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조선을 병합했던 과정들을 알고보니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보다 일본은 꽤 많은 노력을 들였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싱겁게 승리를 거뒀다고 알았는데 전쟁 전후 사정을 살펴보니 당시 일본은 꽤 큰 마음을 먹고 일을 저질렀다. 일본이 지원한 갑신정변으로 청나라 군대가 개입했을 때 일본은 꼬리를 내리고 텐진조약을 맺었으며 이후 1886년 친선으로 나가사키에 방문했던 청나라 해군이 난동을 부려 수십명이 사망했을 때에도 일본은 저자세를 취했다. 당시 청나라 북양함대에는 세계 최대의 전함이 2척이나 있었고 일본 해군의 화력은 북양함대에 미치지 못했다. 나가사키 난동 이후 일본은 화력보다는 기동력에 중점을, 즉 큰 전함보다는 작은 고속순양함을 주력으로 삼는 해군을 양성했고 8년 후 청일전쟁에서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승리했다.

 

청일전쟁에서 챙겼던 전쟁배상금은 일본 정부 예산의 몇 배에 달했다. 만약 패하여 전쟁배상금을 물어야 했다면 일본 정부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외국 조선땅에서 벌어진 전쟁이었지만 일본은 국운을 걸고 전쟁에 임했다. 청일전쟁 3년 전에 일본을 방문했던 러시아 황태자가 흉기로 피습 당하는 "오쓰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때 천황이 직접 사죄했음은 물론이고 온 국민이 사죄 캠페인을 벌였고 일반여성이 사죄의 의미로 자결하는 생쑈를 했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에게 벌벌 떨었고 청일 전쟁 승리 후에도 러시아/프랑스/독일 3국 간섭에 굴복했다. 러일전쟁은 청일전쟁보다 더 큰 결심을 해야 했고 실제 꽤 고전했으며 미국의 중재에 바짝 엎드려서 전쟁배상금을 받지 못해 전후 경제불황에 시달렸다.

 

"빨리 빨리"가 한국사람만의 전매특허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 후 27년(1895년)이 지나 청일전쟁에서 승리했고 37년(1905년)만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청일전쟁 당시 규모 면에서 청나라 북양함대보다 열세였던 일본해군은 이후 10년만에 러시아 발트함대를 대파할 정도로 성장했다. 일본사람들도 그 당시에는 "빨리 빨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일본은 청일전쟁에도 그랬고 러일전쟁 때에도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 승리하긴 했지만 매번 일본은 힘에 부치는 상대와 전쟁을 하는 도박을 했다. 일본 본토가 공격을 받아 방어 목적으로 전쟁을 했다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래봐야 이겨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가난한 조선인데 일본은 왜 그래야 했을까?

 

일본의 조선병합은 식민지 수탈과 중국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 때문이라 볼 수 있지만 그건 현 시점에서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동물을 사육해서 얻는 이익은 해당 동물을 사육하기 이전에는 알지 못했으므로 특정 동물을 사육했던 목적에는 현재의 이익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익과 관련 없이 가축화 된 동물은 애초에 사육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벌벌 떨던 러시아와 전쟁을 결심했을 정도로 일본은 심각한 리스크를 감수했다. 그런데 그 목표가 자원도 없었던 최빈국 조선을 병합하는 것이었다. 조선병합에 대해 일본이 기대한 이익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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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못나서 일본에게 망할만 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못났다고 해도 일본 입장에서 우리가 못난 것이 병합을 실행할 수 있는 요건이 될 수 있을지언정 병합을 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서양 열강에게 쩔쩔 매던 일본이 못난 조선 먹자고 국운을 걸고 러시아와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조선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역지사지 입장으로 생각해 보면 일본이 큰 리스크를 안고 조선을 병합해야 했던 합리적인 이유가 떠 오르지 않는다. 조선을 병합해서 조선인을 자신들 밑에 두고 모욕하려고 그랬을 리가 없다. 고작 그런 심리적인 우월감을 얻으려고 나라의 명운을 건 전쟁을 한다고? 바보냐? 하지만 진짜 바보면 어떻하지?

 

개인적으로 서구 백인들은 인종차별을 결코 극복하지 못한다고 본다.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이 결속하여 세계문명을 선도하는 위치에 서는 것 뿐이다. 요즘 들어 K가 붙은 온갖 것들이 유행하고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이 많아 진 것은 대한민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부유해져 선진국의 위치에 올라 섰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남북으로 분단된 작은 대한민국도 이런데 한중일이 한팀을 구성한다면 지구촌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일본의 "대동아공영"은 그 방법이 대단히 잘못 되었지만 동양이 단결해야 한다는 당위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은 잘 지내는 것이 좋다. 미래지향 관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미래지향적 태도를 취하려고 해도 상대를 믿을 수 없으면 불가능하다.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어서 군대를 보유하는 것을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과거 조선병합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배상도 하고 할만큼 했다고 하는데 막상 하는 짓을 보면 과거일은 그냥 얼버무릴 뿐이다.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어 강한 군사력을 가졌을 때 대한민국을 또 다시 병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럴 이유가 없다고? 그렇다면 1910년 조선병합은 대체 무슨 이유가 있었는가?

 

복기를 해 볼수록 힘에 부치는 전쟁을 두 번이나 감수하면서도 일본이 조선병합을 해야 했던 중대한 이유가 없다. 자신들의 안보 문제 때문이었다면 굳이 병합이 아니라 외교권 박탈만으로 충분했다. 조선을 위성국 수준으로 종속시킨 상태로 유지하는 것으로도 일본의 이익선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익이 보이지 않음에도 조선을 병합했다면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안보나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심리적인 이유 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에는 반일정서가 있지만 막상 일본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일본에는 혐한세력이 한국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분명 한반도에 대한 뿌리 깊은 정서적 문제가 있다. 그것 외에는 조선병합의 이유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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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인 요인을 찾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의외로 뿌리가 깊다. 일본의 고대사 문서인 "일본서기"에는 신공황후란 인물이 바다 건너 신라로 출병했고 신라는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여 조공을 바쳤다고 하며 고구려/백제도 조공을 약속했다고 한다. 우리가 고구려와 발해의 만주를 언젠가는 수복해야 하는 고토로 여기는 경향이 있듯이 "일본서기"의 이런 서술로 인해 일본에는 한반도를 자신들의 고토라고 여기는 정서가 있는 듯 하다. 2차세계 대전 이후 일본의 역사 교육에서는 "일본서기"의 이런 내용을 가르치지 않지만 그 분위기는 계속 내려져 오는 모양이다.

 

"일본서기"는 신토나 국학에서 중요한 고전 텍스트이다.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황국사관의 근거 중 하나도 "일본서기"이다.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토는 정교하고 철학적인 불교에 대적할 수 없었지만 성리학이 전해지면서 불교는 배척 되고 신토가 재정립된다. 성리학은 송나라 시절 외래 사상인 불교에 대항하기 위해 우주론을 강화한 버젼의 유교이므로 불교를 배척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한다. 조선은 성리학을 근거로 하여 숭유억불 정책을 폈으나 일본의 일부 사상가들은 성리학 이론을 차용하여 불교를 배척하고 신토를 재정립 했다고 한다.

 

일본의 국학은 17세기 에도 시대에 등장하는데 불교나 유학 등 외래 종교와 학문을 배격하고 "일본서기"를 포함한 일본의 고문서들을 연구하여 일본 고유의 문화와 정신을 찾으려는 학문이라고 한다. 일본 고유의 것이라 할만한 것은 신토와 천황이고 일본적인 것을 강조하다 보니 주변 국사들을 폄하하는 국수주의적 성향이 있었다고 한다. 에도 막부 말기 존왕양이 운동의 사상적 배경으로 동작하게 되며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달을 때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일본에는 "일본사기"를 근거로 하는 신토나 국학이 있었고 17세기 국학이 국수주의적 경향으로 흐르면서 조선을 멸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배경에서 일본에서는 정한론이 힘을 얻는다. 반막부 운동의 대표적인 사상가이고 일본 우익의 시작이라 할 요시다 쇼인은 "황조에서 신후의 삼한을 다스려 시종의 몽고를 격하게 하고, 히데요시의 조선을 베는 것과 같이, 호걸이라고 해야 한다" 했다고 한다. 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선을 공격하는 것을 좋게 본 것이다.

 

메이지 유신 시절 일본 천황의 친서가 조선에서 개무시된 것에 격분한 "사이고 다카모리"가 괘씸한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며 이 때 정식으로 "정한론"을 내 놓지만 조선을 때려야 한다는 분위기는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 조선을 정벌하자는 주장이었으면 "정조론" 또는 "정선론"으로 이름이 붙어야 했겠지만 "일본사기"에서 한반도를 삼한으로 칭했기에 조선정벌론의 이름이 "정한론"으로 칭해졌다. 즉 정한론은 그 이름 자체가 "일본서기"의 영향을 증명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 시절 여러 분파의 신토를 천황 중심의 교단으로 통폐합한 국가신토가 성립하는데 그 사상적 기원은 성리학에 기반한 신토의 불교 배척 이론을 극대화 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국가신토의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는 "일본서기"였다. 그 이전부터 조선을 일본이 회복할 고토로 보고 조선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천황 중심 이데올로기가 출발하면서 그 경향을 그대로 안고 가게 되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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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메 우인장"이라고 하는 일본 만화를 넷플릭스에서 본 적이 있는데 신토에 대한 내용을 알아 보니 만화가 새롭게 보였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만화 영화에도 신토의 영향이 매우 강하게 들어가 있다. "이웃집 토토로"는 물론이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신토가 배경이다. 자연 그 자체를 수만가지 신으로 삼으며 조상신을 포함한 망자도 신으로 모셔진다. 2차 세계대전 전범을 모셔 놓은 야스쿠니 신사는 망자를 신격화 하여 모시는 대표적 사당이다. 신토 사상에서 천황은 살아있는 왕초 신으로 취급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일본에서 혐한세력이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들에게 한국은 정치/경제/군사적 이익을 따져 봐야 할 외국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깔봐야 할 대상이다. 일본적인 것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혐한을 이용하는 뿌리는 꽤 오래 되었다. 한국에서 누구는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을 썼지만 일본은 "반한종족주의"를 들고 나온지 꽤 되었고 신토라는 종교를 통해 정서적인 측면으로 박혀 있다. 굳이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일본서기"의 내용을 배우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습득될 지경에 이른 모양이다.

 

"일본"은 일반적인 보편타당성 보다는 자신들의 "특수성"을 고집하며 필요하면 스스로 고립되는 성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특수성"을 인정해 주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개인적 차원의 다양성이 유지되긴 하지만 그 놈의 "폐"라는 것의 범위가 달라지면 국수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를 때가 있고 정서적인 영역까지도 그 흔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알아 보니 조선병합은 뭔가의 이익을 위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었고 지금 현재에도 그 정서가 유효하다.

 

알아보면 다른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결국 기존에 알던 것과 별다르지 않은 결론에 달하게 된다. 일본이 "천황"을 정체성으로 삼는 동안에는 한중일 3국이 한팀이 되어 보편타당한 가치로 지구촌을 이끌어가기는 글렀다. 그나마 일본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힘"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 외에는 아직까지 방법이 없다. 일본은 보통국가가 될 자격이 아직 없다. 지금 일본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봉건제에서 살고 있다. 자민당은 영구 집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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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일본이 조선을 낮춰 봤듯 우리도 일본을 낮춰 보는 경향이 있으니 이런 면에서 상호 도찐개찐이다. 긴 호흡에서 볼 때 아시아 대륙에서 문명은 대체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렀으니 동쪽 끝에 위치한 일본이 문화적으로 낙후한 것은 지리적으로 볼 때 당연했다. 칼이나 들고 설치는 낙후된 곳이라 여겼고 훨씬 강대한 중국을 상대하기에도 바빴으니 우리가 일본 땅을 탐낼 이유는 없었고 실제로 원나라 때를 제외하면 국가 차원에서 일본을 침공한 적이 없다. 개화 시기에 문명은 방향을 바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렀고 그 첫번째 입구였던 일본은 전례 없던 상황에 내란이 발생했지만 어쨌든 그 덕으로 메이지 유신을 단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얻은 힘으로 우리를 공격하여 병합했다.

 

PS :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을 보고 있으면 일본은 조선에 꽤 많은 투자를 한 것이 사실인 듯 하다. 하지만 고마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불황에 빠져서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세계 1차 대전의 승전국이 되어 경제가 떡상 했고 나름 조선에 투자할 여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일본은 만주를 차지했지만 인프라 투자를 할 여력이 없어서 만주 땅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우리가 어여쁘고 불쌍해서 투자한 것이 아니다. 병합으로 조선땅이 일본의 일부가 되었으니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만주로 진출하게 되면서 후방 지역인 한반도에 인프라 투자를 안할 수 없었다. 하지만 투자 대비 수익은 좋지 않았을 것이고 이에 이토 히로부미도 병합에는 신중했다. 실리적 측면에서 보자면 조선을 위성국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나중에는 일본 내에서도 이럴 거면 도대체 병합을 왜 했냐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일본이 등 떠밀려서 조선병합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조선에 선심 쓴 것마냥 포장이라도 해야 했다. 일본인이 그런 소리하는 건 이해 할 수 있지만 이런 주장을 한국인이 펴는 것은 참으로 모양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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