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감각이 거의 없는 만화 같은 느낌의 영화.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 그리고 그 현실감 없어 보이는 황당함이 실은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기까지 한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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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였다. 유치하고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알싸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 그런 영화 이 영화를 만든 이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뭔가를 경험한 듯 하다.

 

제 아무리 능력이 좋다 해도 리허설 한번 없이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기가 막히게 연주해 낼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아닌가. 영화에서는 말하고 싶은 것이 차이코프스키를 성공적으로 연주해 낼 수 있는 비법에 대한 것은 아니잖은가?

 

스토리가 뒷받침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들렸고 그 아름다운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는 충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역을 맡은 배우의 손가락 움직임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를 화면과 동기가 너무 잘 맞았다. 격정적인 음을 내는 부분에서 활을 키는 동작이 좀 어색한 것이 티끌만하게 아쉬운 점.

 

제목답게 마지막 부분의 콘서트 장면으로도 영화는 충분했다. 그러나 보고 난 후에는 음악과는 상관 없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영화를 통해 보여준  행태에서 뭔가 싸한 느낌이 전해진다.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중이란 어떤 존재인지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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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소련 시절의 브레즈네프가 반 유대인 정책을 폈든 아니든 관심 없다. 영화에서는 성공할 능력을 이미 몸으로 채득한 상태에 있는 실패자들이 필요했고 그런 이들을 만들어 내기 좋은 핑계거리로 브레즈네프를 써 먹었을 뿐이다.

 

그들은 고행석 만화에 등장하는 구영탄이다. 뚱땡이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첼로를 잡으면 그냥 날라 다닌다. 날나리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파가니니 따위가 가볍게 나오는 오케스트라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다. 이미 다 할 줄 아는데 연습 따위는 필요없다. 그냥 해도 뭐든 잘하는 구영탄처럼 말이다.

 

그런 능력자들이 루저 신세를 전전하고 있다. 시장 바닥의 상인, 극장 청소부, 포르노 영화 음악 담당, 엠블런스 운전사, 거리의 집시 등등 저소득층의 일반 대중들 중 한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눈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대중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공항까지 걸어가는 모습은 무슨 피난민을 보는 듯 했다. 버스가 없다고 못 가겠다고 배를 째는 이탈자가 한명도 없이 묵묵히 공항으로 걸어가는 모습에서 힘 없는 대중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나름 파리행에 대한 각자의 꿍꿍이가 있었고 그 꿍꿍이를 위해 각자 인내하고 있던 것 일 뿐이였다.

 

파리에 도착하자 그들은 돌변한다. 각자 파리를 원했던 이유들을 실현하기 그들은 각지로 흩어져서 개별 행동을 취한다. 대중이 이런 존재다. 그들은 힘 없고 능력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콘서트는 그들이 파리에 오기 위한 핑계였을 뿐이다. 그들은, 대중은, 결국 배반한다.

 

파리로 오는 과정에서 그들은 지휘자를 비롯한 지도자 그룹의 말을 군말 없이 받아 들였다. 공항까지 걸어가라면 걸어가고, 사진 가져오라면 가져오고, 줄을 서라면 서고, 그렇게 시키는대로 하던 이들이 파리 도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자 지도부를 용도 폐기한다. 리허설은 무슨 얼어죽을 리허설.

 

그러나 감독은 영화에서 배반을 감행한 대중들을 사악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지도부는 허탈해 하면서도 분노하지 않으며 단원들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명이라도 끌어 모으기 위해 갖은 애를 쓸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던 그들은 특정한 계기로 인해 한자리에 모여 기적 같은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사실 영화에서 그들을 이끌던 공산당원이 읆조린 말처럼 대중이 그렇게 찬란한 승리를 거두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기적 같은 일들이 종종 벌어지기도 하고 후세들은 그 기적 같은 일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3.1 운동이 그런 기적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음악영화로 보이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지극히 정치적인 메시지로 읽히는 알싸한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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