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작년에 나왔던 영화로 아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IP TV로 접한 영화...
호랑이와 쪽배(?)를 같이 타고 다니는 이야기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감독이 "이안"이라는 것 정도...
그 외에 영화에 대해 사전에 알았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음.
스토리가 이미 환상적인데다 감독의 전작을 볼 때 ...
화면이 이쁠 것이라는 건 안 봐도 비됴...
그리고 영화는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준다.
뭐...가볍게 보자면 가볍게 볼 수도 있는 영화인데...
러닝타임이 좀 길고 그 긴 시간 내내 계속 긴장해서 봐야 하니...
아이들이 보기에는 좀 짜증스러울 듯...
또한 내 영화에 대한 글이 다 그렇듯이 이것 역시 스포일러...
영화를 볼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하 글은 읽지 않으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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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떼와 이를 쫓는 참치 무리의 풍경.
밤바다를 밝히는 플랑크톤의 발광과 고래.
쪽배와 뗏목에 의지해 태평양을 횡단하면서 겪는 풍경은...
나에게 전혀 낯설게 보이지 않았다.
남미 원주민의 전통 뗏목으로 이용해 태평양을 횡단하는 모험담.
어릴 때 읽었던 콘티키에 대한 이야기에서 접했던 풍경 그대로였다.
원작자이든 영화감독이든 분명 콘티키를 읽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환상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실존할 수 있는 풍경이였다.
그런데...
미어캣으로 가득 찬 이상한 섬이 나오는 장면에서 멍해지고 말았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엘리스가 된 듯한 느낌이였다.
이건 분명히 환상이라고 감독이 대 놓고 말하고 있었던 거다.
섬을 떠나면서 보여주는 섬의 전체적인 모습.
분명 바다에 누워 있는 인간의 형체였다.
이 세상은 비누슈가 우주라는 바다에 누워 꾸는 꿈이라는 전반부의 언급.
섬은 비누슈였고 영화에서 보여준 것은 비누슈가 꾸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였다.
섬을 떠나서 나오는 바로 그 다음 장면은...
파이가 실제 땅을 밟고 멕시코 해안에 상륙하는 장면이다.
"그 호랑이는 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말이 귀에 걸린다.
이를 회상하는 파이는 아직 살아 있는데 "영원히"라는 말이 어떻게 나올 수가 있지?
호랑이가 실제 있었다면 사람들은 맹수를 잡기 위해 난리가 나야 했다.
하지만 호랑이는 파이의 여행이 끝나는 동시에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며 볼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려는 건지 의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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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바다와 직접 살을 맞대는 생생함과...
호랑이와 매 순간 대치하는 연속된 긴장에 매몰되면서...
나는 그 순간만큼은 이것이 허구의 이야기임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미어캣 섬의 등장은 문득 나를 정신 차리게 만들어 줬다.
일본 선박 회사 조사관의 추궁에 파이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라기에는 너무나도 사실적인 이야기.
다시 뒷통수를 맞는 느낌이였다.
조사관의 말대로 "True"인 이야기였다.
인터뷰어인 작가의 입으로 굳이 이야기 해 주지 않아도...
동물들과 매치되는 인물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고...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가 파이 그 자신임을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그제서야 의아하게 생각되던 점들이 풀렸다.
하아~~~ 이것 보게...뻥이였다...완전 뻥이였어...
그런데 내가 그 동안 접해 왔던 뻥과는 종류가 다르다.
내가 아는 뻥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축소하는 것인데...
이건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뻥이다.
이런 이야기를 인터뷰어에게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는...
뻔뻔스러운 파이의 모습에서 실소가 나왔다.
너무나도 당당한 사기꾼이였다.
인도 사기꾼이 이런 느낌인 건가 싶었다.
부처님도 이런 수법을 사용하시는 인도 사기꾼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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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을 읽어 보면 부처님의 전생이 엄청나게 많다.
요즘 불경이 창작된다면 공룡 시대도 전생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경에 씌여진 이야기가 Fact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경이 엉터리라고 손가락질 하지는 않는다.
기독교를 믿는 이들 중 일부는 성경이 100% Fact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설령 아니라고 해도 성경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내용을 Fact로 여기는 것 자체가...
성경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를 써야 하는 사고 조사관이 정말로 원한 것은 "True"가 아닌 "Fact"였다.
그러나 소설을 써야 하는 영화 속 인터뷰어나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그런 Fact 따위를 알아 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런거 알아서 뭐 우쩌라고?
부상 당한 선원의 사체로 낚시질을 하고...
이에 항의하는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한 요리사를...
분노에 찬 주인공이 다시 살해하여 그 사체로 낚시질 하며 연명하는 이야기...
그냥 내가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면 몇 가지 형태가 나온다..
최대한 좋게 해석해 주면 극한의 재난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로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망망대해의 좁은 공간에서 본색을 보이며 미쳐가는 인간 군상을 보일 수도 있고...
무서운 귀신 나오는 호러 영화 또는 재판에 초점을 맞춘 법정 드리마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찌질한(?) 발상 외 방법으로 이야기에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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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게 미쳐 돌아갔을 현실을 동물로 포장한 우화로 만든다.
그러나 우화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제거했기에 더 잔인하게 만들 수 있다.
하이에나 또는 호랑이는 그 자체로 야수이기에 뭔 짓을 하든 보기에는 편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임을 알아차린다면 이야기는 한 없이 잔인하게 보인다.
그 잔인함 중에서 압권은...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바로 나 자신임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호랑이에게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심심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를 집어 삼켜버리는 괴물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와 나를 파괴시키는 괴물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가?
생이 존재하는 것은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죽음이 존재하는 것은 생이 있기 때문이다.
생과 죽음은 서로를 존재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나의 존재를 구축한다.
무슨 소리인지 어려운가?
영원불멸한 생명을 얻어 살아간다고 한번 상상을 해 보시라.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과 영원히 죽어 있다는 것이 뭐가 다를 것인가?
시간이 무한히 많다는 것과 시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
양립할 수 없는 존재 둘이 뭉치면서 하나의 존재를 구성한다.
엔트로피 법칙과 반 엔트로피 법칙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생명이다.
생명이란 존재 자체는 이미 그 자체로 이율배반이다.
모든 예술은 출발선에서부터 이율배반이며 속임수를 깔고 들어간다.
어디로 갈 곳이 없는 망망대해의 조그마한 구명정에서 무시무시한 호랑이와 동거.
무서운 호랑이의 등장에 걸맞게 상황은 충분히 무시무시하고 잔인하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을 양립시켜 놓은 구도,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둘이 같은 존재라는 결론만 내면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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