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스포일러 다분합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왠만하면 건너 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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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문득 생각이 든 것은 삼국지연의에 나왔던 초선이였다.
초선은 임무를 잘 수행하였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던가?
초선이 그 이후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실제 어떻게 되었던 연의에서는 자결을 한 것으로 나온다.
우영감은 치아즈가 아버지에게 전해달라던 편지를 태워버린다.
저항군에게 치아즈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장관이 죽든 말든 치아즈의 끝은 뻔한 것이였다.
여자 스파이의 끝이 비참한 것은 거의 공식이다.
여자 스파이의 최대 무기는 성적 매력...
하지만 아무리 거창한 명분 때문이였다고 해도...
적과 가장 내밀한 관계를 가졌던 여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직접 처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폼나지 않는 일이고...
가장 깔끔한 것은 본인이 알아서 스스로 죽어주는 것이다.
서희나 초선은 임무의 성패와 관계없이 어떻게 하든 죽어야 하는 운명이였다.
그리고 치아즈 역시 마찬가지 운명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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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계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끝이 뻔히 보이는 것이다.
옛날 주군의 명령이 절대적이였던 봉건시대에서...
나이 어린 초선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치자.
상류층에 대학을 다니던 치아즈는 왜 선뜻 거기에 동참하게 된 것일까?
나라가 전란에 휩싸여 있을 때 치아즈는 그저 영국으로 가기를 원했다.
그런 그녀에게 애국이라는 명분이 통할 까닭이 없다.
치아즈를 움직이는 동력은 존재감의 상실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잃었으며 아버지에게는 버림 받았다.
홍콩에서 연극을 하기 전 그녀는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였다.
상해로 돌아 온 그녀의 일상 역시 마찬가지.
치아즈는 공허하다.
그녀는 변화를 원하였고 때마침 막부인이란 배역이 주어진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지 않은가?
존재감에 대한 공허에서 시작한 치아즈의 스파이 노릇.
집착과 명분에 떠밀려 움직이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녀에게서 두려움을 찾을 수 없었던 이대장은 그녀에게 끌리게 된다.
그녀가 스파이든 뭐든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첩보 액셕물이 아니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결코 내 줄수 없는 나만의 영역은 있다.
하지만 남녀 관계에서 그러한 나만의 것들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남녀 합일은 육체적인 관점에서만 이야기 되는 것이 아니다.
치아즈는 이장관에게 절대로 보여서는 안되는 영역이 있고...
이장관 역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이 둘의 만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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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즈와 막부인...어느 것이 정말 그녀인가?
아무리 거짓과 연극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같은 사람...
이장관은 자신의 영역 중에서 가장 바깥의 영역...
집도 아닌 사무실도 아닌 제3의 장소를 선택하였고...
이장관은 막부인을 거칠게 다루며 폭력적으로 제압한다.
하지만 막부인은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한발 들여 놓은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장관은 차츰 안쪽의 영역을 치아즈에게 내어준다.
두번째 정사 씬은 이장관의 집...
여전히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으나 처음보다는 많이 약해져 있다.
그리고 집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인 서재를 잠시 내어주기까지 한다.
세번째 정사는 관청 바로 앞에서 만난 후 이동해서 벌어진다.
사실상 이장관은 자신의 사적인 공간을 모두 내어준 것이다.
그리고 정사에서 주도권은 완전히 치아즈에게 넘어가 있다.
치아즈와 이장관은 몸을 섞으며 교감을 나눈다.
이장관은 막부인의 몸을 거칠게 다루며 정복해 나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장관은 막부인에게 잡아 먹히는 신세가 된다.
남녀 관계에서 주도권은 대개 여자에게 넘어오기 마련...
결혼한 유부남이 마누라 눈치를 살피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분명 이 커플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장관은 마누라에게 꼼짝 못하는 남편이 되었을 것이다.
이장관은 자신의 바깥 영역을 하나 둘 내주면서 막부인에게 정복 당한다.
하지만 남녀 관계라는 것이 일방적인 게임으로 흘러갈 수 있던 것이던가?
상대방의 자리를 차지하면 그만큼 자신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차지해 나가는 것이 남녀 관계.
이장관이 치아즈에게 내준 자리만큼 치아즈도 이장관에게 자리를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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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6캐럿 다이아몬드에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치아즈는 이장관에게 커밍아웃을 감행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열어 제친다.
그녀는 모든 것을 이장관에게 올인하면서 잡혀 들어오지만...
하필이면 잡혀 들어 온 곳이 관청의 지하실...
역설적으로 치아즈는 자신의 모든 것과 맞바꾸어...
이장관의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마저도 장악한다.
그 공간은 전지적 시점인 관객에게도 공개되지 않는다.
결국 그 둘은 자신의 모든 영역을 서로에게 내어 준 것이였고...
그것으로 그 둘의 관계는 끝장을 보게 된다.
이장관은 치아즈에게 모든 영역을 점령 당한 채...
오로지 살고자 하는 두려움에 휩싸여...
치아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였던 다이아몬드를 부인하며...
치아즈의 사형을 결재한다.
다이아몬드에 대한 부정은 결국은 자기 부정...
사형 시각을 알리는 10시 종소리와 함께...
이장관은 그렇게 자신이 무서워하던 어둠에 묻혀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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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관계라는 것이 이런 면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 영역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부부는 일심동체라...서로의 영역을 공유하는 부분이 많지 않은가?
그러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결혼한 사람들도 그런 부분에서 많이 상처 주고 상처 입기도 한다.
순애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넘어가듯이...
치아즈의 마음을 움직인 마지막 쐐기는 6캐럿 다이아몬드였다.
치아즈가 보석을 밝혀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막부인에 대한 이장관의 마음은 6캐럿 다이아몬드로 구체화 된 것이였고...
그제서야 막부인은 이장관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마음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여자가 남자보다 섬세하고 감각적이고 복잡한 더 진화한 존재라지만...
여자들은 추상적인 것보다 구체적인 것에 잘 움직이는 듯 하다.
여자에게 잘 보이려면 구체적으로 표현을 해 주어야 할 듯...
PS
역시 이름값 있는 감독이 찍으면 정사씬도 달라 보이는건가...
정사씬을 보면서 "아...나도 저거 어떤 건지 아는데..." 하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선정적이지만 현실감이 느껴지며 공감이 드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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