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서 단지 익숙할 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각도를 “180°”, “90°” 로 나타낸다는 것은 뭔가 이상한 일이다. 한바퀴 도는 각도를 360이란 숫자로 정해 놓고 특정 각도를 이에 대한 비율로 정하는 것이 Degree 법인데 애초에 한바퀴 각도를 360°으로 정한 것 자체가 밑도 끝도 없는 발상이다. 60을 완전한 수로 보았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비주의 사상이 배경이 되기는 하는데 어찌 되었든 360° 를 정의하여 가 정해지는 것은 선후가 뒤집힌 것이다. 뭐든 1을 정의해야 그 다음이 존재할 수 있다. 1°를 정의함으로써  360°가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애초에 각도를 숫자화 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 각도를 숫자로 표시한다는 것 자체에 다들 익숙해 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시라. 각도를 숫자로 나타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다소 황당한 아이디어다. 굳이 나에게 각도를 숫자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직관적으로 더 이상 따질 수 없는 1바퀴를 각도 1이라고 정의했을 것이다. 이러면 각도의 단위는 바퀴가 된다. 그럼 직각 90°(0.25)바퀴가 되었을 것이다. 1바퀴가 1이 되니 직관적이고 좋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각도는 단위가 있는 숫자가 된다. 수학에서 단위가 있는 숫자를 다루는 것을 여러분은 본 적이 있는가? 바퀴라는 단위가 붙는 수는 정수도 아니고 유리수도 아니고 실수도 아니다. “바퀴 수라는 새로운 수가 나와줘야 한다. "바퀴 수"는 "바퀴 수"하고만 연산을 할 수 있을 뿐 다른 수와는 연산을 할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온갖 수가 다 튀어 나와야 한다. 이게 무슨 쓸데 없는 짓인가. 추상화 된 숫자가 아니므로 수학 입장에서 볼 때는 아무 의미가 짓을 한 것이 된다. 따라서 수학자라면 순수한 수가 아닌 단위를 가지는 각도를 숫자화 하는 것에 대해 아무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기하를 열심히 했던 그리스 수학자들이 각도는 degree를 그냥 쓴 것이 새삼 이해가 간다.

 

호도법은 degree보다 한술 더 떠서 각도를 단위도 없는 숫자로 수치화 하는 방법인데 그렇다면 이것을 처음 제안한 이는 보나마나 순수 수학자는 아닐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그러나 의외로 호도법의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17세기 영국 수학자로 알려진 로저 코츠 (Roger Cotes)인데 당시에는 수학자와 물리학자가 분리된 시절이 아니었다. 당시는 수학,철학,물리학 등이 분리되지 않은 채 거대한 우주의 움직임을 밝히는 원리에 다들 관심이 있던 때였고 로저 코츠의 관심사 역시 천문학이었다.

 

로저 코츠가 호도법을 제안한 배경과 이유는 모르지만,  현 시대의 우리가 호도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각도를 단위 없는 수치로 취급하지 않으면 수 많은 문명의 이기가 만들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자동차 등의 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전기조차 구할 수 없다.  단위 시간에 대한 각도 변화량에 비례하여 이에 연동된 물리량의 크기가 변화하는 경우에 각도의 변화량을 단위가 있는 degree로 하면 물리량을 구하는 수식이 넌센스가 되어 버린다.

 

가령 sin(2(x^2))의 미분은 4xcos(2(x^2))인데 이 때 x가 45°라면 4xcos(2x^2)는 얼마일까? 매우 난감하지만 억지로 써 보기로 하면 4xcos(2(x^2)) = 4 (45°) cos(2(45°^2)) = (180°) cos(4050°) = (180°) cos(90°) = 0° 가 된다. x가 45° 인 순간에 sin(2(x^2))의 순간 변화량이 0° 가 되어 버린다. sin의 순간 변화량이 길이가 아닌 각도가 되는 넌센스가 발생한다. 수식으로 각도 변화량을 다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 단위 없이 순수한 숫자로 각도를 나타내어야 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각도를 순수한 숫자로 나타내라는 요구 사항은 희안하게 느껴진다. 문명의 역사를 짧게 잡으면 5000년 정도 잡을 수 있는데 호도법이 나온지는 겨우 400년도 안 되었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수 천년 동안 그 누구도 각도 변화의 크기와 특정 물리량의 크기를 연관지어 정량적 수식으로 따져 보지 않은 것은 충분히 그럴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로저 코츠의 친구였다면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제발 정신 차리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저 코츠는 쓸데 없고 희안해 보이는 요구 사항을 결과적으로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했다.

 

각도의 크기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2개의 직선이 만나는 관계에 따라서 정해지는 수치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같은 단위를 사용하는 선과 선의 비율 관계로 각도의 크기를 정의할 수 있을 것이고 비율이라면 나눗셈이 들어가므로 단위를 떼어 버릴 수 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길이와 길이의 비율로 각도의 크기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각도 변화의 크기와 이에 따른 숫자의 변화의 크기가 선형을 유지해야 한다. 각도가 2배 변했는데 각도를 나타내는 숫자가 4배 변한다면 다른 숫자와의 연산을 수행하기가 매우 곤란한 상황이 된다. 이런 고민의 결과가 반지름과 호 길이의 비율로 각도의 크기를 정한 radian 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두 선이 만나는 관계에 따라 호의 길이가 연동되어 변화한다. 그리고 수식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선이 만나는 각도가 크면 클수록 이와 비례하여 호의 길이가 선형적으로 비례함을 수식으로 알 수 있다. 즉 선 길이가 일정할 경우 각도가 n배 커지면 호의 길이도 n배 커지는 것이 보장된다. 또한 각도가 일정할 경우 선 길이가 n배 커지면 호의 길이도 n배 커진다.

 

따라서 선의 길이를 단위 길이 1로 고정 시키면 이 때 호의 길이와 각의 크기는 선형 비례 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단위 길이 (반지름)1에 대한 호의 길이 1을 각도의 크기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하면 1rad은 반지름이 1인 원의 중심에서 2개의 선이 만날 때 두 선 사이에 존재하는 원호의 길이를 의미하며 단위 반지름 길이에 대한 원호의 비율이므로 그 둘의 비율은 단위 없는 무명수가 된다.

 

각도를 숫자, 그것도 무명수로 나타낸다는 것이 황당해 보였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호와 반지름의 비율로 각도를 나타내는 호도법을 통해 선형성을 확보하면서도 무명수로 각도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고딩 때 분명 이런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난 학교에서 이런 이야기 들은 기억은 없다) 그래서 결론은 닥치고 360°가 2π라고 기계적으로 외우고 문제 푸는 법을 익히는데 집중한다.

 

Roger Cotes18세기 초엽 (1714)에 이런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이에 대한 이름을 정하지는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circular measure of an angle”이란 다소 긴 이름으로 통용되다가 160년 정도 지난 19세기 중엽(1874)에 같은 나라 사람인 영국의 James Thomson에 의해 radian 이란 이름이 붙게 되고 이후 SI 단위계로 채택된다. 참고로 James Thomson“moment of a force”로 불리던 돌림힘에 “Torque”란 이름을 붙여준 장본인이다. 이 양반은 길긴 하지만 명확한 의미가 담겼던 이름을 짧고 있어 보이지만 뭔 뜻인지 잘 모를 이름으로 개명 시키는데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두 선이 만나는 관계가 변화하면 각도가 변화하는데 이는 결국 원과 관련이 높다. 각을 상대적 호의 길이로 취급한 호도법을 채용하면 수식에 π 가 등장할 수 밖에 없으며 해당 수식은 원과 관련된 내용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굳이 호도법을 모른다고 해도 원운동을 다루는 수식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π가 등장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e^j π = -1 (오일러의 등식)을 보면 이 등식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간결한 수식에 π가 붙는 것으로 봐서 왠지 원운동 해석에 쓰일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강렬히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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