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하면 울지 않을 수 없는 드라마.
매번 한편 한편 보는 것이 고역이었다.
16편 내내 한번도 울지 않을 이가 있긴 있을라나?
보고 나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글을 남겨 보는데,
쓰다 보니 작품에 대한 칭찬은 거의 없고,
보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주로 남게 되었다.
이리 저리 내 나름대로 난도질만 한 셈이 되었네.
어쨌든,
"나의 아저씨" 이후로 가장 인상적인 드라마였음.
내가 봤던 드라마 중에서 역대 순위를 차지할 듯.
분명히 잘 만들었고 괜찮은 작품이다.
간만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이하 스포일러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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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속사포 제주도 방언 대사들을 거의 알아 듣지 못해서 짜증이 났다. 제주 배경의 "우리들의 블루스"도 이렇지는 않았다. 토박이가 아닌 피난민으로 제주에 들어와 살았던 인물들의 대사도 표준말이긴 했지만 알아 듣기가 힘들었다. 요즘 어투가 아니라 50~60년대 어투라서 그랬을라나? 오히려 사랑의 도피처였던 부산 사투리가 더 알아 듣기 편했다. 공중파로 방영 되었다면 초반 시청률이 박살 났을 듯. 넷플릭스 플랫폼이라 어차피 번역 자막이 제공될테니 이런 선택을 한 듯 했다. 글로벌 플랫폼이기에 역설적으로 지극히 로컬적인 요소를 사용할 수 있었던 듯 하다.
왠만한 드라마에서는 꽤 비중있는 역할을 할 엄청난 배우들을 엄청나게 때려 넣었다. 연기 구멍이 없다는 평들이 많은데 그럴 수 밖에 없다. 김성령을 저렇게 잠깐 쓰는게 말이 되나. 찐 제주 사람을 섭외한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찐 서울사람 원로배우 박병호였다. 정진영의 페르소나인 정해균이 꼴랑 이것만 나온다고? 김금순은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 인상 깊은 악당이었는데 그 이미지를 꼴랑 한 회차에서 잘 보여 줬다. 조연 출연진만 보면 내 인생 최대의 블럭버스터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화려한 출연진 중에서 내가 아는 제주 출신 배우들은 이 드라마에 한 명도 없다.
박병호는 1937년 생으로 거의 90세이다. 스님 역할로는 국민배우셨는데 이제는 분장이 필요 없는 진짜 할아버지가 되셨네. 하도 매체에서 보이지 않아 돌아가신 줄 알았다. 이 분도 나이가 드니 얼굴이 변하는구나. 진짜 못 알아 봤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안동에 제주도 항구를 세트로 구현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바다와는 아무 인연이 없을 그 내륙 안동땅에 배를 옮겨 놓고 물 채워 넣어 띄우고 바다는 CG 처리 했다. 그러면서도 고증 및 디테일을 깨알 같이 맞춰서 구현해 놓았다고 한다. 제작비 600억이면 이런 짓도 할 수 있었구나. 조연 배우들의 규모 뿐만 아니라 세트 구성 규모로도 역대급 블럭버스터다. 글로벌 컨텐츠이기에 제주 방언으로 속사포 대사를 쏘아 내고, 제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제주 출신 배우가 없으며, 항구씬은 내륙 안동에서 구현했다. 이 드라마는 매우 역설적이다. 진짜 같지만 다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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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오애순은 1951년 생이고 1회에서 오애순은 10세로 나온다. 이 때 10세는 한국나이로 10세이고 1회에서 3.15 부정선거가 신문기사 나왔으므로 드라마의 시작은 1960년이다. 그 때부터 2025년 현재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므로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한국전쟁 이후의 대한민국 현대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초점은 3대에 걸친 가족사에 집중 되어 있을 뿐 시대적 상황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시대 배경은 그저 주인공 가족에게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내러티브 강화에만 사용 될 뿐이다.
극 중 양금명은 1987년 대학에 입학한다. 1987년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한 6월 항쟁이 벌어진 해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서울대 87학번은 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 87학번 양금명이라는 설정은 그저 아버지 양관식이 데모현장에서 딸이 다칠까봐 우려하는 걱정거리 소재로 쓰일 뿐이다. 즉 서울대 87학번은 양금명이 처한 상황에 대한 배경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87학번이 되기 위해서는 68년생이 되어야 했고 그래서 1951년생 오애순은 18세에 양금명을 출산해야 했다. 이런 것 계산한다고 감독과 작가는 머리가 꽤 아팠을 듯 하다.
이건 감독의 전작들을 봐도 마찬가지다. "시그널"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과거 실제 벌어졌던 범죄들을 참고하긴 했지만 시대 상황에 대한 정치적 견해는 거의 드러내지 않았고 서스펜스를 강화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나의 아저씨"도 분위기는 제법 무거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무대를 제한했고 사회적 메시지를 내 놓지는 않았다. "미생"은 원작 웹툰만 보고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드라마 미생도 개인적인 영역으로 무대가 제한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감독은 휼륭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는 하는데 개인적으로 왠지 일본적인 느낌을 받는다. 굉장히 정교하지만 무대 영역은 개인적인 차원으로 철저히 제한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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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 장면은 나에게는 그야말로 현실이었다. 90년대 옛날이라 그렇고 요즘 시대에는 안 그럴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 잘난 아드님을 둔 아머니의 속마음은 영범이 엄마와 별 다르지 않다. 상견례에서 엎어지고 그 다음 단계인 혼수예단에서 엎어지고 심지어 결혼식 전날에도 엎어지는 경우는 지금도 많다. 자식의 인생을 오롯이 자식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애초에 상견례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 드라마의 나레이션 그대로 그들은 앞가림을 못했고 부모가 개입했다.
박충섭과 양금명이 연애를 하게 될 때 나레이션으로 "어른의 사랑"을 운운하는 건 내가 듣기에 야한 사랑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성인 간 연애를 했다는 것으로 들렸다. 앞가림을 하는 어른들의 사랑이니 상견례 따위는 필요하지 않으며 극 중에서도 상견례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어른의 사랑"이었으니 부모와 상관없이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했을 것이다. 박충섭의 어머니가 감동적인 자필 편지를 쓸 필요도 없었고 술도 못 마시는 박충섭이 쎈 술 마시는 제주에서 양관식에게 애교 부릴 필요도 없다. 그 장면들은 그냥 보기 좋은 장식에 불과한 것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제주 사람들은 술이 쎄다. 심지어 여자도 술이 쎄다. 평소에 술 마실 일이 매우 많다보니 쎄진 듯. 이너서클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술 자리로 많이 한다. 애처가 "양관식"도 술자리는 안 할 수 없었을 듯. 양은명이 매일 술자리를 핑계로 찹쌀떡을 팔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박충섭의 맥주에 양금명이 괜히 코웃음 치는 것이 아니었음. 요즘은 그런 경향이 많이 줄은 듯 하다.
하지만 감독은 어차피 가짜인 드라마를 현실인 듯 꾸며 놓고 관객을 설득하는 능력치가 높다. 속마음은 영범이 엄마와 다들 도찐개찐이지만 대 놓고 예비 며느리에게 그런 막말을 하는 예비 시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거의 없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그 때 그 시절에는 그런 소리하는 예비 시어미니가 종종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런 생각이 들도록 그 이전부터 화면을 굉장히 사실적인 디테일로 채워 넣는다. "어른의 사랑"이란 나레이션으로 이미 박충섭과 양금명의 결혼은 결정 되었지만 감독은 굳이 쓸데 없는 예쁜 장식을 만들어서 관객에게 꾸역 꾸역 들이민다. 그렇게 해야 관객을 설득하기 쉽고 그래야 장사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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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솜씨가 좋다. "시그널"을 연출했던 감독답게 오애순이 납치될 뻔했던 부분의 이야기는 갑자기 엄청난 서스펜스 스릴러가 되어 버린다. 잠깐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분위기 몰더니 저승 잠자리를 등장시켜 애순을 홀리듯 관객을 홀린다. 이 양반은 관객을 홀리는 것에 뭔가 도가 텄다. 어딘지 뜬금 없다 싶은 느낌은 드는데 호로록 뭔가 씌운 듯 이야기에 끌려 간다.
그리고 작가는 평소 주변을 꼼꼼히 관찰하고 사소한 것도 넘기지 않는 듯 하다. 일상에서도 항상 데이터를 수집해 두고 있는 듯. 종합 병원에서 느끼는 그 불편함을 혼자 남겨질 이에 대한 슬픔으로 연결 시키는 것에 공감이 가면서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혔다. 실제 병원에서 촬영했을 것 같은데 장소를 제공한 병원은 손해 볼 짓을 한 셈이 되었다. 넷플릭스 비영어권 1위 드라마에 이런 내용이 나왔으니 보건복지부 및 대형병원 담당자에게 업무가 떨어질 듯 하다. 평소 잘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누군가 데이터로 수집해 두었다가 이런 식으로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작정하고 관객의 눈물을 뽑아 내겠다고 만들어 낸 것에 울지 않을 수가 없다. 가짜를 진짜 현실인 양 포장할 수 있는 극강의 능력치를 동원해서 눈물을 뽑을 수 있는 장치란 장치들은 모두 동원했다. "천애고아"도 등장하고 애틋한 모성애, 부성애 당연히 나와주고 암튼 눈물 뺄 수 있는 장치란 장치는 다 등장한다.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 영역에 대해 무대를 제한해 놓으니 그 장치들 중 어느 하나라도 관객은 감정이입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자식을 잃는 슬픔을 다루는 건 선을 넘는 반칙이다.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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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식을 잃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조차 싫다. 도대체 그 슬픔이 얼마나 클 것인지 상상하는 것도 너무나 끔찍하다.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경험했었던 현실 속 지옥은 서울대 병원 소아과 입원병동이었다. 난 그곳에서 근무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끔찍한 곳을 어떻게 생활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을까. 엄청난 사명감과 강철 같은 멘탈이 없다면 그런 곳에서 버텨 낼 수 없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드라마를 봤는데 1막(1회/2회/3회)에서 아들레미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본 후 2막에서 아들이 2명 생기는 것을 보자 설마 설마 싶어서 회차를 진행하기 무서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가짜인 드라마라지만 생각하기 조차 싫은 상황을 디테일 극강의 화면을 통해 접하기는 싫었다. 동명이의 죽음을 확인하는 장면은 매우 정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그건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다. 숨도 내 쉴 수 없는 고요한 정적이 깔린다. 애순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려졌지만 그 이전에 악을 지를대로 질러서 탈진한 상태였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에서 "복수는 나의 것"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결국 끝을 못 봤다. "친절한 금자씨"는 끝까지 보긴 했지만 그 역시 너무도 끔찍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올드 보이"도 결국은 자식을 잃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기에 박찬욱은 그것을 복수의 원인 또는 결과로 삼는 강렬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솜씨 좋은 양반들이 그걸 21세기 최첨단 기법을 동원해서 신파로 만들었다. 안 울 수가 없다. 그것도 대를 건너서 할머니는 아들을 잃었고 손녀도 아들을 잃었다. 두 파도가 만나서 큰 파도라 되는 형국이다. 울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반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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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관통한 1951년 생 여성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니까 당연히 페미니즘적 색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남성의 일생을 그리는 시도는 영화 "국제시장"도 있었고 정치사, 경제사를 논하는 곳에서도 항상 남성이 주인공이었다. 이제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이런 드라마 정도는 나와줘도 된다. 무대를 개인적 영역으로 제한시키고 디테일을 강조하는 감독의 장기를 볼 때 여성 관점의 개인적 가족사가 눈물 뽑기에는 더 적절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게 더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가. 작품성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흥행으로 평가 받으며 싫든 좋든 지금 현 시대는 여성에게 방점이 있는 시대다.
"양관식"이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케릭터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땐 꼭 그렇지도 않다. "양관식"은 1951년 생이고 "부상길"은 대충 1940년대 초반 생이다. 현 시점에서 70~80대 남성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내가 아는 경험에서 다들 어느 정도는 양관식이고 동시에 어느 정도는 부상길이었다. 그리고 현 시점의 젊은 아버지들도 다들 어느 정도는 양관식이며 부상길이다. 다만 요즘 시대는 "양관식"에 더 높은 값을 쳐 줄 뿐이다. 다들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워라벨"이라는 단어가 먹히는 사회가 되었다.
작가가 "양관식"을 더 쳐주기 위해 애순이 할머니를 통해 배 한척을 안겼지만 만약 애순이 할머니가 배를 사 주지 않았다면? 지독한 가난에 당장의 끼니를 걱정했을 것이고 물리적으로 버티지 못해 가족은 해체되었을 것이다. 주렁주렁 아이들은 낳았는데 대책 없이 선장에게 덤비는 건 어리석었다. "양관식"은 사람 좋기만 한 무능한 아버지로 평가되었을 것이고 한 때 이런 아버지가 최악의 아버지로 여겨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름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지금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니 "부상길"보다는 "양관식"을 더 쳐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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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길은 가부장적이고 계집질에 아랫사람 갑질하는 빌런으로 나온다. 하지만 가정 폭력으로 비친 건 시비 끝에 사고가 난 것이었다. 계집질은 쉴드 쳐 주기 어렵지만 여자에 빠져 가족을 버리지는 않았다. 가오 좋아하고 감투 좋아하는 속 좁은 속물이긴 했으나 그는 휴일에도 부지런히 배 띄워 생업에 종사했으며 그러면서도 사회적 인맥도 잘 관리했다. 수전노 소리 들을 정도로 인색했지만 상속 받은 재산을 나름 관리했으며 더불어 필요한 경우 투자는 과감했다. 인맥을 동원해 적절한 융통성(?)도 발휘할 수 있었고 상황 판단도 빨랐다. 나름 고군분투 하며 살았던 아버지다.
"양관식"과 대비시키기 위해 "부상길"을 부정적으로 묘사해 놓긴 했지만, 다르게 보자면 그는 꽤 유능한 아버지였고 실제 현실에서 그건 가장으로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양금명이 아이 낳으면 돈 많이 든다고 불평하는 와중에 조카들 장난감들을 보면서 재들 할아버지는 부자라서 저렇다고 말하는 것에 "양관식"이 움찔하는 것은 그 발언이 가혹할지언정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만 "부상길"은 정작 그의 가족들에게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드라마에서 언급한대로 뿌린대로 거둔 것도 있지만 시대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상의 아버지는 양관식과 부상길의 좋은 면만 합쳐 놓은 케릭터일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아버지는 양관식과 부상길의 나쁜 면만 합쳐 놓은 것이겠지. 드라마에서 나온 내용으로만 보면 부상길 그도 폭싹 수고하며 살았던 아버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시대가 이렇게 된 것을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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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4막 (13회/14회/15회/16회)는 먹먹한 느낌은 있었을 뿐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지는 않았다. 극의 흐름상 세대가 바뀌니까 돌아가시는 분이 많을 것이고 1막 1회 처음 시작할 때 2025년 현 시점에서 이미 양관식은 세상에 없음을 암시해 놓았으니 양관식과 오애순이 죽음으로 헤어질 것도 예상하던 터였다. 다만 양관식과 오애순이 기껏 50대에 접어 들었을 뿐인데 분장은 60대 이상으로 해 놓아서 짜증이 났다. 저렇게 늙은 모습을 할 나이가 아니란 말이야.
말년에 잘 풀린다는 내용인데 슬퍼할 일이 뭐 있으랴. 다만 "호사다마"일 것이 뻔해서 잘 풀리면 풀릴수록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딸래미가 큰 맘 먹고 서비스 해 준 건강검진에서 암 진단이 나온다. 신파에서는 암이라면 백혈병인데 이게 이쁘고 젋은 여자 주인공의 전유물이니까 나이 먹은 아저씨에게 쓸 수는 없어서 백혈병의 일종인 생소한 암으로 바뀌었다. 슬픈 장면이지만 의사 입을 통해 굳이 백혈병과 비슷한 건데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설명을 하는 것을 들으니 작가가 "양관식"을 어떤 암으로 죽일까 고민하며 백혈병을 키워드로 암을 검색하는 모습이 연상되며 살짝 웃음이 나왔다.
다만 죽기 전에 보는 마지막 가족들의 모습이 어떨까에 대해서는 슬프다기 보다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고통이 심하다면 그냥 차라리 나 혼자 독방에서 죽고 싶다. 고통 없이 편히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가족들이 미안하다며 울고 불고 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미안해 할 것 같으면 이 판국에 그러지 말고 진작에 잘 하지 그랬어. 울고 불고 난리 치는 건 나 죽은 다음에나 하면 되지 내 마지막 순간에 그런 꼴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냥 감사의 인사를 받으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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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4막은 몇몇 장면에서 먹먹하고 슬프긴 했다. 그 풍채 놓으셨던 아버지가 암에 걸려 삐쩍 마른 모습을 보면 어느 자식인들 눈물이 나지 않으랴. 작가나 감독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었던 구체적인 경험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인 경험이 있으면 오히려 공감력이 발휘되지 않는 것인가? 먹먹하긴 해도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울고 짜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냥 먹먹할 뿐 울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용이 진행되며 해피엔딩으로 치달아 갈수록 뭔가 닭살 돋고 징글징글한 느낌이 들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 여덞 난쟁이들이 모여서 대박 식당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굳이 그렇게 메가스터디 비슷한 큰 회사를 만들어서 큰 성공을 이루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무대를 꽉 채우다가 때가 되었을 때 가면 그 뿐이다. 그 무대가 컸던 작았던 그건 내 몫이 아니다.
충섭과 금명이 만나서 "어른의 사랑"을 했다고 나레이션까지 해 놓고는 굳이 그걸 화면으로 구성해서 해피한 장면을 꾸역 꾸역 들이댄 것처럼 오애순의 일생을 성공한 것으로 확정하기 위해 굳이 꾸역 꾸역 그런 장면들을 집어 넣은 것은 나에게는 그냥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물질적으로 대박 식당을 만들어서 졸부가 되어도 좋고 아니라도 사실 큰 상관은 없다. 그냥 나에게 주어졌던 달란트를 다시 이 세상에 그대로 토해 놓고 가면 그 뿐이다. 역시 이러니 저리니 해도 사람들은 결국은 물질적 성공을 좋아한다고 제작진은 판단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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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광례의 환생인 듯한 출판사 편집장의 모습은 나에게는 정말 토가 나올 정도의 최고 닭살이었다. 예전에 "클라우드 아틀라스" 영화에서도 관객들이 환생에 대해 되지도 않을 소리들을 하더니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스킨스쿠버 하는 사진도 그렇고 때 마침 직원이 사온 초밥도 그렇고 모든 화면은 대 놓고 광례의 환생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관객 중에서 이걸 곧이 곧대로 보고는 진짜 광례의 환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텐데 굳이 그렇게 해야 했을까.
태어날 때 받은 달란트를 이 세상에 내려 놓고 때가 되었을 때 가면 그 뿐이다. 내가 남긴 달란트가 어떻게 되든 그건 나와 전혀 상관 없다. 그것이 인류를 멸망시키든 화성이주를 가능케 하든 쓰레기통에 쳐박히든 뭐가 어떻게 되든 그건 내 이후를 살아갈 사람들의 몫이다. 내 후손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 없다. 60억 인구의 근본은 결국 하나다. 나는 그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졌던 것을 이 세상에 남겨 놓기만 하면 된다. 나는 이미 쏘아진 화살이고 그게 과녁이든 아니든 날아가면 그 뿐이다.
오애순도 분명히 그 이전 세대가 그녀에게 전해준 달란트가 있었고 오애순이 세상에 내 놓은 달란트는 "시"였다. 그녀는 그걸 세상에 내 놓은 것으로 그녀가 할 일을 다 했다. 그걸 어떻게 받을지는 그 다음의 세대가 결정할 일이다. 그 다음 세대가 그녀의 달란트를 쓸모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장한 것"이 되고 아니라면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광례 모습의 편집장은 인류의 세대 간 연속성을 의미할 뿐 개체 수준의 연속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 나는 여긴다.)
다음 세대가 오애순의 달란트는 인정하든 말든 오애순은 그걸 세상에 내 놓을 의무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그 달란트는 오애순이 아니라 신이 주신 거니까. 신의 의도를 오애순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부처의 말을 따르면 환생은 안 하는 것이 최고다. 하지만 다들 더 좋은 생의 환생을 원한다. 다음 생이 아무리 더 좋아봐야 어차피 고해인데 말이다. 다들 말들을 지독하게 안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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