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돈

2010. 6. 9. 09:06

저자는 나선/이명로, 출판사는 한빛비즈

아고라 경제토론방에서 고수라 불리는 2명이 쓴 책. 아고라에서 일반대중을 눈높이로 해 왔던 탓인지 전체적으로 읽기 편안하며 친절하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녹록치 않은 책. 제도권에서는 결코 들어 보지 못했던 내용들이기 때문이리라.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은 이 세상의 모든 돈이 빚이라는 견해이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은 누군가 1원을 벌었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1원만큼 빚을 지게 되는 제로섬 구조라는 것이다. 여러분 앞에 100만원이 있다면 어느 누군가는 분명히 100만원에 대한 부채를 지고 있다는 것. 이런 제로섬 구조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은 개인들의 돈을 소리 없이 갈취하고 있으며 이런 현실에서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차트의 기술적 분석 방법과 금리 스프레드, ,발틱운임지수, 아파트 거래량 등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는 각종 지표의 의미와 해석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고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기사는 그 행간을 파악할 능력이 되지 않으면 무시할 것을 권하고 있다. 외환이나 금은 헷지 투자 이상의 의미는 두지 말라고 한다.

책 후반부에 저자는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가지는 본질적인 결함으로 신용대출과 지급준비금제도를 지적하면서 은행은 금본위제로 돌아가야 하고 예금은 보관/투자 성격으로 나눠 원천적으로 지금분비금제도가 필요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관 성격의 예금은 은행이 절대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되 은행은 보관료를 받아 운영하고 투자 성격의 예금은 은행이 이를 대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되 이에 대한 손실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급 준비금 제도가 필요한 상황을 원천적으로 없애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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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평이한 문체로 써 있기는 하지만 세상의 모든 돈이 부채 측면에서 볼 때 제로섬이라는 주장에 동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한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내가 부자가 된만큼 누구가는 그만큼 가난뱅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난뱅이가 된다면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내가 부를 거머 쥔다면 거머 쥔 부의 크기에 비례하여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가?

한빛비즈가 평소 경제 실용서를 발행해 왔고 이 책 역시 경제실용서인지라 이런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는 않는다. 암튼 현실은 이렇고 이런 현실에서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몇 가지를 이야기 한다. 이 부분이 실제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이겠지만 저자가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악세서리 정도로 파악하는 것이 받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할 듯 하다.

책의 후반부,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저자의 대안 제시는 다소 과격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시장에서 추세는 그렇게 형성되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주장한다.

원래 예금은 보관 개념이였다. 현대 은행의 시조격인 암스테르담 은행도 처음에는 예금을 보관 개념으로 운영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암스테르담 은행은 애초 보관 개념의 예금을 투자로 전용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누리다가 동인도 회사의 몰락으로 같이 망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의 은행이 이를 반면교사로 삼기는 커녕 오히려 그 방식을 채택했다. 예금자와 금융권의 이해 관계가 그쪽이 더 성립하기 쉽기 때문이고 이는 저자가 그렇게 신봉하는 시장이 걸어온  결과다.

금본위제 역시 안 해 본 것이 아니였다. 금본위제 시절에 전성기를 누렸던 영국이 전쟁 중 중단 되었던 금본위제를 되살렸다가 엄청난 궁지에 몰린 적이 있다. 금본위제는 그 자체가 이유라기 보다 결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금본위제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저자의 기본적인 태도는 시장만능주의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개인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해 시장을 왜곡하고 있지만 결코 시장을 당해 낼 수 없다는 것. 친기업, 친시장을 외쳐온 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아고라의 분위기가 반기업, 반시장일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 오해다. 그 곳은 오히려 가장 친시장적이고 시장만능주의에 가득 찬 곳이다. 어쩌면 오로지 현 정부를 까기 위해 현 정부보다 더 독한 포지션을 점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볼만한 책이기는 하나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많은데 잘못 받아 들이면 오해가 생길만한 구석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평이하고 쉬운 문체에 현혹되어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말 것. 특히 수치나 그래프를 인용하는 것은 그저 참고사항으로만 생각할 것. 수치나 그래프에 대한 해석을 내 자신의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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