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주말에 동네 책방에서 이것저것 뒤져 보다가 선택한 책. 읽는데 일주일정도 걸렸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을 때 쥴리어스 시져를 왜 대단한 사람이라 하는지 실감하였는데 이 책을 읽어 보니 그 때와 비슷한 감이 든다. 위인전 쓰듯이 미화하는 부분은 없다. 유목민에 대한 문헌은 피상적인 수박 곁햛기 아니면 지나치게 학문적인데 이 책은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재미있다.

칭기스칸의 몽고 통일 과정은 결국 귀족파에 대한 민중파의 승리이며 그 결과 기존의 신분제도가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잡혔다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기존의 신분제도라는 것은 철저하게 친족을 매개로 하는 계급 질서였다. 유전자 보존에 대한 자연스러운 본능에 바탕을 둔 그런 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 하지만 칭기스칸은 혈연 같은 선천적인 조건이 아닌 후천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겼다. 즉 실력과 신뢰 위주의 인사 정책이였으며 칭기스칸이 몽고를 통일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혈연을 위주로 한 계급 체계는 붕괴되었다.  발주나의 맹약 이후 칭기스칸을 배반한 장군들이 (이들 중에는 칭기스칸이 정복한 부족 출신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한명도 없었다는 것은 당시에나 지금이나 경이로운 리더십으로 평가 받을 만 하다.

칭기스칸이 내세웠던 새로운 질서에는 칭기스칸의 성장 배경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논점이 꽤 흥미로웠다. 칭기스칸은 자신의 친족 부락에서 버림 받아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 혹독한 시절에 배다른 형을 살해하기도 했다. 도리어 그는 친족이 아닌 사람들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헤쳐 나온 적이 많았는데 이런 점이 후일 친족보다는 신뢰 할 수 있는 남을 더 중시하는 성향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의 트라우마라 할 이복형의 살해와 성년의 칭기스칸이 했던 행위를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연결시켜 해석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새로운 질서체계에서 칭기스칸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으로의 통합이 아니라 부족과 부족간의 대등한 통합을 위해 정복한 부족의 아이들을 자기 어머니의 양자, 즉 자신의 동생으로 입양하기도 하고 정략적인 결혼도 한 바 있다. 이후 몽고에서는 동질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민족과 혼인을 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 고려 출신으로 황가의 가족이 된 기황후를 보면 몽고는 고려 역시 동질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범쥬신론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칭기스칸에서 그의 손자 쿠빌라이에 거쳐 만들어졌던 광대한 제국의 멸망에 질병(폐스트)도 한 몫 했다는 건 나도 2-3년 전에야 알았던 사실이다. 이 책에서도 그 부분이 언급되어 있는데 지금의 베트남에서 발병한 페스트가 유럽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몽고가 확보하고 있었던 안전한 교역로 덕분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그 교역로를 타고 페스트가 중국에서 유럽까지 퍼지는데 몇달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몽고의 교역로는 빠르고 안전했다고 한다.

원나라에서 제1계급은 물론 왕족들이다. 그럼 제2계급은?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인들이다. 그런데 이게 그 당시 세계에서는 거의 획기적인 일이 아닌가. 그만큼 원나라는 상호간의 교역에 많은 부분을 의지 했었고 교역을 중시하였는데 애초에 유목민들이 생산이라는 것을 해 본 적 없다느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나라가 힘을 잃게 된 이유에는 페스트로 인한 교역로의 붕괴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왜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기에는 원나라가 엄청난 군사력 외에는 볼 것이 없어서 결국 지속적인 한족의 반발을 누르지 못해 멸망하였다고 알고 있었을까? 소중화 사상에서 나도 별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유럽이 중세시대를 마치고 르네상스시대를 맞이 할 수 있었던 것에는 동양과의 교역을 통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부유함이 한 몫을 한다는 것과 그 교역이 가능했던 이유가 몽고의 안정적인 교역로 확보 때문이였음도 처음 알게 되었다. 몽고의 안정적인 교역로는 페스트만 들여 온 것이 아니라 당시 유럽보다 월등히 앞서 있던 동양의 문물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교역로의 유럽측 Gateway라 할 만한 곳이 바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였다. 마르코 폴로가 모험심에 괜히 원나라를 찾아 갔던 것은 아니였을 것이다. 유럽이 중세시대를 마감 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에서 페스트와 르네상스는 몽고가 세운 광대한 제국의 교역로에 기인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절의 고전이라 할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이 페스트를 피해 모인 사람들끼리 나눈 이야기인 것을 생각하면 아귀가 딱 들어 맞지 않는가?

결국 유럽이 오로지 자신들의 역량에만 의존하여 중세시대를 끝내고 근대 시대로 간 것은 아니였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고 배경이 있는 것, 유럽 애들이 지 혼자 잘나서 근대 시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는거다. 그런데 왜 나는 여태까지 유럽이 자신의 독자적인 힘만으로 근대시대를 열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정주민의 시각으로 본 역사관이 무의식 중에 스며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나랑 별 상관 없을 것 같은 옛날 사람인 칭기스칸의 행위들이 알고 보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세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디 한 둘이랴? 역사적인 사실 모두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의 일이라던 것들, 그 하나 하나가 시공을 뛰어 넘어 여전히 나의 생활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을 실감하면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몽고가 건재하여 교역로가 계속 안정적이였다면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할 수 있었겠는가? 몽고가 건재하였다면 그 기간에 비례하여 미국의 역사는 더 짧아졌을 것이고 지금의 미국이 이런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면 과거 역사의 사실 하나 하나가 모두 섬찟하게 느껴 질 때가 있다.

책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고려와 몽고와의 관계를 잘못 파악한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저자가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몽고의 업적 중 긍정적이라 할만한 부분에 대한 예시는 그런 면에서는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적인 논점은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역사의 무서움을 새삼 느꼈던 그런 책이였다.

Posted by ikip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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