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2013. 6. 5. 16:19

집에서 IP 티비로 범고래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데, 남극 유빙 위에 있는 물범을 범고래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범고래가 유빙 위로 올라 탈 수 없으니 물범은 안전해 보였다. 하지만 범고래 여러 마리가 팀을 이뤄 수면 바로 밑을 유영하여 유빙 아래를 지나자 물결이 생기고 이로 인한 물결로 유빙인 반쪽으로 갈라지지 않는가? 물범은 유빙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위험을 피하지만 결국 범고래의 팀 플레이가 만들어 낸 물살에 쓸려 바다에 빠지고 결국 범고래들에게 사냥 당한다.

 

고도의 의사 소통을 하지 않는 한 저런 팀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상어가 천마리가 덤빈다 한들 저런 방식의 사냥은 절대 못한다. 팀을 이뤄 사냥을 하는데 있어 의사 소통은 절대적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언어라는 막강한 의사소통 도구를 가진 인간이야 말로 무시무시한 유능한 사냥꾼이란 생각이 든다.

 

다른 육식 동물에 비해 신체적인 우위는 없지만 현재 지구상에서 인간을 능가할 수 있는 사냥꾼은 없다. 무척 유능한 사냥꾼인 우리들은 수렵 채집 사회와 농경 사회를 지나 산업화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도 여전히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한 곳에 정주하여 땅에 속박되어 살아가던 시절에도 상류 계층의 속성은 사냥꾼이였다. 그러니 왕과 귀족들이 사냥을 즐겼던 것이 이유가 있어 보인다. 전쟁이라는 것은 그 명분과 이유가 어찌 되었든 최종적인 형태는 인간 사냥이고 전쟁을 업으로 삼던 전사 계층이 지배 계층으로서 주요한 의사 결정을 행하지 않았던가?

 

현대에 와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냥꾼들이다. 단지 사냥 대상이 '돈"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사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능력 중 신체적 조건 및 물리적 무기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낮아져 외형적으로는 사냥꾼처럼 보이지 않을 뿐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문득 나는 사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머리를 짜내어 의사 결정을 하고 주변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통한 팀 플레이를 통해 정해진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범고래가 유빙 위의 물범을 사냥하는 것과 다를 것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회적 활동이 사냥 행위의 연장선에 있다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바람직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사냥에 필요한 신체적 조건은 낮아져 여성이 이에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은 분명 낮아졌지만 내가 겪어 본 바로는 사냥에 임하는 마음 자세는 분명 평균적으로 여성이 빈약하다.

 

옛날 인간사냥에 일가견이 있었던 한신은 죽으면서 "토사구팽"이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신은 인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유능한 사냥꾼이 아닌 사냥개로 평가한 것이다. 사냥을 하기는 하지만 사냥꾼과 사냥개는 분명 다르다. 나는 사냥꾼일까 사냥개일까? 진승이 외친 "왕후장상에 씨가 어디 있느냐?"에 언젠가는 답을 해야 한다.

Posted by ikip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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