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

2023. 2. 21. 18:16

마이너스 통장, 속칭 마통과 관련하여 최근 은행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만기 3개월 전의 한도사용율이 모두 10% 미만일 경우 최대 20% 한도가 감액되어 기한 연장 될 수 있음"을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본 조치는 서민/실수요자에 대한 원활한 자금공급을 위해 실시되는 조치"라고 한다. 은행이 서민/실수요자를 생각하는 곳이었나?

 

처음에는 은행 입장에서 돈이 되는 호구 고객에게 대출을 확대하기 위해서 나 같이 은행에 도움 안되는 고객의 대출 한도를 줄이겠다는 이야기로 받아 들였다. 요즘 금리 올라서 은행이 돈 좀 번다고 하던데 그것도 모자라서 돈 더 벌려고 혈안이 되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마통 계좌 튼 지 20년 정도 되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

 

은행이 공격적으로 대출을 많이 하거나 정치논리에 밀려 무리한 대출을 했다가 위기가 닥치면 은행도 망할 수도 있음을 IMF 위기 때 실제 경험하면서 은행의 대출 규모는 자기자본비율(BIS)에 제한을 받게 되었다. 돈 많은 은행에게 기회를 더 주는 약육강식의 규제이긴 한데 IMF 구제 금융을 받는 처지에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라는 압력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총량이 제한되므로 보수적으로 대출을 할 수 밖에 없다. 신용등급이 높은 고객에게 더 많은 기회, 즉 더 높은 대출한도를 제공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대출을 연체 없이 10년째 상환하고 있어 내 신용등급은 높은 편이다. 통보 내용은 내 대출 한도를 빼서 만성 적자인 이들에게 대출을 더 해 주겠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상식에서 은행은 원래 이런 짓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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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 능력이 미약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보증을 서 주는 "신용보증기금"이라는 준정부기관이 있다. 연말이 되어 실적치가 미달인 경우 "신용보증기금" 에서 정책자금을 활용해 줄 것을 개별 기업에 독려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올해는 연초부터 "신용보증기금" 에서 저금리(3% 이하)의 정책자금을 써 달라고 기업들에게 우편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적은 없었던 모양이다.

 

이 외에 공기업과 금융기관이 연계 된 정책자금을 쓰라는 홍보도 빈번하다고 한다. 금리가 높아지는데 통화 유동성도 같이 높아지려는 모양세다. 올해 초 기록적인 무역적자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환율이 나름 안정적인 것도 이상한 일이다. 환율 결정 방식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어쨌든 수요/공급 균형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아무튼 내 상식과는 맞지 않는 일이 계속 눈에 띈다.

 

정부는 어떻게 하든 자금을 풀어서 경기침체를 완화해 보려는 모양이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지만 금융권들은 정부의 요구에 부응하여 나 같은 사람의 대출한도를 낮춰서라도 자금을 시중에 더 풀어 놓으려고 머리를 싸메고 있는 모양이며 준정부기관과 공기업도 열심히 이에 응해주고 있는 듯 하다. 금융권이 이렇게 정부의 말을 잘 듣는 곳이었나?

 

연초 금리가 치솟으며 5% 예금금리 상품이 쏟아져 나왔지만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5% 예금상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며 관치금융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113/117428525/1). 그 이후로도 내 상식과는 안 맞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관치금융"이란 단어가 머리에서 굳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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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태생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업을 하는 기업이며 자본주의 체계의 핵심 요소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너무나 핵심적인 위치에 서 있다 보니 뻘짓이 벌어지는 경우 파급력이 워낙 커서 역사적으로 많은 교훈을 겪어야 했고 그런 교훈으로 얻은 결과 중 하나가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중앙은행의 설립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정권은 금융권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평상 시에는 중앙은행의 조언을 받아 들이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정책 목표 실현을 위한 금융정책을 추진해야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같은 긴급 상황에서 긴급자금을 지원한다든가 카드 대란이나 거대기업의 좌초 등의 위기 상황에서는 금융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러다 보니 매 정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관치금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 인수위 때부터 관치금융 논란이 있었고 작년 9월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자진사퇴로 관치금융 논란이 최고조에 달했다. 정부가 징계 압박을 행사하면서 주요 은행의 수장을 친정부 인사로 교체하려 한다는 것이다.

 

은행의 최고위층 인사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방법이 없다. 사실 여부 자체를 판단하기가 가능하지 않은 사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내 대출한도를 축소시키면서 다른 이들에게 대출을 더 해 주겠다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쥐어짜 내며 정부에 협조하는 금융권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경험했던 범위 내에서 IMF 사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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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2월 13일에 "은행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 고통이 크다.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으므로 수익을 어려운 국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게 이른바 상생금융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향후 금융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해 충당금을 튼튼하게 쌓는 데에 쓰는 것이 적합하다" 라는 견해를 밝혔다고 한다.

(https://www.korea.kr/news/presidentView.do?newsId=148911644)

 

2월 17일 국민의 힘 김회곤 의원은 "은행의 공공성 확보"를 문구로 담은 은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 했다고 한다.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30217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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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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