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

2010. 6. 7. 13:58

흔히 길거리 가다가 붙잡혀서 당하는 . . .
 "道에 관심있으세요?" 하는 그런 道 말고 . . .


뭐랄까 . . .
적당한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아서 . . .
그냥 道 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밖에는 없는데 . . .


대학 2학년때 쯤이였던 것 같다.
대만 만화가 (아마 이름이 채지충? 슬램덩크 주인공 같기고 하고)가 그린 . . .
중국 고전 중 장자편을 돈 주고 사 본 적이 있다.


만화라고는 하지만 거기에서 난 장자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 . .
나중에 한문반/한글반으로 씌여진 . . .
또다른 장자책을 사서 읽는 지경이 되기도 했는데 . . .


장자의 내용을 지금은 다 까먹어 버렸지만 . . .
그 만화책에서 보았던 것 중 한 장면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그림을 캡쳐 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럴 능력이 안 되어 그냥 말로 풀자면 . . .


----------------------------------------

1.
어느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물에서 살고 있어"
그 말을 들은 물고기 왈 . . .
"물? 물이 어디 있는데?"


2.
어느 도인이 누군가에게 말한다.
"사람은 도에서 살고 있다"
그 말은 들은 사람 왈 . . .
"도? 도가 어디 있는데?"

----------------------------------------


딱 한페이지 분량의 그림이였고 내용이 저게 다였지만 . . .
읽은지 거의 15년 정도 지난 지금 . . . 꽤 강렬한 느낌으로 다시 생각이 난다.
'道' 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잘 묘사한 듯 . . .


'道' . . .
그냥 직역하자면 '길'
뭐 이것의 의미를 해석하는 버젼이 거의 무수히 존재 할 수 있을 듯 한데 . . .
지금 나에게 가장 마음에 와 닿는 해석은 "이미 그러한 것"


세상의 모든 만물이 이미 그러하도록 예전부터 존재해 왔는데 . . .
거기에 대해서 '나'라는 존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있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는 '나'라는 존재도 "이미 그러한 것"이였고 . . .
내가 '나'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 . .
이미 그러했던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 . .
이미 그러한 나 자체로 살아가도록 할 수 있는 것 뿐인 것을 . . .


나 스스로에게조차 . . .
나 자신이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나 자신의 존재 자체 마저도 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는데 . . .
내 자신을 내 의지대로 바꾼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 . .
"이미 그러한 나"를 그냥 그렇게 존재하도록 하는 것일 뿐 . . .


그런 면에서 장자의 양생편이 또한 생각난다.
백정이 소를 잡는 것은 백정의 자신의 의지대로 소를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 . .
이미 그러한 소의 신체구조를 백정은 그저 따라 갈 뿐이다.


내 밥줄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대부분인데 . . .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 . .
그 과정이나 코드는 어떻게 되든 기능만 나오면 되는데 . . .

기능을 낸 이후 안정화 과정을 거치다 보면 . . .
뭐랄까 . .  뭔가 어딘가를 향해 수렴해 가는 느낌이 든다.


뭐 . . . 최적화를 하는 것이니 . . .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 . .
원하는 기능을 내기 위한 프로그램의 모습은 . . .
이미 그러하도록 정해져 있었다는 느낌


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 . .
그저 이미 그러한 프로그램의 형체를 찾아 갈 뿐.
프로그램은 내 의지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런 모습이어야 했던 것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 . .
그런 모습을 찾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것 뿐이다.


최고의 백정이란 자리는 백정 자신의 의지만으로 성취되는 자리가 아니라 . . .
이미 그러한 소의 구조를 따라가며 칼을 움직여야만 주어지는 것일 뿐.
백정이든 프로그래머든 최고라고 불리운다면 . . .
"이미 그러한 것"을 따라 간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를게 뭐가 있단 말인가?


어느날 일을 하면서 . . . 문득 스쳐간 생각 . . .
내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어 . . .
이 일의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 .
이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 . .
이미 그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그렇게 한 것이 불과한 것일 뿐 . . .


이미 그러한 것을 그렇게 하면 . . .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 .

이미 그러한 것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 . .
그게 실패임 또한 너무나 자명하다.
마치 소의 다리뼈 부분을 자르려고 씩씩거리면서 칼로 내리치다가 . . .
자르고자 하는 것은 자르지 못하고 칼날만 부러뜨리는 것과 똑같은 형국.


살아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 . . .
물고기가 물에서 살고 있듯이 . . .
인간은 옛날부터 이미 그렇게 존재하고 있어 왔다.


신화를 읽어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 . .
그렇게 옛날부터 지금까지 어찌 그리 인간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지.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들 "이미 그러한" 존재들이지 않은가?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심지어 내 자신에게조차도 말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 . .
내 자아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 . . .


글쎄 . . . 무기력 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 . .
자신을 포기하는 그런 종류의 무기력과는 좀 다른 종류의 무기력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
"이미 그러함"은 그런 자유의지를 뛰어 넘어 이미 포함한 것이 아닐런지.
뭐...부정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긍정이라 할 수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소극적인 긍정 정도?


이미 그러한 것을 그렇게 하는 것에는 목적이 있을 수 없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 뿐이다.
쓰면서 보니 . . . 점점 말장난처럼 변질되어 가는데 . . .
이 생각을 정말 뭐라 명쾌하게 설명 할 수가 없다.


노자의 도덕경은 아직 읽어 보지 못했는데 . . .
이대로 가다가는 거의 "도가도 비상도" 식의 암호식 문장을 쓰게 될 것만 같다.
말 나온 김에 . . . 다음에는 도덕경을 한번 구해서 읽어볼까?


내 자신의 표현력이 이것 밖에 안됨을 절감하며 . . .
글은 여기까지 . . .

'자작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살 긁어주기  (0) 2010.06.07
본다는 것 . . .  (0) 2010.06.07
물거품  (0) 2010.06.07
21세기의 언어로 씌어진 신화 - 영화 Matrix  (0) 2010.06.07
Brace  (0) 2010.06.07
Posted by ikipus
: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290)
자작 (222)
(19)
지극히_개인적인 (49)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