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Hunters Herders Hamburgers

저자는 리처드 W 블리엣, 역자는 임옥희, 출판사는 알마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꽤 흥미로운 시각을 담고 있는 책.

초반부, 유혈낭자한 호러물과 적나라한 포르노의 범람이 실제 가축을 실생활에서 거의 접하지 않은 세대의 출현과 연관이 있다는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저자의 의견제시는 무척 흥미로웠다. 가축의 도축장면이나 짝짓기를 어릴 때부터 목격하며 자라온 세대에게 유혈과 섹스에 대한 환상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세대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상상력이 더욱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긴 공개적으로 참수형을 행하는 사회에서 피바다를 이루는 호러물을 굳이 돈 내고 찾아 봐야 할 이유는 없을 듯 하다. 섹스에 대한 언급으로 책에서 인용했던 러시아 시골 젊은이들이 수간보다 자위를 더 죄악시 한다는 조사는 내 입장에서 다소 의심스럽지만 동네 개들이 붙어 다니거나 소 같은 대형 동물의 교접을 어릴 때부터 보아온 사람과 도시에서 섹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차단 당한채 빨간 책이나 포르노를 통한 성적 상상을 접하며 자라온 사람과의 섹스에 대한 인식차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흥미로운 초반부를 지나 사육동물의 기원에 관한 저자의 장황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육동물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가지 정황과 가능성을 언급하며 저자가 생각했던 사고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는 내용인데 수만가지 가정이 가능한 대상에 대해 저자가 어떤 가능성을 찾아가는 내용은 대개 지루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인간이 인위적인 목표를 위해 특정한 종을 의도적으로 길들이기를 했다고 볼 수는 없으며 야생에서 사육동물로 변화하는 과정은 각 종마다 각각 다를 것이라 한다. 사육 동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그 동물이 사육화 된 이후에 발견되는 것으로 알지도 못하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수십 세대 동안 특정 야생 동물을 사육 동물로 길들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이득이 없더라도 굳이 동물을 가두어 놓고 키워 사육동물이 출현하게 된 이유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정서적인 측면, 즉 종교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제시한다. 신화를 보면 특정 동물이 신으로 숭배되는 경우는 많다. 신의 현신으로 또는 신의 메신저로서 동물을 대하는 경우가 많았고 신과 인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당장 우리의 단군 신화를 봐도 우리는 곰이 인간으로 화한 웅녀의 후손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 신격적인 지위를 가지는 동물을 제물로 바쳐 신의 힘을 취하고자 했던 사례는 프레이져의 황금가지를 보면 무수히 많다. 신성한 위치를 점했던 동물들이 본격적인 사육시대가 도래하며 농사나 기타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쓰이거나 식량 및 유제품을 제공하는 용도로 활용되면서 과거의 권위를 잃고 이미지가 변형되는 예로 저자는 당나귀를 들고 있다.

당나귀는 이집트 신화에서 악신 세트의 상징으로 대단히 신성시 되던 동물이라고 한다. 성서에도 고귀한 예언자는 당나귀를 타고 등장하며 당나귀는 인간과 신 사이의 연락을 중계하던 메신져로서 취급받았다고 한다. 삼손이 괜히 말이나 소가 아닌 당나귀 턱뼈들 들고 1000명을 죽인 것이 아니였다.

흔히 섹스 심벌이라면 말을 들지만 당나귀 역시 이런 이미지를 가진 동물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 이집트에서 당나귀는 세트신의 상징으로 강력함을 상징했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당나귀는 엄청난 성기를 보유한 섹스심벌로 격하되고 시대가 진행되면서 당나귀는 멍청함의 상징이 되고 만다. 당나귀의 커다란 귀는 당나귀의 거대한 페니스를 상징하는 것으로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는데 오늘날 서구식 생일파티에서 쓰이는 우스꽝스러운 삼각뿔 모양의 모자는 당나귀의 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영어의 'ass hole'이 왜 욕이 되는지, 그 욕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이제야 알 듯 하다.

사육이 산업화 되면서 가축들은 사람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되기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마트에 손질된 고기덩어리의 상품형태로만 가축을 대하기에 이른다. 실제 가축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서 가축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된다.

이솝우화나 기타 민담에 나오는 동물들은 의인화 되어 있지만 어느 선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월트디즈니의 미키마우스는 외관만 쥐의 모습을 한 사람이다. 옷도 입고 집도 있고 연애도 하며 직장도 다닌다. 가축을 실제로 접하지 못하는 세대가 등장하면서 나타난 사회적 현상이다. 지금 현실세계에서 일부 동물은 반려동물이란 이름으로 거의 인격적인 대접을 받고 있으며 종종 애완동물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사육동물이 인간의 실생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이전과 달리 현재를 후기 사육시대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인간과 동물간의 새로운 관계가 등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한가지 가능성으로 일본의 에니메이션 원령공주를 언급하고 있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앞으로 인간과 동물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그저 진정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로 책을 끝맺는다.

저자가 가축에 관련한 역사학자니 이런 책을 쓸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자는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책을 번역할 마음을 먹었을까 싶다. 전반적인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지 않다면 번역하기에 상당한 애를 먹었을만한 내용들이다. 흥미있는 논점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혼란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읽어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책의 맨 뒤 광고 멘트 비슷한 글이 꽤 공감가기에 인용해 본다.

"동물에 관한 윤리적인 태도와 접근이 보여주는 혼란스러운 기원을 이해하려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책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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