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관련하여 요즘 초벌구이로 한번 읽은 책에서 꽤 흥미로운 내용을 읽었습니다. 꽤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만주족 신화의 창세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태초에 물이 있고 거기에 물거품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신이 생겨 났다고 합니다. 이 신이 아부카허허라는 여신이며 처음에는 작았으나 물거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나타나게 되었고 이 세상을 창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 이후 삼위일체 및 선악의 투쟁으로 이어지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처음의 물거품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저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왜 물방울이여야 했을까요?
비슷한 내용이 북유럽 신화에도 있습니다. 북쪽의 얼음과 남쪽의 불길이 접하는 부분에서 물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다가 그 물에서 거인이 생기고 암소가 생겨 났다는 이야기지요. 다시 암소가 햛은 얼음에서 최초의 인간이 나타나는 것으로 북유럽 신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생명은 물입니다. 만주족 신화와 북유럽 신화가 공통적으로 이 세상 생명력의 근원은 물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도 우라노스의 피가 바다에 떨어져 생겨난 물방울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하지만 생명을 창조하는 힘은 단순히 물 그 자체에 있지는 않습니다. 생명력의 근원을 가지는 물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하여야 합니다. 북유럽 신화에서 물은 끊임없이 고체와 액체로 상태가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생명이 탄생합니다. 만주족 신화에서도 생명력을 가진 물은 거품을 이루었다가 터지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물거품이죠.
가만히 있는 것은 결코 생명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적인 특성을 잃는 순간이 바로 생명에게는 죽음이 찾아 오는 때이죠. 세포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세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세포막 안의 성격과 세포막 바깥의 성격을 끊임없이 다르게 유지시키는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물리적인 외부 세계의 엔트로피 법칙에 끊임없이 대항하고 있는 것이죠. 생명이 다하는 순간부터 세포막 안은 엔트로피 법칙의 영향을 받습니다. 외부세계와 동일한 무질서도를 유지하기 위해 분해되고 말죠. 살아 있는 그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태초의 생명이 바다에서 시작되었을거란 생각은 이제 상식입니다. 즉 신화이든 과학이든 물은 생명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이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굉장한 역동성을 가진 성질이여야 합니다. 플라스크 안에 원시바다와 비슷한 성분을 구성하여 번개 대신 전기방전을 일으켰을 때에는 아미노산이 생성되게 됩니다. 이 실험으로 원시바다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오파린 가설이 입증되었죠. 이 실험에서 사용된 물도 역동성의 성질에서 보면 만주족 신화의 물방울이나 북유럽 신화의 얼음물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똑같은 물이지만 물거품 그 자체로 굉장한 역동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끊임없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그 자체가 바로 물거품이죠. 이 역동성을 잃는 순간 물거품은 그냥 물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즉 물거품은 물의 역동성 그 자체인 것이죠.
제가 생각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역동성입니다.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음들의 시퀀스에서 변화의 미분치를 아름다움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음악이죠. 음악을 듣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생명의 속성과 똑같습니다. 물거품은 물인 듯 공기이고 공기인 듯 물인 존재이죠. 세상을 만든 아부카허허의 근원으로 이보더 적절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을 만든 아부카허허의 근원이 이러하니 인간이라고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온갖 모순으로 차 있는 것 같은 인간세상은 원래 그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온갖 모순으로 차 있는 음악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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