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는 지식산업사, 저자는 박영배
서점에서 이것 저것 뒤적이다가 발견하게 된 책. 그 동안 서적으로는 거의 접해보지 못했던 내용들이 가득했다. 책 모양을 보니 그리 비싸 보이지 않기에 부담 없는 가격이라 생각했으나 막상 계산기에 찍힌 가격에 잠시 당황했었다. 집에 와서 인터넷 서점의 가격을 보니 꽤 많은 차이가 난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건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앵글로색슨의 역사와 이에 따른 언어의 변천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인 저자의 주 전공이 이 분야인 듯 하다. 일반인들을 위한 역사서라기 보다는 학술적인 느낌의 딱딱하고 건조한 문체로 씌여 있다.
각 시대에 따른 정치적 역사를 소개하고 이에 따른 사회 문화 및 언어에 대한 변천을 논하는 순서로 작성되어 있는데 정치와 언어 두가지 역사를 같이 서술하려다 보니 산만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 연구개음 운운하는 언어학적 이야기가 나오니 그 쪽으로는 별 관심 없는 나에게는 잘 파악할 수 없는 내용들이 태반이다.
산만하게 느껴진다는 단점은 있으나 국내에서 영국의 고대사에 대해 이 정도로 상세하게 써 놓은 책은 그리 흔치 않을 듯. 정치사와 언어사를 연관하여 이해하려는 접근방법은 들어보기만 했을 뿐 이렇게 책으로 내 놓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영국의 고대와 중세를 이해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읽기에 괜찮은 책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잉글랜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를 포함한 전체적인 영국에 대한 시각을 얻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으며 거론된 지명을 지도로 표시해 주는 친철함이 없는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유럽에서 왕이나 나라라는 개념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왕조가 망하면 그 나라가 망하는 것이 내 통념이였는데 유럽 쪽은 왕조 따로 나라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가령 튜더 왕조 이후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조가 들어섰으나 여전히 잉글랜드는 잉글랜드고 스코틀랜드는 스코틀랜드로 남는다. 지금도 UK는 웨일즈, 스코틀랜드, 잉글랜드가 연합된 왕국 아닌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유럽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 듯.
노르만 왕조의 성립을 보고 있으니 100년 전쟁의 성격이 내가 알던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과는 성격이 좀 다른 듯 하다. 어찌보면 내전 성격을 가진 것 아닌가도 싶다. 당시 영국장군의 이름을 딴 와인이름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을 보고 그냥 웃기는 일이려니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이들에게 국가라는 개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것과는 분명 다른 듯 하다. 축구도 국가대표보다는 자기네 지역팀을 더 우선시 한다는 것도 이런 맥락이 나타나는 한가지 모습인 듯 하다.
영어라는 언어가 제 모습을 갖추고 출현한 것은 노르만 왕조 이후라고 한다. 이 책의 주 관점은 언어의 변천사이고 영어가 출현한 시대까지를 논하므로 노르만 왕조까지를 설명하고 있다. 영국섬에서 쓰이던 언어는 고대 켈트족의 언어인 게일어, 거기에 로마 속주 시절의 라틴어의 영향을 받고 앵글로색슨의 침입으로 게르만어의 영향을 받게 된다. 거기에 바이킹의 영향으로 스칸디나비아어의 영향까지 받게 되는데...
결정적으로 지금의 영어가 나타나게 된 것은 상류계급이 프랑스어를 쓰던 노르만 왕조 때라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노르만 왕조는 명맥이 끊겼으나 당시 지배계급이 모두 프랑스 출신으로 물갈이 되었고 지금의 영국 귀족 상류층은 프랑스인의 후예들로 헤이스팅스 전투의 영향이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 긴 시간동안 영어는 이전의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언어가 된 듯 하다.
어디에서 들었던 건데 영국 귀족 출신들은 말할 때 입을 오므려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런 것도 아마 예전부터 내려온 프랑스어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앵글로색슨이 게르만족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종종 BBC 뉴스를 들을 때마다 알아 듣지는 못하지만 왠지 독일말 같다는 느낌이 든 것도 괜한 것은 아니였다.
책에 대한 느낌은 대략 이 정도이고...
다음은 이 책에서 소개한 내용을 나름대로 간추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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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명시적으로 제기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 책을 읽어 보니 고대 잉글랜드의 역사는 대략 선켈트, 켈트, 브리튼 로만, 앵글로색슨, 바이킹, 노르만의 6개 시기로 구분 할 수 있을 듯 하다.
1. 선켈트 시대
선켈트 시대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고대 선사 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영국섬이 대륙과 연결되어 있던 시절 석시시대 사람들이 유입되어 살았다고 한다. 대략 구석기 시대에는 크로마뇽인 정도가 살았을 것이고 호모 사피엔스도 살았다고 하는데 당시 호모 사피엔스는 인도유럽 어족은 아닌 듯 다른 종족의 인간들이였다고 한다. 현재 유럽인들과 달리 검은 머리에 체격도 작았다고 하는데 당시의 사체가 발굴된 적도 있다고 한다.
시저의 갈리아 원정기를 보면 유럽에 살던 사람들 중에서 켈트족과 달리 검은 머리에 체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켈트족 이전에 유럽에 거주하는 인종들은 그 이후의 켈트족과 혈통이 섞인 것으로 보이며 이는 영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 한다. 암튼 문자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먼 옛날의 이야기다.
2. 켈트 시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유럽 동쪽에서 살던 족속들이 분열되어 사방으로 퍼지게 되고 이 중 일부가 유럽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켈트족은 그 족속 중 하나로 할슈타인 문명을 건설하며 유럽 지방에서 자리를 잡는다. 이 때 대륙의 켈트족이 영국에도 유입되어 살게 되는데 켈트족도 단일족속은 아닌지라 여러 족속이 영국섬에서 뒤엉켜 살았던 모양이다.
켈트족들 중에서도 가장 처음에 영국에 들어온 족속은 고이델족이라 한다. 이들이 쓰는 언어의 후예가 아일랜드어와 웨일즈, 스코틀랜드 언어이며 아일랜드어는 게일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이델족에 이어 또다른 켈트족인 브리손족이 영국으로 이주해 오게 된다. 오늘날의 영국을 칭하는 브리튼이라는 말과 비슷한 이름의 족속들인데 이들은 고이델족과 같은 켈트족이지만 언어는 다른 갈래라고 한다. 언어학에서는 고이델족의 언어를 q 계열, 브리손족의 언어를 p 계열이라 칭한다.
책을 읽다보면 느끼는 것은, 지금은 그들을 모두 켈트족이라 싸잡아 부르기는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이런 의식이 없었던 듯 하다. 비록 언어상으로는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기는 하나 그들은 부족단위의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을 뿐 민족 단위의 개념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개념은 앵글로색슨이나 바이킹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같은 켈트 족끼리 잘 먹고 잘 살아 보자는 없었고 소규모 부족단위로 나뉘어 사소한 일에도 열심히 치고 박는 싸움이 그치지 않은 모양이였다. 고이델족과 브리손족 외에 영국으로 넘어온 켈트족은 벨기에에서 온 벨기온족 등 여러 부족이 있었고 소규모의 왕국이 난립해 있었다고 한다.
3. 브리튼 로만
브리튼 로만 시대는 로마가 영국을 점령한 시기를 일컽는데 시저 때에 영국 남부가 잠시 점령된 적은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영국이 로마 속주화 된 것은 4대 황제인 클라디우스 시절이였다. 그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의 국경선에 세워진 방벽이 영국에도 생겨났는데 지금의 스코틀랜드 지역은 로마에게 정복되지 않은 켈트족의 땅이였으며 그곳에 살던 이들은 픽트족으로 불린다.
유럽의 켈트인들은 로마제국에 동화되어 갔는데 이는 영국섬도 예외는 아니라서 브리튼 로만 시대에 영국의 켈트인들은 상당부분 로마화 되었고 로마제국의 내란으로 로마군이 물러간 이후에도 꽤 오랜 기간 로마 체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다 건너 게르만족이 영국으로 들어오면서 켈트인의 로마 속주화 된 영국은 붕괴한다.
이 기간에 로마 속주였던 지역에는 라틴어의 영향을 받아 언어가 변천되었다고 한다. 언어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켈트족은 타 지역과는 달리 로마제국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으로 구별되기에 이른다.
4. 앵글로색스
영국에서 로마군이 물러난 후 유틀랜드 반도에 살던 게르만족 일파인 쥬트족이 영국으로 건너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이 후 게르만족인 앵글족과 색슨족이 영국으로 건너와 세력을 구축한다. 이 시기에 영국으로 건너온 게르만족은 싸잡아 앵글로색슨족이라 하는데 이때에 이르러서야 잉글랜드라는 것의 정체성이 생겨난 것 아닌가 싶다. 잉글랜드라는 말부터가 앵글로색슨 냄새가 풀풀 나지 않는가.
아무튼 이들 역시 소규모 부족단위로 치고 받기는 이전 켈트족과 다를 것이 없었고 그러면서 군소 왕국을 흥하고 망하고를 반복하다가 7개의 왕국이 형성된다. 물론 영국섬에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는 뺀 나머지 지역에서의 7왕국이다. 이 왕국들은 통일되지 못한 채 시기별로 강성한 왕국이 다르게 나타난다.
초기에 가장 강력했던 왕국은 북쪽에 위치한 노섬브리아였고 그 다음에 패권을 차지한 왕국은 중부의 머시아였으며 최종적으로 패권을 차지한 왕국은 남서쪽의 웨섹스였다. 시기별로 전성기 국가가 달랐던 우리의 삼국시대와 느낌이 비슷한다.
하지만 우리의 삼국시대는 당나라와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긴 했으나 신라가 나머지 두나라를 흡수 병합하면서 통일을 이루게 되지만 영국은 나라끼리의 흡수 통합이란 통일이란 개념이 없었던 듯 하다. 왕국은 그대로 두고 왕만 바뀌는 경우가 있었고 그나마도 시간이 가면 다시 분할되어 갈라지는 경우가 태반이였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특정 시기에 패권을 차지한 강력한 국가가 넓은 영토를 가지고 대표성을 인정받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책을 보고 있으면 앵글로색슨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는 아마도 웨섹스가 전성기였던 알프레드 대왕 시절이 아닌가 싶다. 이 양반은 최대 업적은 영국의 통일과 바이킹을 물리친 것이지만 문학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서 각종 문화사업도 많이 벌였다고 한다. 앵글로색슨 연대기가 출판된 것도 이 시기이다.
이걸 보면 결국 기록하여 남기는 세력이 승리하는 것 같긴 하다. 알프레드 대왕이 문화사업을 벌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앵글로색슨이란 정체성이 성립할 수 있었을까? 이 후 앵글로색슨 왕조는 멸망하지만 그 정체성은 계속 살아 남아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지 않은가.
영국의 언어는 켈트어가 라틴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였으나 이 시기를 거치면서 게르만족의 언어가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탓일까? 지금도 BBC 방송을 들어보면 딱딱 끊어지는게 어찌 들으면 독일어 비슷하기도 하다.
5. 바이킹 시대
어차피 앵글로색슨족도 바다 건너서 온 게르만족 일파였듯이, 다른 게르만족이 영국을 침범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지역에서 살고 있던 게르만족, 흔히 바이킹 족이라 불리는 족속이 영국을 침범해 세력을 구축하는데 이를 바이킹 시대라 한다.
바이킹들이 런던지역을 침략하여 당시의 런던브릿지가 불에 타 무너지기도 했는데 이를 배경으로 한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이라는 동요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이 노래는 들어보면 다들 알만한 노래이다.
초창기에는 노르웨이 지역의 바이킹들이 아일랜드와 영국을 침범하였으나 나중에는 덴마크 지역의 바이킹들이 영국을 침범하게 된다. 덴마크 지역의 바이킹을 데인(Dane) 족이라 칭하는데 웨섹스의 알프래드 대왕이 이들의 침입을 격퇴시키기도 했으나 데인족들은 영국의 중부를 차지하고 살았고 웨섹스 왕국에서는 데인족들을 달래기 위한 명목으로 데인세라는 세금을 걷기에 이르렀다.
시간이 흘러 결국 웨섹스 왕국의 왕위는 바이킹에게 넘어가고 크누트가 영국 및 덴마트의 왕을 겸하게 되는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건설된다. 햄릿이 영국 문학 작품인데도 덴마크 왕자로 나오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어서인데 아무튼 이로서 앵글로색슨 왕조는 잠시 명맥이 끊어진다.
이 때 웨섹스 왕가의 후손이 에드워드는 노르망디로 피신하여 성장하게 되고 장성한 후 바이킹 왕조를 무너뜨리고 앵글로색슨의 왕조를 다시 일으키게 된다. 이 왕은 종교에 심취하여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짓기도 하고 흔히 참회왕 에드워드로 불린다. 에드워드는 어린 시절 노르망디에서 성장했던 관계로 노르망디 출신의 프랑스인들을 대거 기용하였으며 자신의 사촌인 노르망디 윌리엄공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다.
바이킹 세력으로부터 앵글로색슨을 지켜내는 일을 수행해 낸 에드워드였지만 내부 귀족들의 반란을 수습하지 못해 왕권은 약화되게 되었고 그의 사후 앵글로색슨 귀족인 헤롤드가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바이킹 왕조 시절 영국섬의 언어는 바이킹 언어의 영향을 받지만 그 영향이 그리 크다 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준으로 바이킹은 문화적으로 낙후 되었기에 기껏해야 지명등의 고유명사에나 그 영향이 남아 있다. 안데르손/요한손 등 바이킹족은 이름에 누구의 후손이란 의미에서 ~son을 붙였는데 맨유 감독인 Ferguson의 이름도 이런 영향을 받은 흔적으로 보인다.
6. 노르만 시대
강력한 귀족이였던 헤롤드는 에드워드 왕의 사후 왕위를 찬탈하였지만 왕 노릇하기가 그리 여의치는 않았다. 우선 이 당시에도 계속된 노르웨이 바이킹의 침략을 막아야 했다. 그리고 또한 노르망디에서 쳐들어온 윌리엄 공을 막아야 했다. 헤롤드는 전자의 노르웨이 침공은 막았으나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노르망디를 건너온 윌리엄에게 패배하여 왕위를 내 준다.
노르망디에서 건너온 윌리엄은 바이킹의 후예였으나 프랑스인이였고 당시 영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이질적인 지배자였다. 윌리엄은 기존 앵글로색슨의 귀족 계층을 용인하였으나 반란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정책을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질적인 지배자에 대해 앵글로색슨 귀족의 반란은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그 결과 앵글로색슨족은 귀족 계층에서 대거 탈락하여 피지배계층으로 내려 오고 잉글랜드의 귀족계층은 프랑스인들로 완전 대체되기에 이른다.
지배계층은 프랑스어, 피지배계층은 영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 체계가 유지되면서 기존의 영어는 프랑스어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되었고 지금 현재 영어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윌리엄 이후 영국왕은 프랑스왕의 신하가 되었으며 상당수의 영국왕이 영국 보다는 프랑스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러한 관계는 100년 전쟁 이후에야 청산되기에 이른다.
노르망 왕조는 멸망하였으나 이 후에도 영국의 귀족계층 및 왕조들은 프랑스인의 후예가 계속 차지하게 되었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상류 계층으로 인해 앵글로색슨의 언어는 큰 변화를 겪어 지금과 같은 영어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윌리엄이 영국정복에 실패하였다면 현재의 영어는 아마도 거의 독일어나 네덜란드어에 가까웠을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