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 영화는 흔히들 코미디물로 알려져 있지만...
난 중국인 특유의 코드에 기반한다는 그의 웃음에 대해 잘 모른다.
나에게 그의 코미디는 그저 투박하게 느껴질 뿐이며...
나는 그저 그의 코미디에서 유치한 부분만을 즐기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볼만하다.
주성치 특유의 재주라면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주는 것이 아닐런지.
만든지 오래 되었지만 2편으로 이루어진 서유기는 그런 재주를 가장 잘 보여주는 듯 하다.
그리고 난 웃음보다는 슬픔에 자꾸만 눈이 간다.
월광보합, 선리기연으로 나뉘어 있지만...
그 둘의 연결 관계가 많아서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로 봐야 한다.
영화는 서유기의 등장인물들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서유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영화는 불경을 구하는 삼장법사 일행의 모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구원에 대한 서럽도록 진실한 이야기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스포일러이다.
보실 생각 있으신 분들은 그냥 지나쳐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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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회...의미 없는 집착
지존보는 "월광보합"이라는 타임머신으로 500년의 시간 이동을 하며 좌충우돌 한다.
그리고 그 시간 이동으로 인해 영화는 패러독스에 빠져든다.
시간 이동으로 인해 전후의 인과 관계가 전혀 맞지 않게 된다.
지존보가 시간 여행을 하는 목적은 관찰이 아닌 적극적 개입이다.
그 여행의 애초 시작은 백정정이라는 연인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는 가까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연인의 자살은 막을 수 있었으나...
결국 연인의 죽음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그는 연인의 죽음을 어떻게든 막아 보고자 다시 시간을 거슬러 보지만...
가까운 과거가 아닌 500년을 거스르게 되고 그로 인해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모든 상황을 보편타당한 합리적 시선으로 재단하는 "닥터 후"라면...
지존보는 과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평행우주간의 질서를 깨는 악당으로 그려질 법하다.
그리고 지존보는 결과적으로 많은 평행우주를 경험한다.
수다장이 삼장법사가 과묵한 삼장법사가 되기도 하며...
목숨을 버릴 정도로 매달리던 연인이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되어있기도 하며...
똑같은 동굴임에도 "수렴동" --> "반사동" --> "보리동"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가 애초에 시간 여행을 하고자 했던 상황 자체가...
그가 시간 여행을 함에 따라 변질되거나 없어지게 되며...
결국 그의 시간 여행 자체가 무효가 되는 상황에 봉착한다.
영화는 시간적인 개연성을 뭉개는 패러독스에 가득 차 있으며...
벌이지는 상황은 그야말로 뒤죽박죽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런 것에 머리가 어지렵고 정신없다고 느껴지긴 했으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한다면 머리 아플 일이 없다.
영화는 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지존보"를 보여줄 뿐이다.
지존보는 여러 평행우주를 흘러다니며 여러 지존보를 경험한다.
왜 그랬는가? 과거에 대한 집착, 후회 때문이다.
결국 지존보는 그의 열망대로 후회하지 않을 평행우주를 만난다.
또다른 평행우주에서...
다른 모습이 되어 있는 지존보와 자하선사는 뜨거운 입맞춤을 한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후회하는 지존보"는 없었다.
거기에는 지존보가 지존보 자신을 구원한 존재, 손오공이 있을 뿐이였다.
어차피 후회라는 것은 해 봐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법 아니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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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스로의 구원...지독한 외로움
기독 문명에서는 구원이란 절대자가 나에게 해 주는 것이였지만...
불교에서는 아무도 나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월광보합-선리기연"이라는 영화에 대해...
구원이란 용어는 그런 면에서 그리 적당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관세음보살은 그저 멍성만 깔아 놓았을 뿐이였다.
손오공의 머리에 금고주를 올리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손오공 그 자신인 지존보였다.
그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는 것은 그 자신 이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렇게 살리고자 했던 백정정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으나...
자하선사가 지존보의 심장에 남긴 눈물 한 방울에 지존보는 흔들린다.
과거의 연인이자 미래의 연인이기도 한 백정정을 택할 것인가?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는 자하선사를 택할 것인가?
후회와 후회의 충돌...지존보는 고민한다.
춘삼십장에게 자신의 가슴을 베어달라고 부탁하는 지존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간절히 알기 원하였고...
그 간절함은 생사를 초월한 것이였다.
춘삼십장은 결국 칼을 빼어내어 지존보를 죽이고야 만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으나...
지존보가 춘삼십장이 베어 죽인 혼령들을 만나는 장면과...
잠시 흘러가는 영상에 나오는 시체 4구...지존보는 분명 죽었다...
사실 지존보가 물리적으로 죽었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사를 초월하는 그 어떤 것이 있음에 지존보가 눈을 뜨게 된 것이 중요하다.
지존보는 자신에 처한 괴로움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궁극적인 자기 자신을 만난다.
그의 영혼은 금고주를 자신의 머리에 씌워 세속과의 고통과 이별을 하고...
지존보는 자신의 진면목인 제천대성 손오공이 된다.
이런 제기럴...
오매불망 지존보만을 기다리는 지하선사의 애절한 기다림은 그저 안습.
사랑으로 고통을 받은 백정정의 자결은 결국 헛 짓에 불과한 것이였다.
지존보는 다른 것을 다 제쳐두고 자기 자신만을 구한 것이다.
자신의 진면목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지독하도록 외로운 것이였다.
손오공이 지존보임을 반갑게 알아보는 자하선사를 외면하고...
심지어 죽어가는 자하선사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는 지독한 외로움.
너무나도 외롭고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어찌하겠는가? 이것이 진실인 것을...
손오공은 자하선사와의 흔적은 지니고 있었으나 후회는 없었다.
월광보합으로 다시 500년 미래에 날아간 세상에서...
진정한 자아인 손오공은 망설이는 또다른 지존보가 입맞춤을 하도록 한다.
"후회하는 지존보"는 거기에 없었다.
오로지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손오공이 있을 뿐이였다.
그러기에 자하선사 눈에 비친 손오공의 뒷모습은 참으로 서러울 정도로 쓸쓸하다.
여의봉을 어깨에 매고 걸어가는 손오공의 표정은 득의양양하지만...
거기에서 슬픔과 서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나 뿐일까?
사막의 모래 바람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손오공의 마지막 모습...
진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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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를 빙자하여 멋대로 만든 환타지물...
특수효과가 허접하지만 그것대로의 즐길거리는 된다.
오히려 화려한 화면은 주성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다소 허접한 오케스트라 파트가 파아노 파트를 돋보이게 하듯이 말이다.
그저 가볍고 유치한 코미디로 즐길 수도 있지만...
진지하게 바라보면 큰 화두를 던져주는 내용...
그래서 매번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명작으로 쳐줄 수 있을 듯한 작품....
주성치의 영화를 보면...
그는 뭐랄까...바닥에 대한 경험이 있는 듯 하다.
영화에서처럼 생사를 초월한 자신이 가진 바닥에 닿아 본 듯한 그런 느낌...
그래서일까?
주성치를 보면 잔인할 때 한없이 잔인해 질 수 있는 사람이란 느낌이 든다.
주성치가 악역을 한다면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악당을 정말 잘해 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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