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조선일보 영화부 기자인 이동진씨의 확신에 찬 별 5개 만점 평, 거기에 온 가족이 극장 나들이를 할 수 있는 12세 관람가, 아바타 이후 간만에 온 가족이 극장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마누라께서 영화 평을 찾아 보고는 집 근처 3D 상영관을 예매 주시니 안 가고 싶어도 안 갈 수가 없었던 상황.
담백하다. 스토리 자체는 그야말로 단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 할 수는 있었지만 중간에 살짝 지루함을 느꼈다. 이동진의 별 5개 평가는 좀 과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엔딩 후 극장문을 나선 후 지금까지도 계속 머리 속에 영화 내용이 빙글빙글 돌아 다닌다. 분명 색다르고 그러면서도 잘 만든 영화임에는 분명함. 평론가들은 거의 압도적으로 우호적이지만 관객에게는 호불호가 있을 듯 하다.
언제나 그렇듯 영화에 대한 내 리뷰는 스포일러가 다량이니 영화 보신 분이나 영영 안 보실 분들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읽어 보시기 말기를
------------------------- 이하 스포일러 -------------------------
Part 1
초반 도대체 언제 끝이 날지 모르게 연속되는 롱 테이크에 압도 당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우주선의 등장 및 파편에 의한 사고 장면이 모두 한 컷. 카메라의 시점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위성 파편에 의한 사고를 역동적으로 그려 낸다. 여태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긴 롱 테이크면서도 또한 가장 역동적이며 긴박감 넘치던 컷이였다. 기술적으로 여러 컷을 합성하여 만들어 냈을 듯.
라이언은 허블 망원경의 통신 모듈을 수리하고 있었다. "아니 저 비싼 허블 망원경이 통신 모듈 고장으로 지상에서 데이터를 못 받아 보고 있다니! 빨리 고쳐야 할텐데. 지금 못 고치면 또 우주선 타고 와야 하는거야? 유지 보수 비용 장난 아닌데? 위성은 이중화 구성인데 저 Rack은 이중화 구성 아닌 것 같아" 등등 완전 엔지니어의 심정에서 라이언의 작업 모습을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장면 자체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금도 라이언의 정체가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고 이전에 라이언은 "통신"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던 "닥터"였다. 그러나 끊임 없이 떠들어대는 코왈스키와는 달리 "통신" 전문가인 라이언 박사는 소통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허블 망원경의 통신 불능은 사실 라이언 박사의 통신 불능이였던 것.
(극 중반, 코왈스키와의 대화를 통해 관객에게 공개되는 라이언의 사연은 4살짜리 딸을 잃은 것. 그런데 왜 통신 전문가가 병원에서 일을 왜 하는거야? 라이언은 의사 "닥터"인지 통신 전문가 "박사" 인지, 그리고 "박사"라면 왜 그녀가 우주선 타고 올라가서 기껏 한다는 게 통신 Rack의 Board를 손보고 있는건지? 실무진 없어? 따위의 시시콜콜한 의문만 계속 떠올랐다)
코왈스키는 뭐라고 쓰잘데기 없는 말을 계속 내 뱉는데, 사실 난 그런 대사들은 정신 사나워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근데 이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 대사들이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게 뭔지 통 모르겠더라.
암튼 소통에 적극적이지 않은, 아니 사실 딸의 죽음 이후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한 그녀는 통신 기능이 고장난 허블망원경과 마찬가지로 외부와 고립되어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그야말로 우주 미아가 되는 상황에서 그녀가 절박하게 계속 되뇌이는 것은 "Do you copy?". 외부와의 소통이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절박하게 자신의 말을 누구 들었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영화에서 소통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라이언이 코왈스키와 헤어진 이후 라이언은 코왈스키와 교신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이 유일하게 남은 생존자라고 휴스턴에 보고를 한다. 휴스턴은 응답하지 않지만 그녀는 소통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극 후반 지구 착륙 시 낙하산이 펴져 생존이 거의 확실해진 이후 휴스턴의 목소리를 그녀가 듣게 된 것은 상징적이다.
라이언이 러시아 우주정거장에 안착 후 화면은 그녀가 태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준다. 분명 감독이 의도를 가지고 꽤 긴 시간 동안 보여준 장면이였다. 그 이전에 그녀는 아무리 고쳐도 고쳐지지 않는 고장난 허블 망원경이였다. 즉 소통을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존재치 않았던 것이다. 러시아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후 그녀는 생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한다. 시작인 것이다.
지구의 호수가에 착륙한 후, (극 중 그녀의 집은 뭐시기 Lake 였다) 힘겹게 물 속을 헤쳐 나와 머리를 대기 중에 내밀고 미끄러지듯 헤엄을 쳐 나와 땅에 몸을 맡기는 장면은 흡사 출산의 장면을 보는 듯 했다. 러시아 우주 정거장에서 시작되었던 태아가 영화 마지막에서 지상의 호수에서 출생하게 된 것이였다.
우주 공간에서 그녀의 목숨을 지켜주었던 우주복은, 지상의 호수에서는 오히려 그녀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그녀는 물속에서 우주복을 모두 벗어던지고 나서야 떠오를 수 있었다. 인상적인 장면이였다. 어린 존재를 지켜주던 장치는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존재의 성장을 방해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장치로 돌변해 버린다.
Part 2
위에 내가 언급했던 내용들이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에는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푸른눈/갈색눈, Hairy Man 등도 뭔가 암시하는 바가 있겠지만 그것 역시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이 영화의 강점은 스토리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멋대로 해석하여 알아 봐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좋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우주에서 사고를 당한 우주인이 역경을 뚫고 지구로 귀환한다는 내용. 거기에 별다른 살이 붙어 있지 않다. 그야말로 뼈대만 있는 느낌. 그러나 우주라는 위험천만한 공간과 직접 살을 맞대는 긴장감은 그 자체가 충분한 살을 제공해 준다. 주인공은 우주공간과 시종일관 목숨을 건 맞짱을 떠 간다. 여기에 무슨 이야기가 더 필요하겠는가?
이 영화의 주인공은 표면적으로 볼 때는 라이언과 코왈스키지만 사실 진짜 주인공은 라이언과 우주공간이다. 이 영화는 라이언과 우주공간 사이에 팽팽한 긴장을 걸어 놓는다. 조금만 실수하면 우주공간은 라이언의 목숨을 간단히 접수할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자비가 없는 상대와의 팽팽한 긴장을 이렇게 멋진 화면으로 생생하게 보여준 영화는 내 기억에 없었다.
화면과 소리로 이루어지는 영화라는 매체의 원초적인 본질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괜한 스토리의 추가는 그 긴장을 전달하는데 방해만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CG와 3D라는 새로운 도구를 이용하는 환경에서, 지극히 영화적인 방법을 통해 영화가 전해 줄 수 있는 긴장감의 끝을 본 듯한 느낌이였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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