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평 : 내게는 너무나 도도한 당신. 아름답지만 가질 수 없는 너.
"좌펜더 우깁슨"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지른 물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겨울 뮤직 포스에서 350만원에 구매했다. 59 히스토릭의 명성 때문에 Standard 50s가 인기 많을 법한데 60s으로 고른 건 그나마 60s의 넥이 얇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래도 50s를 만져나 보고 골라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은 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분명 좋은 기타임에는 틀림 없으나 써 보니 나하고는 잘 안 맞는다. 특별히 이 놈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레스폴 기타 자체가 나하고는 안 맞는다. 기타 외관과 소리에는 분명 압도적인 장점이 있는데 그 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단점으로 느껴진다.
손에 잡을 때마다 매번 좋은 기타라는 걸 느끼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잡지 않게 된다. 잘 안 쓰게 되니 중고로 처분해 버릴까 하다가도 어쩌다가 손에 잡을 때마다 좋은 기타라는 걸 매번 확인하면서 처분할 마음이 싹 사라진다. 하지만 그 이후 손에 잡히지 않아서 중고 처분 욕구를 다시 느끼는 것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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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싼 기타를 누가 사나 했는데 막상 모델을 정해서 사려고 보면 의외로 매물이 없다. 생각 외로 고가 악기에 돈 쓰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 악기 수입업체들이 먹고 살지 않겠는가.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한번 수입하면 시장에 넘쳐나는 것 같지만 일정한 시간이 흘러가면 신상품은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이러니 중고 기타라도 매입하려는 세력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레스폴 스탠다드가 흔할 줄 알았는데 이것 역시 찾아 보니 뮤직포스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매장에 전화 예약 후 방문했더니 색상이 아이스티와 버건디 색상 뿐이었음. 누구나 좋아할만한 전통적인 체리버스트는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 버건디 색상을 쳐 보니 약간의 버징이 있기도 하고 점원이 자꾸 아이스티를 권하길래 권하는대로 질렀다. (예전 같으면 직원이 권하면 의심하고 그 반대로 했는데 요즘은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권하는대로 따라 가는 편이다)
깁슨 레스폴이 고가이기는 하지만 가격대에 어울리지 않게 마감에 하자가 제법 있는 모양이다. 직원이 이를 경고하면 마감을 확인해 보라고 하는데 뮤직포스 매장의 내부 조명이 어두워서 자세히 보기가 힘들었다. 전기세 아낄려고 그런 것도 아닐텐데 좀 밝은 조명을 쓰면 안 될라나. 인토네이션을 비롯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 및 촉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우선적으로 확인하고 육안으로 확인해야 할 건 대충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드케이스에 넣어서 돌아오는데, 명성대로 무겁긴 했다. 나중에 집에서 밝은 조명에서 찬찬히 살펴 보니 마감은 매우 깔끔하다. 악명 높았던 마감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덜렁이거나 튀어 나온 부분도 전혀 없는 깔끔 그 자체였다. 사소한 기스나 덴트 자국도 하나 없다. 뮤직포스에서 평소 엄청나게 깐깐하게 관리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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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외형을 가진 기타다. 하지만 아이스티 색상은 엄청 예뻐 보일 때도 있고 뭔가 아쉬워 보일 때도 있다.체리 썬버스트가 인기 있는 것이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플레임 메이플 탑의 무늬는 각도에 따라서 보일 때도 있고 안 보일 때도 있다. 탑 무늬가 안 보일 때는 원형 나이테가 잘 보이는 그루터기 통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탑 무늬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아쉬움은 있지만 정 붙이고 살기에는 충분한 외형이다.
전체적으로 품질 면에서 아쉬운 부분은 전혀 없다. 고질적인 문제라는 3번 줄 풀림 따위도 없었다. 튜닝이 안정적인 편은 아니어서 자주 해 줘야 하지만 밴딩 몇 번에 튜닝이 나가는 정도는 아니었다. 마감도 매우 좋고 기능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었다. 그리고 글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손으로 잡았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견고함과 고급스러움이 있다.
심지어 신품에서 나오는 냄새도 좋다. 빈티지 스트라토케스터의 락커 냄새는 나에게는 정말 악취에 가까웠는데 이 녀석의 신품 냄새는 강하기는 해도 나름 기분 좋은 향을 가졌다. 나무로 만들어진 새 피아노를 들였을 때와 비슷한 향이 난다. 스트라토케스터에 비해 노브도 점잖게 생겼고 외관처럼 노브 회전도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부드럽다.
소리는 쇠줄 챙챙 거리는 소리부터가 스트라토케스터하고는 확연히 다르다. 클린톤으로 쳐 보면 다소 땅땅하면서도 정갈한 소리가 난다. 헬릭스에 연결해서 왠만한 프리셋만 대충 골라도 70-80년대 하드락에서 듣던 소리들이 비슷하게 나온다.하드락 수준을 넘어서는 빡쎈 드라이브를 걸어 보니 소리가 감동적일 정도로 터져 나온다. 드라이브 사운드만 놓고 보면 천하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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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서술한 점을 빼고는 나머지는 나에게 몽땅 단점이다. 우선 제일 불편한 것은 무게 중심이다. 기타의 중심이 바디 쪽에 위치한 탓에 허벅지에 괴고 앉아 칠 때에는 무게 중심이 허벅지의 바깥쪽 바디에 있다. 이러니 한쪽이 무거운 시소와 같아서 그냥 두면 바디쪽이 바닥으로 기울어지고 넥이 허공으로 고개를 들게 된다. 이러다 보니 자꾸 의식적으로 넥을 손을 눌러줘야 하고 결국 기타 넥을 지면과 평행한 상태에서 치게 된다. 굉장히 불편해진다.
레스폴 연주 동영상을 보면 다들 앉아서 칠 때 기타 넥을 지면과 평행한 상태로 두는 영상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게 폼 잡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디 엉덩이가 무거우니 넥이 자꾸 하늘로 올라가는지라 이걸 누르려고 하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연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손목을 억지로 꺾어가며 쳐야 한다. 앉아서 치기가 엄청 불편한다.
거기에 더해 기타 모양은 동그랗지만 신체에 닿는 부분은 각이 져 있다. 원체 무게가 있다보니 앉아서 치면 허벅지가 가해지는 압력이 제법 높아서 불편하다. 반바지 차림으로 앉아서 치면 허벅지에 붉게 눌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서서 치면 뽀대는 나는데 무게 때문에 어깨가 힘들지며 방구석에서 기타 칠 때 스트랩 메고 서서 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앉아서 치기든 서서 치든 불편한 기타다. 소비자 불만이 없었을 리 없다. 깁슨에서 바디에 구멍 뚫고 속을 파내야 했던 당위성이 느껴진다.
브릿지가 스트렛에 비하면 바디에서 하늘 높게 떠 있있다. 개인적으로 스트렛에 익숙해서 그런지 레스폴 브릿지에 오른손을 올려 놓고 피킹을 하면 오른손이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오른손가락을 바디에 놓고 칠 때가 많은데 픽가드가 없다면 오른손가락 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픽가드 없는 것이 훨씬 뽀대 있어 보이지만 손이 작은 사람에게는 픽가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이플랫 연주가 불편하다는 건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물을 만져 보니 불편한 것을 넘어 12플랫까지만 쓰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손 가는대로 기타 치면 절대로 10 플랫 이상을 넘어가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기타다. 12플랫을 넘겨서 지판을 짚으려 하니 무슨 필라테스 기구에서 끙끙 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지판이 편평한데 줄높이가 낮으면 밴딩을 못 한다. 뮤직포스에서 셋업을 해 주긴 했는데 그 때도 줄 높이가 낮아서 불편했지만 적응해 볼 요량으로 그대로 가져와서 며칠 쳐 보니 도저히 안 맞아서 리페어 샵에 다시 맡겨서 줄높이를 정상 범위에서 최대한 올렸다. 손가락 힘이 좋은 편이 아닌지라 줄을 다루기가 더 어려워졌다. 줄 다루기는 어렵지만 비브라토에 대한 반응성은 스트랫보다 훨씬 좋다. 조금만 움직여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정형 브릿지라 그런 듯.
전체적으로 연주 편의성 면에서 스트렛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놈은 절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물론 그 반대인 경우도 문제가 발생하는 듯. 레스폴에 익숙한 사람들은 스트라토케스터의 곡률 있는 지판과 낮은 브릿지 그리고 미들 픽업 때문에 고생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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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 레스폴은 나에게 편의성 측면에서 점수가 낮지만 소리에 대해서도 드라이브 톤 외에 나머지는 모두 아쉽다.
쇠줄 챙챙 거리는 생톤은 분명 좋게 들린다. 엠프에 연결해 보면 좋은 소리가 날 것 같은 느낌을 주긴 하는데 막상 엠프에 연결해서 클린톤이나 크런치톤으로 들어보면 이걸 어디에 써 먹어야 할지 애매하게 느껴진다. 분명 정갈하고 깔끔한 소리이며 다소 딱딱한 심지가 느껴지는 소리가 필요한 음악에 쓰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레스폴의 클린톤으로 기억나는 것은 Hason의 MMMBop 정도인데 이 곡도 자세히 들어보면 완전 클린톤이 아니라 살짝 크런치 톤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레스폴로 예쁜 클린톤을 뽑아낸 곡이 생각나지 않는다. 뭔가 굉장히 미국적인 팝 음악에 어울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드는데 내 머리 속에 예제로 삼을 수 있는 데이터가 없으니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막상 써 보려고 하면 막막해 진다.
레스폴이 블루스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블루스 뮤지션들 중에서 레스폴을 사용하는 이들은 없다. 레스폴을 사용했던 게리무어 형님은 플로이드로즈 달린 잭슨기타로도 블루지한 곡을 연주하는 양반이다. 게리무어의 블루스가 멋지게 들리는 건 그 형님 특유의 연주력과 기가 막힌 멜로디 창작 능력에 기인한 것일 뿐 개인적으로 블루스 장르에서 레스폴 소리는 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재즈 장르에 써 먹기에는 레스폴이 세미 할로우 바디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이 녀석의 압도적인 장점은 드라이브 톤이다. 앨더 바디의 슈퍼스트랫도 빡쎈 드라이브 톤은 잘 나오지만 깽깽 거리는 고음역의 거슬리는 소리가 나는데 이 놈은 그런 깽깽거림 없이 깔끔하면서도 빡쎈 소리를 뽑아낸다. 연주 편의성은 낮지만 드라이브 소리만큼은 정말 깔끔하면서도 고급지다. 그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레스폴만이 가진 확실한 소리의 정체성은 대체 불가하다.
좋은 드라이브 톤이라는 장점 외에 나머지는 나에게 모두 단점이다. 하지만 그 하나의 장점이 너무나도 압도적이다. 깁슨이 레스폴을 단종하고 SG를 만들어야 했었던 당위에 공감이 가고 폴 리드 스미스가 무슨 생각으로 PRS를 만들고자 했는지 이해가 간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스폴을 찾는 이들이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레스폴은 분명 아름다운 외관에 압도적인 드리이브 톤을 내는 견고한 기타이지만 그 외에는 모두 아쉬운 기타다. Gibson의 사세가 계속 기울어 갔던 것도 이유가 분명 있다.
좋은 기타인 건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레스폴 빠가 될 가능성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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