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김구, 주해는 김학민,이병갑, 출판사는 학민사

 

시간을 초월하는 고전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책.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것으로 알았으나 접하여 보니 생각보다 생생하고 재미 있기까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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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는 일관된 목표를 위해 기승전결로 씌어진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김구의 글 4개의 모음집이라 할 수 있고 그 중 2개는 부록 성격을 띄고 있다. 부록 성격의 글 중 하나가 "나의 소원"이다.

 

첫번째 글모음은 1929년 김구가 54세 때에 씌어진 것으로, 상해에서 임시 정부 주석으로 활동하던 시절, 언제 죽음이 찾아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국에 있는 어린 두 아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전하기 위해 작성한 일종의 유언이였다.

 

두번째는 13년 후인 1942년, 중경 임시 정부 시절인 67세에 씌어진 것으로,1929년 이후 임시 정부의 활동을 기록하였다. 첫번째 글모음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기술된 것과 달리 두번째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 특히 미주 지역 동포들에게 임시 정부의 현황을 알리기 위한 글이다.

 

세번째는 해방 후 귀국하여 씌여진 것으로, 해방 후 자신이 입국하게 된 경위와 입국 후 자신의 개인적인 행적에 대해 적어 놓고 있으며, 네번째는 "나의 소원"으로 김구가 생각하는 정치 철학에 대한 사설 성격의 글이다.

 

"백범일지"는 1947년 김구의 생존 당시 상.하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으며 상권은 첫번째 글모음, 하권은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글모음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글 부피로 보면 첫번째 글모음이 가장 많고, 두번째 글모음은 첫번째의 25% 수준이다. 아마도 "나의 소원"을 포함한 나머지 글들은 출판 시 추가로 덧붙여서 작성한 듯 한다.

 

저자가 분명하고 자필 원고도 존재하며 90년 정도 밖에 안 된 글이지만, 의외로 읽기 어렵고 판본도 많이 존재한다. 1947년의 최초 판본(국사원)에서 자필 원본을 크게 축소하고 훼손한 탓도 있고 국한문이 혼용된 자필 원본을 현재 언어로는 그대로 읽을 수 없어 해석이 필요한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같은 언어로 작성된지 기껏 100년도 안된 문서에 여러 판본과 주해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수천 년 전 다른 언어로 씌어진 문서에 대한 현재 한국어 판본이 과연 얼마나 원작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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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에게 자신의 행적을 전하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상놈의 집안에 태어나서 상해에서 임시 정부 최고위 인사가 되었다는 줄거리이다. 화려한 출세 스토리일 것 같으나 내용은 구한말 격변의 시대에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가시밭길을 거쳐온 삶에 대한 담담한 기록이다.

 

18세에 동학에 심취하여 해주 지역 동학 지도자를 하다가 방향을 바꿔 유학을 익히면서 지식인과 교류할 수 있는 교양을 쌓았고 을미사변 당시 대동강 포구에서 민간인으로 위장한 일본 군인을 죽이면서 의인으로 주목 받는다. 사형 언도가 내려졌지만 고종 황제의 기적적인 특사로 사형 집행이 취소되었고 1년만에 탈옥을 감행하여 전국을 떠돌다가 승려 생활을 잠깐 한 후 환속하여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교육 사업에 매진한다.

 

이 때까지가 김구의 30세 이전 삶의 궤적으로 이후 교육 사업을 진행하면서 신민회 멤버로 활약하다가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명근이 독립 자금 확보 과정에서 무력 시위를 한 사건에 연루되어 강도죄 혐의로 15년형을 받아 투옥 된다. 이 후 메이지 천황의 사망으로 이루어진 사면령 및 모범수로 감형을 받아 4년만인 1914년 39세 때에 출소한다.

 

출소 후 교편 생활을 하다가 5년 후인 1919년, 그의 나이 44세에 벌어진 3.1운동 때에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경무국장(말하자면 경비대장) 으로 취임하였으며 51세에 국무령 직책을 받으면서 임시정부의 최고위직을 수행한다.  53세에 집필된 상권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백범일지 상권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기는 글인만큼, 개인적인 내력에 대해 상세한 사항들을 전하고 있다. 국한문 혼용에다가 어휘가 지금과는 생소하여 주해를 보며 뜻을 곱씹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하지만, 개인적 경험의 생생함이 글에서 전해진다.

 

김구가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는 상놈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런 그가 임시정부 주석이 되었으니 그의 인생이 어찌 드라마틱 하지 않겠는가? 투박하게 읽히는 문체에서 자기 중심적이고 자화자찬적인 뻥카가 있는 듯한 느낌은 들었으나 그런 면이 더욱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이 김구가 가진 필력의 매력인 듯 하다.

 

황해도 해주 출신의 김구는 젊은 시절 북방 지역 및 충청/전라 지역을 고루 돌아 다녔고 이에 대해 세세한 내용을 남겼다. 글을 보면 당시 그 지방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기록해 놓은 여행기로 읽힌다. 김구는 지리적인 호기심이 꽤 강하고 여행을 즐겼던 듯 하다. 당시의 풍습이 내가 살던 이 시대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실감났고 세월이 더 지나가면 풍속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귀중한 사료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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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편의 두번째 글모음은 임시정부의 활동상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으로,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성립한 시점부터 중경으로 이주한 후 광복군을 조직하는 시점까지를 서술하고 있다.

 

초기 임시정부는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이봉창 의거로 국내 및 재외 동포(북중미 지역)의 지지를 받아 자금을 확보하면서 숨통이 트이게 된다. 당시 중국인과 일본 식민지 출신의 조선인과는 갈등이 많았고 이로 인해 중국인들이 조선인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는데 이봉창/윤봉길 의거로 인해 중국은 임시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한다.

 

윤봉길 의거 후 김구는 일본의 1순위 체포 대상이 되었고 당시 프랑스 조계에서 지내던 것조차 여의치 않아 상해를 탈출하여 남경에서 활동을 한다. 남경에서 장개석과 면담을 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등 성과가 있었으나 중일전쟁의 발발로 중국 대륙을 돌고 돌아 중경으로 임시정부를 옮기고 광복군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만나서 거사를 실행하는 과정을 읽어 보면 독립 투사가 아닌 자연인으로의 이봉창/윤봉길을 접하는 느낌이라 마음이 뭉클해진다. 윤봉길 의거는 대성공이였지만 이로 인해 일본의 압박은 더욱 심해져 더 이상 상해 임정을 유지 하지 못하고 남경으로 이동하게 된다.

 

상해에서 남경으로 다시 중경으로 대륙을 떠돌던 시절, 임시정부는 공산주의 계열의 민족 해방 세력들과 연합 및 분열을 겪는데, 그 과정을 기록한 부분에서 김구는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실제로 김구는 그 시절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공산주의자에게 암살 시도를 당해 가슴에 총상을 맞아 사망 직전의 상황을 겪는다.

 

장개석 정부의 우호적인 태도로 임시 정부는 중경으로 옮겨 활동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가족들은 단체로 대륙 이곳 저곳을 움직여야 했다. 김구는 그들을 대가족이라 칭하며 두번째 글모음 마지막은 대가족 일원에 여러 사연들로 끝을 맺는데 그 사연들 하나 하나가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며 대가족에 대한 김구의 큰 애정이 느껴진다.

 

부록 성격의 글은 해방 후 씌여진 것으로 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미국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광복군을 정비하는 과정 및 해방 후 귀국 과정과 귀국 후의 소회를 적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부록 성격의 글인 "나의 소원"은 이전의 글모음에 비해 대단히 정제되고 압축된 에세이로 김구의 정치 철학을 담은 정수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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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포 사건은 김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칼을 들고 덤비는 이를 맨손으로 제압하여 죽이는 일은 생사를 초월한 깨달음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구는 개인의 자아를 버리고 대한 제국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치하포 사건을 결행한 것이다. 사형 집행일에도 태연하게 지냈다는 그의 회고가 거짓인 것 같지 않다.

 

백범일지에 서술된 내용을 보면 그 이후에도 그는 대표성을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치하포에서 대한 제국의 대표자로 국모의 원수를 갚은 김구는 평생을 그 대표자의 길로 살아갔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으로 그는 스스로의 대표성을 증명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에 호응하여 그를 도왔다.

 

김구는 20대 초반 동학과 유교를 배웠고 대표자의 마음을 얻은 후에는 신문물과 불교를 접했으며 기독교까지도 받아 들였다. 좁은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이질적인 것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바깥 세상으로 돌려 대표자로 나서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취한 것이다.

 

"나의 소원"을 읽어 보면 투박하게 읽혀지는 문체 속에서 유교/동학/불교/기독교를 두루 섭렵한 김구의 지적 내공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일본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인 스승이라는 요시다 쇼인은 "존왕 양이"로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비젼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김구는 "나의 소원"에서 우리의 나아갈 바를 명확히 제시했다.

 

김구는 첫째도, 둘째도, 세째도 자신의 소원이 "독립"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엄연한 독립국가이니 그 소원은 이미 성취된 것이고 김구의 사상은 구 시대에나 의미 있었던 것이라 생각했었으나 문장을 읽어 보면 "독립"이란 단어는 "존엄"이란 단어로 다시 읽힌다.

 

김구는 실존하는 불변의 최상위 개념으로 혈통을 매개로 하는 민족을 두었으며 사상과 종교는 일시적이며 시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나의 소원 -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나는 것이다.")

 

민족이란 개념은 근대에 와서 발생한 것이다.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존재라는 김구의 의견에는 동감할 수  없다. 혈통과 지역을 매개로 하는 민족의 독립이 보편 타당한 절대적 목표라면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은 내전을 겪고 있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수백개 나라로 쪼개져서 항상 내전 상태일 듯)

 

치하포 사건 당시 김구는 대표자의 마음을 가졌다. 그는 어떤 이들을 대표하는가? 우리들을 대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치하포 사건 당시 김구에게 "우리"는  "대한 제국 사람"이였고 대한 제국 멸망 후 20세기 초 김구가 살았던 시대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단어는 "민족"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다른 이름이 민족이든 뭐든 나는 상관 없다. 공동 운명체의 단위와 구성원은 시대가 흐르면서 달라지지만 이 땅에서 같은 언어를 쓰며 공동 운명체로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우리"는 분명 존재한다.

 

최종적으로 지구에 사는 인류 전체는 공동 운명체이고 따라서 "우리"는 인류 전체이며 "우리"의 상대는 "신"이다. "신" 앞에서 인류의 대표자로서 나서서 일대일로 독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김구는 "나의 소원"의 시작 부분에서 이미 "신" 앞에서 당당하게 나서서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한 것이다.

 

가슴 떨리는 선언이다. 김구는 민족의 대표자이며서도 인류의 대표자로서 "신" 앞에 독대하여 당당하게 존엄을 외친 것이다. 그리고 김구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 원리의 발견과 실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한 천직이라 믿는다"

 

아...이 사람...대표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상놈 집안에서 생업 따위는 내팽개치고 나라 걱정으로 대한 제국을 대표하여 치하포에서 거사하더니 이제는 우리 민족에게 인류를 대표하여 세상 걱정을 하라고 한다. 어찌 짜릿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양반이 걱정이 되었는지 "나의 소원"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만일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자굴지심(남에게 스스로 굽히는 마음)을 발하여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하는 일이다"

 

바로 이것이다. 독립은 바로 존엄으로 이어진다. 스스로를 낮게 생각하는 이는 독립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반복한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길래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깨달아야 한다. 이 큰 일이 우리의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 큰 일로 가는 길이 우리의 길임을 깨달아야 비로소 제 길과 제 일을 알아 볼 수 있다. 인류의 대표자로 신 앞에 서라는 것이다. 우리의 일이 세상 천지의 일이며 세상 천지의 일이 우리의 일이다. 격한 공명을 일으키는 일갈이다.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길이다.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길이지만 우리 민족이 독점해야 할 길은 아니다. 모든 민족에게,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도 해당 하는 길이다. 누가 먼저 가든 다 같이 가야 할 길이다. 유불선의 전통사상과 기독교 및 서양사상을 두루 접했던 이가 인류의 대표자로서 얻은 깨달음을 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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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에서는 김구가 생각하는 정치 이념이 명확하게 나온다. 그는 상놈 출신이였고 어린 시절 계급의 한계에 절망하여 동학 혁명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그가 계급 없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원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자유에 대한 그의 통찰은 다음과 같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 개인 또는 일 계급에서 온다"

 

자유에 대해 이렇게 명확하게 쓴 글은 거의 찾아 보지 못했다. 이 문장 하나로 김구가 바라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는 다 정해졌다. 그는 주자학파 철학을 기초로 하는 이조 조선의 계급 독재를 배격하고 소련식 민주주의는 이러한 독재 정치 중에서도 가장 철저한 것으로 규정하여 반대하고 있다.

 

나의 소원 - "우리가 세우는 나라에는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예수교도 자유로 발달하고, 또 철학으로 보더라도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들어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니, 이러하고야만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 할 것이요. 이러한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문화가 발생할 것이다"

 

김구 자신의 겪은 일의 축소판이다. 김구는 유/불/선의 전통을 모두 채득하였고 이에 더해 기독교를 비롯한 서양문물을 접하면서 망해가는 나라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고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인류를 대표하는 문화의 건설이였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독립"으로 시작하여 인류를 대표하는 "존엄"으로 끝난다. 책을 쓰려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써낸 글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과 사고를 통해 몸에 자연스럽게 베인 것을 글로 옮겨 놓은 것이 전해진다. 임시정부의 헌법에 김구의 이러한 사상이 녹아 들지 않을리 없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헌법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을 음미하며 읽어 보니 김구의 영향이 느껴진다. 알고 보니 우리는 꽤 괜찮은 헌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헌법 전문을 적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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