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
저자는 제레미 다이아몬드, 역자는 김진준, 출판사는 문학 사상사
1판 1쇄가 나온지(1998년) 18년이 되다 보니 다른 경로를 통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내용들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책도 두꺼워서 (약 700페이지) 읽다 보니 다소 지루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읽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고 재미있기까지 한 책이다.
뉴기니 원주민 출신의 얄리가 저자에게 던진 "왜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라는 다소 어이 없고 생뚱 맞은 질문에 대해 저자가 찾은 답이 책의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고 답은 "환경 차이"이다. 유럽인들이 근대에 전 세계를 식민지화 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은 강력한 무력(총)과 질병에 대한 강인함(균), 그리고 우수한 기술(쇠) 이었지만 그런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자연적인 환경 차이" 때문이란 것이다.
(2차 세계 당시, 남태평양에서 미군이 항공기로 보급품을 낙하시켰는데 그 중 일부를 원주민들이 획득하였음. 원주민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화물'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전쟁의 양상이 바뀌어 보급품이 그 지역에 떨어지지 않자 '화물'을 내려 달라고 제사까지 지냈다고 함. 영화 부시맨이 아프리카 원주민이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주웠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실제로 있었던 셈)
그는 현생 인류가 모든 지구의 각 대륙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B.C 11000년을 기점으로 하는 매우 거시적인 관점에서 얄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이렇게 긴 호흡을 봤을 때 누구는 열등해서 아직도 수렵채집 사회에서 살고, 누구는 우수해서 대제국을 이루거나 산업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각 대륙의 자연적인 환경 (지리, 기후, 식생 등) 차이 때문에 역사적인 불평등이 벌어졌으면 미래에도 그러한 요인은 여전히 작용할 것이란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제시한 내용들이 앞으로도 나에게는 많은 화두를 던져 줄 것 같다.
-----------------------------------------------------------------------------------------------------------
수렵채집 사회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식량 생산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 사회는 모두가 평등한 이상적인 사회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강력한 정치 조직이나 군대 또는 기술 발달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식량 생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이들이다. 제임스 와트가 수렵 채집 사회에 살았다면 결코 증기기관을 발명하지 못했을 것이고 칭기스칸도 거대한 제국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사회가 수렵 채집에 머물러 있었다면 유럽인들이 잉카 제국을 멸망시킬 수는 없었다.
관료/군인/상인/기술자/예술가/교육자 등은 식량 생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전문가 그룹들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 중 대다수는 직접 식량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식량 생산에 참여하지 않지만 다들 먹고는 살아야 하니 누군가는 여러분들이 일용할 양식들을 생산해야 한다. 잉여물을 산출할 수 있는 식량 생산 방식의 확보 없이는 "총/균/쇠"의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식량 생산 방식이다.
그런한 식량 생산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농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니 농업의 등장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였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보리와 밀의 원산지였기에 문명이 발생할 수 있었다. 중국 문명은 쌀이 있기에 가능했고 아즈텍 문명은 옥수수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농업의 시작에는 인간의 수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지만 애초에 자연 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였고 평소 식물과 농업에 무지했던 나에게는 그 부분이 신선하게 읽혔다.
종종 길가에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 풀을 보면서 "벼랑 비슷하게 생긴 저걸 먹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천으로 널렸으니 구하기도 쉽고 논에 물을 대지도 않아도 쉽게 기를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틀림없이 누군가는 강아지풀을 먹어보려고 시도해 봤을 것이다. 산에 나는 이름 모를 온갖 나물들을 식용으로 삼는터에 지천으로 널린 강아지풀에 대해 식용 시도를 안해 봤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
강아지풀이 식용 가능하고 재배 가능했다면 분명 우리의 논밭은 강아지풀로 덮여 있었을 것이고 주요 먹방에는 강아지풀 요리가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건 불가능하니까. 그런 일이 가능한 지역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몇 군데 되지 않는데 그 중의 한 곳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 보리와 밀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강아지풀처럼 지천으로 널렸으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식용 가능한 식물이다.
하지만 이것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한다. 강아지풀을 보면 낟알이 초록색을 띄고 있다가 점차 누렇게 변한 후 땅바닥에 떨어져 다음 해에 다시 강아지풀로 자라난다. 그런데 한꺼번에 누렇게 되지 않고 찔끔 찔끔 일부가 누렇게 변하여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발아하는 시점도 제각각이다. 야생에서는 이런 속성이 종의 번식에 유리하다. 발아가 가능해진 종자는 빨리 모체에서 떨어져 나가야 하며 발아 시점이 다양할 수록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성질이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속 터지는 일인거다.
낟알이 먹을만해지면 바로 낟알들이 땅에 다 떨어져 버리면 추수를 할 수가 없다. 현대의 주요 곡물들은 이러한 이유로 인위적인 선택을 통해 원래의 성질을 변경시킨 종들이다. 발아가 가능한 낟알임에도 계속 모체에 매달려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낟알이 주렁 주렁 달린 작물을 발견하여 그 낟알만을 골라 심었다고 해도 다음 해에 다른 개체와 유전자를 교환하면 그 특성을 잃고 낟알이 떨어져 버린다. 그래서 자화수분, 즉 다른 개체와의 유전자 교환 없이 자체적으로 열매를 맺어 특성을 그대로 유지 할 수 있는 종자라야 인위적인 선택이 가능하며 농업에 적합한 작물로 개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낟알이 오랫동안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발아 시점과 생장 속도가 개체마다 제각각이라면 같은 시기에 파종을 했더라도 추수 시기를 정할 수가 없다. 메소포타미아의 기후는 온난다습한 짧은 겨울과 덥고 건조한 긴 여름으로 구성된다.그런 환경에서 곡물이 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긴 건기동안 버티고 있다가 비가 오는 짧은 겨울에 일제히 발아하여 그 다음 건조한 여름이 오기전까지 건강한 낟알을 만들어 내야 한다. 즉 메소포타미아 자연 환경에 적응한 밀과 보리는 발아 시기와 생장 속도가 개체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강아지풀은 이런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므로 설령 식용 가능하다고 해도 농업 생산이 가능한 작물화가 용이하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작물화에 적합한 곡물 종자가 자생할 수 있는 자연 환경을 갖춘 지역은 많지 않다. 옥수수의 야생종은 1~2cm에 불과하며 멕시코 인디언들은 이를 개량하여 15cm로 키워 놓는데에는 수천년이 걸렸다고 한다. 만약 그들에게 밀보다 작물화가 용이한 자원과 자연 환경이 있었다면 그들은 좀 더 빨리 제국을 건설했을 것이고 어쩌면 스페인보다 앞서서 대서양을 건너가 유럽을 침탈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먹고사니즘의 방식에는 농업도 있지만 목축도 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유라시아 대륙이 다른 대륙과 비해 유리했다.
대부분의 동물(심지나 사자나 호랑이이 마저도) 은 길들일 수 있다. 하지만 길들일 수 있다고 가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뮤직 비디오에 종종 등장하는 치타는 야생의 것을 사로 잡아 길들인 것이다. 하지만 치타 암수가 교미를 하기 위해서는 시속 100km 이상을 서로 뛰어 다녀야 하니 우리에 가두어 번식을 시킬 수가 없으며 이에 치타를 가축화 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식량 생산에 공헌할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생장 속도가 빠른 대형 포유류가 가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생장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가축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곰은 생장 속도가 빠르고 고기도 많이 얻을 수 있지만 누가 불곰을 옆에 두고 키울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아이누족은 곰을 키워서 식용으로 삼긴 하지만 번식이 가능한 성체가 되기 전에 얼른 잡아 먹기에 가축화를 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가축화가 될 수 있었던 동물 종 자체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러한 자원들이 신대륙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인간을 접했던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대형 포유류들은 인간을 두려워했고 이에 수렵 채집 시절 동안 인간에게 멸종 당하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 남은 대형 포유류 중 일부는 가축이 될 수 있었지만 신대륙의 대형 포유류들은 현생 인류가 진출하면서 싸그리 멸종의 길을 걸었고 (그게 인간의 소행인지는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나중에는 가축화 할만한 종이 아예 남아나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가축화는 식량 생산에 공헌을 했지만 그 외에 다른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대형 포유류는 농업 생산성을 대폭 확장 시켰고 바퀴의 발명과 결합하여 인간의 이동 능력을 크게 진보 시켰다. 게다가 말은 군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강점을 제공해 주기까지 했다. 남미에서는 리마가 가축화 되기는 했으나 안데스 산맥에 가로막혀 아즈텍이나 잉카 지역으로 전파되지 않았고 아즈텍에서는 바퀴가 발명되었으나 이를 결합할 가축을 구하지 못하고 장난감으로 머물렀다.
이런 긍정적인 이득 외에도 가축은 부정적인 이득(?)을 가져다 주었으니 그것을 바로 질병이였다.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나 낙타로부터 전염되는 중동발 메르스로 난리를 치른 경험을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다른 동물로부터 전파되는 새로운 병원균은 끊임 없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에이즈도 원숭이에게서 온 것이고 에볼라도 박쥐로부터 온 것이다. 역사가 오래된 가축들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였다. 가장 친근한 가축 중 하나인 "소"에게서 전파된 전염병만 해도 홍역/결핵/천연두 같은 살인적인 것들이였다.
이 중에서는 천연두와 홍역은 유럽이 아메리카를 장악하는데 꽤 많은 몫을 차지했다. 당시 원주민 인구의 95%가 유럽인들이 전한 이 질병 때문에 몰살을 당했다. 구체적인 관찰을 통한 기록이 없지만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였을 것이다. 미시시피강 유역의 인디언들도 천연두에 인구의 대부분이 몰살 당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이렇다 할 대형 가축이 없었기에 유럽인에게 위협적인 병원균이 없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유럽인들이 가져온 질병들은 치명적이였다. 이는 현생 인류가 진출한 신대륙(아메리카, 오세아니아)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진 상황이였다.
결과적으로 "균"은 유라시아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얻어진 것이였다. 다른 대륙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 환경적인 여건이 아예 주어지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의 토착 동물을 새롭게 가축화 한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 새로운 대형 포유류를 가축화 한 사례는 전무하다. 가축화가 가능한 자연 환경의 여부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결정해 주고 있었다.
-----------------------------------------------------------------------------------------------------------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밀의 작물화와 소의 가축화가 진행되었다. 말의 가축화는 러시아 남부에서 일어났다. 철기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에서 시작되었고 화약은 중국에서 발명 되었다. 그런데 밀로 만든 빵을 주식으로 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강철 갑옷으로 무장한 기병과 소총을 앞세워 남미를 침략했고 천연두가 원주민들을 몰살시켰다. 스페인의 총/균/쇠 중에서 스페인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없었다. 모두 외부에서 전해진 것들이였다. 스페인이 외부와 고립되어 있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여전히 수렵 채집민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위도를 따라 문명이 서쪽으로 이동한 것에 대해 꽤 깊은 통찰을 논하고 있다. 자연 환경 차이만이 유일한 요인이였다면 문명이 먼저 시작된 지역이 계속 우위를 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문명이 있었던 이라크는 미국에게 침공을 받을 정도로 고대의 영화로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문명은 같은 위도를 따라 서쪽으로 계속 자리를 옮겨 왔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그 자리를 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태평양을 건너가는 서진을 계속 진행 중이다.
먹고사니즘의 동작에는 위도, 즉 기후가 많은 영향을 끼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작물화 된 밀은 비슷한 위도인 이탈리아에서도 경작이 가능하지만 비슷한 경도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가축의 전파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유라시아의 가축은 북아프리카에는 전해졌으나 적도를 넘어서 남쪽으로는 더 이상 전해지지 않았다. 경도가 다르면 기후 조건이 판이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의 가축은 적도 지역에 서식하는 체체파리가 옮기는 트리파노소마성 질병에 취약했다.
하지만 일단 전해지기만 하면 사람들은 이를 잘 활용하였다. 서부영화에서 보듯이 북미의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다니는 기마전사이지만 그들이 말을 갖게 된 것은 겨우 17세기 말엽이였다. 태즈메니아 원주민들은 개를 본적도 없었지만 개를 처음 본 후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대량으로 개를 번식시켜 사냥에 이용했다. 한반도는 벼농사가 가능하긴 하지만 기후 및 지형이 벼농사에 적합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로부터 재배 가능한 벼가 전해지자 삼국 시대 이전부터 관개 농업을 시작했고 경작 가능한 땅이란 땅은 모두 개간하여 벼농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즉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건 그것이 전해 질 수 있다면 먼저 시작한 비교 우위는 긴 호흡으로 봤을 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길게 뻗은 대륙이다. 즉 위도가 동일한 지역이 길게 늘어섰고 이에 먹고사니즘 방식에 대한 전파가 용이했다. 반면 아프리키와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형상을 하고 있어 전파가 되기 어렵다. 아즈텍의 옥수수 재배가 미시시피 유역의 인디언 사회에 전파된 기간은 메소포타미아의 밀 재배가 유럽으로 전파된 기간보다는 훨씬 길었다고 한다. 문명은 위도를 따라 움직이고 동서로 긴 유라시아 대륙이 그런 면에서 다른 대륙보다 유리했다.
출발이 빨랐더라도 다른 지역이 이를 받아들여 따라오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지리적인 이점은 의미를 잃게 된다. 게다가 농업과 목축이라는 식량 생산 방식은 생태학적인 자살을 수반한다. 오늘날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불모지이지만 원래 그 일대는 숲으로 덮인 비옥한 삼림지대였다. 그곳의 숲은 농업을 위해 개간되거나 건축용 목재를 구하기 위해 벌채되면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강우량이 적어서 일단 파괴된 삼림은 회복되지 않았고 가축들이 방목되면서 토양침식이 진행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문명은 새로운 자원이 얻을 수 있는 서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 문명이 머물렀던 곳은 결국 황폐화 되어 힘을 잃었고 이에 다시 서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현재의 서유럽은 과거 메소포타미아나 지중해 동부 지역보다 강우량이 많아 식물이 더 빨리 재생할 수 있다. 로마의 갈리아 원정 당시 서유럽은 울창한 삼림에 둘러 싸여 있어 평야에서 회전을 장기로 하는 로마군에게는 지리적인 여건이 불리했으며 끝내 라인강 건너의 삼림 지역은 로마에 복속되지 않았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문명의 유지를 위해서는 더 많은 자연이 요구된다. 흔히들 유럽의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하지만 그 시절 유럽은 숲의 개간을 통해 농업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늘려가면서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중세 말엽에 시작된 기후 변화와 자원의 소진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해졌고 마녀사냥과 같은 이들이 벌어지게 된다. 그들이 서쪽에서 신대륙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과거 문명지와 비슷한 쇠락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
문명을 이룰 수 있게 해준 식량 생산 방식은 인구를 늘리고 이에 따라 더 큰 자원을 요구하게 할 수 밖에 없어 결국은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다. 오늘날 환경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맥락이 일치한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일어난 문명이 왜 동쪽으로는 진행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중국의 문명은 왜 메소포타미아 문명처럼 이동하지 않고 중국 안에서 머물렀을까? 지금 한반도에 사는 나에게는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저자는 이에 대해 생각할꺼리를 던져 주고 있다.
저자는 중국이 메소포타미아 보다 더 광활하고 생산성이 높은 땅을 차지하고 있어 10000년 동안 농업을 계속하고 있어도 여전히 생산성 높은 집약 농업을 유지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문명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계속 얻을 수가 있어 몰락하지 않고 이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문명은 전 세계의 기술을 계속 선도해 나갔고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기 몇 십년 전 명나라의 정화는 그보다 비교도 안되는 대규모의 선단을 이끌고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저자는 그럼에도 중국이 결국 서양 외세에 추월당한 이유로 중국의 정치적인 통일을 꼽고 있다. 환관 정화의 원정이 당시 유럽보다 훨씬 앞서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환관과 반대파 사이의 권력 투쟁에서 환관파가 패배하자 명나라는 정화가 주도했던 선단 파견을 모두 중지시켰고 조선소마저 해체하여 해양 항해를 아예 금지시켜 버렸다. 통일된 중국에서는 한번 결정된 사항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시 배를 만들려해도 조선소가 없고 조선소를 만들려 해도 이를 만들 기술조차 싸그리 없어진 상황이였다.
유럽은 만성적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중국은 만성적으로 통일되어 있었기에 콜롬버스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나 명화는 잡은 기회마저도 놓쳐 버리고 만다. 콜럼버스는 원래 이탈리아 사람이였지만 프랑스 왕의 신하가 되었다가 포루투갈 왕의 신하로 변신을 한다. 그는 포루투갈 왕에게 탐험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고 이후 여러 왕들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간신히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을 설득하여 허락을 받아 낸 것이다. 유럽이 통일되었다면 콜럼버스는 이런 기회를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고 명화의 대항해는 콜럼버스와는 다른 운명을 맞이했다.
저자는 중국이 정치적 기술적 우위를 서구에 빼앗긴 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러한 중국의 만성적 통일과 서구의 만성적 분열은 이해하여야 하며 그런 경향이 벌어진 이유를 지리적 여건에서 찾고 있다. 유럽의 지도의 해안선을 보면 들쭉 날쭉 튀어 나온 큰 반도들이 많고 각 반도별로 독립적인 언어와 민족 정부가 유지되고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 이베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반면 중국의 해안선은 그보다 훨씬 완만하고 지리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지형은 한반도 뿐임을 말하고 있다.
중국의 통일성은 기술 확산의 이점으로도 작용하지만 도리어 불이익을 낳을 수도 있다고 한다. 저자가 지적한 이런 사항은 중국 역사에서 종종 나타나는 일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시작으로 최근 홍위병에 의한 문화 대혁명까지 중국은 정치적으로 통일된 상태에서 과거의 것들을 싸그리 엎어 버리는 일을 반복해 왔다. 유교의 발상지이지만 정작 중국에는 유교에 대한 것들이 남아 있지 않아 한국에 남아 있는 유교를 역으로 들여와야 하는 판이 되기도 한다.
반면 유럽은 지리적 조건상 기술과 아이디어의 전파가 활발할 수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여러 중심지가 경쟁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퇴행하지 않고 여러 기술적인 혁신을 이루어내며 결국 중국을 따라 잡았음을 말하고 있다. 결과론적 이야기에 가깝게 들리긴 하지만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
저자는 꽤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그의 어머니는 교사 겸 언어학자이고 아버지는 유전학 분야를 전공한 의사다. 그는 대학 4학년때까지 의학을 전공하였지만 일곱 살때부터 열광적인 조류 관찰자였던 탓에 전공을 생태학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언어학에도 관심이 많아 생리학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언어학자가 될 뻔도 했다고 한다.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진화 생물학자로서 조류진화론을 연구하기 위한 현장 탐사의 일환으로 그는 33년 동안 세계의 오지를 돌아다니며 원시 인간 사회를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학문적 배경이 있었기에, 그는 얄리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필요한 여러 학문들 (유전학, 분자생물학, 생태지리학, 행동생태학, 유행병학, 언어학, 고고학, 역사학)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었고 여러 조력자들에게 조언을 받아가며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각 학문들의 성과들을 통합하는 능력을 강조하는 요즘의 추세에 딱 들어맞는 일종의 모범답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학자답게 이 책의 말미에는 자신의 방법론이 객관론을 확보한 과학적인 방식이며 지나간 과거가 아닌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유용하게 보탬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소위 "과학적인 방법론"에 그 자체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을법도 있겠다 싶다. 이 책의 부록에는 자신이 책을 발간한 이후 이 책에 영감을 받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서신을 주고 받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가 언급한 서신의 주제들이 참으로 생각도 못한 내용들이어서 참신하다.
가령 "인간 집단은 단일한 단체로 조직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여러 단체로 분열되어야 하는가?", "보호주의적 관세 장벽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자유 경쟁에 사업을 노출 시켜야 하는가", "사업체 입장에서 생산/창조/혁신을 통해 부를 극대화 하는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등의 경영학이나 경제학적인 주제들이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책에서 언급한 방법론과 내용들이 현재 당면한 문제의 해결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과학임을 저자는 자랑한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지리적인 환경 차이는 이제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도 한다. 하지만 새롭게 보이는 규칙들도 기존 규칙의 변형에 불과함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1947년 미국에서 발명된 트렌지스터가 지구 반대쪽의 일본 전자 산업을 촉발 시켰지만 미국에 더 가까이 자리한 파라과이나 멕시코에는 트랜지스터가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지 못한 예를 들며, 오늘날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나라들도 따지고 보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식량 생산을 바탕으로 한 중심지에 편입된 지역이거나 아니면 그 같은 중심지로부터 이주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임을 역설하고 있다.
즉, B.C 11000년 역사의 결과가 여전히 지금 상태에서도 유효하며 가장 먼저 식량 생산을 독자적으로 일으킨 두 중심지 (메소포타미아,중국)가 여전히 현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저자의 견해를 접하면서 참으로 돌고 돌아 결국은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를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시적으로 보면 현재 지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한 서구문명과 황허에서 시작한 중국 문명이 힘 겨루기를 하는 상황임을 다시 상기 시키기 때문이다.
-----------------------------------------------------------------------------------------------------------
이 책을 읽고 내 나름대로의 다른 언어로 재구성을 해 보면 다음과 같다.
결국은 상호 작용이다. 너와 나를 가르고 상호간 주고 받는 것을 해야 한다. 인류와 자연을 가르고 자연이라는 거대한 상대에 대해 인간이 상호 작용을 한 결과가 결국은 문명이다. 지역마다 사람이 다르고 자연이 다른데, 고리타분한 인종주의는 사람에 주목하여 했지만 이 책은 자연을 주목한다. 사람은 어차피 거기에서 거기며 별 다르지 않은데 각 지역별 자연 환경의 차이는 존재하니 바로 그 차이점 때문에 상호 작용의 차이가 발생하고 그 결과가 정치적/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상호 작용의 양이 많아야 한다. 사시사철 덥거나 사시사철 추운 날씨에 대해 인간이 상호 작용을 해야 할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변하지 않는 상대에 대해서 주고 받는 것은 없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변함 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돌덩어리에게 상호 작용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절간의 부처님 상이 자신에게 절 올리는 신자들과 상호 작용을 할 수 있었으면 진즉 다들 성불 했을 것이다. 상호 작용의 양이 많으려면 상호 작용을 주고 받을 상대를 잘 골라야 한다.
변덕이 많은 자연 조건이 상호 작용을 늘리는데에는 유리하다. 사시사철이 존재하는 온대지방에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황허 문명이 존재한 것은우연이 아니다. 중국문명도 사실은 단일한 문명이라 할 수 없다. 그 문명은 황하의 북방 문명과 장강의 남방 문명간 상호 작용의 결과이며 더 나아가 외부 유목 문명과의 상호 작용이 더해진 결과이다. 이제 중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서진한 미국과 직접 맞닿뜨리면서 상호 작용을 늘려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자기 파괴적이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결국 시간은 중국의 편에 있지 않을까?
상호 작용의 동의어는 스트레스다. 모두들 스트레스를 회피하고 싶어한다. 나는 한국의 지독히 더운 여름과 지독히 추운 겨울에 질려서 나이 먹으면 따듯한 남쪽 나라에서 살기는 원한다. 노년에도 그렇게 스트레스 받아가며 살고 싶지가 않다.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원시 채집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여기는 마음에는 스트레스를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문명이 퇴행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중국 문명이 퇴행을 한 것은 통일된 상태에서 이뤄진 정치적인 의사결정 때문이였다. 그리고 그러한 의사결정의 근본적인 이유는 스트레스에 대한 회피 심리 탓이다. 보수 세력은 에너지를 줄여 상호 작용은 축소함으로서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하고 진보 세력은 에너지를 늘여 상호 작용을 확대함으로서 스트레스를 늘리려 한다. 인간은 언제나 같은 값이라면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하기에 보수세력은 반드시 집권하게 되고 보수 세력의 뻘짓으로 엉망이 되면 진보 세력이 집권하여 스트레스를 늘려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런데 중국은 한번 보수 세력이 안정적으로 집권하면 외부 세력으로 망할 때까지 그 짓을 계속해 왔던 거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얻는 효율성을 명분으로 삼는 이들을 보면 종종 참 얄밉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스트레스 10을 들여서 순이익 100원을 버는 것과 스트레스 50을 들여서 순이익 200원 버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을까? 나름 합리적인 계산을 하면 전자는 10배의 수익을 안겨주고 후자는 4배의 수익을 내어주니 숫자만 보면 전자가 낫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자를 선택한 이가 후자를 선택한 이에게 털릴 수 밖에 없다. 후자는 결국 전자보다 자본을 2배로 쌓을 수 있으니까. 이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스트레스가 5배 증가하는 것이 더 싫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상대가 없다면 거의 100% 전자를 택한다.
전자는 수렵 채집이고 후자는 농경이다. 먹고 살기에 편안한 환경에서 사는 수렵 채집민이 결코 자발적으로 농경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중국이 대선단을 폐기 했을 때도, 미국이 고립주의 노선을 택했을 때에도 그런 퇴행은 일어났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도 이유는 동일하다. 유럽 대륙과의 상호 작용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그러한 퇴행을 일어난다. 단 분열된 유럽에서는 퇴행에 대한 댓가를 빨리 받을 수 있었고 더 이상 상황이 악화 되기 전에 오류를 빠르게 오류를 수정할 수 있었다.
회사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영진과 노동자간 상호 작용이 활발하면 잘 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와 고객간에 상호 작용이 활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고객을 받들어 모시는 태도가 과연 상호간 작용을 활발하게 할까? 고객은 왕이라며 자신을 내려 놓는 태도가 과연 상호 작용을 늘리는 것일까? 스티브 잡스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종업원들이 행복해야 고객이 행복해진다는 믿음 아래 미국의 어느 저가 항공사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고객이 필요한 것은 만족이나 감동이 아니라 존중 아닐까? 상호 작용은 기본 전제는 상호 존중이니까. 노예와는 상호 작용을 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명령 전달을 할 뿐.
-----------------------------------------------------------------------------------------------------------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외계 침공을 다루는 공상 과학 영화가 생각 났다. 유럽인에게 멸망을 당한 신대륙의 원주민 입장에서는 유럽인들이 영화에서 보이는 외계인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종족들이 어느 날 갑자기 바다에서 나타났고 괴상한 짐승을 타고 다니며 번쩍이고 날카로우면서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막대기를 휘두르며 자신들을 학살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에 저항하기 위해 곤봉을 휘둘러 공격을 해 보지만 딱딱한 옷을 입은 저들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어찌 공포스럽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들이 출현한 이후 이상한 전염병 돌아 주변 사람들이 맥없이 쓰러져 죽어가는데 이상하게 저 낯선 종족들은 그 전염병이 피해 가는 듯 하다. 신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영화에서 보이는 외계인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그들은 훨씬 진보된 무기로 지구를 공격하고 지구인의 구식 무기는 그들에게 별다른 유효타를 날리지 못한다. 무기력하게 공격당하면서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자원은 외계인에게 모두 수탈 당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초반의 열세를 딛고 외계인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며 반격에 성공하는데 이 영화를 만드는 주체들은 대부분 신대륙에서 그런 외계인스러운 짓을 저지른 유럽인들의 후손이다. 즉 영화에서 보이는 외계인의 이미지는 사실 그들 자신의 이미지가 투영된 것이다.그들은 과거의 영광과 교훈을 SF 영화를 통해 다시 반복하고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가 그랬듯이 외계인들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와는 다르게 외계인이 지구를 완전히 정복해 버리고 난 후 외계인이 학자가 책을 통해서 "지구인 너희들과 우리 외계인이 뭐 특별히 다르지는 않아. 지구와 우리 고향별의 환경 차이점 때문에 우리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거지. 너희 지구인이 우리 별에서 살고 우리 외계인이 너희 지구별에 살았으면 너희들이 우리를 쳐들어 왔을거야. 너희가 당한 것이 너희 잘못은 아냐. 환경 차이 때문인거지" 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화가 치밀지 않을까?
이 책은 인종적/민족적 차이를 다룬 이론에 대한 완벽한 방어 이론이라고 하는데, 질문을 던진 얄리가 제레드 다이어몬드 박사의 답을 듣고는 "그래, 우리 탓이 아니라고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할 기분이 들까? 인종적으로 열등해서 그런 것이든 자연 환경의 차이 때문에 그런 것이든 어느 쪽이든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침탈한 것은 다 나름의 당연한 이유가 있는 것이 되어 버린다. 자연 환경 차이 때문에 그렇다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져 버리지 않는가. 게다가 제레드 다이어몬드 박사는 얄리의 선조들도 똑같은 짓을 했었다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는 "그래서 너희들은 앞으로도 세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일은 없을거야"라며 대못을 쾅쾅 박아 버린다.
그래서 얄리에게 어떻게 하라는 말은 없다. 책은 얄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상식적으로 얄리가 그런 질문을 저자에게 했을리가 없다. "왜 조선은 일본에게 강제 병합 당했을까?"라는 질문을 일본인에게 물어볼 얼빠진 한국인이 있을리 없잖아. 그걸 일본인에게 왜 물어? 물어볼 놈이 따로 있지. 저자가 자신을 주장을 읽어 주기를 바란 독자층은 얄리가 아니라 아마도 그와 인종적으로 동일한 서구인이였을 것이다. 그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여태까지 우리는 우월한 인종이고 아시아 애들은 못난 인종인 줄 알았지? 정신차려 친구들아!!! 내가 조금 알아 보니까 우리들이 잘난 인종이라서 그런게 아니더라고. 우리가 그동안 세상을 털어 왔던 건 우리가 순전히 재수 좋게 그럴만한 자연적 환경에서 살았왔기 때문이였어. 근데 다른 대륙 애들은 별로 걱정할 것이 없는데 중국 애들의 환경적인 차이는 우리하고 별 다를게 없더라고. 한중일 재네들이 요즘 잘 나가는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야. 재네들 우습게 보지마. 그러다가는 우리가 재네들이 했던 뻘짓을 따라 할 수도 있고 심지어 재네들한테 털릴 수도 있어" 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이 아니였을까?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분간 화두로 머리에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
'자작 >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 (0) | 2021.08.16 |
---|---|
호모 데우스 (0) | 2017.07.17 |
대한민국은 왜? (0) | 2016.05.12 |
정본 백범일지 (0) | 2016.04.27 |
문제적 인간, 다윗 (0) | 2016.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