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화요일에 KBS2에서는 중국에서 만든 사극 드라마를 방영해 준다. 전에는 삼국지를 했는데 요즘은 초한지를 방영하는 중. 그런데 장사가 안 되는거라 생각했는데 00:30 이라는 극악무도한 시간대에 방송을 한다. 중국 방송국과의 협약 때문인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거의 의무감에 방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시각. 이건 뭐...안 봐도 좋다는 수준인 듯...
그런데 어쩌나...어쩌다 한번 보고는 그냥 퐁당 빠져 버렸다. IP-TV에서 편당 700원 유료 결재까지 해 가며 지난 방송까지 다 챙겨 봤다. 방영 시간대가 워낙 심야라 앞으로도 본방 사수는 못하고 돈 내면서 봐야 할 모양.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밋밋하다. 성우 더빙이라 그런지 원래 드라마가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아기자기하고 극적인 그런 맛은 없다. 심심하다고 할까? 하지만 줄거리 그 자체가 워낙 재미있는 이야기 아닌가?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어쨌든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실존인물들이고 큰 줄거리는 거의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심심한 느낌의 드라마로 접하니 오히려 더 생동감이 느껴진다. 진시황의 행렬을 창문 틈으로 훔쳐 보던 유계(유방)가 나즈막히 "대장부로 태어나서 저런 수레는 타 봐야지" 라며 읖조리는 장면은 참으로 심심한 영상이지만 나에게는 엄청하게 극적으로 느껴졌다. 드라마의 영상이 심심하니 이야기가 가진 원래의 힘이 더 크게 느껴진다.
망탕산으로 숨어 들어가는 장면이나 패현을 차지하는 과정을 보면 유계는 매번 절박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어야 했고 자신의 아내인 여치에게 이러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며 자신을 떠나라고 말하는 장면 역시 영상은 심심하지 그지 없으나 어쩌다가 세상을 정면으로 맞서게 된 유계의 참담함과 비장함이 더욱 크게 전달된다.
유계는 농민의 아들에서 태어나 나이 40이 되도록 고향 패현에서 마을 건달 노릇이나 하다 10년 동안 갑자기 벼락 출세하여 황제의 위치에 오른 인물인만큼 그의 인생사 그 자체보다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 제후가 되고 결국 천하를 움켜쥐는 황제로 변모해 가는 그의 행적은 그 자체로도 이미 입체적이다.
유계에 비해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항적(항우)는 나에게 별 감흥을 주기 못하고 있는데, 이는 드라마에서 항적을 이미 비호감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실제 역사에서 항우의 가장 큰 패착으로 지적되는 것은 진을 멸한 후의 통일 중국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채 그저 천하를 진 통일 이전으로 되돌리고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데 급급했던 것이리라.
아폴론의 구애를 외면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외치며 결국 딱딱한 나무로 굳어 간 다프네처럼, 항적 역시 통일 중국을 경영하는 황제로 성장하지 못한 채 그저 초나라 귀족으로 남기를 자처하였으며 결국 시대의 요구에 호응하지 못하여 석화되어 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그려지는 항적의 모습에서 유아기적인 유치함이 느껴지는 것은 항적의 이러한 행보 때문 일 것. 이 역시 감독이 의도한 바이겠으나 어쨌든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항적의 모습이 이 나에게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일본에서는 항우를 좋게 쳐 주는 경향이 있다고 아는데, 어떻게 보면 항우는 일본의 사무라이가 지향하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 그러나 만약 항우가 역사에서 승리하였다면 중국 대륙은 유럽처럼 작은 나라들이 끊임 없이 서로 대립하며 시끌벅적하게 살아 갔을 것이고 현재 중국이 가진 정체성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이 확립되었을 것이다. 항우는 우희와의 지고지순하고 비극적인 로맨스를 벌이는 순정만화의 주인공까지가 한계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가 중국인 입장에서는 어렵지 않을까?
PS : 나중에 거의 미친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인함을 보여주는 여태후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의 여치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려진다.
서글서글하고 입이 큰 서구적인 외모의 "진란"이라는 배우가 배역을 맡아서 연기하는데...
여치 역의 이 처자가 왜 이리 이뻐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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