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논의 장난
"아킬레스는 앞서 있는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리스 대표적인 소피스트인 제논이 제시한 명제...
제논의 논리가 틀렸음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그를 궤변론자로 규정하고 신랄히 비판하였지만...
논리만으로 봤을 때 그의 주장을 꺽기는 쉽지 않다.
앞서 있는 거북을 아킬레스 따라 잡기 위해선...
아킬레스는 우선 거북이가 있던 지점까지 달려 와야 하는데...
그 동안 거북은 놀고 있나? 느리긴 하지만 분명 앞으로 진전해 있고...
아킬레스가 원래 거북이 있던 자리까지 쫓아 왔지만 거북은 다시 앞서 있는 상황...
상황은 재귀적으로 똑같이 되풀이 되어...
아킬레스는 결국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게 제논의 논리...
제논은 유한한 길이를 무한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맹점을 파고 든거다.
무한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결국은 유한하다. 거북은 결국 실제로는 추월당한다.
그런데 주어진 유한을 무한으로 생각하면 제논의 장난에 말려드는거다.
길이를 무한대로 분할한다?
유한의 길이에 대한 무한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한 수식으로도...
제논의 역설을 뒤집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한의 길이를 무한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여전히 이상하다.
고딩 화학시간에 배운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전자는 핵의 주변을 일정 궤도를 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전자에 힘을 가하면 가한 힘만큼 궤도가 바뀌어야 겠지?
그런데 물리학에서는 그렇지 않단다.
으음?
전자의 궤도를 바꾸려면 어느 임계치를 넘는 힘이 가해져야 한단다.
그러면 전자는 완전히 다른 궤도로 이동하여 핵을 돈다는거다.
음냐...이게 대체 뭔 소리냐...
전자에게 있어서 공간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단절적인 것이다.
전자에게 공간이 단절적이면 물질에 대해서도 단절적인라는 것 아닌가?
유한한 길이를 무한으로 쪼개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아킬레스가 도착하면 거북이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간다고 했는데...
물질에게 있어 공간이 단절적으로 존재한다면...
거북이는 끊임 없이 앞으로 나갈 수는 없다.
Analog...하나에서 전체를 구하다...
어떤 대상이 무한한 내부구조를 가진다면 부분과 전체를 구분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대상의 조그마한 샘플에 대한 해석을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
무한의 개념에서 작고 큰 것은 의미가 없는 것
쌀 한가마니의 무게가 정해지면서 쌀 10가마니, 1000가마니의 무게는 정해진다.
부분과 전체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부분이 전체고 전체가 부분이다.
하나를 얻음으로 전체를 구하려 한다.
일반화와 선형화의 장점이다.
아날로그는 무한을 다루는 인식 체계이다.
인식의 대상은 무한한 내부 구조를 가진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날로그의 전제가 되는 무한한 내부구조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쌀 한가마니의 무게가 80kg 이란다.
하지만 실제로는 쌀 한가마니는 커녕 쌀 한톨의 무게도 정할 수 없다.
쌀 한톨의 무게는 한 톨 한 톨 자기 맘으로 정해진다.
쌀 한가마니의 무게를 정한 것은...
쌀 한가마니를 가능한 80kg 되도록 포장하라는 약속이고 강요이다.
이 약속과 강요를 왜 지켜야 하는가?
한가마니에 대한 강요로 이 세상의 모든 쌀에 대한 무게를 다루고 싶어서이다.
부분에서 전체를 구하고자 함이다.
영원 불변을 꿈꾸다...
아날로그 사고 방식의 거대한 기저는...
영원불변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다.
유한한 대상에 대해 무한을 적용한다.
변하지 않는 영원 불변을 찾고자 하는 시도다.
유한의 대상에 무한을 적용하여 찾은 것을 무한의 대상에 적용한다.
일반 법칙을 찾는다. 선형성에 목을 맨다.
결국 하고자 하는 것은 예언이다.
공을 던지면 공이 언제 어디에 가 있을지 예언한다.
영원 불변한 것을 알고 있기에 예언을 할 수 있다.
예언을 하기 위해서는 예언 대상의 전체를 알아야 한다.
예언 대상의 한정된 부분을 무한으로 해석하여 대상 전체를 얻는다.
대상 전체를 구한다면 대상은 정복 된 셈이다. 예언이 가능해 진다.
뒷마당에서 애들이 야구 놀이를 할 때 공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다면...
아폴로 우주선을 어떻게 움직여야 달에 닿을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0.001초 동안만이라도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면...
영겁의 시간 뒤의 세상도 알 수 있다.
시변은 제거하고 불변하는 것은 취한다.
시간에 불변한 것은 선이요 시변하는 것은 악이다.
중간자...세상을 나에게 맞춰라...
Analog적인 인식 체계에서 중간자는 필수적이다.
머리 속에서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대상에 현실을 끼워 맞춘다.
현실이 어떻든 상관 없다. 머리 속에서 정의 된 중간자만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쌀의 무게를 다루고 싶다면...
개별 쌀 한톨이 아니라 가마니를 다뤄야 한다.
영겁의 시간을 다루고 싶다면 1초를 정하는 것으로 족하다.
각종 도량형은 중간자다.
도량형도 누군가는 정의하는 것이다.
도량형을 정의하는 존재는 권력을 가진 진짜 중간자다.
쌀 한가마니의 무게는 누가 정했는가?
국가다. 국가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중간자다.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Analog적 사고 방식이 절정이던 19세기...
인종만큼 편리한 인간에 대한 도량형은 없었을 것이다.
인종은 누가 정의했는가? 서구인들은 인간의 중간자를 자처했다.
부분을 얻음으로 전체를 구한다는 아날로그적인 사고에서는...
무엇을 하든 중간자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중간자를 통해 세상과 통한다.
아날로그 세상에서 중간자는 사람들에게 세상 그 자체이다.
Digital...유한성을 가진 변덕쟁이
세상이 Continous 하다는 인식체계가 Analog인 반면...
세상이 Discrete 하다는 인식체계는 Digital이다.
Analog가 무한을 다루었다면 Digital은 유한을 다룬다.
지금은 Analog가 아닌 Digital 시대
영원불멸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모든 것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서만 유효하다.
4색 문제는 유한의 영역에서 증명 된 것으로 족하다.
실시간 시스템에서 실시간의 범위는 시스템의 요구에 따라 다르다.
디지털 사진은 사양에 따라 적절한 해상도가 애초부터 정해져 있다.
Analog에서는 무한을 다루고 standard를 세우면 반면...
Digital에서는 유한을 다루고 case-by-case를 강요한다.
대표적인 것이 남녀 관계의 변화...
영원불멸한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사랑은 움직이는거야" 라는 광고 카피...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짚어 낸거다.
Analog 시대에는 일부일처의 혼인 관계를 Standard로 삼고 인정했다.
Digital 시대에는 그런 Standard 없다.
지금은 그 때, 그 상황에서 맘대로 가는대로 가는게 남녀 관계다.
변덕이 심하다. 오늘 이랬다 내일 이랬다 한다.
갈피 못 잡고 종 잡을 수 없다.
Analog 시절의 안정성이 그리워지기도 한다만...
어쩔 수 없다...이게 시대의 대세인 것을...
중간자의 붕괴
Analog 세상에서 Digital 세상으로 넘어 오면서 두드러지는 것...
세상 그 자체로 군림했었던 중간자들의 붕괴다.
예전에는 분명한 대표가 있었지만 이제는 너도 나도 대표다.
굳이 중간자들을 통해 세상을 만날 필요가 없어졌다.
국민의 대표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만은 아니다.
각 개별 국민들이 모두 들고 나서는 세상이다.
별의 별 시민 단체가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한다.
시위도 이제 1인 시위 시대다.
뭐 하나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중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이해 당사자들끼리 박이 터지게 싸워야 결정된다.
Digital 세상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예전에는 쌀 한가니의 무게만 정하면 될 일을...
지금은 쌀 한톨 한톨의 무게를 모두 세어야 한다.
언론이나 교육계도 마찬가지...
개나 소나 다 기자이고 언론이다.
예전의 대표 언론이 '조중동'이란 이름으로 씹히는 것은 이런 과정의 일부.
학원과 학교의 차이도 희미해진다.
대학은 취업학원를 자처하고 나선다.
학원에는 없고 학교에는 있는 교권이라는 권위...붕괴한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얻어 맞는 지경이 된다.
이 세상의 중간자들, 특히 권력과 연관된 중간자들은 붕괴된다.
철밥통 공무원이라고 부러워할 일이 못 된다.
언젠가는 붕괴 될 대표적인 중간자들이기 때문이다.
강한 개인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부분인 것...
부분과 전체가 구분없이 한뭉터기인 것이 Stand-alone이다.
Analog의 시대는 Stand-alone의 시대였다.
중간자들이 그 Stand-alone을 유지시키는 본드 같은 접착제였던 것.
Digital 시대에서 case-by-case가 강요되면서...
영원 불멸에 기댄 중간자들은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다.
Stand-alone은 해체되고 Network 화 되어 간다.
Network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내가 속해 있는 Node가 어디인가가 중요하다.
Network 속에서 나는 하나의 Node로 존재한다.
Node는 Network의 Link를 통해 다른 Node들을 대면한다.
내 자신의 Node로 다른 Node들을 대면 할 수 있어야 한다.
무슨 소리냐고?
이 한 몸으로 온 세상과 맞서는 부담이 개인에게 지워진다는거다.
세상과 나를 중간에 연결시켜 주던 중간자가 없으졌으니 당연한거 아닌가.
어느 유행가의 말처럼 "내 삶의 주인은 나"이여야 한다.
"만인의 투쟁"이 본격화 되는 세상이다.
'나'라는 구심점이 없다면 어디가 어딘지 모를 진창에 빠지는 격이다.
강한 개인이 득세한다. 온전한 '나'의 목소리를 세상에 외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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