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평 : 할 말이 없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결혼하면 평생 진공관 엠프를 소유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혼 직전에 눈 감고 지른 물건이다. 2000년 낙원에서 구입했다. 기억에 200만원 정도를 줬던 듯 하다. 사진은 2004년에 찍어 둔 것.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냐?"라는 말이 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최소 한번은 찍어 먹어 봐야 한다는 신념(?)을 확실하게 심어준 물건이다. 결론적으로 방구석 기타리스트에게 진공관 엠프는 전혀 쓸모 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내게 확실하게 각인 시켰지만 이 물건을 지르지 않았다면 지금도 진공관 엠프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마샬 엠프는 대략 10년 주기로 이름이 바뀌는 경향이 있는지라 이 놈의 전 세대 제품이 JCM-800 (80년대) 이고 이 놈의 다음 세대가 JCM-2000(2000년대) 이었다. 80년대는 락과 메탈이 잘 나갔던 시절인만큼 많은 밴드들이 JCM-800을 사용했고 그만큼 JCM-800은 명기로 알려져 있지만 JCM-900은 그만큼의 명성을 잇지는 못했다. 그리고 JCM-2000은 그 보다 더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 하다. 악기시장은 묘한 구석이 있어서 제조사는 나름 노력하여 개선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선을 하면 할수록 인기가 없어지는 경향이 있다.

 

 구입 당시 새 제품으로 마샬 진공관 엠프를 구입한다고 하면 이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몇 년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써 보지를 못했으니 소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신혼 시절 전세 기간 만료에 따라 최소 2년에 한번씩 이사를 다녔는데 이 놈은 이삿짐 센터에 맡기기가 불안해서 매번 내가 따로 챙겨서 이사를 다녔다. 속된 말로 허벌나게 무거워서 이사 때마다 허리 부러질 듯한 경험을 매번 했다.

 

요즘 진공관 엠프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진공관 엠프의 소리를 제대로 느껴보려면 볼륨을 어느 정도 키워야 한다.  Gain을 키워 봐야 볼륨을 작게 해 놓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볼륨을 최소화 한 상태에서 내 귀에는 나름 크런치 톤처럼 들리게 Gain을 잡고 스티브 레이번의 "스커틀 버팅"을 아주 어설프게 흉내 낸 것을 마이크를 대고 녹음을 해 본 적이 있는데 녹음 소리는 완전 쇠줄 챙챙 거리는 기타 생톤이었다. 어느 정도 볼륨을 키워 놓아야 제 소리가 난다.

 

그런데 이 놈은 볼륨을 아주 작게 해 놓아도 소리에서 느껴지는 압력이 환장할 정도로 쎄다. 볼륨을 작게 하고 그저 기타 줄 하나를 살짝 툭 하고 건드렸을 뿐인데 당시 2~3살 된 아들 녀석이 JCM-900에서 나오는 소리에 놀라서 거의 경기 일으킬 뻔한 이후로는 집에서는 절대로 JCM-900을 켜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하고 집안에 장식용으로 몇 년을 놔 두었다.

 

결국 아이들이 크면서 공간이 부족해지자 팔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짐은 늘어 가고 공간은 점점 좁아지는데 JCM-900 때문에 방 하나를 온전하게 사용할 수 없던 상태가 되어 버렸다. 집 값을 생각하면 방 하나와 200만원짜리 JCM-900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는 너무도 명확했다. Mule 중고장터에 내 놓았더니 바로 와서 채 갔다. 그 동안 보관만 했던 셈이라 상태가 좋아서 구매자가 값을 더 깎지도 않고 좋아라 하며 들고 갔다. 아쉽기는 했지만 이 경험으로 진공관 엠프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없어졌다.

 

JCM-900을 팔아 치운 돈으로 아이패드와 아포지잼 그리고 게러지밴드를 구입해서 나름 즐거운 취미 생활을 즐겼다. 해 보니 쓰지도 못하는 진공관 엠프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 보다는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대안을 찾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 비록 나에게는 과하다고 생각되지만 지금은 헬릭스 플로어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 실행 가능한 사안이라야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 의미 있다. 그런 면에서 아파트나 일반 주택에서 취미로 기타치는 사람에게 진공관 엠프는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과한 물건이 아니라 그냥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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