는 스칼라량이며 이와 등가가 되는 J도 스칼라량 일 수 밖에 없다. 애초에 데카르트가 운동량을 스칼라로 생각한 것과 관점은 똑같다. 그런데 J=|N|•m에서 m은 힘이 가해진 방향으로 움직인 거리로 정의되기 때문에 벡터의 성질을 내부적으로 가지는 묘한 정의가 된다.

 

힘을 가했는데 힘의 방향과 직각으로 움직였다면 힘의 방향과 전혀 상관 없는 거리를 이동했기 때문에 m=0이 되고 J=0이 된다. 줄의 열기구에서 추를 낙하시켰더니 공중에서 붕 떠서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그럴 리가 없지만 힘을 준 반대 방향으로 물체가 운동했다면 J는 스칼라량이라지만 음수값이 된다. 줄의 열기구를 놓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는 줄의 열기구에서 물이 저절로 차가워지면서 -칼로리가 발생하고 그만큼의 -에너지로 중력이 작용하고 있는 추를 공중으로 올리는 경우가 그렇다. 귀신 수준의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 한 닫힌 계에서는 그런 일은 없다.

 

J와 거의 똑같은 수식이라 알려져 있는 토크(τ)의 정의는 τ=N•m으로 의심할 바 없는 벡터량이다. 여기에서는 m 마저도 스칼라량이 아니라 부호를 가지는 위치벡터이며 심지어 벡터N와 위치벡터m이 직각이어야 하는 조건도 만족해야 한다. 내용적으로는 J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므로 τ와 J의 단위 차원이 똑같다며 가감 연산을 하는 바보 짓을 저지르면 안된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 에너지 보다는 토크가 훨씬 쉬운 개념이지만 생활에서 만날 기회가 자동차나 모터 다룰 때 빼고는 (그래 봐야 제원으로 적혀 있는 의미 모를 잉크 자국일 뿐) 거의 없어서 익숙해지기 쉽지 않으며 토크 역시 받아 들이기 쉬운 단위는 아니다. 

 

 

사족2 :

 

F=ma 이라는 직관적인 정의가 있고 거기에 더해서 J=N•m (N은 F의 단위) 이  정의되므로 좀더 복잡하게 느껴지고 그리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접근법을 살펴 보면 N은 ma라기 보다 중량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J=N•m 수식에서 N을 중량으로 생각해 보면 매우 직관적으로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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