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에 출장 갔을 때였다.
토론토 측 현지 상대가 한인 교포이신데 연세가 꽤 많으신 분이였다. 사업 상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고향에서 건너 온 아들 뻘 되는 놈들이니 각별히 많은 신경을 써 주셨고 우리는 그 분을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호칭했다.
한번은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한식으로 식사 대접을 한 적이 있었다. 현지 교포가 운영하는 한식집인지라 종업원들도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하지만 생긴 것만 보고 한국어로 말을 걸 수는 없는 상황. 설령 교포라고 해도 젊은 사람들이니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서빙하는 아가씨가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거기에 한국어로 응대할 수도 없지 않은가? 현지 교포이신 선생님께서 나서서 영어로 주문을 해 주시고 주문대로 음식이 나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사람 인원수 대로 한 접시 턱 갖다 놓으면 왠만해서는 그걸로 끝나는 서양식과 달리 한식은 먹다 보면 이것 저것 필요한 것이 많지 않은가? 단체로 식사를 하다 보면 음식을 나누거나 덜어 먹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야채나 반찬 또는 물수건이나 접시 및 식기를 추가로 요구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그 때마다 서빙하는 젊은 처자 불러서 영어로 뭐라 뭐라 하기가 좀 불편하더라. 수 십년 캐나다에서 살아 오신 선생님도 불편하게 느끼시는 건 마찬가지이신 듯. 암튼 몇번 서빙하는 젊은 처자 불러 세워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선생님께서 중간에 독백하듯 흘리는 한국말에 그 처자도 반사적으로 한국말로 응대를 한다. 어라? 순간 잠시 정적이 흐른다.
선생님 : "어? 한국말 할 줄 아세요? 교포셨구나?"
젊은처자 : (당황하며) "네...."
다들 알다시피 영어는 존대말이라는게 없지 않은가? 서빙을 하는 종업원이라 해도 어딘지 모르게 당당한 듯한 느낌이 있다. "What would you like?"가 꽤 격식을 갖춘 말이라지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해석이 "뭘로 드시겠어요?"로 들리기 보다는 "너 뭐 먹을래"라고 들린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너 뭐 먹을래"를 상당한 품격과 격식을 갖춰 딱딱하게 말하는 느낌을 받는다. 굳이 다시 한국어로 하자면 "뭘 드시겠소?" 정도의 느낌이랄까?
격식 차리는 영어는 보통 공적인 상황에서 사용하는데, 한국어처럼 말하는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는 사람 스스로가 그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품격을 갖춰 말하는 것이지 공손하게 말한다는 개념은 영어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존대말이 없는 말 자체도 그런 뉘앙스에 한 몫 하겠으나 무엇보다도 그 말을 하는 상대의 몸짓이나 표정에서 그런 것이 느껴진다. 비록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이지만 자신을 낮추지 않고 편하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당당하게 느껴진다.
말이라는게 참 묘해서 동일인물이지만 영어 쓰는 모드에서 한국어 쓰는 모드로 전환되면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손님인데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인지라 젊은 처자가 존대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영어 쓸 때의 그 당당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위축되는 듯한 모습이 눈에 확 보였다.
말이 달라졌을 뿐인데 동일인이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이전의 상황이 다른 상황으로 되어버린 듯한 느낌. 한마디로 웃겼다. 이런 것도 코메디가 될 수 있는 것이라니. 암튼 한국어가 통하니까 서빙 받기가 굉장히 수월해지더라. 아니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말이 바뀌니 젊은 처자가 실제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였다. 영어를 쓰는 종업원과 한국어를 쓰는 종업원은 다른 사람이였다.
다중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동일인이라 하더라도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거기에 종속되는 다른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으로 이민간 사촌들이 있는데 10년에 한번 정도 한국에 들어와 얼굴을 볼 때가 있다. 대개 그들은 친지들과 모인 자리에서는 의식적으로 영어를 쓰지 않는다.
어릴 때 미국에 건너 갔으니 한국어 어휘가 좀 딸리기는 한다. 대개 어른들이 많이 쓰는 한자를 기초로 하는 어휘가 그러한데 흡연실도 그 중 하나다. 대화 중에 흡연실이 머리에서 떠오르지 않으니 smoking section 이란 영어 단어가 튀어 나오는데 그나마도 어느 화장품 광고처럼 혀 엄청 굴려가며 하는게 아니라 통상적인 한국인 수준으로 발음을 한다. 어르신들 앞에서 최대한 미국 사람 티 안내려고 얼마나 신경 쓰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어차피 어르신들은 알아듣지 못할 영어를 쓴다는 것은 상대방은 배려하지 않는 행위라 판단했을 수도 있고 또는 오랫만에 온 한국에서 과거 한국인이였을 때의 자신을 아는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어를 쓴다는 것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여기는 정체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또는 위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 보면 예전 한국에 있을 때 존대말을 꼬박 꼬박 쓰던 어르신들이나 형님들 앞에 자신을 낮추지 않는 영어를 쓴다는 것이 아무래도 어색하고 자신의 뿌리를 흔드는 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싶다. 친척들이 알고 있을 법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자신의 모습과 영어를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이 서로 이질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일까?
어떤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말이나 글을 쓰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 방식의 상당 부분을 바꾸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사고 방식이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듯. 영어를 그렇게 배워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 하다.
알고보니 이 언어라는 것이 참으로 요상한 것이였구나. 내 자신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꽤 많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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