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상 거의 10년 전 ,

어느 늦여름에 전력난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수요를 줄이기 위해 인위적인 순환정전이 발생했으며,

엘리베이터에 갇히거나  냉동식품이 해동되어 폐기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한 동안 전력 예비력 수치가 매일 매일 TV 뉴스에 나왔고,

손님을 맞기 위해 문을 열고 에어컨을 틀어대는 업체들은 규제 대상이 되었다.

 

아마 그 당시에,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냉장고 좀 덜 돌아가고 엘리베이터 좀 늦게 올라가면 될 일인데,

왜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 것인지 이해 못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일부는 도대체 왜 이런 것인지 이유를 찾아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왜 난리를 쳐야 했는지 이유가 별로 궁금하지 않거나,

나름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찾았다면 이하 내용을 읽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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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말하자면,

전기에너지는 생산량과 소비량이 항상 같아야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항상 같아야 한다" 가 아니라 항상 같다. 빛과 그림자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생산량과 소비량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생산량만 존재하며 언제나 생산량만큼 소비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부하 임피던스가 낮게 변할 때 이에 대한 에너지 생산이 적정 수준이 아니면 주파수가 떨어질 뿐이다. 반대로 부하 임피던스가 높아질 때 에너지 생산이 적정하지 않으면 주파수가 올라간다 )

 

소비량(부하)가 생산량(발전량)보다 커지는 상황이 오게 되면,

이런 저런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지면서,

최종적으로는 여러분 가정에 있는 전기 콘센트에는 전기가 안 오게 된다.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커지는 상황에서는 생산량을 줄이면 된다.

그러나 생산량을 더 이상 늘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비량이 커지면,

이건 답이 없으며 전기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

 

이 정도 간단한 설명은 아마 한 두번을 들어 봤을 것이다.

위의 문장들은 맨 처음의 명제만 받아 들이면 받아 들일 수 있다.

 

그런데 전기 에너지의 생산량과 소비량이 왜 같아야 하는지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는 설명하지 않는다.

 

일반 대중에게 그걸 설명하지 않는 것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고 기껏 설명해 봐야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듣고 이해하려면 최소한 중학교에서 배우는 전기에 대한 물리 법칙을 알고 있어야 한다.

전계/자계/자속 따위까지는 몰라도 되지만 전압/전류의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하고,

특히 플레밍의 오른손법칙으로 요약되는 발전기의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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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정확하게는 전류, 이하 전기로 칭하겠다) 전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전기는 전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므로, 그림에서 건전지 양극의 전압이 5V, 음극의 전압이 0 V 인 경우 전기는 5V에서 시작해서 0V로 흐른다. 그 흐름에 전구를 연결하면 전구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불이 켜진다. 이 정도는 내 기억에 초딩 4학년 정도 때 배웠던 상식이다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경우에는 전기가 어떻게 흐를까?

 

 

생소하게 보이겠지만 전기는 전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원칙은 언제나 똑같다. 그러니 전기는 아래과 같이 흐른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최악의 경우 건전지에 불이 나거나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 저런 경우에는 이론적으로 전기의 크기는 무한대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무한대의 전기가 흐르지는 않지만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열이 발생한다. 자칫하면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미심쩍다면 쌩쌩한 5V 건전지에 부하 없이 전선만 연결해 보시라. 실제로 해 본 적이 없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기안전법 상 나름 안전장치가 있어서 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 핸드폰 베터리나 ESS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것도 대부분은 이것이 원인이다. 부하 없이 전선만 연결된 상황을 단락 또는 Short이라고 부른다. (전기쟁이들이 "쇼트났다"는 말을 하는 걸 들어 보신 적 있으려나? 이 말 쓰면 암튼 뭔가 안 좋은 상황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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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류 건전지를 예로 들었는데, 건전지를 교류 전원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자. 교류는 전압이 계속 바뀌므로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느껴지겠지만 뭐가 되었든 원칙은 계속 똑같다. 어떠한 경우라도 전기는 전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교류 전원은 전압이 + 왔다 갔다 하면서 시변 한다. 그렇다고 특정 시점에 전압 크기를 특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에 그림처럼 한쪽은 5V이고 한쪽이 3V라면 전기는 5V에서 3V로 흐른다.

 

 

교류는 + / - 오가면서 시변하므로 발전기 전압은 계속 달라진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전압이 계속 맞지 않는 교류 발전기를 서로 붙여 놓으면 전기는 계속 방향을 바꾸며 흐른다. 발전기끼리 전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것을 파워 스윙이라고 한다.

 

건전지의 경우 화재가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교류 전원에도 마찬가지 일이 발생한다. 즉 발전기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터져 나갈 수도 있다. 발전기는 매우 매우 매우 비싼 자산이므로 발전기가 터져 나갈 수 있는 파워 스윙은 발전기 주인 입장에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상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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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가정의 220 콘센트의 뒤에는 원자력 발전기를 비롯한 수백개의 교류 발전기들의 아래 그림처럼 버티고 서 있으면서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경상도 고리 원자력이든 전라도 영광 원자력이든 수도권의 부천 GS 파워든 아무튼 전국의 모든 발전기들이 매 순간 매 순간 전압이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전기들 끼리 전기를 주고 받으면서 발전기들이 발전기들을 서로 파괴하는 일이 벌어진다.

 

대한민국 한전의 교류는 60Hz이다. 즉 초당 60+ 오락가락하는데 그 와중에도 모든 발전기들의 전압을 똑같이 유지하면서 전압이 오락가락 변해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싶은데 그게 가능하니까 발전기들이 터지는 일 없이 현재 여러분이 전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가능하기는 하지만 대단히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비싼 발전설비가 더 비싸지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설비이기 때문이다.

 

그 비싼 설비를 들여서 전국의 발전기 출력 전압을 동기화 시켜서 국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고 있지만, 아무리 비싼 설비라도 최대 발전량보다 수요량이 더 커지면 출력 전압을 동기화 할 수 없다. (그 이유 마저도 알고 싶다면 좀 더 읽어 보시라)

 

암튼 발전설비는 엄청나게 비싸므로 발전 사업자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발전기가 터져 나가기 전에 발전기를 꺼 버릴 수 밖에 없다. 발전기가 터져 나가는 것은 순식간이므로, 갖은 보호장치들을 설치하여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msec 단위) 발전기가 터져 나갈 것 같은 위협이 발생하면 이를 자동으로 감지해서 발전기를 끈다.

 

발전기 하나가 꺼지면 최대 발전량이 그 만큼 줄어든다. 이러면 악순환이 발생하여 다른 발전기들의 출력 전압 동기를 유자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상황을 내버려 두면 발전기들이 하나 두개씩 꺼지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모든 발전기가 다 꺼진다.

 

전국의 발전기들이 모두 다 꺼지면 다시 발전기 키면 될 것 아니냐 싶은데, 발전기들을 모두 처음부터 다시 켜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아직 대한민국에서 전례가 없는 상황이라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아무리 짧아도 며칠은 걸릴 것이고 완벽하게 전기 공급이 회복되는 것은 훨씬 더 긴 시간을 요할 것이다.

 

이 정도라면 의문에 어느 정도 답이 되었을 것이다. 최대 발전량보다 수요량이 커지면 왜 출력 전압을 동기화 할 수 없는지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 내용들을 더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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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기는 매우 복잡하고 비싼 기계이지만 원리만 놓고 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자석 사이에 쇠 막대기를 돌리는 것이 발전기이다.

 

 

쇠막대기를 돌리지 않고 자석을 돌려도 된다. 실제 발전기는 대부분 아래 그림처럼 자석을 돌린다.

 

 

 

구조는 자석을 빙글 빙글 돌리는 것인데 무엇으로 자석을 돌리는냐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발전기가 존재한다.

 

이렇게 손으로 돌리는 것도 있고

 

 

이렇게 발로 밟아가며 돌리는 것도 있다.

 

그런데, 19C 전력 산업이 태동할 때부터 발전기 터빈은 증기의 압력으로 돌렸고 지금도 대부분은 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증기를 얻기 위해서는 물을 끓여야 하는데 핵분열로 물을 끓이면 원자력 발전소, 석유나 석탄으로 물을 끓이면 화력 발전소, 천연가스로 물을 끓이면 복합화력 이라고 한다. 끓인 물이 아니라 그냥 폭포수로 터빈을 돌리면 수력 발전소가 된다.

 

허공에 떠 있는 자석을 돌리는 것이니 일정한 힘만 들이면 일정하게 자석이 돌아갈 것 같은데, 이게 전기적으로 부하와 연결되면 진짜로 힘이 더 든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선풍기에 전원을 연결하면 선풍기가 돌아간다. 선풍기를 돌리는 그 운동에너지는 발전기가 자석을 돌리는 운동에너지의 일부를 전달 받은 것이다. KTX가 시속 300km로 달릴 때의 운동 에너지는 발전기의 운동 에너지의 일부를 전달 받은 것이다.

 

대부분의 발전기는 힘을 줘서 무엇인가를 원운동 시키는 장치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원운동이 전선을 타고 와서 다른 것들을 운동 시킨다.

 

전기 에너지의 가장 큰 특징인 생산량과 소비량의 항시 일치는 바로 이것이다. 발전기에서 만들어낸 원운동이 유선을 통해 빛의 속도로 내 앞에 있는 사물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부하의 운동에너지와 발전기의 운동에너지의 합은 같을 수 밖에 없다. (전선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을 제외한다면)

 

전기 에너지는 운동 뿐만 아니라 열과 빛으로도 전환된다. 하지만 그것들의 에너지는 발전기가 만들어낸 운동에너지의 일부가 형태를 바꿔서 전환된 것 뿐이다.

 

부하가 빛이든 열이든 운동이든, 이를 모두 운동으로 치환해서 생각 해 보자. 부하 측에서 더 많은 운동을 요구하면 발전기는 더 많이 증기를 끓여서 터빈을 더욱 세게 돌려 주면 된다. 그런데 여러 발전기가 같이 병렬로 붙어 있는 상황이라면 나 혼자 독불장군처럼 터빈을 세게 돌릴 수가 없다. 다른 발전기들과 박자를 맞춰가며 힘을 내야 한다.

 

파워 스윙을 간략한 전기회로로 설명했지만 발전기가 병렬로 운전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인승 자전거가 더 낫다.

 

페달을 발로 돌리는 여러분이 바로 발전기에 대응된다. 여러분이 허벅지 근육을 써 가며 페달을 돌리면 자전거가 움직인다. 페달을 돌리는 것은 발전기가 자석을 돌리는 것에 대응하고, 이에 연동되어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는 것은 부하에서 발생하는 운동에 대응한다. 그런데 자전거 페달을 나 혼자 돌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돌리려면 서로 박자를 맞춰서 페달을 밟아 줘야 한다.

 

발에 페달을 묶어서 여러 명이 다인승 자전기를 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느 한 명이 농땡이 치고 힘을 안 주면 다른 한명이 더 힘들어지는데 그나마 농땡이가 낫다. 최악은 서로 힘을 쓰는데 박자가 안 맞는 경우이다. 나는 4/4박자로 페달을 돌리는데 다른 놈이 3/4박자로 페달을 돌리려고 하면 힘이 서로 충돌한다. 자전거가 엎어지든가 사람이 다치든가 싸움이 벌어지든가 어쨌든 사고가 벌어진다.

 

 

사진에서 남녀의 데이트 분위기는 신경쓰지 말자. 대신 두 사람의 발과 페달을 보라. 페달의 각도가 모두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발전기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발전기들의 회전자가 언제나 같은 각도를 유지해야 병렬로 운전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발전기들은 엄청난 원운동을 하고 있다. 그 원운동으로 기차도 움직이게 하고 용광로에서 쇠도 녹이고 에어컨 컴프레셔도 돌린다. 그런데 그 엄청난 원운동이 삐끗하면 발전기를 박살내는 쪽으로 작용한다.

 

대한민국의 전력계통은 수백개의 발전기가 다인승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밟고 있는 형국이다.  수백명이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 자전거가 엎어지거나 누구의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박자를 정한 것이 초당 60번 페달을 회전시키기로 한 것이다.

 

수백명이 일정한 박자로 똑같은 각도를 유지하며 페달을 돌리면 자전거의 속도는 일정할 것이다. 그런데 달리는 자전거에 누가 짐을 올린다고 생각해 보자. 자전거가 무거워지면 페달을 돌리는 박자가 떨어질 것이고 다시 박자를 끌어 올리려면 페달에 힘을 더 줘야 한다. 박자를 다시 원상 복구 시키면 결과적으로 자전거의 무게는 늘어 났는데 속도는 일정해지고 되니 운동에너지가 늘어난 셈이 된다. 즉 자전거에 짐을 올리는 것은 부하가 늘어난 것에 대응되고 이에 추가로 힘을 더 내는 것은 발전기의 출력을 높이는 것에 대응된다.

 

자전거 무게가 계속 무거워지면 수백명이 힘을 더 짜내서 일정한 박자를 유지해야 하는데, 어느 한계에 부딪치면 그 중 제일 힘이 딸린 놈이 페달을 제 박자에 밟지 못하게 된다. 이러면 발이 페달에 딸려가는 상황이 되는데 그 부담이 다른 놈들에게 돌아가게 되고 결국 박자가 엉클어지면서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그러다가 몸이 다칠 지경이 되면 페달에서 발을 빼야 하고 이러면 상황은 더 악화되어 결국 모두가 페달에서 발을 빼게 된다. 최종적으로 자전거는 멈추게 된다. 이것이 블랙아웃이다.

 

군대에서 단체로 목봉을 들거나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이동할 때 겪는 상황과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한 놈이 농땡이 피우거나 키가 안 맞으면 전체가 점점 힘들어지다가 결국은 무너진다.

 

신재생 에너지를 무턱대고 현재의 전력망에 붙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 때문이다. 태양광 발전기는 햇빛 좋으면 천하장사가 되어 페달을 밟지만 구름 좀 끼면 풀이 죽어서 갑자기 힘을 하나도 안 쓴다. 박자를 일정하게 맞춰야 하는데 날씨 따라 그 때 그 때 변덕을 부리며 페달을 밟아 대니 다른 놈들이 박자 맞추기가 힘들어진다. 게다가 자전거 무게가 갑자기 무거워졌는데 태양광이 풀이 죽어 갑자기 힘을 안 내면 다른 놈들도 나자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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