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이야기인 한데,
"보수는 유능하지만 비도덕적"이고 "진보는 무능하지만 도덕적"이라는 관념(?)이 있었다.
유효기간이 지나긴 했지만 이런 프레임이 먹혔던 건 나름 이유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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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신문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정치적인 진영을 뜻하는 "좌파/우파", "보수/진보" 따위의 단어는 없었다.
그냥 정치 진영은 여권과 야권이 있을 뿐이었다.

60년대/70년대/80년/90년대 무려 40년 동안 한쪽 진영이 여권이었으니,
상황에 따라 여당과 야당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할 만 했다.
야당이 여당 된다는 것은 거의 혁명이 벌어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여권이 집권했던 40년 동안 경제적으로 많은 성과가 있었던 건 분명하다.
"남북한의 적대적 대치"라는 극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경제 성장을 해 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니 기형적인 행태가 없었을 수 없었다.

이런 저런 부작용들과 문제점들은 분명히 있었지만,
해방 직후 및 한국 전쟁 후 황폐했던 상황을 고려해 보면,
40여년 동안의 기간 동안 집권 세력이 엄청난 성과를 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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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색은 파랗고 노란색은 노랗듯이,
여권은 유능하여 항상 집권하는 측이고 야권은 무능해서 집권하지 못하는 측이었다.
여야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세력 자체를 일컫는 고유 명사였다.

3당 합당으로 김영삼의 민주세력이 정권을 잡았지만,
그건 여권이 야권의 인물을 영입하여 여권이 집권한 것 뿐이었다.
그 덕에 군부독재 세력이 몰락하긴 했으나 여권 세력은 여전히 여권이었다.

설대 총학생회장 출신 김민석이 미국에서 돌아와서 인터뷰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미국에 가 보니 그 곳에서도 목소리를 내려면 주류 세력에 편입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여권은 계속 여권이라는 것과 의미가 통하는 인터뷰였다.

 

이 인터뷰에서 김민석이 언젠가는 철새 짓거리를 할 것임을 알아 차려야 했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노선을 뒤집어서 주류 세력으로 편입된 사람들이 있다.
몇 십년을 노동운동을 했지만 여권이 아니라면 뜻을 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여권에 투신해서 여권을 변화 시키는 것이 빠른 길이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 노선으로 갈아 탔던 인사들이나,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진영에서 여권으로 노선을 바꿨던 인사들이나,

전향을 했던 사정을 좋게 짐작하자면  대략 그러했을 것이다.

 

혁명이 아니고서는 여야가 뒤집히는 상황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런 혁명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IMF 사태가 그런 혁명적인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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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라는 망국적인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정권교체는 간발의 차이였다.
이인재의 출마가 없었다면 이회창이 당선되었을 것이다.
이 후 기적적인 노무현의 당선으로 10년 동안 민주당이 집권하게 된다.

이렇게 되니 여야는 상황에 따라 뒤집힐 수 있는 단어가 되어야 했고,
정치 진영을 구분해서 칭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게 되었다.
"좌파/우파"와 "보수/진보"는 각 진영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단어를 내세운 것이다.

그 와중에,
"보수=유능/비도덕적", "진보=무능/도덕적"이라는,
결과적으로 볼 때 당연할 수 밖에 없는 프로파간다가 나온다.

40년 동안 집권할 수 없었던 야권이 유능함을 보일 기회는 아예 없었고,
집권세력에 비해 우위를 보일 수 있는 영역은 청렴과 도덕성 뿐이었다.
세상을 바꾸자 하는 이에게는 변절하는 것 외에는 뜻을 펼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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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야당이었던 김대중은 집권한 후 유능함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LG 반도체를 현대전자로 넘긴 빅딜은 이해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IMF로 개판난 망국적 상황을 수습해 낸 것은 사실이다.

김대중이 집권하면 빨갱이 세상이 될 것이라 했는데,
실제로 겪어 보니,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큰 일은 있었지만,
공산당 빨갱이 세상이 된 것도 아니었다. (덤으로 노벨평화상 수상)

김대중 이후 드라마틱하게 집권한 노무현의 시기에는,
검찰과의 마찰, 언론과의 마찰, 부동산 폭등 등의 난리가 났었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부동산을 제외하면 꽤 유능한 모습을 보였는데,
카드 대란 위기 관리 및 사스 전염병 대응도 잘 해 냈고,
이라크 파병 등의 굵직한 외교 현안도 논란은 있었지만 무난히 처리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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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후 집권한 이명박은 유능한 보수의 명백한 상징이었다.
기존 여권의 이미지대로 추진력은 강했다. 그런데 유능하긴 했던가?
분명 뭘 하긴 했는데 논란은 컸고 실효성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뒤를 이어 집권했던 박근혜는 어떠했는가?
세월호에 대한 대처에서 극도의 무능을 보였고 외교도 최악을 맞았다.
개인적으로 쌍십절의 뻘짓이 아니었다면 탄핵까지는 안 갔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집권한 세력도 박근혜의 뒤를 잇는 보수세력이다.
그 보수세력이 박근혜를 수사했던 검찰총장을 영입하여 집권했다.
보수세력 내 인물이 아니라 상대진영의 인물을 영입해 집권한 것이다.

집권 1년도 되지 않았지만 현 시점에서도,
집권세력이 유능한지 아닌지는 충분히 판단 가능한 상태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유능함을 보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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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독재 시절의 집권 세력이 보수적이었던가?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민간의 역할과 자유 시장 경제를 지향했던가?
그들은 분명 비민주적이었고 정부의 권한을 매우 강하게 행사했다.

보수 세력이 유능하다는 프레임은 웃기는 이야기이다.
유능했던 보수 세력들은 집권 시 전혀 보수적이지 않았다.
당시 상황에서 전례 없었던 일들을 결정했고 진취적으로 최선을 다 했다.

40년 동안 최선을 다했던 우파들의 한계치는 IMF 까지였다.
이명박의 집권에는 보수가 유능하다는 프레임이 도움이 되었다.

다들 그 한계치를 겪었으면서도 이명박에게 보수의 유능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명박이 보여준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전 진보 좌파보다 낫지도 않았다.
그리고 박근혜로 다시 집권한 보수 우파는 최악의 무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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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현재의 윤석열을 보면서,
시간이 갈수록 보수 우파 진영의 무능이 심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심지어 대선후보마저도 반대진영에서 구했고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각 진영마다 최선의 대선후보를 구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윤석열은 보수 진영이 내민 최고의 카드이다.
그 최고의 카드가 집권한 후 보이는 실력을 현재 목도하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도 지지율은 오르락 내리락 했었지만,
지지율이 30% 대에서 고착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지지율이 오를 것 같지가 않다.

박근혜의 무능을 보았을 때에는 그냥 박근혜 때문이려니 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윤석열"을 연결해서 보고 있으면,
개별 인물이 아닌 보수 진영 전체의 능력 저하가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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