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경악을 금치 못할 책.
신화는 역사 이전의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정보를 암시하는 일종의 상징 체계로 보는 시각이 강하지만 수메르의 신화 읽기에는 이런 접근 방식이 왠지 부적절해 보인다. 상징 체계가 아닌 그야말로 Fact처럼 읽히는 그들의 이야기. 충격 그리고 또 충격이다. 다음 페이지에 무슨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올지 몰라 페이지 넘기기가 두려워질 정도.
예전 사람들이 읽었다면 또다른 그렇고 그런 신화로 읽혔겠으나 현재의 과학지식 눈높이에서 읽으면 다들 그럴듯하고 있을 법 하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는 이야기들. 수메르 신들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인 그림이 머리속에 그려질 정도다.
고대 수메르 문명의 도시가 발굴되었고 그 도시에서 출토된 수만의 점토판, 그리고 점토판에서 해석되어 나온 놀라운 이야기들. 이미 유적 발굴을 통한 고고학적 증명이 선행 된 증거 자료에서 나온 이야기들이기에 수메르 신들의 이야기가 현존하는 신화들 중 가장 최초라는 것에는 딴지를 걸 수가 없다.
그리스 신화나 구약 이야기 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었던 신들의 이야기. 복잡한 상징 체계 덩어리 그 자체인 그리스 신화나 경건하고 딱딱한 구약의 야훼 이야기에 비해 오히려 그 이전의 수메르 신들의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명쾌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집트, 그리이스, 구약 등 이후 신에 대한 이야기들의 원형이라는 것. 인간들은 수메르 신들의 이야기들을 베끼는 과정에서 인간의 상징 체계를 집어 넣었다. 그래서 후대의 신화 이야기는 다소 황당한 정말 마술 같은 이야기가 되었고 인간들을 위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
작가가 수메르 신화를 언급하면서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이야기는 무엇인가? 성서 구약 부분이 사실은 히브리족의 필요에 따라 수메르 신화를 마음대로 변경하여 베껴 쓴 산물이라는게다. 기독 계통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그 때 채플 시간에 창세기 이야기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열심히 설명하던 생물학과 교수님 같은 양반들께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위험한 이야기다. 그 때 그 양반이 궁창에 대한 설교도 한참 받았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그게 수메르 창세기를 날조한 바빌로니아의 창세기에서 베껴 쓴 부분이라고? 뒤집어질 일이다.
예수가 젊은 시절 인도에서 수련 했다는 둥, 십자가 못 박혀 죽은게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고 애 낳아서 잘 살았다는 둥, 예수님에 대한 이러쿵 저러쿵한 이야기들은 이제 그냥 익숙해 질 정도로 넘쳐난다. 하지만 아직까지 god, 혹은 야훼, 혹은 알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제외하고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작가는 최초의 신화와 성서의 구약 부분을 비교하며 구약의 허구성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게 진실이라 믿든 아니든 그건 독자 마음대로 판단할 문제이겠지만 작가는 수메르 신화를 매우 힘들게 읽어 낸 듯한 인상을 받는다. 작가도 서문에서 말하고 있지 않던가?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 . .
작가의 엄청난 노고 덕에 나는 몇일을 투자하는 정도로 수메르 신화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책을 보는 것은 흡사 멀더의 X-File을 보는 듯 했다. 그 X-File의 몇몇 장면들을 맛뵈기로 언급하면 . .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스클레피오스 . . . 죽은 사람들마저 살려내는 의사였으며 인간이 불멸의 존재로 되는 것을 염려한 제우스가 벼락으로 그를 죽였으나 다시 별자리로 그를 살려 신의 대열에 끼워주는데 그 별자리는 바로 뱀자리. 그래서 의술에 관련된 단체는 뱀이 꽤 나온다. 국제보건기구인 WHO의 문양에도 뱀이 있고 왠만한 의무부대의 문양도 뱀이 나온다. 그런데 그 문양들 중 뱀이 서로 똘똘 뭉쳐서 꼬여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왜 아스클레피오스는 하필 뱀의 별자리를 가지게 되었는가?
수메르 신화에서 인간을 창조한 것은 신들의 권력서열 No3의 위치에 있는 Enki. 다른 신들이 인간을 멸하려는 시도를 중간에 번번히 좌절시킨 생명 창조의 신이자 구세주의 신. 그리고 Enki의 상징으로 뱀이 종종 나온다는 것. 그리스 신화의 아스클레피오스는 Enki의 또다른 베껴 쓰기였고 그 상징을 같이 가져가 버렸다. Enki는 단순한 의술의 신이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 낸 존재라는 것을 명심하자. 자 그렇다면 뱀이 서로 똘똘 뭉쳐 꼬여 있는 것이 의미심장 하지 않은가?
Enki의 인간창조 과정을 보면 흡사 인간 복제 실험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야훼처럼 빛이 있으라 하면 바로 빛이 생겨나는 절대적인 능력으로 우습게 인간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작은 신의 피와 정령을 정화하고 이를 진흙과 섞은 후 이를 다시 여신의 자궁에 넣어 10달 뒤에 7명의 남자와 7명의 여자를 만들어 내는 꽤 공을 많이 들이는 수고스런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그 이전의 초기 시도에서는 손을 굽히지 못하는 자, 멍청한 자, 생식기가 없는자, 걷지 못하는자 등등의 숱한 기형들을 만들어 낸 바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에일리언4에서 나왔던 리플리의 실패작들이 떠 올랐다. 지금껏 알려진 가장 오래된 신화에서 SF 영화을 보는 듯한 . . .그야말로 이게 왠 당황스러운 시츄에이션 . . .Enki는 신들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유전공학자였던 셈이다. 20세기에 와서야 밝혀진 DNA의 2중 나선 구조, 뱀이 서로 꼬여 있는 듯한 형상, Enki의 인간 창조 과정 . . . 뭔가 감이 확 오지 않는가?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 먹도록 꼬시는 뱀. 그게 왜 하필 뱀이였는가? 문제의 과일을 따 먹고 선악을 구별 할 줄 알게 되며 부끄러워 나뭇잎으로 성기를 가리게 된 최초의 인류들, 그럼 그 이전의 인류들은 도대체 어떤 상태였다는거지? 선악과를 따 먹은 덕에 출산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는 이브, 그럼 그 이전에는 출산의 고통을 몰랐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문제의 과일을 따 먹은 이전의 상태는 뭐란 말인가?
그 이전의 인간들은 한마디로 정상적인 성행위를 몰라서 번식이 불가능하며 선과 악에 대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던 한마디로 백치 상태였다는 것인데 거기에서 벗어나게 해 것이 왜 하필 뱀이였는가? 생명 창조의 신 Enki, 그리고 그의 상징인 나선 모양의 뱀, 인류를 멸하고자 하는 다른 신들의 시도를 좌절시키고 인간을 구원해 왔던 Enki.
인간의 창조주이자 구세주인 Enki의 숫자는 40.
구세주 예수가 그 정체성을 확보하는 광야에서 보낸 일수 40일.
구세주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한 히브리족이 광야에서 보낸 연수가 40년.
그냥 우연한 숫자의 일치일 뿐인가?
맛뵈기는 여기까지. . . .
우리가 카인의 자손인지 셋의 자손인지를 알고 싶다면 . . .
신들이 대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킬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전후 사연을 알고 싶다면 . . .
왜 고대국가는 대부분 왕정을 했고 왕후장상에 씨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알고 싶다면 . . .
고대 신화와 최근 스타워즈에까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왜 줄기차게 제기되는지 알고 싶다면 . .
작가의 집요한 노력의 산물을 한번 구해서 읽어 보시라.
아마 나름의 행간을 짚어가며 생각하고 읽어간다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사탄과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이 책은 사탄이 쓴 책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나 자신도 들었으니 하나님의 존재를 뼈 속 깊이 믿는 신자들은 아마 안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설령 본다 한들 나를 원망하지는 말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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