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다가 포기했던 마샬 멕루한의 "구텐베르그 은하계"에서 봤던 내용 중...
표음문자인 알파벳은 시각적 감각이 중시된 것이란 기억이 난다.
그 책에서는 시각이 다른 감각을 압도하면 인식에 왜곡이 있다고 한다.
뜨겁고 차가움, 단단함과 부드러움, 무거움과 가벼움...
이런 것들은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 파악되는 내용들이다.
반면 눈에 보이는 길이는 기준이 되는 자만 있으면 수량화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기하가 고대 그리스 수학의 주된 주제로 대접 받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숫자라는 것은 결국 시각이라는 감각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 눈이 없었다면 수학이라는 학문이 나올 수 있었을까?
다른 문명들과 달리 서구 문명에서는...
언제인가부터 시각이 다른 감각들을 대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시차가 있기는 해도 대략 비슷한 시기에 이런 일들이 행해졌다.
악보는 시각이 청각을 대체한 예다.
살리에르는 모짜르트의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 음악의 감동을 느끼지 않았던가.
시각이 다른 감각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많은 형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주요하고 효과적인 형식은 수량화였다.
두개의 토마토 중 어느 것이 더 맛있을지는 미각을 통해 먹어 봐야 알수 있지만...
굳이 먹어 보지 않아도 토마토의 가격을 눈으로 보는 것으로 판단가능하다.
즉 미각으로 파악되던 것을 시각으로 대체한 것이다.
시장에서 통용되는 가격이라는 존재는 시각에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했다.
유럽에서 대략 13세기에 벌어지기 시작했던 시각감각 강화는...
정량적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 기술의 발달 및 생산성의 증대로 이어졌고...
유럽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멕루한이 지적한 대로 시각의 강화는 결국 왜곡을 야기할 수 밖에 없고...
그 왜곡으로 인한 문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어떻게 되려나?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영험한 예언자인 '테이레이시아스'는 두 눈을 잃은 장님이였다.
북유럽 신화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닌 오딘은 애꾸눈이였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3차원 display에 의존하여 잠재적 살인범을 체포하던 '존'은...
자신의 눈을 갈아 치우고서야 그동안 눈으로 보면서도 놓쳤던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가장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었던 요괴는...
삼장법사의 시각을 현혹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요괴였다.
시각의 강화로 인해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에 따르는 왜곡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된다.
현재 대다수의 미디어는 종이와 화면에서 정보를 표시한다.
그 중에서 모니터는 절대 강자가 되어 갔고 지금은 3D로 진화 중에 있다.
이것 역시 시각의 강화와 맞물려 있는 흐름이다.
개인적으로 모니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만 정보를 접해야 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지는 꽤 되었다.
3차원 홀로그램이 혁신적인 Interface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정반대로 시각을 축소하고 다른 감각을 강화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그런 Interfacer가 등장한다면 그야말로 인류사에 기록될 혁명적인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S : 이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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