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아니면 모"....나에게는 "모"가 된 영화.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 넷플릭스에 잠깐 소개된 내용에 로만 폴란스키 사건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는 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비극일 것이고 이걸 영화화 한다면 왠지 모르게 불편한 내용이 가득할 것 같았다. 나중에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모 아니면 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라도 어떠하랴 하면서 봤는데 결과적으로 나에게 이 영화는 "모"이다.

개인적으로 쿠엔틴 타란티노가 거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봤던 그의 영화는 유혈낭자로 채워진 화면에 공허한 장난끼만 가득했다.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그냥 킬링타임 영화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게 된 "바스터즈:거친녀석들"을 내내 몰입해서 봤고 도대체 감독이 누군가 싶어서 알아 본 후 쿠엔틴 타란티노를 다시 보게 되었다. 바스터즈 역시 공허한 농담으로 가득찬 영화였지만 타란티노 감독은 사람 눈을  잡아 놓는 재주가 있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2시간 30분 정도 되는데 앞의 2시간은 마지막 30분을 위한 빌드업 과정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가족이 비극적으로 살해 당한 건 알았지만 실제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실제 사건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등장 케릭터들이 막판에 그 사건으로 결집하게 될 것이 눈에 보이긴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들이 어떤 역할로 비극적인 사건에 엮이게 될지 알 수가 없어 보는 내내 긴장감이 들었다.

 

로만 폴란스키의 사건에 대해  모르는 관객이라면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모르니 러닝 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특히 "샤론 테이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이 다 그랬을 것이다. 


이후는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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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터즈"를 볼 때의 쾌감이 다시 들었다. 히틀러와 나치 고위 인사들을 파리의 극장에서 폭사 시켰던 것처럼 브래드 피트가 분한 "클리프 부스"와 그의 맹견 "브랜디"가 찰스 맨스 일당을 폴란스키의 옆집에서 그야말로 박살냈다. 막판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분한 "릭 달튼"이 화염방사기로 범인을 문자 그대로 조져 버렸을 때 쿠엔틴 타란티노의 참혹한 연출이 그렇게 시원해 보일 수가 없다. (실제 벌어졌던 사건이 훨씬 더 끔찍하다)

극 중에서 "클리프 부스"는 전쟁영웅으로 불렸고 막판의 인정사정 없는 그의 완력을 보고 있으니 "바스터즈"의 "알도 레인"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모르긴 하지만 "클리프 부스"의 말투가 왠지 "알도 레인"의 미국 남부 억양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알도 레인"이 제대 후 스턴트맨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종반부에서 "릭 달튼"이 "제이 세브링"에게 차분하고 공손한 태도로 사건을 설명해 주는 장면은 가슴 뭉클했다. "샤론 테이트"가 인터폰을 통해 목소리를 전하며 문을 열어 주는 장면은 흡사 쿠엔틴 타란티노가 희생자들의 혼령에게 진혼제를 올리고 이에 원혼들이 위로 받는 듯한 모습이었다. 허접한 농담만 늘어 놓는 줄 알았던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이런 진지한 모습이 있었다.

 

"릭 달튼"으로 대표되는 당시 할리우드의 기성 세력이 영화처럼 살인자들로부터 그들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듯 했다. "클리프 부스" 같은 마초적인 스턴트맨들이 득시글한 영화계가 그들을 이렇게 지켰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듯 했다. 두 시간 동안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의 캐릭터를 열심히 깔아 둔 덕에 종반부의 진혼장면이 돋보일 수 있었다.

이소룡에 대한 박한 평가가 거슬리긴 한다. 굳이 "이소룡"을 언급 안 할 수도 있었는데 언급해 준 것 자체가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이소룡"은 당시 할리우드에서 중요한 인물이긴 했나 보다. 하지만 "클리프 부스"의 강인함을 깔아 두기 위해 굳이 "이소룡"을 그렇게 써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불필요한 장면이었다.

"클리프 부스"가 미성년자인 "푸시캣"의 유혹을 거절하는 장면은 미성년자 추행으로 악명 높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을 쿠엔틴 타란티노가 돌려 까는 것이었다. 타란티노는 "샤론 테이트"를 비롯한 희생자들의 영령을 달래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폴란스키 감독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것 같지 않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페미니즘에도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 듯 하다. 부정적으로 그려진 히피 집단은 여초 집단이었으며  살인을 시도했던 3명의 히피 중에서 2명이 여성이었다. 그 중 1명은 "클리프 부스"에게 처참하게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죽었으며 나머지 1명은 "릭 달튼"에게 화형 당했다. 내가 볼 때는 여초에 대한 감독의 감정이 들어가 있는 장면이다.

 

보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조연들의 얼굴이 왠지 낯 익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캐스팅이 어마무지 했네. "알 파치노"와 "다코타 패닝"은 정말 몰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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