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거창하다.제목만 보면 BC 700년 경 쓰여진 서사시 Odyssey의 현대판 우주 버젼이란 뜻처럼 보인다. Odyssey는 트로이 전쟁 참전 후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10년간 바다를 떠돌며 신들과 맞선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을 그린 서사시이다. Odyssey는 그리스 문명권에서 생각하는 세상에 대해 취해야 할 인간의 본 태도를 표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서양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사시의 전형이며 고전이다. 이 영화는 서사시 Odyssey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SF 영화 분야에 대해서는 Odyssey가 점한 위치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친 또다른 고전임에는 분명하다.
서사시 Odyssey가 그리는 세상은 올림푸스의 신들이 지배하는 지중해 연안이였지만 영화에서의 세상은 우주공간으로 확장되어 있으며 우주라는 세상에 대해 인간이 취해야 할 자세를 논하고 있다. 오디세우스가 에게해 연안을 항해하며 모험을 겪었듯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우주공간을 항해하며 모험을 겪는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험을 겪고 영황에서는 인간의 행성인 지구를 떠나 목성을 향하지만 또다른 의미의 고향을 향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서사시 Odyssey에서 오디세우스는 신의 뜻과 대립하여 인간의 의지를 관철해 나간다. 신이라는 엄청난 존재에 맞서 오디세우스는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원하는 바를 관철해 나간다. 그리나 그가 신의 의도와 맞서는 것 그 자체가 결국은 신의 뜻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에서 그리스 문명이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인간의 자세가 명확하게 읽힌다. 인간의 의지를 따르는 것이 결국 신의 의지를 따르는 것이고 그래서 네가 너의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며 숭고하기 까지 한 것이란 관점이다. 이는 근대 이후 세상을 대하는 인간의 취해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점하고 있다.
나는 영화에서 우주라는 세상에서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하기가 그야말로 난해하다. 무슨 선문답 같은 화면으로 채워진 영화 후반부는 분명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한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인류는 우주라는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맞이하여 지금의 모습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질 뿐이며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이 후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이다. 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만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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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화가 아닌 연극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의 연기톤이나 배경의 느낌은 연극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를 연극으로 바꿔서 상연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우주공간이나 달 표면을 질주하는 것이 분명할 우주선의 모습에서도 연극적인 톤이 느껴진다.
보는 내내 "정중동" 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템포는 느리고 정적이지만 밀도가 엄청나게 높다. 마치 맹렬하게 동일한 힘으로 서로를 밀어내고 있는 기차 사이에 끼어 있는 종이장을 보고 있는 느낌이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야 긴장감이 풀리면서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였다. 그야말로 압도 당했다.
어느날 갑자기 인류 조상의 눈 앞에 나타난 네모난 흑체(영화에서는 한번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다들 "모노리스"라고 부르는 그것)에 우리의 조상들이 놀라면서 그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흑체를 손으로 만지는 그 첫 만남의 짜릿함이란...으하...장난 아니였다.
돼지처럼 생긴 동물( 내가 볼 땐 "맥"으로 보인다)과 같이 섞여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장면에서 나는 인류 최조의 서사시라 불리는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원시인 엔키두가 생각났다. 엔키두는 원시인 시절에 야생동물들과 같이 어울려 살았으나 그가 인간이 되고 난 후 야생동물들이 그를 피해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후 동물들이 아담과 이브를 피하게 되었다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는 이야기이다. 즉 자연과 피아 구분이 없는 원시상태의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어떠한 말 한마디도 없이 인간이 되기 전의 원시 상태를 간단한 화면으로 압축시켜 보여주고 있다. 밀도가 높다. 허공으로 집어 던진 뼈다귀가 우주 공간의 우주선으로 바뀌는 장면은 수만년의 시간이 압축된 장면이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길을 가다가 뼈다귀에 관심을 보이는 그 한 명의 원시인의 등장으로 우주를 날아가는 현대문명의 존재는 이미 결정된 것이란 것이다. 정적으로 보이지만 이렇게 밀도 높은 영상은 그리 흔하지 않다.
음악이 죽여 준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다른 영상 자료마다 등장하는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 강"이 나오는 우주비행 장면은 의외로 나에게는 지겹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 부분을 빼고는 음악이 소름끼칠 정도이다. 특히 모노리스를 처음 접할 때 흘러 나오는 귀신 곡소리 같은 음악은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어떠한 대사나 설명보다도 그 귀신 곡소리만큼 그 장면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 너무나도 어울리고 완벽했다.
달에서 다시 모노리스를 발견했을 때에도 어김없이 그 귀신 곡소리는 흘러 나왔다. 그 장면에서의 긴장감이란 가히 숨도 제대로 못 쉴 듯이 압도적이였다. 원시시대에 모노리스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원시인 무리들이 난리치던 것이나 달표면에서 모노리스를 발견하여 이에 접근하는 우주복을 입은 인간들이나 똑같이 느껴졌다. 수만년의 시간을 건너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인간의 모습을 보는데 흘러나오는 귀신 곡소리의 그 무시무시함이란......크아아...죽여줬다....이렇게 정적인 화면에서 어떻게 이렇게 극대화 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건지. 이런 영화는 난생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였다.
그러나 도구의 사용으로 인간이 등장하고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영화의 관점은 내 관점에서는 그리 마뜩치가 않아 보인다. 뼈다귀를 들고 뼈를 부수는 인류 최초의 도구 사용 순간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는 건 그 이후 등장할 인류 문명의 등장을 결정 짓는 중요한 순간으로 그려지지만 도구의 사용은 결국 신체의 연장일 뿐이며 그 자체가 이전의 인류와 그 이후의 인류를 구분짓는, 인간이라 하는 존재를 규정 지울 수 있는 분기점이란 생각은 개인적으로 하지 않는다.
후반부를 보면 도구의 사용으로 인한 신체의 연장이 아닌 신체를 벗어난 어떤 것에 대해 인류가 눈을 떠야 한다는 메시지가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이란 존재는 애초부터 그러했다고 생각하는지라 암튼 원숭이에서 인간으로의 변화가 겨우 뼈다귀 들고 설치는 것이라는 영화의 입장은 보는 내내 맘이 걸린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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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모노리스가 발견 된 후 꽤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를 타고 5명의 우주인이 목성으로 여행을 간다. 우주선의 이름처럼 그들의 임무는 뭔가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지조차 못한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이름은 이 영화에 등장한 우주선의 이름을 따 왔다고 한다)
우주에서의 항해,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연상케 한다. 그 우주선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HAL 9000 시스템. 선원들이 HAL의 이름을 부를 때 난 왜 그게 Hell 처럼 들렸는지 모르겠다. 시스템 다운을 의미하는 HALT라는 단어와도 유사하게 보이는 HAL. 이름에서 벌써 불길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 이후 나타난 각종 SF 영화에서 악역을 담당하는 슈퍼 컴퓨터의 원형이 바로 이 HAL 9000이 아닌가 싶다. 아니 원형을 넘어 HAL 9000을 넘어서는 악역 시스템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HAL 9000은 기본 기능 외에 인공지능을 고급으로 장착하고 있고 인간이 사용하는 시각과 청각을 통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우주선원이 말하는 것처럼 감정까지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의 피조물이다. "HAL 9000"은 비록 악역이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인간의 피조물이기도 하지만 HAL9000이 세상을 인식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시각 취득 장치의 모습에서 나는 Odyssey에 등장하는 외눈박이 씨클롭스 괴물인 폴리페모스가 연상된다. 분명 HAL9000은 사고를 칠 것이 뻔해 보였고 서사시 Odyssey의 폴리페모스가 그러했든 HAL9000은 우주인들을 해하고야 만다. 오디세우스가 말뚝으로 폴리페모스의 눈을 찔렀듯이 마지막 생존자는 드리이버 비슷한 막대기 하나로 메모리 카드를 빼 내버리는 것으로 HAL9000을 제압한다.
직업상 컴퓨터를 많이 다루다 보니 아무래도 공학적인 측면에서 HAL9000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 시스템은 참으로 아름답다. 영화가 제작된 1968년의 컴퓨터는 MainFrame 시절이고 HAL 9000도 그런 시스템의 연장선에서 상상되었으리라. 1968년에 상상한 극강의 시스템은 지금 봐도 근사하게 보이고 오히려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분명 이 영화의 감독은 이 분야에 대한 공부를 많이한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인간의 실수"란 단어가 자꾸 맴돈다. HAL9000은 그 자체로 완벽한 시스템이며 오류가 없지만 실수가 있다면 그건 인간 탓이란다. 영화를 다시 보면 뭔가 더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암튼 그 오류가 없다던 HAL 9000이 미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마지막 생존자가 HAL9000의 메모리를 빼내어 시스템을 살해(?)한 후 뜬금없이 등장하는 고위층의 메시지가 전해지면서 풀리기 시작한다.
달에서 발견된 모노리스의 존재와 그것이 목성을 향해 송신한 신호를 추적하여 어떤 것이 있는지 발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으며 그들의 임무는 목성에 도착하기 전까지 비밀에 붙여지며 이를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HAL 9000 뿐이었다. 인간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던 HAL 9000은 이 엄청난 비밀을 혼자 알고 있는 것에 불안하고 흔들렸으며 이 정보를 알지 못했던 쌍둥이 HAL 9000이 범하지 않았던 오류를 저지르면서 미쳐버린 것이다.
인간의 피조물이지만 인간보다 완벽하고 그러면서도 인간의 감정을 가진 이런 존재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자신의 메모리를 제거하기 위해 다가오는 인간에 대해 엄중한 언어로 경고하다가 자신이 소멸하기 시작하면서 두렵고 무섭다고 고백하는 HAL 9000의 음성은 얼마나 애처로워 보이던지. HAL 9000이 원죄를 가진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의 은유로 읽히면서 악역이지만 참으로 애처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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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도착한 목성 근처에 뜬금 없이 모노리스가 등장하고 마지막 생존자는 모노리스가 이끄는 세계에 도착한다. 지금보면 조잡한 영상으로 표현된 이 부분은 보는 내내 지루한 느낌을 가질 정도로 길게 느껴졌고 왜 그리도 길게 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인도되는 동안 경악에 질린 듯한 인간의 눈동자. 뭔가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면서 느끼는 두려움이 느껴지는 장면이였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어이 없이도 무슨 호텔방 같은 안락함이 느껴지는 자그마한 공간. 광각렌즈로 가까이 붙어서 촬영한 듯 어딘지 왜곡된 듯한 느낌을 받는 화면이였다. 거기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자신이 되어 가고 결국 거기에서 죽음을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식사를 하는 광경을 보면서 그 곳은 참으로 안락한 장소로 느껴졌는데 서사시 Odyssey에 등장했던 칼립소의 섬이 그런 곳이 아니였을까 싶다.
그 곳에서 인간은 주어진 숙명과 같은 시간의 진행에 따른 노화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모노리스가 등장하면서 재탄생을 한다. 마치 원시인이 모노리스를 만난 이후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달라졌듯 모노리스를 만나면서 달라지는 재탄생을 하게 된 것이다. 예전의 변화가 신체의 연장이였던 반면 새로운 변화는 신체의 죽음 이후 진행된 뭔가 다른 것이다.
그 새롭게 탄생된 존재가 지구를 응시한다. 우주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은 지구 안에서 갇힌 존재가 아닌 지구를 밖에서 바라보는 우주적인 존재로 재탄생 한 것이다. 근데 그게 어떤 것인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오디세우스처럼 세상에 맞서 인간의 의지를 관철하라는 그런 태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육체적인 면을 초월한 어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오디세우스의 인간의 의지를 관철하라는 요구는 왠지 이상해 보인다.
대사도 하나도 없고 그저 선문답 같은 화면이 보이기에 굉장히 난해하게 보이며 어떤 관객들은 도대체 이게 뭐냐고 짜증을 낼 수도 있겠다.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 원작자의 의도이건 아니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요는 나에게 그렇게 읽혔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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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더 보고 싶은 영화이지만 그 지루함과 긴장감을 다시 느껴야 한다는 것이 살짝 부담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한번쯤은 봐야 할 영화임에는 분명한 듯. 이 영화는 그 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특수효과상을 받았다고 한다. 정말 그것만 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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