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영화를 볼 때마다 감독이 초고급 또라이 변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치밀한 범죄 영화와 사랑에 대한 로맨스 영화를 한 영화에 우겨 넣은 결과물을 보면 그의 재주는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듯.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탕웨이를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탕웨이를 캐스팅 하려고 영화를 만든 것 아닌가 싶다. 탕웨이가 아니라면 이 영화는 존재할 수 없는 영화다.  영화 "아는 여자"의 이나영이 그러하듯이 이 영화에서 탕웨이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지금까지 봤던 박찬욱 감독의 영상 중에서 가장 정적인 영화이지만 팽팽한 긴장감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봤다. 탕웨이가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그녀의 모국인 중국에서 이런 수준의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아마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에 대해서는 기대가 전혀 없다.)

이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데칼코마니처럼 반전 대칭되어 있다. 인물들의 성격과 상황은 모두 반전되며 배경도 산과 바다로 나뉘어 대칭된다. 전반부 고경표와 후반부 김신영은 산과 바다처럼 완전히 반대이지만 어느 쪽 입장이 진실에 부합했는지는 끝까지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정은희가 불렀던 "안개"처럼 모든 것은 모호하며 실체적 진실은 관객에게 끝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극 중에서 박해일의 추리는 물적 근거가 있고 정황상 개연성도 높아서 진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입증 되지 않은 박해일의 뇌피셜일 뿐이다.  탕웨이가 인정한 살인은 친모의 안락사 1건 외에는 없다. 그는 진실을 보려고 노력한다지만 눈에 뭐가 씌인 것처럼 모든 것은 흐릿할 뿐이다.

 

전반부에서 박해일은 확신에 찬 자신의 견해에 의거하여 탕웨이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끝냈고 후반부에서는 처음부터 탕웨이를 범인으로 상정하고 탕웨이를 범인으로 확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박해일의 확신이 100%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공교로운 일이 생긴 아니라 탕웨이가 말한대로 그저 불쌍한 여자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감독은 박해일의 입장을 관객에게 이입시키고는 막판에 관객을 벙찌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관객을 가지고 놀았다)

탕웨이는 전반부에 놀이터 모래를 바스켓으로 파서 까마귀를 묻었던 것처럼  후반부에 바스켓으로 모래를 파서 자신을 바다에 묻어 버린다. 또한 까마귀를 묻으며 읊조리던 소망을 자신을 묻어가며 다시 읊조리고 있었다. 올드보이에서 혀를 자른 것처럼 박찬욱은 막판에 눈 뜨고는 못 볼 너무나도 자극적인 화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하는 가학적인 경향이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의 마지막 장면을 난 결국 보지 못했다)

박해일이 깊은 바다에 버리라고 했던 전화기에 담긴 내용은 뭐가 되었든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박해일은 이를 바다에 던져 사랑을 지우고자 했으나 탕웨이는 그 자신을 바다에 던져 박해일에게 현장 사진조차 없는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몇 번의 파도에 공들여 만든 모래 구조물이  흔적도 사라지는 광경은 다들 한번쯤 봤을 것이다. 탕웨이의 마지막 장면은 접시물에 코박고 죽는 듯한 설정이지만 무엇이든 삼킬 수 있는 거대한 심연의 바다를 이런 영상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오싹함을 느꼈다. 접시물도 심연이 될 수 있다.

보고 나니 탕웨이만 기억에 남는다. 묘하게도 박해일이 출연했던 "은교"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은교와 마찬가지로 탕웨이가 분한 송서래는 남자에게 통제 불가능한 존재였다. 박해일은 최연소 경감 타이틀을 보유할만큼 높은 능력치를 보유했고 그에 어울리는 품위도 갖췄다. 탕웨이의 평가대로 든든한 남자였지만 그 든든한 남자를 붕괴시킬 수 있는 요물이 바로 탕웨이었다. 박찬욱은 최소한 페미니스트 영화 감독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정현이 안전 관리자라는 설정은 그럴듯 하다. 이정현은 부부관계마저도 건강 안전을 지키는 수단에 불과 했다. 탕웨이가 박해일을 찾아 오면서 박해일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고 이정현은 박해일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수컷에게 사랑은 언제나 위험한 것이다. 사마귀 수컷이나 거미 수컷이 그렇듯이

 

PS : 박찬욱은 아이폰의 골수팬 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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