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자본주의는 Zero Sum이라는 주장을 했다. 진짜 그런가 싶어서 네이버를 찾아 보니 어느 대학 교수가 신문 사설에서 자본주의는 Zero Sum이 아닌 Win-Win이라고 주장한다. 나눠 먹어야 한다는 측과 키우고 봐야 한다는 측의 차이점은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왠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마르크스의 자본을 들먹이면서 먹물 먹은 티를 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자본주의를 Win-Win이라며 옹호하는 측에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제대로 읽어 봤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자본주의를 Zero-Sum 이라며 비난하는 측에서도 마르크스의 자본을 제대로 읽어 봤을까 싶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으려면 헤겔을 비롯한 선수 과목을 줄줄 읊어대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 나 같은 사람이 언제 시간을 내서 그런 것들을 알아가며 국부론이나 자본을 파악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는 내가 지금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주요한 원리로 알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지금 나에게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공기 같은 것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별로 없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는 고사하고 자본이란 것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자본은 진화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말 자체가 자본이 무엇인지 명확히 말로 할 수 없다는 고백이 아닐까?
그냥 머리 아픈 이론은 집어 치우고 내가 현실에서 접하는 것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Zero Sum 여부를 생각해 보았다. 우선 가장 자본주의적인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을 한번 생각해 보면 그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주식시장"이다. 그 중에서 가장 첨단을 달리는 것은 "선물시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물시장"은 게임의 법칙 자체가 명백하게 Zero Sum에 의해 움직인다. 누군가 선물에서 돈을 벌면 그 돈과 거래 수수료 만큼 그만큼 누군가 반드시 돈을 잃는다. 돈 놓고 돈 먹는 Zero Sum이 선물이고 주식투자하는 개미들의 막장이 바로 이 선물시장이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은 Zero Sum 인가? 표면적인 게임의 법칙을 보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변에서 보면 주식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손해 보는 것을 볼 때 피상적으로는 마치 Zero Sum으로 느껴진다. 왠지 따는 놈들은 계속 따는 것 같고 잃는 놈은 계속 잃는 것 같다. 다 같이 이득을 보는 Win-Win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개별 종목에 투자한다고 생각해자. 1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업이 없어지고 생겨났는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특정 기업이 없어질 확률은 점점 높아진다. 언젠가는 종목을 갈아 타야 하며 갈아 탄다는 것은 결국 그 위험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즉 폭탄 돌리기와 마찬가지인 게임이다. 명백한 Zero Sum 게임인 것이다.
"주식시장"이 서로 Win-Win 할 수 있는 게임이 되려면 주식값이 계속 올라가야 한다. 즉 새로운 투자자들이 계속 끝없이 몰려들어야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새로운 투자자를 끝없이 유치할 수 있겠는가? 알쏭 달쏭해 보이지만 생각을 해 보면 "주식시장"은 본질적으로 Zero Sum인 듯 하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공평하게 1/n 하면 식량이 남는다고 한다. 즉 인간의 능력으로 볼 때 최소한 굶어 죽는 사람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욕심을 내어 1/n 할당량을 넘겨서 내가 먹을 것을 취하면 누군가는 분명 그만큼 덜 먹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아마도 많은 분들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느끼게 될 것이다. 돈 안 된다고 배추밭을 갈아 엎고 우유를 길거리에 내다버릴지언정 당장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줄 식량은 없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생산을 하든 무조건 1/n을 한다면 분명 생산자는 의욕을 잃게 되며 생산량은 급감하게 될 것이다. 전체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식량은 절대 필요량에 미치지 못하게 되며 결국 모두 다 굶주리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측의 논리는 바로 이것이다.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주식이 Zero-Sum 게임이 아닐 수 있는 조건과 거의 동일하다. 주식값은 계속 오르게 될 것이며 식량의 생산량은 계속 증대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100년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빈부의 격차가 날지언정 절대적인 생활 수준은 향상되지 않았는가? 이런 면에서 자본주의는 Win-Win하는 시스템이라고 누군가는 주장한다.
하지만 정말로 과연 그러한가?
학교에서 사회를 배울 때 경제라고 하는 것은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그 배분하는 기준을 능력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자본주의라고 한다. 교과서에 말하듯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라면 그 방식이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모두 다 Zero-Sum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가 그 자원을 돈으로 발라 더 취한다면 그만큼을 누군가는 덜 가져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교과서에 나온 문구대로라면 자본주의가 Zero-Sum인 것은 명백하다. 다만 자본주의는 이러한 불평등한 분배를 통해 효율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원의 공급을 늘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입장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 자본주의 긍정적인 측면은 오히려 독약이 되어 버린다. 자원의 공급을 무한히 늘릴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해 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계를 공기처럼 안고 살아가는 내가 느끼기에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원이 아니라 돈이다. 돈만 있다면 자원은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다. 돈만 있다면 거기에 맞춰 자원은 무한정 나올 것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 석유가 고갈 된다고 하지만 돈이 없어서 차를 못 몰지 석유가 부족해서 차를 몰지 못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돈으로 바르면 어떻게 하든 문제는 해결된다는 믿음이 있다. 석유가 부족하면 돈으로 쳐발라서 대체에너지나 핵융합 개발되면 되지 않겠는가? 그걸로 굴러가는 자동차도 돈만 투입한다면야 뭐 어떻게든 개발 되겠지.
오로지 돈이 문제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문제는 다 돈으로 치환되어 해석된다. 하지만 모든 모델은 변형 과정에서 반드시 왜곡을 낳는다. 내가 차를 몰지 못하는 건 석유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돈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돈만 많다면야 석유가 부족하던 말든 펑펑 쓸 수 있다. 심지어 석유가 고갈되어 없어지더라도 돈으로 쳐발라른다면 특수 공장에서 석유를 합성해서라도 가솔린차를 몰고 다니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기회비용을 생각하여 경제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하지만 정말 하겠다면 그리고 돈만 무한정 있다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게 뭐냐? 인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그저 돈이 문제이지 내가 마음만 먹고 쏟아 부으면 그까짓 것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듯 하다. 자연의 이치에 벗어나 인간의 의지로 세상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너무 갈 때까지 간 것 아닌가? 너무 오만하다. 하지만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치 돈이라는 절대자만을 바라보도록 최면에 걸린 것 같지 않은가?
자본주의의 Win-Win을 주장하는 측은 자원의 무한한 팽창을 전제로 하고 있다. 주식이 Win-Win 할 수 있는 조건과 본질적인 면에서 다를 것이 없다. 내가 사는 동안은 그러한 팽창이 계속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후대에까지도 언제까지 이러한 자원의 팽창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을 상대로 폭탄 넘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 서로 욕심을 부리면 결국 파이는 커진다. 하지만 언제까지 파이를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적당한 선에서 이제 욕심은 거둬들일 때가 된 것은 아닐까? 먼저 욕심을 거두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욕심을 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인가? 끝까지 욕심을 부려 갈데까지 가 본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다들 치킨 게임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인가?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은 결국 욕심에 대한 문제로 옮겨진다.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측에서 받들어마지 않는 "국부론"을 저술한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의 시조로 여겨지지만 당시 그는 경제학자가 아닌 도덕교사였다. 그는 그 당시 분명 욕심에 대한 윤리적인 정의를 정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건 절대적인 것이 아닌 당시 시대의 요청에 따른 판단이 아니였을까?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 역시 자원이 유한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론이 맞지 않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세상은 새로운 지리상의 발견으로 신천지가 열리면서 그 때 기준으로 거의 무한이라 할 수 있을만큼의 자원이 널려 있던 상황이였다.
지금 시대에 아담 스미스가 태어난다면 그가 다시 "국부론"을 저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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