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집안의 사례를 보자면,
조부모(1대)께서는 5남매(2대)를 두셨고 다시 5남매께서 8자녀(3대)를 두셨다.
즉, 내 형제 자매와 사촌이 7명이다. 그 8자녀가 얻은 자녀가 지금까지 2명(4대)이다.
사촌들이 40대에 접어 들었으니 자녀가 더 생기기는 점점 어려워 보인다.
3대에 걸쳐 집안의 구성원이 증가 했으나 4대째에 다시 2명으로 원상 복구 될 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집안은 4대째에 와서 구성원 규모가 100년 전으로 되돌아 가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평균보다 훨씬 강도 높은 감소율이지만 다들 상황은 도찐개찐 일 것이다.
저출산은 하루 이틀 된 이야기도 아니고 조만간 인구절벽이 닥칠 것은 명약관화 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이것저것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리 실효성은 없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각종 대책들이 별 효과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들 거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낳지 않느냐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긴 해야 하니 그럴 듯한 대답을 만든 것 뿐.
질문도 잘못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질문의 주체도 잘못 되었다.
왜 아이를 낳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출산이 당연한 것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
출산의 당사자들은 그 전제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있다.
외려 출산 당사자들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를 물어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낳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니 안 낳는 것이 당연하다.
집값이 비싸네, 사교육 비용이 비싸네,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안 낳는 이유를 만들어 내려다 보니 억지로 찾아 낸 핑계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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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아이가 있어야 어른으로 대접 받고 사회적 발언권이 생겼다.
일가를 이루어야 사회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러려면 아이가 있어야 했다.
또한 출산 자체로 부모는 자식에게 영원한 갑의 위치에 섰다.
아이를 패든 말든 사회는 양육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다.
Netflix 영화 White Tiger를 보면,
인도에서 최소한 인구 감소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주인공의 할머니는 자신의 손자들을 재산으로 취급하며 착취한다.
특히 가진 것이 없는 무산 계급일수록 자식은 자산이며 권력의 원천이다.
할머니가 손자들을 어떻게 저리 취급할 수 있겠는가 싶지만,
모르긴 해도 우리 역시 예전에는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라는 단일 시스템이 모든 것을 장악한 상황에서는 개인 능력이 벼슬이 되지만
지역토호 또는 가문들의 연합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가족의 규모가 벼슬이다.
지금은 아이를 낳아 봐야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집안에 갇혀서 독박육아 하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을 뿐이다.
아이를 낳으면 의무만 발생할 뿐 권리는 없다.
아이가 잘못되면 그건 모두 부모의 책임이 되었다.
이전에 아이는 알아서 컸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부모가 해야 한다.
예전에 부모는 자식에게 영원한 갑이었지만 지금은 자식이 갑이 되었다.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던 시절,
영유아의 사망은 일종의 사고였으나 지금은 부모에게 귀책사유를 묻는 비극이 되었다.
예방 접종 챙기는 것은 당연하고 아이의 입맛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의 잠재적 행복을 저해하면 부모 자격이 없다며 비난 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고생 고생 해서 키워 놓았더니,
자식은 그 자신의 인생을 따로 걸어 가야 한다는 둥,
심지어 "이럴거면 왜 나를 낳았냐"고 자식이 대들기까지 한다.
게다가 사회 분위기가 부모가 아닌 자식을 편들어 주고 있다.
영광은 없고 의무만 가득해 보이는 길이 뻔하게 보이는데,
굳이 그 길을 가야 할 이유를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의무만 부과하는 사회에 대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자신이 속한 이 사회에 엿을 먹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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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을 해결하는 방법 중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자녀의 재산 중 50%를 어머니가 임의로 처분할 수 있게 법을 만드는 것이다.
즉 출산을 하는 여성이 자식들을 착취할 수 있는 제도를 정착 시키면 된다.
이러면 출산률은 단박에 해결될 것이다. 낳지 말라고 해도 낳는다.
그러나 그 간단해 보이는 방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가라는 일원적 시스템을 부족연합의 다원적 시스템으로 퇴행시키기 때문이다.
개인이 조직에게 압도 된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방향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출산률 저하를 겪는 것은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개인적 차원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착취할 수 있던 권리를 다른 형태로 챙겨 줘야 한다.
착취의 대상을 아이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돌리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국가가 주도하여 출산을 하지 않는 이들을 착취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이대로 가면 다음 세대의 생성을 거부했던 이들이 결국 다음 세대를 착취하게 된다.
자신은 아이를 양육하지 않고 노후에는 남의 자식을 쥐어 짜는 얌체짓을 하게 된다.
사회가 얌체짓에 대응하지 않으면 결국 출산율이 0로 수렴하며 사회가 유지 될 수 없다.
어머니들이 양육에 불참하기로 선택한 다른 이들을 착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반발할 사람들도 많고 나름 이유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이들을 착취하게 하는 것보다는 이 편이 휠씬 쉽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생산력을 높이는 것으로 해결 가능하지만,
이런 얌체짓은 생산력과 관계없이 출산율을 Zero 상태로 수렴 시킨다.
그렇게 누군가는 사회에 엿을 먹이고 사회가 그 엿에 대응해 나가다 보면,
결국 균형점에 도달할 것이고 균형점에서 지금과는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무튼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한반도에 이렇게 많은 인구가 살았던 적은 없다.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을 법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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