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케이블 TV가 아닌 영화관에서 본 최신 개봉 영화.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에 대한 내 글은 지독한 스포일러다.
안 보신 분들을 위해 몇마디 하자면...
모가지 댕강, 팔다리 댕강에 그야말로 피터지는 장면이 곳곳에 있다.
평소 잔인한거 싫으면 피하는 것이 좋을 듯.
하지만 극강으로 잔인하지는 않다.
왠만한 비위를 가졌다면 참고 볼 수 있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봤다.
돈 주고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음
영화를 보신 분만 이하 내용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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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들이 차별받는 소수를 상징한다는 것은 척 보면 다 알 것이다.
영화의 공간적인 배경이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라는 것을 강조하는 도입부의 나레이션...
왜 굳이 강조했었는지 알 만 하지 않은가?
영국이나 미국이 아닌 독일계쯤으로 보이는 주인공 비커스의 영어 악센트.
이것도 역시 감독의 의도를 가진 상징이 분명해 보였는데...
다른 글을 찾아 보니 비커스는 네덜란드계로 추정되고...
그와 숙적인 쿠퍼스는 영국계로 추정된단다.
남아공의 보어인과 영국인을 상징한다는 것.
남아공의 흑인차별 정책인 아라파트헤이트는 보어인이 주도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그것을 주도한 네덜란드계가 흑인의 입장이 되고..
보어전쟁처럼 비커스와 쿠퍼스는 피터지게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남아공의 역사와 상황을 조금 비틀어 놓은 셈.
하지만 내 눈에는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남아공의 역사도 잘 모르고...그냥 넘어가자.
어느 필부가 소명의 부름을 받으나 이를 계속 거부하게 되고...
결국 소명을 받아 들이고 재생하게 되는 것이 스토리의 큰 맥이다.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일반적인 영웅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
거기에서 영화는 계속 타인이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외모만으로도 명확한 인간과 외계인이라는 구분이 존재하고...
거기에서 외계인을 타자화 하는 일에 앞장을 선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인간과 외계인의 중간에 서게 되면서 겪게 되는 혼란.
나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되었던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타자화 되는 공포.
보통의 영화는 인간이 비인간으로 변화되는 상황을 인간의 기준으로 그린다.
어느날 갑자기 주위의 모든 이들이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으로 된다든가...
아니면 좀비나 뱀파이어 등의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것.
대부분의 영화에서 인간은 그들에게 철퇴를 가한다.
방금 전까지 사랑했던 아버지나 연인의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고야 만다.
이 영화는 그 시점을 정반대로 그린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와는 다른 것으로 변화한 주인공.
아내에게 잡동사니로 만든 꽃은 선물하는 그는 분명히 인간.
그는 자신을 여전히 인간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를 괴물로 취급한다.
그의 장인은 그의 신체를 해부하는 것에 전혀 꺼리낌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좀비나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주인공들은 정당해 보이지만..
사위의 심장을 파내려는 주인공의 장인은 비정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 둘 사이에 무슨 차이점이 있는 것인가?
우리와 타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이렇게 무섭다.
아우슈비츠의 학살자들도 그들의 기준에서 자신은 정당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그 기준에 맞서는 자.
아마도 역사상에서 이런 캐릭터를 가진 가장 유명한 인물은 예수일 것이다.
죽음이 기다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간 이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응답하는 이들.
그리고 그 소명에 응답하고 재생했던 이들.
그들은 영웅이라 불린다.
인간과 외계인을 가르는 그 기준은 대단히 타당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 역시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며...
그 기준에 정면으로 맞설 것을 소명으로 받은 것이 바로 주인공 비커스.
비커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거부한다.
자신에게 부여된 잠재적인 힘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말이다.
날아가는 총알을 거두어 들여 상대방으로 날릴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진 로봇에 탑승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커스는 쿠퍼스를 보고 도망치기에 급급하다.
일제시대나 6.25 전후의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주인공은 그가 가진 한계에 절망하고 세상을 등져야 했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는 변명과 푸념이 대부분...
비커스처럼 그렇게 도망가기 바빴던 시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비커스는 도망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시선에 맞선다.
영화에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간의 정서를 끌어 들이지만...
뭐가 되었던 비커스는 자신을 드러내고 맞선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자신이 부릴 수 있는 힘을 온전히 펼치지 못하지만...
마지막까지 크리스토퍼에게 날아가는 로켓을 잡아내면서 소명에 부응한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까지 힘을 다한 후 맞이하는 재생의 시간.
다른 프런들이 쿠퍼스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은 좀 아니다 싶었지만...
아무튼 그는 다른 모습으로 재생하게 된다.
비커스는 기존의 인간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그때서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
외계인이 되면서야 비로서 인간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처럼 보이지만...
원래 인간이라는 것이 아이러니 덩어리 아니겠는가.
처음에 본 외계인은 차별받는 소수의 상징처럼 보였지만...
영화를 볼수록 느낀 것은 저것이 바로 내 안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통제불가능한 막대한 힘을 가진 존재.
언제든 나를 찢어 놓을 수 있는 존재이면서 또한 나에게 막대한 힘을 줄 수 있는 존재.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내 자신과 내 안의 존재를 갈라 놓으려 하지만...
결국 대면하지 않으면 내가 온전한 내 자신으로 될 수 없는 존재.
마지막 장면에서, 아마도 비커스로 추정되는 꽃을 든 외계인의 모습에서...
내 자신의 무의식에 가둬놓은 존재를 대면한 결과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흉측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여전히 내가 내 자신일 수 있는 경지.
평생을 가도 도달 할 수 있는 경지일지는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가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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