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는 범우, 역자는 허창운
엄청나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엄청나게 재미없게 써 놓은 책
십 수 년전 동생이 사 놓고 처박아 둔 책을 강탈해서 읽어 봤다.
책이 나온 년도는 1990년. 거의 20년 전 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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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남자가 장가를 가기 위해 여자 집으로 찾아와 손님으로 머무르고...
그 집의 장남이 장가가게 만들어주는 댓가로 결혼을 약속 받게 된다.
어쩌고 저쩌고 해서 바보 같은 장남이 장가를 가게 되고...
그래서 합동 결혼식을 올리게 되면서 다 잘먹고 잘 살게 될 것 같은데...
차려준 밥상도 먹지 못하는 손위 처남을 위해...
매제가 손위 처남의 첫날밤을 위해 신부의 옷을 벗기고...
결정적인 순간 손위 처남과 바톤 터치.
그리고 몇 년간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살다가...
정말 간만에 만난 시누이와 올케가 기껏 한다는 것이 자존심 경쟁.
결국 열받은 시누이가 올케의 첫날밤 비밀을 폭로하면서...
사실 너는 내 서방님의 세컨드라는 시누이의 펀치에 올케는 떡실신.
이에 손위 처남을 비롯한 처가 식구들이 모두 공모하여...
온갖 거짓말과 음모 끝에 등 뒤에 창을 꽂아 매제를 죽인다.
이에 열받은 시누이는 다른 강력한 남자와 재혼하여...
결국 몇 년 뒤에 처가 식구들을 깡그리 다 죽여버리고...
이에 뜬금없이 열받은 제3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시누이의 목을 침.
이것으로 스토리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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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를 보면 막장 드라마라 해도 좋을 수준.
일리아드 오딧세이에 비견될만한 독일 서사시의 정수라는데...
글쎄다...스토리만 보자면 이건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 아닐런지.
서사시이기는 한데 서사시 같은 느낌이 안 받는다.
스토리 자체는 엄청 흥미진진할 내용인데...
정작 읽는 내내 별 재미를 못 느낀다.
유혈 낭자한 비극적인 내용이지만 읽는 내내 순정만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부의 주인공인 "지크프리트"라는 이름 자체가 어느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이름으로 느껴진다.
이 책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느끼한 로맨스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 개인적인 취향도 있을 것이고...
중세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 높지 않은 내 역량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아마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줄 한줄을 파면서 중세에 대한 공부를 하며 봐야 할 듯.
하지만 내가 지루함을 느낀 가장 큰 이유는...
포장이 많이 되어 가짜인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딘지 앞뒤의 많은 이야기들을 잘라 먹은 듯한 인상이 들고...
이 때문에 진짜배기들을 빼 먹은 듯한 느낌.
이 책에서 눈에 들어오는 내용은 딱 하나.
지크프리트는 그가 지크프리트이기에 행했던 일 때문에 하겐의 창에 찔려 죽고 만다.
영웅은 결국 영웅이 되어야 하는 이유나 영웅적인 행위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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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캐릭터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자면...
지크프리트 :
엄청난 능력을 가진 영웅으로 세상에 아무런 거칠 것이 없었던 사람.
그러나 그러한 영웅이기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운명.
하지만 생각보다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서 서운하다.
크림힐트 :
아름다운 공주로 나오지만 슬픔과 복수심에 사악한 왕비로 변신.
특히 니벨룽겐의 보물의 행방을 알아내고자 친오빠의 목을 베는 것에서 골룸이 연상된다.
지크프리트가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으나 역으로 그녀에 대한 그의 욕망이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것.
브룬힐트와의 자존심 싸움으로 지크프리트가 죽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도 그녀였고...
하겐에게 지크프리트를 죽일 수 있는 약점을 고한 것도 크림힐트 바로 그녀였다.
군터 :
책에서는 숭고한 왕이네 영웅이네 하며 떠들어 대지만...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아 남의 능력으로 거짓을 취한 심약한 사내.
오죽하면 첫날밤마저도 지크프리트가 나서야 치를 수 있었을까나.
거짓을 취한 그의 운명이 비극으로 끝날 것은 안봐도 디뷔디.
브룬힐트 :
내숭녀 크림힐트와는 반대 성격의 여성
그녀는 지크프리트에게 정복당했고 그에게 사랑을 바쳐야 했으나...
거짓된 가짜인 군터를 낭군으로 삼아야 했던 불행한 여인.
지크프리트, 크림힐트, 브룬힐트는 애증의 3각 관계.
하겐 :
지크프리트를 창으로 찔러 죽인 장본인이며 크림힐트의 철천지 원수.
세상에 벌어질 일을 모두 다 알고 있었던 정보통이면서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
지크프리트의 영웅적인 업적을 말하는 유일한 이가 하겐.
그리고 또한 지크프리트를 직접적으로 죽인 이 역시 하겐.
이 대목은 지크프리트와 하겐은 사실 동일한 존재라는 암시로 읽혀진다.
읽는 내내 하겐은 북유럽 신화의 로키 같은 존재라는 인상을 받았다.
에첼 :
전설적인 훈족의 왕인 아틸라가 에첼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존재감이 없다.
마치 백설공주의 아버지 같이 사악한 왕비에게 완전히 장악 당함
폴커 :
바이올린 비슷한 제금을 연주하는 음유시인이라는데 그 제금으로 사람 여럿 죽였다.
사람 쳐 죽이는 음유시인이라...좀 이상하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느낌 없음
뤼디거 :
2부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튀어 나오는데...
앞 뒤 전후 사정도 없이 그냥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완벽한 영웅.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 결국 죽음으로 이를 끝맺는다.
뭔가 중세기사의 완벽한 모델로 제시하려는 느낌인데 내 동감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디트리히 / 힐데브란트 :
역시 2부에서 뜬금없이 튀어 나온다.
이건 뭐 앞뒤 설명도 없이 그냥 막강한 왕이고 막강한 노장이라는데...
알고보니 힐데브란트 서사시가 따로 있다는구만.
기젤헤어니 딩크바르트니 하는 사람들은 그저 듣보잡으로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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