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껏 살아 오면서 경품 추첨 같은 행운에 걸려 본 적이 한번도 없다. 하물며 복권 따위는 걸려 본 적이 당연히 없다. 어쩌면 확률적으로 볼 때 여태 걸린 적이 없으므로 앞으로 당첨될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확률은 확률일 뿐. 무작위로 무한대 시도했을 때 결과가 확률대로 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럴 듯한 믿음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확률에서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그 전제를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복권 1등에 당첨된 사람들 중에서 잘 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대중매체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아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규모의 물질적 풍요는 생활 그 자체를 변화 시킨다.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상황에 따르는 존재. 넘치는 돈이 생기면 삶 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삶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모험이다. 성공적으로 삶을 바꾸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삶을 바꾸지 않고 버티기를 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넘치는 돈이 삶을 삼켜 버릴 것이다.
연금 복권 1등은 월 500만원씩 20년간 지급된다. 20세 젊은이가 1등에 당첨된다면 40세까지는 월 500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건가? 뻔히 연금 마감 기한은 보이지만 인간은 대개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그 상황에서 가장 편하고 쉬운 길을 그 때 그 때 선택하다 보면 20년은 금방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물리적인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20년 삶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월 500에 20년이라면 12억이다. 많다면 많은 돈이지만 적다면 또 적다고 할만한 돈. 누구에게는 1년 술값도 안 되는 돈이다. 로또를 맞아 100억을 맞는다 해도 마찬가지. 그 또한 누구에게는 몇 년치 술값에 지나지 않을 돈.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미다스는 그의 딸을 황금으로 만드는 비극을 초래하고서야 그의 능력을 반납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결국 비극을 부른다.
복권은 가면 쓴 저주, curse in disguise, 일 가능성이 높다. 받아 들일 수 있는 자에게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자는 그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파멸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눈 앞에 복권 1등이 당첨된다면 나 역시 덥썩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시 어쩌면 말이다...
여태까지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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