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제다"라는 도시에 간 적이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다들 아시다시피 풍부한 석유자원으로 내노라 하는 갑부들이 많은 부자 나라이다. 돈 많은 나라이다 보니 이 나라국민들은 궃은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거리 청소 같은 몸을 써야 하는 일이나 기술을 요하는 어려운 일 따위는 모두 외국인들을 고용하여 맡기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도 신기하게 거지가 있다. 차에서 신호대기를 받기 위해 잠시 정차를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거지들이 나타나 적선을 구걸한다. 그런데 그 거지들은 100% 여자들이다. 그들은 두꺼운 차도르와 히잡을 쓰고 다니며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인해 남편과 이혼을 한 이혼녀들이다.
사우디에서는 여성이 일을 할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이혼녀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여성이 이혼을 당하면 의지와 능력과는 관계없이 경제력을 박탈 당하고 보호해 주는 이가 없는 경우에는 당장 거지 신세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사우디 남성들의 전반적인 정서는 세간에 알려진 B형 남자와 가깝고 사우디에서 남성의 경제력 독점은 거의 절대적인 수준이다.
여성에게 경제력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이혼이란 그야말로 여성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사우디의 가족제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그런 사회라면 남성 위주의 가족제도가 굳건하게 유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제다의 거리를 헤메는 거지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우디와 완전히 반대 상황에 있는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즉 경제력에 대한 남성의 독점이 전혀 없는 사회라면 무슨 일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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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에 대한 남성의 독점이 완전히 없는 사회란 대체 어떤 사회일까? 요즘 우리 사회도 점점 그런 상황으로 가고는 있지만 완전하게 남성의 경제력 독점이 제거된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기에는 내 상상력이 좀 부족하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있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양육에 필요한 경제력을 확보하는데 특별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 없는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경제력에 대한 침해를 전혀 받지 않는 사회라면 무슨 일이 생길까? 경제력 뿐만이 아닌 그 외 다른 사회적인 제약이 모두 없어진다면? 즉 여성이 모든 사회적인 제약에서 자유로워져 출산과 양육을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만 결정할 수 있다면? 이에 한발 더 나가 심지어 양육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이라는 형태는 상당부분 해체될 가능성이 높다. 취향이 서로 일치하는 사람들끼리, 아니면 흘러가는 상황에 맞춰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다시 상황이 변화하면 공동체를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단단히 결합하는 기존의 가족 제도 입장에서는 사방이 콩가루 집안으로 넘쳐날 수도 있다. "가족의 탄생"이란 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과 맞닿는 장면들이 보인다. 그 영화에서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이란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상황 가는대로 맘 맞는 이들끼리 정을 쌓으며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보인다. (그 가족은 고두심을 중심으로 하는 모계사회)
만약 영화에 등장하는 그들이 사우디처럼 혼자 사는 여성에게 경제력을 완전히 박탈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었다면 그런 가족은 탄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가족의 탄생"이지만 사실 영화는 기존 가족 형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체를 논하고 있다. "가족의 탄생"이란 영화의 사실상 앞에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생략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는 성적으로 문란하게 보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이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기본 단위이고 남녀의 성적 욕망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동인임을 생각해 본다면 가족형태의 변화에 성도덕의 변화가 수반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성도덕은 가족형태의 근간이 되는 사회적 합의이며 가장 밑바닥에 대한 근간인만큼 변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 생각에 성도덕이란 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생산 능력과 배분 방식에 맞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이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 형사수취 (남자가 죽으면 그 배우자가 죽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는 것, 즉 남편 죽으면 시동생이나 시아주버님과 결혼하는 것)는 지금의 기준에서는 금기에 해당하지만, 유목민들에게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규칙이였다. 큰/작은 아버지라는 말은 우리도 예전에 형사수취를 받아들였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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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성적 욕망을 대책 없이 쫓으면 사회 구성원은 폭증할 것이고 그들을 유지할 물리적인 생산력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그 사회는 와해되고 말 것이다. 성도덕의 주요 기준은 성적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회의 생산력 및 배분 방식에 기초하여 만들어지며 이 때 그 기준을 정하는 주체는 배분 방식을 장악한 지배계층이다.
전쟁을 통한 약탈이 중요한 생산력으로 대두되면서 남성이 위주가 된 전사 계급이 상류층을 차지하게 되고 여성들은 경제력에 대한 주요 의사 결정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시절이 있었다.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넘어가는 시점이 대략 그 때 쯤이다. 실제 생산을 수행하는 주체는 일개미 신세가 되어 노예나 농노 신세가 되고 싸움질이 특기인 그룹이 생산물의 상당량은 배분 받는다.
이런 사회에서 성적 욕망에 대한 합의는 생산력 및 배분에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던 전사 계급의 남성들이 주도되어 결정할 수 밖에 없다. 현재 주요한 효력을 가지는 성도덕은 일부일처 인데 이는 남성들이 여성을 차지하기 위한 소모적인 싸움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력과 권력이 받쳐 주는 그룹은 여전히 이런 합의를 무시하고 일부다처를 특권처럼 누리기도 한다.
성적욕망에 대한 협의에서 완전히 제외된 여성에게는 일부종사라는 의무만이 수강요되었다. 이게 몇 년이나 몇 백년을 이어온 일이 아니고 몇 천년을 통해 동/서양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행된 일이였다. 여성은 수동적인 위치에서 성적 욕망을 이룰 수 있을 뿐이였고 성적욕망 그 자체가 죄악시 되기도 한다..
경제력에 대한 남성의 독점이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은 이러한 면에서 성도덕의 재정립과 직결된다. 남성의 경제력 독점이 강력한 사우디에서 공개적인 성도덕의 문란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생산력이 높고 여성의 지위가 높은 서구 사회의 성도덕은 사우디의 성도덕과는 많이 다르고 우리는 이 성도덕을 개방적이라고 불러 왔다. 세계가 글로벌한 경제권으로 묶이면서 전 지구적으로 성도덕의 개방화가 동기화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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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주도적으로 성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를 넘어 죄악시 되었다. 그러한 평가가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 완전히 내재화 되면서 여성 주도적인 성적 욕망의 추구가 대체 어떤 것인지, 아니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조차도 나에게는 불분명하게 느껴진다.
이럴 때에는 부계 사회를 위한 성도덕이 정립되기 이전 사회에서 성도덕이 어떠했는지를 알아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제대로 전하는 이야기는 많지 않고 있다 해도 신화의 형태로 전해져 내려온 흔적 정도를 찾아 볼 수 있을 정도이고 그나마도 오랜 시간 전승되어 오는 동안 왜곡되고 비틀린 경우가 많다.
그나마 별다른 왜곡 없이 부계 사회 이전의 당시 모습을 전하는 기록이 20세기에 와서야 발견되어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라크의 고고학 유물 발굴 작업을 통해 발견된 수메르의 석판 기록이다. 수메르인들이 숭배했던 신들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 여신으로의 으뜸은 인안나이다. 수메르 시절의 기록이 전하는 위대한 여신 인안나의 행적을 간략히 이야기 하면 다음과 같다.
수메르 신들은 저마다 특징이 있고 장기가 있는데, 인안나의 최대 장점은 성적 매력이다. 인안나는 신들의 세계에서 권력을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성적 매력을 최대한 활용한다. 그녀는 그녀의 할아버지이자 으뜸신인 "안"과 동침하며 삼촌인 "엔키"를 성적 매력으로 유혹하여 신성한 힘을 가진 7개의 "메"를 얻어 주요 신의 반열에 오른다..
세상에 이런 갈보년이 있을까? 그러나 수메르인들은 그녀를 위대한 여신으로 추앙하여 마지 않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땅위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린 그녀는 언니가 지배하는 저승 세상도 접수한다. 그 뿐인가? 저승 접수 원정길 동안 이승에서 태평하게 놀아난 그녀의 남편 두무지를 저승으로 보내 버리기까지 한다.
그녀는 찬란한 몸과 음부를 이용하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근친과도 관계를 가졌으며 반인반신인 길가메쉬에게도 구애를 한다. 성 관계를 가지는데 별 꺼리낌이 없었고 남편은 개차반 취급했다. 성적 욕망 외에 다른 욕망들도 실현하기 위해 그녀는 어떤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가 누리고자 했던 모든 영광은 모두 누렸다. 그리고 수메르인들은 그녀의 위대함을 칭송한다.
내가 본 기록에서 인안나가 출산을 했다는 것은 기억에 없다. 그녀에게서 출산이나 양육의 이미지는 전혀 없다. 온 몸을 던져 욕망을 추구하는 그야말로 욕망녀였다. 욕망녀 수애는 이미 수메르 신화 속에서 인안나로 존재하고 있었던 거다. 어떠한 도덕적 관념이나 현실적 제약도 그녀를 잡아 매지는 못했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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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동등한 출생 배경을 가지는 리리스는 또 어떤가? 잠자리에서 아담을 뭉개고 활개치다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나기는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악마와 교접하여 수많은 악마들을 낳는다. 야훼가 리리스의 아이들을 죽이자 야훼와 맞짱을 떠서 유대민족의 아기를 잡아 먹는 깡다구를 보인다. 리리스의 집은 거울 속에 있다고 하는데 이 말도 참으로 의미 심장하다.
리리스도 주체적인 욕망의 화신이다. 섹스를 즐기고 잠자리에서 남자를 완전 압도하며 구박한다. 인안나는 위대한 여신이 되었지만 가부장적인 야훼는 그녀를 에덴에서 쫓아내고 아담의 일부로 이브를 만들어 냈다. 리리스는 양지를 떠나 음지에서 왕마녀 역할을 한다.
리리스와 인안나에게서 출산과 양육의 부담이 없는 점이 공통적이다. 리리스는 한술 더 떠서 우리가 여자라면 절대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아기들을 죽이는 짓조차 서슴치 않고 저지른다. 리리스의 집이 거울이라는 것은 거울을 바라보는 여성들은 잠재적으로 리리스라는 이야기다. 맨날 거울만 바라보던 백설공주의 계모는 알고보니 리리스였던거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적인 성공을 누리고자 하는 것과 거울을 바라보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두 욕망 모두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의 자아에 초점이 놓여 있다. 그녀들의 관심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자신 자신의 모습에 가 있다. 리리스가 아기를 잡아 죽이는 것이나 그녀들이 출산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역시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중국의 최초 여성 황제였던 천추태후는 황후를 모함하기 위해 갓 태어난 자신의 딸을 자신이 죽여 놓고 황제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뿐인가?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리리스가 신화 속 허구의 존재는 아니다. 실제 역사에서 리리스의 현신은 존재했고 아마 이 순간에도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여태후나 천추태후, 서태후 등 중국 역사에서 황제의 위치에 오른 여성들은 모두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녀들은 잔혹하고 무시무시했으며 나라를 망친 부정적인 요물로 평가되어 왔다. 실제가 어떠했든 가부장적 사회에서 인안나와 리리스의 현신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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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위주의 성도덕 협의 이전에 여성 주도적인 성적 욕망의 추구가 어떤 모습인지 제한된 기록을 통해 추정해 보면 출산/양육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는 환경에서 한 남자에게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성 생활을 하며, 심지어 이를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무기로 활용하여 권력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흔히 말하는 몸파는 여자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여성에게 선택권이 없이 일방적으로 돈 주는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 천한 것이고, 여성에게 선택권이 주어지고 여성이 적극적으로 남성의 Resource를 빼 먹을 수 있으면 위대한 거다. 마치 인안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텐프로 아가씨가 2차를 나기지 않는다는 속설은 텐프로 아가씨들이 인안나 흉내를 내면서 비싸지려는 일종의 마케팅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인안나처럼 출산과 육아의 부담이 없는 사회적 환경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선택에 따라 성적욕망을 추구하고 또한 그 매력을 이용하여 사회적인 권력을 취할 수 있다면, 또한 그것에 대해 사회 구성원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남들 시선을 덜 의식할 수 있는 외국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훨씬 대담해지는 그녀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인안나가 활개치는 세상이 온다면 남자들은 프리섹스의 시대가 왔다면 좋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비극적인 착각이다. 그런 세상에서 남자들은 주도권을 완전히 잃는다. 모든 선택은 여자에게 달려 있으며 여성의 간택을 받기 위해 남자들은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남자들은 그야말로 여자들은 여왕처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숫펄 신세가 되는거다.
사회의 생산 및 배분에 있어 여성의 위치가 남성보다 동등하거나 강해지면 그런 세상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성적 욕망은 타고 나는 것이고 사회 환경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기술의 발전 및 이에 따른 생산력의 증대, 그리고 미디어의 변화는 분명 사회 환경을 변화 시키고 이런 변화에 맞춰 성 도덕은 변화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여성이라면 모두에게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모성애 마저도 천추태후를 보며 어쩌면 절대적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잡아 먹는 리리스나 계모로 포장되어 딸을 죽여야 했던 백설공주의 어머니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모든 여성들의 마음 속에 다양한 형태로 숨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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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달은 물리적인 환경을 바꾼다. 예전에 가능하지 않던 것이 실제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기사 계급의 남자들이 전쟁을 위해 전력 투구하여 개발해 낸 기술들이 세상을 바꾸고 생산기술을 변화 시켜 생산량을 늘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격상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 하다. (제어 및 통신 기술의 발전은 전쟁 무기 개발을 위한 것이였고,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여성을 군수 공장에 투입한 것은 여권이 신장되는 계기 중 하나였다)
사회의 생산 방식과 배분 방식에 변화가 발생하고 이에 여성의 위치가 변화하면 성도덕의 변화는 필연이다. 의학 및 유전공학의 발달은 이제 여성에게서 출산이라는 의무를 조금씩 벗기고 있으며 사회적 차원에서 육아를 뒷받침하기 시작하면서 양육의 짐도 조금씩 내려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하이에나 무리처럼 집단 양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어떤 여성이 난자를 제공하고 다른 여성이 대리모를 역할을 해 주면 최종적으로는 아이를 원하는 여성이 자녀를 얻어 키울 수 있는 세상이다. 유전자를 제공하는 어머니, 자궁을 제공하는 어머니,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해 주는 어머니 등 여러 어머니가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 모성애라고 하는 것이 절대 가치로 굳건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까?
점점 육아와 양육의 짐에서 여성들이 해방되고 있는 추세다. 여성들은 점점 똑똑해져서 학업 성적이 남성을 앞지르고 있고 각종 국가 고시를 통해 판/검사나 정부 기관의 실무자로 등용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까지 여자가 되는 세상에 뭔들 안 되는 것이 있겠는가? 아담을 침대에서 찍어 누르던 리리스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는거다.
성도덕에 대한 변화와 이에 따른 가족 형태의 변화가 안 일어 날 수 없는 상황인 거다. 이혼녀는 예전에는 일종의 주홍글씨였지만 이제 돌씽 여성은 당당하게 TV에 얼굴을 들이미는 세상이 되었다. 주도권은 점점 여성에게 간다. 일부일처의 위력이 워낙 강력하여 아직까지 가족 제도의 기본 형태가 일부일처에 의존하고 있지만 사실상 가족 내에서 남성의 위치는 빛 바랜지 오래다.
내 어린 시절의 7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거의 상전벽해 수준이지만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더 많은 성도덕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존 가족 제도에 대한 의구심과 비판 및 대안을 논하는 드라마와 영화들이 꽤 나왔고 (신기하게 이명박 정부 이후 이런 경향은 쏙 들어간 듯) 예전에 결코 용인되지 못했던 가족의 형태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난 이 모든 것이 인안나와 리리스의 부활이라고 본다. 앞으로는 여신 시대이고 디지털 세상이 가속화 되는 한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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